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정 90돌, 백범의 꿈을 되새기다
대한민국 임정 90돌, 백범의 꿈을 되새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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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의 우리말글사랑] 중국 항주와 가흥의 임정 유적지를 둘러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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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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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1일 임정 90돌을 맞이해 백범기념관을 찾아 임정과 백범 정신을 되새겼다 © 이대로 | |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90돌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고 독립 운동가들이 90년 전에 중국에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지금 이 나라의 뿌리다. 우리 헌법 전문에도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쓰여 있고,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90돌 기념식에서 “임시정부는 실로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요 정신적 토대”라고 말했다.
나는 지난 4월 11일 임시정부 90돌을 맞이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임시정부 요인들이 묻힌 효창원을 참배하고 4월 18일부터 5일 동안 중국 항주와 가흥에 있는 임정 유적지를 살펴보았다. 나라가 몹시 어려운 때를 맞이해서 우리의 뿌리요 정신의 바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백범 정신을 되새기며 지금 내가 무엇을 어찌해야 할 지 바른 길을 찾고 다짐하려는 뜻있는 발길이었다.
4월 19일 아침 비가 나리는 날에 1932년 11월부터 1934년 11월까지 임시정부 청사로 썼던 중국 항주 호변천 청사를 찾았다. 본래 연립주택 촌이라 초라했는데 중국 정부는 2년 전에 새로 지어서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호변천 청사를 살펴보고 상해에서 처음 와서 자리 잡은 군영여관 터를 찾아 나섰으나 지금도 여관으로 쓰고 있어서 찾기 힘들었다. 비를 맞으며 물어물어 간신히 찾았으나 유적지로 지정되지 않아 표지석도 없고 임시정부 자리였다는 아무 흔적이 없어 실망스러웠다.
▲ 2007년 새로 지은 임정 항주 청사 터. 2009년4월 19일 이대로 찍음 © 이대로 | |
▲ 새로 단장하기 전 모습, 長生路 湖邊忖 연립주택 입구. 이 건물 내 23號를 임시정부가 1932. 11. - 1934. 11. 청사로 썼다. 1999년 3월 이봉원 찍음 © 이봉원 | | 다음은 백범이 일본의 감시를 피해 숨어살았던 가흥 피란처로 갔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본군 사령관을 살해한 뒤 일본의 감시를 피해 숨어 지냈던 곳이다. 일본은 백범에게 엄청난 현삼금을 걸고 잡으려 해서 상해 임시정부를 버리고 긴급하게 항주로 피했다가 다시 가흥으로 가서 숨어살게 되었다. 그때 중국 절강성 주석을 지낸 추푸청이 위험을 무릅쓰고 백범과 임정요원을 자신의 집에 숨겨 주었다.
▲ 지금도 여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군영여관. 2009년 4월 19일 이대로 찍음 © 이대로 | |
▲ 淸泰第2旅社 (仁和路 22호 群英飯店) : 항주 임정의 첫 임시판공처 (1932. 5. - 10.) * 1994. 4. 24. 이봉원 첫 발견 촬영 © 이봉원 | | 추푸청은 백범이 혼자 움직이다가 경찰에 잡힌 일이 있은 뒤 주애보란 뱃사공 여인과 부부처럼 살면서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며 숨어 살게 했고, 일본 첩자의 감시가 더 심해지면서 며느리 주자루이에게 지시해 위험을 무릅쓰고 친정집 별장인 해염현 재청별장으로 피신시켰다. 백범은 낮에는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서 어부처럼 행세하다가 저녁엔 숙소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숙소에 아무 일이 없으면 흰옷을 내걸고, 위험하면 붉은 옷을 내 걸어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 때 백범은 무슨 생각을 하였고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상상하면서 오늘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가흥의 백범 피난처와 임정 요원 숙소를 보고 남북호 피난 별장으로 향했다.
▲ 嘉興 梅灣街 76-4 : 김구 피난처 * 1999. 3. 13. 호수 쪽에서 이봉원 촬영. 호수가 지저분하다. ©이봉원 | |
▲ 새로 지은 피난처에서 창문으로 바라본 호수, 지금은 아주 깨끗하다. 2009.4.21 이대로 찍음. ©이대로 | |
▲ 새로 지은 가흥 피난처 이층집에 있는 탈출구 문을 열어 보이는 강연수 사장. 뒤 쪽에 있는 사다리를 놓고 내려가서 배를 타고 도망갔다. 2009.4.21 이대로 찍음 © 이대로 | | 일찍이 백범은 나의 소원은 “우리가 자주독립국가가 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또 백범은 우리가 무력이나 경제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는 것보다 우리 자주문화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인류 전체가 의좋고 즐겁게 살도록 하자는 일이라고 했다. 만약 문화로 세계를 밝힌 나라가 없다고 할 지 모르나 우린 그걸 해낼 수 있다는 것이며, 하늘은 우리보고 하라고 그 일을 남겨놓았다고 말했다.
▲ 해염현 명인문화구 안에 있는 김구 피난처 별장 옆 전시관 앞에서 왼쪽 종진표, 이대로, 강연수,강남. 별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북호 호수도 평화로워서 좋았다. 이대로 찍음. © 이대로 | |
▲ 하이얜현(海鹽縣) 남북호(南北湖) 호숫가에 있는 별장 재청별서. (1999. 3. 14. 이봉원 촬영) ©이봉원 | | 또 백범은 수십억 인류가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아갈 터전을 만드는 건 오직 문화라고 했고 우리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은 자주문화를 꽃피워서 세계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세계평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지금 그 꿈을 이루려고 영어에 미친 한국교육을 고치려고 애쓰고 있고,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을 성지로 만들고 광화문에 한글역사문화관을 건립해 자주문화국가의 기초를 다지자고 외치고, 중국에 우리말과 문화를 알려서 “한, 중 우호협력 시대부터 열자.”고 움직이고 있다.
▲ 중,한우호원에서 중국 절강월수외대 두 제자와 한중우호협력 시대를 함께 만들어 두 나라가 사이좋게 살자고 다짐했다. 왼쪽부터 종진표, 이대로, 강남. © 이대로 | | 이번 가흥 유적지 답사를 함께 한 교포 사업가 강연수 사장은 “중국에 관광을 오는 한국인이 많은데 이런 우리 역사 유적지는 돌아보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이곳 가흥과 남북호는 항주 서호보다 조용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하루 묵으면서 백범 정신과 한중우호를 되새기는 여행을 하면 매우 뜻있는 여행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구경만 하는 관광시대는 지났다. 가흥 임정 유적지는 내가 가본 상해나 항주 중경 유적지에 비해 주위 환경이 아주 깨끗하게 정비되어있고 평화로워서 홍익인간 정신과 세계평화를 논하고 다짐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백범은 문화국가 건설을 외치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하기에 넉넉하고, 국토의 위치와 기타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 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자굴지심(自屈之心)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하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이었다. 우리가 주연배우로 세계 역사의 무대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라고 백범일지에 썼다.
중국이 자신들을 위해서 유적지를 정비했지만 우리가 많이 찾고 잘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답사를 한 항주, 가흥 임시정부 유적지는 피신한 곳이지만 임시정부가 사라질 번 한 위기를 넘기게 한 중요한 자리다. 상해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보고 일본은 우리 독립운동의 씨를 말리려고 했지만 중국이 우리 임시정부를 적극 도와 협력할 계기를 준 곳이다. 이곳에서 어떻게 해야 진짜 독립된 자주통일국가가 될까 고민해봤고 중국 한족인 두 제자에게 백범과 내 꿈을 가르치고 나와 함께 두 민족이 다정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 절강성 해염현에 있는 명인문화구 표지석. 이곳에 김구피난처 별장과 전시관이 있다. © 이대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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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4/27 [11:14] 최종편집: ⓒ 대자보 | |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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