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지키기 60년 이야기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 이 대로
1. 인사말
나는 국어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국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한글 지키는 일을 40 여 년 해왔다. 한국말과 한글을 쓰는 한국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일은 나에게도 좋고 온 겨레와 나라에 중요하고 큰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일은 하루아침에 끝날 일도 아니고 몇 사람이 애써서 될 일이 아니다. 온 국민과 정부가 힘을 모아 땀흘려 해도 뜻을 이루기 힘든 큰 일이다. 그래서 지난 40 년 동안 이 길을 걸으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걸 국어 선생님들에게 말해주고 이 일을 함께 할 것을 부탁하고자 한다. 그리고 오늘 함께 의논하고자 한다.
2. 수 천 년 동안 절름발이 말글살이를 한 우리 겨레
우리 겨레는 수 천년 동안 우리말은 있으나 우리 글자가 없어 중국 한자, 한문을 빌려 썼다. 한문은 중국말을 적기에 좋은 글자일지 몰라도 우리말을 적기엔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신라시대부터 바르고 쉽게 적을 수 있는 우리 글자를 갖고 싶어했고 신라 때 이두란 우리 식 글살이를 창안해 조선시대까지 한문과 함께 썼다. 그러나 이두도 한자를 빌려 만든 글쓰기여서 마찬가지로 우리말을 적기엔 불편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적기에 매우 좋은 우리 글자 한글을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 글자를 만들고서도 조선시대 500년 동안 나라 글자로 인정하지 않고 즐겨 쓰지 않았다.( 이야기 주제: 한글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가? 한글은 옛 글자를 본 따 만들었나? 한자는 어느 나라 글자인가?)
3. 한글을 살려 쓰지 못한 까닭
지금부터 558년 전인 1443년 우리 글자인 한글을 만들고서도 쓰지 못한 것은 중국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고 지배층이 사대사상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과 많은 사람들이 우리 글자를 쓰고 싶어했고 또 힘썼다. 세종 때 중요한 책을 한글로 만들고 공문서를 훈민정음으로 쓴 일이 있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일본에 짐으로서 우리는 중국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고 고종 때부터 한글을 나라 글자(1894년 고종 칙령1호)라고 하면서 살려 쓰려고 있다. 한글만으로 만든 독립신문(1896)도 나오고 한글을 갈고 닦으려는 노력이 일어난다. 주시경 같은 국어학자가 나타나 한글을 갈고 닦고 가르치기에 힘쓴다. 이 때 기독교 성경을 한글로 쓴 일과 개혁세력의 힘이 한글을 빛보게 한다. 그러나 나라가 기울어 일제 식민지가 되니 우리말글을 또 못쓰게 된다. 유교와 불교는 한문만 고집하다가 밀리게 된다. 다행히 1945년에 일제가 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짐으로서 한글이 빛을 보게 된다. (만약 세종 때부터 한글만으로 말글살이를 했다면? 왜 한글을 쓰지 않았나?)
4. 한글 쓰고 지키는 것은 국어독립운동이다.
우리말은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어야 좋고 우리말이 살고 빛난다.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것은 절름발이 말글살이를 벗어나는 일이고 우리말이 바로 서는 일이다. 수 년 년 동안 남의 글자와 남의 문화에 짓눌린 말글 속박에서 풀려나는 문화독립이다.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말글살이는 수 천년 우리 겨레의 꿈이었다. 한글을 지키고 한글만으로 말글살이를 하는 것은 그 꿈을 이루는 것이다. 1945년에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고 지난 60년 동안 많은 분들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피 땀흘리고 있다. 우리말을 한자나 로마자 같은 남의 나라글자를 섞어 쓰던가 남의 나라말을 섞어 쓰면 우리말이 힘을 못쓴다. (한글만 쓰기는 불가능한가? 經濟의 뜻? 우리말을 한글만으로 쓰자는 게 국수주의인가?)
5. 일제 식민지 시대 한글 지키고 갈고 닦기
일제시대 주시경의 제자들과 겨레를 사랑하고 나라 독립을 바라는 분들이 모여 조선어학회를 만들고 한글을 지키고 갈고 닦기에 힘썼다. 1426년 가갸날(한글날)을 만들고 1433년 한글맞춤법을 만들고 우리말모이(국어사전)를 만든 것은 조선 고종 때 공문서에 한글을 쓰고 한글만으로 만든 신문이 나온 것과 함께 세종 때 한글 창제 다음으로 중대한 일이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한글을 살리고 빛내는 일을 하다가 1942년 일제에 감옥으로 끌려가 이윤재, 한징 두 분은 감옥에서 고문과 추위와 배고픔으로 돌아가시고 여러 사람이 감옥살이를 했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이 때 한글을 지키고 갈고 닦은 일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키우는 밑바탕이 되었다. 조선어학회는 우리나라 최초 민간 학술모임이고, 한글날(가갸날)은 우리나라 최초 기념일이다. (만해가 쓴 가갸날이란 시를 아는가? )
6 미군정시대 한글 살리기 (1945년 -1948)
일제로부터 우리가 해방된 건 연합국 덕이다. 일제 대신 미군이 이 땅을 점령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서 공문서와 교과서를 한문과 일본 말글이 아닌 우리말글로 만들었다. 외솔 최현배는 미군정청에 들어가 한글로 교재를 만들어 교육하게 했다. 조선어학회는 한글강습소를 세우고 한글 교본을 만들어 국어 교사를 양성했다. 그 때 학교 선생, 관청 관료들은 일제 때 일본말글로 교육을 하고 공문서를 썼기에 우리말글을 잘 알지 못해서 우리말글을 가르치는 게 가장 급한 일이었다. 그리고 조선어학회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가 못쓰게 한 우리말을 도로 찾아 쓰기 운동을 했다. 조선어학회와 그 회원들은 대한민국을 세울 밑바탕을 만든 최고 건국 공로자요 민족정기 수호자다. 우리 토박이말, 우리 땅이름 찾아 쓰기(새문안길, 건널목, 서울)에 힘썼으나 일제 때 일본 한자혼용 말글살이에 길든 친일 관료와 정치인들이 이를 국민을 무식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헐뜯고 반대했다.
1945년 최현배 미군정청 학무국에 들어가 교과서 한글로 쓰고 한자와 중국어 따로 배움
1945년 조선어학회가 한글교본 '한글 첫걸음, 우리 국어 교재' 만들고 한글교육
1946년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함
1947년 조선말 큰사전 1권 펴냄
1947년 우리말 도로찾아쓰기 운동
1948년 조선어학회 중등교사 양성소에서 교사 배출
7. 대한민국 세우며 한글 살리고 지키기
조선어학회 사건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안호상박사가 초대 문교부장관이 되어 한글 전용법을 만들어 공문서만이라도 한글로 쓰게 하고, 최현배 교수가 문교부 편수국장이 되어 우리말글로 교과서를 만들어 쓰게 한다. 아울러 조선어학회는 1949년부터 한글학회라 이름을 바꾸고 큰사전을 펴내고 우리 토박이말 살려 쓰기 위해 힘쓴다. 외솔이 이화여대를 배꽃배움집으로 비행기를 날틀로 하자고 했다는 말이 이 때 나온다. 위 말은 외솔이 한 말이 아니고 한자파가 외솔 주장을 반박한 말이었다고 한다. 14대 국회 때 안호상박사와 함께 국회의원 이름패 한글로 쓰자는 운동을 한 일이 있는 데 일제 한자혼용 숭배자 때문에 한글전용법을 만들지 못할 번했다고 증언하셨다. (조선어 학회와 한글과 한글날보다 더 큰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가 누구인가?)
1948년 한글전용법 제정
1948년 대한민국 초, 중고등 교과서 한글로 만듬
1949년 조선어학회 이름을 한글학회로 바꿈
1949년 한글전용 촉진회 만듦
1949년 왜식간판 바꾸기 운동
1951년 공병우식 한글속도 타자기 군부대와 관공서에서 실용함
1951년 국민학교 교과서에 한자 744자 가로 안에 함께 씀
1953년 한글 간소화 파동(이승만 대통령과 친일 관료와 학자가 한글 맞춤법 무시 훈령)
1956년 10월 9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글 전용을 강조 함
1957년 문교부의 일본식 한자 약자 제정 계획을 깨뜨림
1957년 한글 전용 실천 요강 의결, 공문서와 간판 한글로 쓰기로 함
1956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주요한) 만듦
1958년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한글학회 사무실 옮김(애산 이인 선생이 집터 내줌)
8. 5.16 군사혁명과 친일 한자혼용파 날 뜀
1961년 친일 군인 박정희와 김종필이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자 일본식 한자혼용 말글살이를 주장하는 한자파들이 고개를 들고 날뛰며 교과서에서 토박이말을 몰아내고 일본식 한자말을 혼용하기 위해 날 뛰기 시작한다. 한글전용파와 한자혼용파 싸움이 뜨겁게 일어난다. 경성제국대학 학맥인 이희승과 이숭령이 서울대 교수로서 그 제자와 함께 나서고 일제 관료와 정치인, 경제인이 뭉쳐서 한글 짓밟기에 힘쓰니 한글 전용파가 밀리기 시작한다. 일반 국민과 젊은 대한민국 세대가 저항해보지만 서울대학 출신이 정치, 문화, 언론, 경제, 관직사회를 장악하고 뒤에서 일본이 밀어주니 어쩔 수 없었다. 5.16 혁명은 친일파가 고개를 들고 우리 경제 정치 문화가 다시 일본에 예속되는 계기가 된다. (한자 혼용은 누가 주장하나?)
9. 박정희 대통령 때 한글 지키기
한자파들은 교과서에 한자를 혼용하고 우리 토박이말로 쓴 외솔 최현배의 말본(문법책)을 죽이려든다. 이른바 '이름씨'란 말을 못쓰게 하고 '명사'란 말로 쓰게 하는 것이다. 친일 정치인 김종필, 박태준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들 보수신문이 도와주고 일제 관료와 지식인들이 모두 찬성하니 한글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를 보다 못한 젊은 대학생들이 우리 한글을 지키기 위해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든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중 속에서 자생한 국어독립운동단체이다. 학생들이 일어나니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다. 그러나 한자파가 한국어문교육연구회란 조직을 만들어 맛 서고 김종필 총리와 민관식 문교장관이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전용추진정책을 가로막는다. 한글, 한자파 싸움이 치열해지니 학생과 국민만 피해를 보고 국어생활이 혼란스럽게 된다.
1962년 한글단체 문교부에 한글 전용을 건의함.
1962년 한글전용특별심의회 설치. 신문, 잡지 기타 간행물도 한글만으로 쓰고 한자 병기하기로 했으나 한자파 반대로 시행되지 않음
1963년 교과서에 한자를 드러내 쓰기로 함
1963년 문교부의 말본 교과서에 대한 결정으로 이른바 "말본 파동"이 일어남.
1964년 국민학생에게도 상용한자 가르치고 중, 고교 책에 한자 혼용하기로 함
1964년 한글 전용에 관한 주장을 "문화 선언"으로 발표함.
1966년 《한글 기계화》 펴냄.- 타자기나 컴퓨터로 글을 쓰는 건 매우 중요.
1967년 전국 국어 운동 대학생 연합회(회장 이봉원) 결성됨.
1968년 한글전용실천추진회(회장 주요한) 만듦 - 한글 단체 대표와 한글 운동가
1968년 박정희 대통령 한글전용 실천 7개항 발표(1970년부터 점차 한글전용 강행하기로 함)
1969년 한국어문교육연구회 태어남(회장 이희승), 한글전용 반대하고 한자혼용추진운동
1970년 외솔 선생 돌아가시고 허웅 교수가 한글학회 회장
1971년 한국어문교육연구회 <語文敎育是正促求建議書>를 국무총리께 제출.
이 建議書가 받아들여져 文敎部는 1972년 '漢文敎育用 基礎漢字 1,800字' 選定 公布
1972년 한글전용정책 포기함, 김종필 총리와 민관식문교장관이 앞장서서 한글 포기하게 함
1972년 한글 운동 소식지 '한글 새소식' 나옴
1972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회장 이대로) 결성
1972년 중등 국어과목 안에 있던 한자를 따로 한자과목 독립
1974년 한자혼용, 초등학교 한자교육 반대 호소문과 전국 순회 강연회
1974년 한글학회 병설로 한글 문화 협회 결성함.
1975년 한글 문화 협회 아래에 전국 국어 운동 고등학생 연합회를 둠.
1975년 글자 정책에 대한 성명서를 냄.
1975년 중 고교 책에 한자 병기하기로 함
1976년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 국어 순화 전국 순회 대강연회.
1976년 국어 순화 추진회(한글전용실천회 해산)의 창립
10.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 한글 지키기
박정희 유신독재 정치 때부터 국어운동학생회나 한글 지키기 위한 학생단체와 민간단체 활동이 힘들어지면서 관료 사회에서 한글전용법을 위반하는 일이 잦고 한글사랑 정신이 식어가기 시작한다. 서울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한자파는 교과서 지문부터 일본식 한자말을 많이 쓰는 사람들 글로 바꾼다. 그리고 전두환이 영어 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포항제철(사장 박태준), 대한항공(사장 조중훈), 재일 교포기업 농심(율촌장학회)과 재벌들이 한자혼용파를 도와준다. 정부나 언론이 우리말글을 더럽히고 짓밟아도 막을 힘이 없다. 결국 노태우 정부는 재벌들 요구를 받아들여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다. 학교에서 '한글사랑 나라사랑'이란 구호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전두환 시대는 한글 지키기 암흑기였다. 그러나 1988년 전두환이 밀려나면서부터 한글 지키기 운동이 다시 일어난다.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글쓴이 : 이대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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