이곳 중국의 절강성지역은 산동반도와 함께 우리 조상들이 많이 왕래하던 곳입니다. 경상도에 가면 이곳 지명과 같은 지명이 많은데 통일신라 때 당나라인 이곳을 많이 오가면서 보고 따라서 지은 것이랍니다. 그 때 우리 최초 국어독립운동가요 문자개혁운동가인 설총이 이곳 중국을 많이 오가며 느낀 게 있어 우리식 글쓰기인 이두를 만들고 쓰게 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또 중국 근대 문자개혁운동가인 노신(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고 말한 문필가)와 마찬가지 문자개혁을 주장한 주은래가 태어나 자란 곳이 이곳 소흥입니다. 제가 이곳 대학에 와 있기로 결심할 때 노신과 주은래 고향이 이곳이라는 것이 중요한 결정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나라다운 나라인 하나라를 세워 우리 중국의 단군이라고 말하는 우왕릉이 학교 안에 있는 내 숙소에서 바라보입니다.
아무튼 나는 이곳에서 문자개혁과 우리 국어 독립운동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곳 우왕릉과 우왕릉 뒷산 풍경과 노신과 주은래가 자란 마을 사진을 올립니다.
우왕(4500년 전 하나라 왕) 릉 앞에 제단의 향로와 향입니다. 중국인은 향이 사람 키보다 큰 것도
많이 씁니다.
저 바위 위에서 우왕이 하나라를 세우고, 치산치수로 중국을 잘 다스릴 구상을 했다고 합니다. 저도 저 바위 위에
앉아서 온 중국과 온 누리에 한글을 뿌릴 구상을 해봤고 아래 사진 바위가 그 바위이고 그 바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들입니다.
이곳은 수로가 많고 그 수로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많습니다. 저 수로에 쪽 배를 타고 관광도 합니다. 위 건물은 월극을
공연하는 극장입니다. 이곳이 월나라의 수도였습니다. 오월동주 라는 말고 이 지역에 얽힌 이야기
입니다.
작가 노신의 동상 옆에서 제 아들이 이곳에 왔을 때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그 위 사진은 우왕릉 뒷산이
회계산 풍경이고요. 붓글씨 잘 쓰는 왕희지가 놀던 산이기도 합니다. 나는 시간이 있으면 자주 이 산을 오릅니다.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갔다 왔습니다. 봄에도 날씨가 30도를 넘기에 새벽에 등산을 합니다. 아래 사진은 아내와
큰 딸과 아들이 와서 찍은 사진입니다. 작은 딸은 의사여서 병원 일로 못왔습니다.
이곳이 도원결의라는 말이 나온 지역이고 봉숭아 밭이 많습니다. 지난 봄에 우석 태호라는 큰 호수 구경을 가서
그곳 영화 촬영지에서 동료 교수와 도원 결의를 하자면서 찍은 사진이지요. 아래 사진은 그곳 안내판인데
중국 관광지엔 어디를 가나 한글 안내글이 있습니다. 반가워서 나는 한글만 보면 찍으니 동료 교수들이
한글 간판이나 안내글이 있으면 나를 불러서 사진을 찍게 합니다.
초봄에 우왕릉 옆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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