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크랩] 말이 쉬워야 뜻과 마음이 통하고 살 기 좋다

한글빛 2016. 12. 15. 16:42

박정희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정책 구호 견주어보기
말이 쉬워야 뜻과 마음이 통하고 살기 좋다
 
이대로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12/15 [10:24]

며칠 전에 박근혜 18대 대통령이 임기 1년 2개월 남겨놓고 국회로부터 탄핵 결정이 되어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 스스로는 말할 것이 없고 나라와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오늘날은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국가인데 그 걸 무시하고 저 혼자 생각으로 제멋대로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람을 보좌관이나 비서로 앉히고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정치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런 불행한 대통령이 안 나오길 바라면서 5,6대 대통령 박정희 정부와 이번 박근혜 정부 때 의 정책 구호를 살펴보면서 내 경험과 느낌을 이야기 하련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때 가난과 무심함에 허덕이던 국민들의 소망과 뜻을 헤아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라고 노래하면서 “한글사랑 나라사랑”구호 속에 국민들과 한마음으로 국민의 가난과 무지를 몰아내고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기초를 닦음으로써 지금도 그를 좋게 보는 이가 많다. 그리고 그의 딸인 박근혜가 그 아버지가 잘 할 일은 살리고 못한 일은 버려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 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찍어준 국민이 많다. 그런데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 뒤 유신독재헌법을 만들고 안기부와 검찰에서 국민을 괴롭힌 자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앉히고 공직자로서 기본이 안 된 문고리 3인방이란 비서와 친구 최순실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다가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다. 

 

▲ 2013년. 국어기본법을 어기고 한자와 영문 뒤범벅인 청와대와 정부기관 누리집의 알림글     ©브레이크뉴스
▲ 2013년. 국어기본법을 어기고 한자와 영문 뒤범벅인 청와대와 정부기관 누리집의 알림글  ©브레이크뉴스

박근혜 정권 초기 공문서는 한글로 적는 걸 원칙으로 한 국어기본법과 국민이 알아보기 쉬운 말글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어기고 한자와 영문으로 뒤범벅인 누리집 알림판에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라는 어려운 정책 구호를 내세우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정책까지 발표했다.

  

50여 난 전 박정희 정부가 일본 식민지 때처럼 교과서에 한자를 혼용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잘못을 되풀이한 것이다. 

  

나는 그 때 그 잘못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이 정권의 불행을 내다보고 바로잡으려고 건의하고 애썼다. 그러나 귀를 막고 있었다.  

  

나는 ‘문화융성’이란 말이 처음 들었을 때 박정희가 한글로 문맹을 없애고 국민 지식수준을 높였듯이 우리 말글을 살리고 빛내어 자주문화 발전에 힘쓰길 기대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박정희는 정권 초기 국민의 소리를 듣고 “잘 살아보자”는 알기 쉬운 정책 구호를 외치며 국민과 한마음이 되어 일을 했는데 박근혜는 국민이 알아보기 힘든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란 어려운 말을 내세워 국민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고 제 개인 인연이 있는 이가 멋대로 국정을 농단해 나라를 뒤흔들게 했다. 

 

그러나 진짜 주권자인 국민과 하늘은 그 잘못을 그대로 두지 않고 촛불을 밝혀 들춰냈다. 그리고 국회는 대통령직을 내놓으라는 탄핵 결의를 했다. 

 

박정희의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와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구호 비교

 

▲ 2015년. 왼쪽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     ©브레이크뉴스
▲ 청와대 앞 효자동 사무소 기자회견 모습.    ©브레이크뉴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한 잘못이 얼마나 큰가를 모르고 있다. 박정희는 7,8,9대 대통령 때엔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유신독재를 했으나 5,6대 때엔 보좌관과 국민의 소리를 듣고 한글과 농촌을 살리려고 국민과 함께 애쓴 일이 있다.

  

그 때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한글운동과 농촌운동을 하는 대학생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함께 밥을 먹고 학생들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꽃다운 고등학생들이 배와 함께 물속에 가라앉고 있는 순간에도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관저에서 혼자 밥을 먹고 머리손질만 했다니 기가 막힌다.

  

나는 1962년 충남 예산농고에 들어갔는데 박정희 정부가 광복 뒤 미국 군정 때부터 한글로만 만들던 교과서를 1964년부터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니 농업시간도 한자 시간이 되었다. “논밭에 거름을 준다.”는 말은 “田畓에 施肥한다.”고 하고 “사과나무 가지치기와 꽃따기”란 말도 “果木 剪枝 摘花”라고 하면서 칠판에 한자를 쓰고 한자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시비’란 말은 싸움을 떠오르게 하고, ‘전지’란 말은 손전등을 떠오르게 하고, ‘적화’란 말은 ‘적화통일’이란 말을 떠오르게 해서 머리가 어지럽고 공부가 제대로 안 되었다. 거기다가 도서관에 가서 농업 전문서적을 열람해보면 한글로 된 책은 없고 일본책이거나 일본 책을 베낀 한자혼용 책이었다.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들어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정부에 그 잘못을 알려준 일이 있다. 1968년 봄 동숭동 교정에서 우리 대학생들은 “국어정책 바로잡기 기자회견”했는데 그 때 방송 인터뷰를 내가 했었다. 나는 그 때 “왜 정부는 한글은 훌륭한 글자이며 세종대왕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고마운 분이라고 가르치면서 한글 전용법은 지키지 않고 세종대왕의 업적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지 않는가?”라고 말한 일이 있다. 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은 명동과 종로, 광화문 지하도에서 우리 주장을 쓴 전단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 우리 활동을 언론이 보도했고 그 보도를 박정희 대통령이 보고 이은상 문화 특보에게 그 문제에 대한 자문을 받고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국민의 소리를 정책에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은상 선생과 한갑수 선생처럼 바른말을 하는 보좌관이나 비서를 가까이 하고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니라 간신과 같은 문고리 3인방 비서와 유신 독재에 앞장 선 김기춘 비서실장, 최순실 같은 제 친구만 옆에 두었다가 나라를 흔들리게 만들어 스스로는 말할 것이 없고 박정희 대통령 업적까지 수렁으로 끌어넣은 것이다. 나는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에 김재춘 교육부차관이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해서 대통령에게 전자우편으로 그 잘못을 알리는 건의문을 냈으나 아무 답변이 없어 다시 등기우편으로 건의문을 보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여서 50여 개 한글교육단체가 한글회관 앞에서 한글교과서 장례식을 하고 효자동사무소까지 거리 시위를 한 뒤에 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내가 대통령 면담요구서를 청와대에 직접 냈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박정희 정권 때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나는 지난 50여 년 전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어정책 관련해서 수많은 건의문을 대통령들에게 보냈으나 답변이 없는 것은 처음이다. 이렇게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비선실세들의 말만 듣고 정치를 하니 나라가 흔들리고 탄핵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정권 초기에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쉬운 우리 말글구호를 내세워서 국민과 한 마음이 되었고 나라도 일어나게 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뒤 유신 독재를 하다가 불행하게 되었는데 그 유신독재 앞잡이와 간신을 비서로 옆에 두었다가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다. 

 

다음 대통령은 “창조경제 문화융성”같은 어려운 말을 내세우지 말고 세종대왕이 국민을 생각해서 쉬운 우리 글자를 만들었던 정신과 뜻을 계승 이어받아 성공하면 좋겠다. ‘창조경제’란 말은 “새 일자리 만들기, 새 먹거리 찾기”라고 하고, “문화융성”은 “우리 한글 꽃 피우기”나  “자주문화 꽃피우기”처럼 쉽고 분명한 구호로 바꾸어서 국민과 한마음으로 정치를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불행한 대통령은 안 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성공하면 스스로도 좋지만 국민과 나라에도 좋다. 더는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기 바라며 한마디 썼다. 

 

*필자/이대로.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회장. 칼럼니스트. 

 

 

 

 

박정희와 박근혜 정부 정책 구호 견주어보기

말이 쉬워야 뜻과 마음이 통하고 살 기 좋다

 

첨부파일 쉬운 말글이 소통을 돕고 정부와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hwp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회장 이대로

 

며칠 전에 박근혜 18대 대통령이 임기 12개월 남겨놓고 국회로부터 탄핵 결정이 되어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 스스로는 말할 것이 없고 나라와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오늘날은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국가인데 그 걸 무시하고 저 혼자 생각으로 제멋대로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람을 보좌관이나 비서로 앉히고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정치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런 불행한 대통령이 안 나오길 바라면서 5,6대 대통령 박정희 정부와 이번 박근혜 정부 때 의 정책 구호를 살펴보면서 내 경험과 느낌을 이야기 하련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때 가난과 무심함에 허덕이던 국민들의 소망과 뜻을 헤아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라고 노래하면서 한글사랑 나라사랑구호 속에 국민들과 한마음으로 국민의 가난과 무지를 몰아내고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기초를 닦음으로써 지금도 그를 좋게 보는 이가 많다. 그리고 그의 딸인 박근혜가 그 아버지가 잘 할 일은 살리고 못한 일은 버려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 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찍어준 국민이 많다. 그런데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 뒤 유신독재헌법을 만들고 안기부와 검찰에서 국민을 괴롭힌 자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앉히고 공직자로서 기본이 안 된 문고리 3인방이란 비서와 친구 최순실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다가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다.

 

2013. 국어기본법을 어기고 한자와 영문 뒤범벅인 청와대와 정부기관 누리집의 알림글

 

박근혜 정권 초기 공문서는 한글로 적는 걸 원칙으로 한 국어기본법과 국민이 알아보기 쉬운 말글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어기고 한자와 영문으로 뒤범벅인 누리집 알림판에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라는 어려운 정책 구호를 내세우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정책까지 발표했다. 50여 난 전 박정희 정부가 일본 식민지 때처럼 교과서에 한자를 혼용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잘못을 되풀이한 것이다. 나는 그 때 그 잘못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이 정권의 불행을 내다보고 바로잡으려고 건의하고 애썼다. 그러나 귀를 막고 있었다.

 

나는 문화융성이란 말이 처음 들었을 때 박정희가 한글로 문맹을 없애고 국민 지식수준을 높였듯이 우리 말글을 살리고 빛내어 자주문화 발전에 힘쓰길 기대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박정희는 정권 초기 국민의 소리를 듣고 잘 살아보자는 알기 쉬운 정책 구호를 외치며 국민과 한마음이 되어 일을 했는데 박근혜는 국민이 알아보기 힘든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란 어려운 말을 내세워 국민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고 제 개인 인연이 있는 이가 멋대로 국정을 농단해 나라를 뒤흔들게 했다. 그러나 진짜 주권자인 국민과 하늘은 그 잘못을 그대로 두지 않고 촛불을 밝혀 들춰냈다. 그리고 국회는 대통령직을 내놓으라는 탄핵 결의를 했다.

 

박정희의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와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구호 비교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한 잘못이 얼마나 큰가를 모르고 있다. 박정희는 7,8,9대 대통령 때엔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유신독재를 했으나 5,6대 때엔 보좌관과 국민의 소리를 듣고 한글과 농촌을 살리려고 국민과 함께 애쓴 일이 있다. 그 때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한글운동과 농촌운동을 하는 대학생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함께 밥을 먹고 학생들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꽃다운 고등학생들이 배와 함께 물속에 가라앉고 있는 순간에도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관저에서 혼자 밥을 먹고 머리손질만 했다니 기가 막힌다.

 

나는 1962년 충남 예산농고에 들어갔는데 박정희 정부가 광복 뒤 미국 군정 때부터 한글로만 만들던 교과서를 1964년부터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니 농업시간도 한자 시간이 되었다. “논밭에 거름을 준다.”는 말은 田畓施肥한다.”고 하고 사과나무 가지치기와 꽃따기란 말도 果木 剪枝 摘花라고 하면서 칠판에 한자를 쓰고 한자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시비란 말은 싸움을 떠오르게 하고, ‘전지란 말은 손전등을 떠오르게 하고, ‘적화란 말은 적화통일이란 말을 떠오르게 해서 머리가 어지럽고 공부가 제대로 안 되었다. 거기다가 도서관에 가서 농업 전문서적을 열람해보면 한글로 된 책은 없고 일본책이거나 일본 책을 베낀 한자혼용 책이었다.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들어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정부에 그 잘못을 알려준 일이 있다. 1968년 봄 동숭동 교정에서 우리 대학생들은 국어정책 바로잡기 기자회견했는데 그 때 방송 인터뷰를 내가 했었다. 나는 그 때 왜 정부는 한글은 훌륭한 글자이며 세종대왕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고마운 분이라고 가르치면서 한글 전용법은 지키지 않고 세종대왕의 업적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지 않는가?”라고 말한 일이 있다. 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은 명동과 종로, 광화문 지하도에서 우리 주장을 쓴 전단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 우리 활동을 언론이 보도했고 그 보도를 박정희 대통령이 보고 이은상 문화 특보에게 그 문제에 대한 자문을 받고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국민의 소리를 정책에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은상 선생과 한갑수 선생처럼 바른말을 하는 보좌관이나 비서를 가까이 하고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니라 간신과 같은 문고리 3인방 비서와 유신 독재에 앞장 선 김기춘 비서실장, 최순실 같은 제 친구만 옆에 두었다가 나라를 흔들리게 만들어 스스로는 말할 것이 없고 박정희 대통령 업적까지 수렁으로 끌어넣은 것이다. 나는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에 김재춘 교육부차관이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해서 대통령에게 전자우편으로 그 잘못을 알리는 건의문을 냈으나 아무 답변이 없어 다시 등기우편으로 건의문을 보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여서 50여 개 한글교육단체가 한글회관 앞에서 한글교과서 장례식을 하고 효자동사무소까지 거리 시위를 한 뒤에 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내가 대통령 면담요구서를 청와대에 직접 냈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박정희 정권 때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2015. 왼쪽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 오른쪽은 청와대 앞 효자동 사무소 기자회견 모습.

 

나는 지난 50여 년 전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어정책 관련해서 수많은 건의문을 대통령들에게 보냈으나 답변이 없는 것은 처음이다. 이렇게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비선실세들의 말만 듣고 정치를 하니 나라가 흔들리고 탄핵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정권 초기에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쉬운 우리 말글구호를 내세워서 국민과 한 마음이 되었고 나라도 일어나게 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뒤 유신 독재를 하다가 불행하게 되었는데 그 유신독재 앞잡이와 간신을 비서로 옆에 두었다가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다.

 

다음 대통령은 창조경제 문화융성같은 어려운 말을 내세우지 말고 세종대왕이 국민을 생각해서 쉬운 우리 글자를 만들었던 정신과 뜻을 계승 이어받아 성공하면 좋겠다. ‘창조경제란 말은 새 일자리 만들기, 새 먹거리 찾기라고 하고, “문화융성우리 한글 꽃 피우기자주문화 꽃피우기처럼 쉽고 분명한 구호로 바꾸어서 국민과 한마음으로 정치를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불행한 대통령은 안 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성공하면 스스로도 좋지만 국민과 나라에도 좋다. 더는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기 바라며 한마디 썼다.

 

출처 :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글쓴이 : 나라임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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