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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국회 때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은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만들어 국회에 주었지만 받지 않자, 몰래 사과상자에 담아와 즉석에서 글을 써 전달했다. 사진은 원광호 의원에게 전하는 모습. © 이대로 논설위원 |
인터넷신문 <참말로>는 한국언론재단 지원으로 <기획취재> ‘우리 말글살이의 현황과 한글의 세계화’를 15회에 걸쳐 연속 보도합니다.
이번 보도는 11월 13일부터 12월16일까지 국내와 몽골, 중국, 일본 등의 동포들의 말글살이 현황 취재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참말로>가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에서 선정한 언론사 유일의 ‘우리 말글 지킴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인 우리 말글을 살리고 세계화를 이뤄, 우리 민족이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코자 합니다.(편집자 주)정부 공문서를 한글로 쓰기로 한 ‘한글전용법’을 만든 것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글전용법은 우리 말글에 대한 하나뿐인 법령이지만, 지난 50년 동안 정부는 이 법을 지키지 않았다. 법 자체도 한글전용을 권장할 뿐 처벌조항은 없다.
학교 교과서가 한글로 되어 있고, 국민 모두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로 가고 있는데 정치인과 공무원이 한글을 외면하고 한자와 영어를 좋아해서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일제가 물러가고 남녘에 나라를 세우며 정부기관부터 우리 말글을 살려 쓰자고 한글전용법을 만들었지만, 있으나 마나한 법이 되었다. 그래서 한글단체들은 이 법으로는 우리 말글이 제대로 살아날 수 없다고 보아 수십 년을 싸워 지난해 국어기본법을 만들어 시행하게 된다.
국회와 지방의회의 말글살이 실태...법률 문장 대부분 일본식 한자 혼용투 특히, 우리 법률 문장은 일제가 물러가고 60년이 지났는데도 일본법을 번역한 투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한글단체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이것을 꾸준히 지적해왔고, 법제처가 ‘법률한글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16대 국회에 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이 법안은 17대 국회에도 냈지만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헌법학자 한상범(동국대 법학) 교수는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울 때 법률 문장이 일본 법안을 그대로 베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어떤 법안은 조항까지 같고, 일본 한자말은 그대로 쓰고 일본 글자로 된 토씨만 한글로 바꾼 것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60년이 지난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여서, 2005년에 개정한 정당법을 보면 말투를 조금 바꿨지만 여전히 일본식 한자 혼용 문장이다.
“第1條 (目的) 이 法은 政黨이 國民의 政治的 意思形成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組織을 확보하고 政黨의 民主的인 組織과 活動을 보장함으로써 民主政治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目的으로 한다.” - 정당법 -
국회 법사위원회 위원인 임종인 의원(열린우리당)은 “아직도 국회 사무처는 국회 공문서에 한자를 섞어 쓰고 있는데 이것은 국어기본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종인 의원은 “새로 만드는 법률도 한자혼용이 많아, 한자를 읽지 못해 그 법안을 검토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면서 한글로 쓰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며 “왜 한국 국회가 한국말과 한국 글자인 한글을 쓰기 싫어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한다.
현재 ‘법률한글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법률한글화 특별법안)은 소위원회에 넘어가, 국회의원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법률한글화 특별법안을 검토한 의원들은 문장을 한글로 고치는 것뿐 아니라, 일본 말투와 일본 한자말로 된 것도 바로잡을 것을 지적했다.
김기선 법제처 서기관은 “법제처는 지난해부터 법률문장 쉽게 고치기 5개년 계획을 세우고,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 있는 법부터 쉬운 낱말과 문장으로 고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기선 서기관은 “모든 법을 쉽게 고치자면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데 충분치 않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법제처는 올해 건축법을 비롯한 63개 법률문장을 고쳐서 국회에 제출했으며, 내년에는 250개 법률문장을 고칠 계획이다. 법령내용은 그대로 두고 누구나 알기 쉬운 말로 바꾸는 일이다.
국회의원 90%가 한글 이름패 사용...지방의회도 많이 퍼지고 있으나 아직 미진
국회에서 우리 말과 한글을 살려 쓰는 것과 관련 의원들의 이름패를 한글로 바꾸는 일도 한글관련 단체들의 수십 년 노력으로 가능했다. 17대 국회에서 의원 90%는 한글로 이름패를 달았다.
한글 이름패로 바꾸는 일에 앞장섰던 김근태 의원(열린우리당)은 “처음 국회에 들어간 15대 때 내 이름패를 한글로 써 달라고 했더니, 당 원내총무가 ‘김근태 같은 거물이 한글 이름패를 쓰자는 하찮은 일에 신경 쓰냐?’고 말했다”고 당시 국회 분위기를 전했다.
김근태 의원은 그 뒤 16대 국회 말, 열린우리당 창당 준비를 할 때 소속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만들어 달게 했고, 17대 국회에 들어서는 거의 모든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바꾸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국회의원들의 한글 천대는 여전하다. 국회의원 출마 때는 명함과 홍보물을 모두 한글로만 쓰지만, 당선되고 나면 한자 명함에 한자 이름패를 쓰며 권위를 세우는 정치인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글관련 단체들은 의원 한글 이름패를 위해 수 십 년을 호소해왔고, 14대 국회에는 한글 이름패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거부당했다.
지금도 한자로 이름패를 쓰는 의원은 32명으로 한나라당 29명(공성진·권철현·김기춘·김덕룡·김명주·김무성·김영선·김용갑·김재원·김정부·김학송·맹형규·문희·박계동·박종근·서상기·안상수유승민·이강두·이방호·이성구·이종구·이한구·이혜훈·장윤석·전여옥·최병국·최연희·허태열)과 민주당 1명(이정일), 자민련 1명(김학원), 무소속 1명(류근찬) 이다.
전여옥 의원은 “제 이름은 아버님(79세)께서 직접 지어주신 것으로 ‘한자를 꼭 써야 네 이름은 뜻이 전달된다’고 말씀하셨다”며 “웃으실지 모르지만 ‘효도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고, 다음에 제가 국회의원이 되어 아버님이 허락하면 한글로 쓸까 한다”고 밝혔다.
안상수 의원실은 이와 관련, “15대 국회의원시절 인천 계양의 안상수 의원(현 인천광역시장 안상수)과 이름이 같아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한자를 쓰고 있다"며 ”명함은 한문과 혼용해서 쓰고, 선전벽보에는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름의 소신으로 한자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공성진 의원은 “중국은 한국의 운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한자교육이 다음세대 번영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한자 이름패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 의원은 “앞으로 미래세대가 세계화에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중국어와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젊은 세대가 한자에 익숙하지 않다는 의견을 참고해서 앞으로는 한글과 한자를 병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 의회 가운데 가장 먼저 한글 이름패로 바꾼 곳은 경기도의회이며, 이어서 인천시의회, 올해엔 서울시의회와 동대문구 의회 등도 한글로 바꾸었다. 그러나 종로구의회, 영등포구의회를 비롯한 더 많은 지방의회가 한자 이름패를 고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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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과 본회의장 정면에 붙어있는 한자로 된 국회 보람(휘장). ©©이대로 논설위원 |
국회의원 보람(배지)과 국회 깃발, 본회의장과 정문에 붙은 글씨는 한자로 국(國)자를 썼지만 혹(或)자로 보인다. 17대 국회에서 여러 의원들은 한글로 ‘국회’로 바꾸자는 국회 규정안을 운영위원회에 내기도 했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과 국어기본법 통과에 앞장섰던 이계진 의원(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해결하자”며 “지금 인천공항 이름을 인천세종공항으로 바꾸는 일을 하는 데 힘은 들지만 앞으로 우리 말글이 점점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