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이대로
우리 한말은 지난 5000 해 동안 홀로서지 못했다.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말글살이가 우리말 홀로서기(독립)이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말글살이다. 이 일은 1300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설총이 이두를 만들어 쓸 때부터 우리 겨레가 이루려던 꿈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우리 글자가 없어서 중국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으면서 중국 한문이 글이고, 입으로 하는 말은 우리말인 ‘절름발이 말글살이’를 조선시대까지 했다. 이른바 말과 글이 하나인, 언문일치 말글살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 말글과 문화에 푹 빠진 신라 경덕왕 때에 설총(서기 750년 경)은 한자를 쓰더라도 우리식으로 글을 적는 ‘이두’란 우리식 글쓰기를 만들어 썼다. 그러나 이두가 우리식 말투로 쓰는 글쓰기라고 해도 한자를 쓰는 데는 불편한건 마찬가지였다. 또 한자는 우리말을 제대로 적을 수 없는 글자여서 더욱 그랬다. 그래도 어쩔 수없이 이 이두 글자생활은 한문과 함께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마침내 조선 4대 임금인 세종이 우리말을 우리말소리대로 적을 수 있는 우리 글자,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었다. 한글은 우리말을 적기 아주 좋은 글자이고, 온 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였는데 그 때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 못했다. 한문은 ‘참글(진서)’이고 한글은 ‘암글’이나 ‘언문’이라면서 업신여기고 조선시대 끝까지 공식문서나 교과서에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한문은 고급스런 글이었고 출세 수단이었다.
그러나 한문은 배우고 쓰기 어려워 백성 가운데 95%는 한문을 몰라 까막눈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끝 무렵에 중국 굴레로부터 벗어나면서 나라 이름도 ‘대한제국’이라고 바꾸고 우리 글자인 한글을 쓰기 시작했다. 배우고 쓰기 쉬운 소리글자인 로마자를 쓰는 서양 사람들이 기독교 성경을 한글로 쓰는 걸 보면서 우리 한글이 훌륭한 글자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150년 전 조선시대만 해도 한문 쓰는 것이 당연한 거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문서와 교과서 같은 공식 언어는 한문이었고, 민중들 말글살이는 토박이말이었다. 이런 지배층과 일반 백성이 쓰는 말글이 다른 이중 언어생활을 하니 서로 소통이 안 되고 매우 불편한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그때 주시경, 지석영 같은 선각자들이 배우고 쓰기 쉬운 우리 말글로 온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어 기울어진 나라를 일으키려고 힘썼고, 고종은 처음으로 우리 글자를 ‘나라 글자(국문)’라고 부르면서 공문서에도 쓰게 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에 나라를 강제로 빼앗기면서 우리말이 사라질 뻔했으나, 주시경의 제자들이 우리 말글을 지키고 갈고 닦아서 광복 후에도 우리 말글로 교육을 하고 공문서를 쓰는 말글살이를 하게 되었다.
한문으로부터 해방되어 우리 말글살이가 홀로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리고 온 국민이 글을 쓰고 읽을 줄 알아서 나라가 발전하고 우리 문화가 꽃피고 있다. 그런데 한문 대신 영어 섬기기로 바뀌고 있어 한심스럽고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