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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는 한국언론재단 지원으로 <기획취재> ‘우리 말글살이의 현황과 한글의 세계화’를 15회에 걸쳐 연속 보도합니다. 이번 보도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12월16일까지 국내와 몽골, 중국, 일본 등의 동포들의 말글살이 현황 취재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참말로>가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에서 선정한 언론사 유일의 ‘우리 말글 지킴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인 우리 말글을 살리고 세계화를 이뤄, 우리 민족이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코자 합니다.(편집자 주) 일요일 저녁 7시 5분. 강의실에 불빛이 환하다. 복도에서 문 사이로 바라보니 학생들이 가득하다. 일요일 저녁의 자율학습. 말이 자율학습이지, 강의실 가득 학생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이곳은 중국 절강성 소흥에 있는 월수 외국어대. 한족(중국인) 학생 3천여 명이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중국 대학 강의실 ‘열심히 공부하자’ 10분 전인 저녁 6시 55분, 늦은 학생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일요일 저녁 자율학습을 하러 가기 위해서다. 뛰어가는 몇몇 학생들도 보인다. 학생 모두가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기숙사 건물은 7시를 전후해 불이 다 꺼지고, 강의동에 불이 밝았다. 학생들이 모두 참가하는 자율학습시간. 마치 사관학교와 같은 모습이 국내에서 대학을 나온 기자에게는 낯설다. 1학년 강의실.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류은종 교수의 도움을 받아 취재진이 강의실에 들어가 인사를 했다. 한글운동가인 이대로 선생이 학생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자 이곳 학생들은 신기한 듯 더 크고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대꾸한다.
밝게 인사한 학생들에게 “한국말도 잘하고 잘 알아듣는군요”라며 이런 저런 설명을 하자 학생들 얼굴이 갸우뚱거린다. 한국어를 배운지 일 년 남짓한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설명들은 아직 어려운 듯하다. 취재진은 몇 개의 강의실을 더 둘러봤다. 강의실에는 개개인이 자율학습을 하는 강의실부터 한국어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고 반복하는 반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하고 있다. 강의실 앞쪽 칠판 위에는 ‘열심히 공부하자.’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한글 급훈이 걸려 있고, 뒤쪽으로는 한국 지도와 지명들이 예쁘게 붙어 있다. 취재진은 학생들 인터뷰도 할 겸 다른 교실을 들어가 봤다. 이번엔 2학년 교실. 이런 저런 농담들에 학생들은 농담으로 맞선다. 동효설(19. 절강성 소릉) 씨는 통역관이 꿈이다. 한국 문화를 잘 알아야 통역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에 “당연하죠”로 맞받는다.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것이고, 나중에 한국에 오면 찾아오라는 이대로 선생의 말에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가르쳐 주세요”라며 말을 행동으로 바꾸는 그들 문화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항주 출생으로 월수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당진아(21) 씨는 한국에서 교사를 하는 것이 꿈이다. 기자를 상대로 중국 문화를 가르쳐 보라고 주문하자 그는 얼굴이 약간 상기되며 “중국 문화는 역사가 오래됐고 여러 가지 문화가 있다.”고 설명한다. 설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린 그는 “지금은 능력이 좋지 않아서 잘 설명할 순 없지만 나중에 잘 배워서 잘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당차게 답한다. 한국말 표현이 수준급이다. 2학년 교실을 소개할 때 류은종 교수의 표정이 자신 있게 변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정도면 생활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듯하다. 2학년 중에는 올해부터 실시한 한국어능력시험에 5급 이상의 성적을 받은 학생도 있다. 한국어능력시험은 현재 아시아 18개국에서 치르고 있고 1급에서 6급까지로 구분되며 6급이 최고 급수다. 한국어를 2년 열심히 공부해 5급 실력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사립대학인 월수대학은 얼마 전 연변대의 류은종 교수를 초빙해 왔다. 한국어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류은종 교수는 조선족으로 평양 김일성종합대에서 언어학으로 1호 박사학위를 받았고 얼마 전 한글날에 남쪽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과 북이 그 실력을 인정한 류 교수는 중국에서도 인정받는다. 류 교수는 중국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중국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200인 교육위원회의 유일한 조선족이기도 하다.
월수외국어대는 한국어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다. 류 교수와 함께 교수들을 한 팀으로 묶어 초빙했으며, 영어와 일본어를 한 동에서 배우는 것과는 달리 한국어 강의동은 따로 한 개를 내 주었다. 또한 연구소와 서고 등 다양한 특혜들을 제공했다. 그만큼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기는 뜨겁다. 현재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는 20명. 동북3성 쪽에서 온 조선족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교수들을 파견했다. 본업이 교수인 이들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만 만족하지 않는다. 월수대의 한 교수는 최근 절강성 일대에 사는 ‘김씨촌’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절강성 일대에 대규모로 김씨촌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김씨’들은 복건성에 사는 김씨들과는 달리 자신의 뿌리에 대해 모른다고 한다. 이 교수는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며 벼르고 있다. 중국 전역에 퍼지는 한국어의 향기 소주 시내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말을 건다. “한국 분이시죠?” 그렇다고 대답하면서도 흠칫 놀란다. 중국어를 모르는 기자에게 길 안내를 한다거나 하며 수수료(?)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관광지에는 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생각과 사뭇 다르다. 말을 건 사람은 상당히 깔끔했고, 도시 냄새가 풍겼다. 그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직장인이란다. 지금은 한국인 기업에 취업해서 돈도 상당히 잘 벌고 있다고 그가 기자에게 설명했다. “한국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즐겁다”는 그는 기자에게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방향이 비슷한데 자신이 안내해줘도 되겠냐는 등 매우 가까운 사람 대하듯 대화를 이어나갔고, 일행이 있다고 설명하자 아쉬운 듯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절강성에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이곳의 대졸 초임은 우리 돈으로 2-30만원 선이다. 하지만 한국어를 하는 대졸 초임은 40만 원 이상. 직장을 찾기에도 한국어는 유용한 수단인 것이다. 동북 3성이야 조선족들이 많이 사니까 한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으나 강남이라고 불리는, 양쯔강(장강) 이남에서도 이같이 한국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중국 북쪽이 정치성이 강하다면, 경제중심인 남쪽은 오히려 더 한국과 교류에 적극성을 보이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베이징 주재 한국문화원 주변 교통이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유는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교육 수강생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한국어 공부가 급했던 중국인들이 새로 열린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하자 신청을 하러 한꺼번에 몰렸고, 문화원 주변 교통이 마비된 것이다. 이후 한국문화원에서는 인터넷 접수로 수강신청을 대체했고, 인터넷 접수 역시 초급반은 20분, 중·고급반은 2시간 내에 마감됐다. 자정부터 시작한 접수임을 감안하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한국문화원은 동영상 강의로 전환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데.... 어떻게 배우나요....? 올해 초 베이징 한국문화원에 박영대 원장이 부임하고 처음으로 진행한 일이 한국어 교육과 관련된 것이었다. 박 원장은 한글 교육관련 보고서를 올해 7월 한국 정부에 보고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한국어웅변대회, 토론대회가 각 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등 한국어 학습 열풍이 대단하다. 하지만 박영대 문화원장은 “현재까지 한국어 교육은 자연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다 할 방향성과 원칙이 정해져 있지 않고 수요에 따라 그때그때 대응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좋은 점도 있으나 결국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박 원장은 덧붙였다. 이에 주중 한국문화원과 국어연구원 등은 중국에서 바른 한글 교육을 시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 교육이 현장에서 요구되고 뒤늦게 정부가 반응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정부만 탓할 수만은 없다. 현재 한국문화원이 있는 곳은 세계에 몇 곳 되지 않는다. 뉴욕, 엘에이, 동경, 베이징, 파리 등 대도시 중심이다. 게다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바람이 이렇게 급속하게 진행될지 예측 못한 측면도 있다. 그만큼 한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작은 강국’인 셈이다. 한국어능력인정시험(KPT)이 공식으로 운용되기 시작한 것 역시 2006년. 바로 올해부터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말 활용능력에 대한 평가제도와 또 그것이 언론사 취업 등에 실제 적용되는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몰랐던 우리 한글(문화)의 가치를 외국에서 요구했고, 우리가 그에 부응하다 보니 새롭게 가치를 발견하게 된 셈이다. 이런 분위기가 국내의 작은 정치문제에 냄비처럼 끓어오르는 우리에게는 낯설고 어색하다. 중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현장에서 뛰고 있는 류은종 교수는 이런 갑갑한 심정을 토로한다. 한국어능력인정시험을 한국 정부에서 실제로 인정해주는 위상과 실제 적용되는 사례에 대한 정보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한국어능력인정시험에 맞는 중국인들에게 적용시킬 ‘교육과정(커리큘럼)과 교재’다. 우수한 한글능력자들을 배출하는 월수외국어대의 경우에도 제본 교재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국내 영어교육 하부구조(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다. 토익과 토플, 텝스라는 공인시험과 그 시험 결과를 좋게 하기 위한 회화, 단어, 문법, 작문, 듣기 등의 세분화된 무수한 교재들, 그리고 학습을 돕는 다양한 제도권 내·외의 교육공간이 있다. 또한 이런 구조 속에는 정부와 민간, 기업과 수요자의 다양한 역할 분담이 존재한다. 정부와 문화원, 국어연구원만 가지고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나가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한류, 한글바람이 이어지는 중국 외국의 경우 정부나 단체 등에서 먼저 공격하듯 자국의 문화를 홍보해 들어간다. 수요를 예측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수요를 만들어내면서 자국 문화를 각국에 알리고 홍보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문화가 낯설다. 요구가 있으면 그에 응해 주는 수준인 것이다. 중국의 한글 열풍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역시 그런 분위기다. 중국인들이 요구하고, 이에 한국에서 뒤늦게 반응하는 식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 3000천억 불 수출규모. 아메리칸 드림은 아니어도 분명 현재의 세계 각지, 특히 아시아에는 ‘코리안 드림’이 자리 잡고 있다. 얼마전만해도 개발도상국 4개를 묶어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 불었다. 하지만 4룡은 이미 없다. 아시아에는 한 마리의 봉황, 혹은 한 마리의 세발까마귀만이 존재할 뿐이다. 국내에서는 양극화에 찌들고 희망이 없다고 자학하고 있지만 외부로 드러나는 지표들은 한국은 이미 ‘작은 강대국’을 의미하고 있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한국어 공부 바람이나 중국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한류를 단순히 드라마나 한국가요의 열풍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산이다. 우리가 지키고 만들어온 다양한 가치들이 한류의 강한 토대를 만들고 있다. 이번 중국 취재에서 그런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했을 때다. 젊은 아가씨가 우리 임시정부에 대해 너무나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한국 방문객이 많은 만큼, 당연히 설명은 한글이다. 일행은 그에게 ‘조선족’이냐고 물었다. 그는 살짝 웃으며 너무나 당당하게 ‘한족입니다’라고 답한다. 한족임에도 조선의 항일운동을 자세하게, 그리고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설명하는 것이 의아해 이유를 묻자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중국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한 상당수가 조선인들 이었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렇다. 그들과 우리는 함께 싸웠던 과거가 있다. 게다가 중국 내 항일운동의 80%가 조선인이라는 점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기에 충분하다. 절강성 월수대학의 총장은 우리에게 “한국인들이 많이 와서 일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학생수가 1만2천 명인 월수대학 내 상가에 학생들이 한국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상가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학 측은 태권도장, 한국음식점, 미용실 등 한국 상점들이 입점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 문화가 아니라 한국의 서비스산업이 들어오고, 학생들이 그것을 체험하면서 익혀나가기를 기대한다는 뜻이 읽혀졌다. 이렇듯 중국인들에게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친숙하다. 앞으로 패권을 다퉈야 하는 미국과 과거 제국주의를 거쳤던 일본. 또한 미·일은 지금도 중국 정부와 정치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이 친숙하며, 만만하고, 가깝다. 중국에서 일고 있는 한류 열풍은 이렇듯 여러 가지 정치·역사·사회 구조들이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시작은 반이다. 내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새로운 한국문화원이 개설된다. 중국 내 한국문화원 2호점이 개점하는 것이다. 이제 겨우 건물을 계약했다. 베이징 주재 한국문화원 직원은 박영대 원장과 사무관 1명. 그야말로 벅차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주말에도 한글 민원 해결을 위해 출근해야 한다고 한다. 박 원장은 류 교수와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다. 류 교수의 설명을 듣고 류 교수의 연락처부터 받아 적는다. 중국 두 번째 한국문화원이 생기는 상하이와 류 교수의 대학은 상당히 가까운 곳이다. 대학에서 중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류 교수는 한국 정부의 정보와 도움이 필요했고, 상하이에 문화원을 여는 박 원장으로서는 지역 민간·학자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서로 필요했고, 필요한 시기에 연결된 것이다. 또한 관과 학계의 공조, 남측 정부와 조선족의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리는 없겠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이제 막 시작이다. 한국어능력인정시험이 시작된 지 1년도 안 됐고, 정부도 이제 외국인 대상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국제화, 세계화를 외친 지 수 년이 지났고 외국의 것을 익히는 데만 정신이 없었다. 정신 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가 이미 세계가 되어 있었다. 베이징 주재 한국문화원을 나오며 류 교수가 밝은 표정으로 “일이 잘 풀리고 있어요.”를 연발했다. 만나고, 이어지고, 풀어나가고.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이 순풍에 돛을 달았다. 우리 조상이 그랬듯, 너무 거만하거나 겸손하지 않게 한글과 세계가 공존하는 미래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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