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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68년 광화문을 중건하고 한글 현판을 달게 된 이야기

한글빛 2017. 2. 19. 11:56


[이대로의 한글사랑] 1968년 광화문을 중건하고 한글 현판을 달게 된 이야기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이대로

1968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 현판을 단 까닭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밝힌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국민과 정치세력 사이에서도 엇갈리고 예민하게 대립된 상태이기에 이 이야기를 안 하고 있었으나 이쯤해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에도 한 국회의원이 내게 광화문 현판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광화문에 얽힌 역사와 사실을 알아야 하는 데 그 가운데 1968년에 왜 한글 현판을 달았는지 궁금하다고 해서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정치인, 학자, 전문가, 언론인은 말할 거 없고 일반 국민과 한글단체에서도 그 한글 현판이 걸리게 된 까닭과 이야기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 광화문을 다시 짓고, 그 현판을 한글로 써서 단 것은 우리 겨레 5000년 역사에 보기 드문 매우 큰일로써 그 의미와 가치가 대단히 크다. 그 한글 현판에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정치를 잘하고 세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위대한 지도자인 세종임금 정신과 업적을 본받아 나라를 일으키고 국민을 잘 살게 만들어 역사에 남는 정치 지도자가 되길 바라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역사 유물이고 문화재이다.


그 현판에는 한글로 겨레를 일으키자는 이 시대 국민의 간절한 소망과 시대정신이 담긴 문화재이고 국민이 정치인을 설득해 이룬 민주주의 실현 표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에 강력한 한글전용정책을 발표하고, 광화문과 여주 영릉, 온양 현충사와 탑골공원, 그리고 나라 곳곳의 중요한 유적지를 정비하고 단장하면서 그 현판을 한글로 써 달았다. 집권 초기 그렇게 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본래 한글을 잘 알고 사랑해서가 아니다. 독재정치나 정권연장과도 거리가 멀다. 어쩔 수 없는 우리 역사의 흐름이고 필연이다. 정권을 잡은 뒤에 국민의 소리를 듣고 정치를 잘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 뜻을 실천한 것이다.


그 실천 뒤에는 박대통령 문화정책 자문위원인 이은상 선생과 한갑수 선생이 있고 그 뒤에는 국어운동대학생회와 한글학회와 국민이 있다. 박정희, 김종필 들 군사혁명 세력은 권력을 잡자마자 한일회담을 강행하면서 한글로만 만들던 교과서에 일본처럼 한자를 드러내 쓰겠다고 발표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62년에서 1964년 일이다. 나는 친일 반민족, 반자주 쪽으로 가는 그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대학에 가서 1966년에는 한일회담 무효시위에도 참여하고 1967년부터 동국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한글 빛내기 운동을 했다. 그 때 서울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시작으로 조직된 연대, 고대 국어운동학생회와 함께 연합회(회장 서울대 이봉원)를 만들어 활동을 했는데 그 활동 소식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었다.


1968년 봄에 동숭동 서울문리대에서 대학생들이 모여 한글문화창조 선언을 하고 한국방송에 인터뷰한 내 말이 하루 종일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이은상 선생의 증언이다. “1967년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원들이 한글을 지키고 빛내자는 시위를 했다는 신문보도를 박 대통령이 보고 비서에게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군사정권 물러가라거나 한일회담 반대 시위와는 다른 색다른 학생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비서는 문화정책 자문위원인 이은상님에게 물었고 이은상님이 바로 대통령에게 설명을 했다. 이은상님은 일제 때 우리말 사전을 만들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끌려가기도 한 분이기에 학생들의 주장이 옳다고 설명하니 알아듣고 당장 시행하도록 지시해서 한갑수 선생이 자세한 도표를 만들어 가지고 가서 대통령에 설명했다.”고 한다. 새 정부가 한자혼용으로 가는 것을 한글학회가 강력하게 반대해도 듣지 않다가 대학생(민중)이 일어나니 관심을 갖게 되었고 들어준 것이다.


이은상 선생은 “박 전 대통령에게 우리 역사에서 어떤 분을 가장 존경하고 본받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이순신장군과 세종임금이라고 했다. 그럼 그들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데 잘 알려면 한자로 쓴 세종실록과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읽어야 한다. 그 한문책을 읽어본 일이 있는가? 나는 난중일기를 국역하고 있는데 전쟁터에서 초서로 쓴 한문 한 줄을 해석하려면 최고 한문 실력자도 힘들어 몇 달이 가기도 한다. 이래서는 선조의 지혜와 역사와 전통을 이어갈 수 없다. 빨리 국역하고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로 가야 한다. 두 분의 발자취를 살피고 본받고 선양하면 그 두 분 다음의 지도자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라고 설명하니 바로 알아듣고 무릎을 치며 좋아하더란다. 머리가 좋은 특보에 그 대통령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세종임금처럼 산업과 국방, 과학, 문화를 발전시키려고 청량리에 세종대왕기념관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원, 임업시험장, 국방연구원 들을 세우고, 세종임금과 이순신 장군 동상도 세우고, 그 두 분이 태어난 날에는 대통령이 참여해서 숭모제전을 올렸다. 폐허가 된 두 분 유적지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 유적지와 여러 선열의 역사 유적지를 정비하고 단장했다. 흔적도 없는 광화문을 옛 일본 총독부 앞에 세우고 한글 현판을 단 것도 이런 정신과 통치 철학 실천이었다. 광화문과 한글현판은 자주자립, 민주문화 국가를 이루겠다는 푯대였고 깃발이었다.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으로 만든 민주 자주 글자인 한글을 널리 알리고 빛내어 온 인류를 이롭게 하자는 실천에서 나온 중요한 문화유적이다. 집권 초기 이런 마음과 실천이 나라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고 국운 상승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독재정치를 한 그가 세종임금과 이순신 장군 다음으로 국민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고 본다. 그 배경에 이은상님의 나라사랑 한글사랑 정신이 있었고, 한글단체와 국민의 소리를 정부가 들어준 민주주의 기본이 서려있다. 참으로 광화문은 600년 흥망 우리 역사와 함께 한 표상이다.

[태안신문에 쓴 글]

출처 : 한말글 사랑, 리대로.
글쓴이 : 나라임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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