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보 1호입니다. 앞으로 회보 시간 나는 대로 모두 올리겠습니다
제 1 호 1998년 7월 1일
◂ 차 례 ▸
우리 말 좀 합시다 이오덕 …………………………………………………………………………… 2
우리 말 살리는 겨레 운동 펴기 취지문 ………………………………………………………… 4
우리 말을 살리는 길 김정섭 ………………………………………………………………………… 7
바로 쓰기의 원칙과 기준 이오덕 ………………………………………………………………… 11
우리 말 살리기 운동의 목표 ……………………………………………………………………… 16
모국어를 버리면 조국과 민족도 죽는다 김경희 ……………………………………………… 17
방송말 바로잡기 용의 눈물 남기용 ………………………………………………………………… 18
경과 보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 만들어지기까지 ………………………………………… 21
알립니다 ……………………………………………………………………………………………… 22
머리글
‘우리 말’ 좀 합시다
지금 우리가 살리려고 하는 말은 우리 온 겨레가 나날이 살아가면서 입으로 주고받는 말이다. 어떤 특별한 일자리에서만 쓰는 말도 우리 말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말보다 더 서둘러 살려야 하는 것이, 아이고 어른이고 시골 사람이고 도시 사람이고 누구든지 하게 되는 말이다. 이 말이 우리를 길러 주었고,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었고, 우리를 한 겨레로 이어 주어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어머니가 되는 우리 배달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배달말이 지금 아주 형편없이 짓밟히고, 가리가리 찢기고, 볼썽사납게 일그러져서 죽어 가고 있다. 우리들의 삶과 얼과 그밖에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목숨 덩어리(생명체)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반만 년 역사에서 무서운 흉년도 많이 만났고, 끔찍한 전쟁도 수없이 치렀지만, 그때마다 그 어려움을 잘 이겨 내었다. 우리 모두의 삶과 얼이 담긴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 외국글 외국 역사를 하늘처럼 떠받들어 섬기면서 그 학식을 권위로 삼아 백성들을 겁주고 백성들의 피땀을 짜내기만 하던 그 오랜 세월에서도, 일하면서 살던 우리 평민들은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슬기롭게 우리 것 우리 마음을 지켜 자자손손 이어 왔다. 우리를 안아 주면서 언제나 샘물 같은 힘이 솟아나게 하는 우리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그 말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다. 이 일을 어찌하겠는가?
더구나 이렇게 말을 죽이고 있는 것이 이제는 바로 백성들 자신이고 우리 자신이다. 제 목숨 덩이를 스스로 내버리고 짓밟는 이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거의 모두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괴상한 겨레가 되어 가고 있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어떤 흉년도 어떤 전쟁도, 그밖에 또 어떤 재난도 이보다 더 클 수 없다. 지금 나라 살림이 다 거덜났다고 모두 야단법석인데, 겨레말이 죽어 가고 있는 일에 대면 이까짓 경제난국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난국이란 것도 알고 보면 사실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우리 것을 학대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글, 일본글, 서양글에 얼이 빠져서 우리 말 우리 글에는 등을 돌리고 멸시하는 이 더러운 종살이 버릇은, 우리 조상들이 지켜 온 모든 것을 버리고 짓밟는 풍조를 만들었으니, 이렇게 해서 남의 것 쳐다보면서 겉모양만 꾸며 보이고 허풍으로 살아 왔는데 우리 살림이 이 지경으로 결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지금 빠져 있는 경제난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도 우리 말을 살려야 한다고 하면 무슨 억지 소리를 하나 하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살림이 이 지경으로 된 까닭은 너무나 환하다. 우리 국민들의 정신을 바로잡지 않고는 정치고 경제고 학문이고 교육이고 어떤 것이고 제자리에 바로 놓일 수 없다. 정신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그걸 바로잡나? 정신이 곧 말이고, 말이 정신이다. 깨끗한 말, 아이고 어른이고 시골 사람이고 도시 사람이고, 교수고 판사고 박사고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이고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로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우리 사회는 저절로 환하게 밝아지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하는 일이 올바르게 될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깨끗한 말을 하고, 쉬운 우리 말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오늘 신문을 보니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모든 관리들에게,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쉬운 영어로 모든 공문서를 쓰라고 지시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문장은 짧게 쓰고, 입음꼴로 쓰지 말고, 낱말도 쉬운 말로 써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우리 말을 살리기 위해 주장해 온 말 그대로다. 미국의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니 참으로 놀랍고 뜻밖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역시 그 나라는 앞서가는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온 세계 각국의 말에 영향을 주면서 그 말들을 집어 삼키거나 그 말들에 스며들어 그 꼴을 바꿔 버리거나 하는 영어를 쓰면서도, 그 대통령이 자기 국민들의 마음을 깨끗하고 바르게 하고, 하는 일에 허풍이 없이 알맹이가 차도록 하기 위해서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쉬운 영어를 쓰라고 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땅히 우리 자신의 창피한 꼴을 바로 비춰 보고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어려운 말, 남의 나라 글자말과 남의 나라 말법을 자랑삼아 쓰고 싶어하는 이 미친 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람 대접을 받고 살아갈 자격이 없다. 그런데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학자고 문인이고 기자고 관리고 예술인이고, 심지어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제 나라 제 겨레 말을 학대하고 학살하면서 온통 허풍스런 엉터리 글문화를 만들고는 들떠 있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꼴을 대한민국말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또 볼 수 있겠는가?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16강이 아니라 아주 우승을 한다고 해도 이런 정신 가지고는 절대로 앞날이 없다.
서양 사람 것이라면 똥도 서로 다투어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말이 몇십 년 전에 지나가 버린 한때 우리들의 모습에 그쳤던 것이 아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한 말이니까 이번에는 또 쉬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난리가 날 판 아닌가? 우리가 정말 손톱만큼이라도 제정신이 남아 있다면 쉬운 영어 공부가 아니라
쉬운 우리 말 공부를, 살아 있는 우리 겨레말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어디서나 우리 말 살리기를, 아침마다 일어나면 우리 말을 죽이지 않기를,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 마음 속에 |
다짐하고 남에게도 타이르고 해야 할 것이다. 배달겨레 여러분, 제발 우리 말 좀 합시다. (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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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살리는 겨레 운동 펴기 취지문 |
우리가 어째서 이 꼴이 되었을까요? 우리를 이 지경으로 빠뜨린 사람이 누굴까요? 사람들은 나라를 망쳐 놓은 책임자를 잡아내어 그 죄를 물어야 한다고 떠듭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렇게 갑자기 앞길이 꽉 막힌 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가 비뚤어진 길로만 자꾸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서 빗나간 걸음을 내닫게 된 근원을 찾아 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된 길로 굴러가게 한 책임은 일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 위에 올라앉은 사람들 쪽에 있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농사
꾼들, 자연 속에서 노래와 이야기를 즐기며,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꾸면서 살던 사람들, 서로 도와 가며 정을 나누던 우리 겨레는 본디 법 없이도 살던 아름다운 삶을 이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들 위에 올라앉은 이들은 착하고 어진 백성들을 무식하고 미개하고 불결하다고 하여, 그 백성들에게 무엇을 자꾸 가르치고 머리 속에 무슨 고상한 ‘생각’ 같은 것을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르칠 거리가 들어 있다고 믿는 외국의 글자를 배우게 하고, 외국의 글자로 된 어려운 말로 스스로 권위를 세우고, 행정이고 법이고 모든 자리에서 외국 글만을 써서 백성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인사말을 비롯해서 나날이 하는 말까지 어려운 외국글자말을 쓰도록 해서, 우리 말밖에 모르는 모든 백성들의 기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백성들을 어리석다고 하여 가르치고 부리려고 했고, 통제하고 다스리고 훈련해야 하는 무리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낸 다음에도 그 글자를 온 백성들이 모두 쉽게 배워서 마음대로 쓰게 되면 자기들의 자리가 흔들리고 특권을 잃어버릴까 겁이 나서 한사코 우리 한글을 못 쓰도록 막았던 것이지요. 산과 들에서 곡식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외국 글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외국 글 모르는 농사꾼들은 죄다 무식한 까막눈으로 몰려, 사람 대접 못 받고 종 노릇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우리 말과 우리 글은 조금씩 조금씩 외국글자, 외국말에 그 자리를 빼앗겨 시들고 죽고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병들고 죽어 간 우리 말과 함께 우리 겨레의 얼도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걸어온 빗나간 길입니다. 비뚤어진 역사입니다.
그 옛날 오랜 왕권정치에서는 중국의 한문을 하늘같이 여겨서 우리 말을 한문투성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시대에는 아주 일본말 일본글로 살면서 많은 우리 말을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일본글자말, 일본말법으로 바꿔 놓았는데, 이 일본말과 일본말법은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고, 또 끊임없이 신문과 방송과 책으로 바로 지금 일본인들이 쓰고 있는 말까지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시 또 ‘해방’이 되고부터는 미국말, 서양글이 들어와 그것을 신주처럼 떠받들어 왔는데, 요즘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학교고 학원이고 가정이고 난리판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모두 의무교육을 받아서 우리 말 우리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글은 옛날처럼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던 깨끗한 우리 겨레말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랫동안 지식인들이 외국의 글자말과 외국말법으로 써 온 병든 글말입니다. 우리 말, 우리 글은 한자말, 일본한자말, 일본말, 일본말법, 서양말, 서양말법으로 아주 상처투성이가 되고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말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그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말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의 정신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무엇이든지 우리 것은 보잘것없고 시시한 것, 아무 값이 없는 것, 버려야 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옷이고 신발이고 집이고 곡식이고 닭이고 돼지고 그릇이고 나무고 돌까지도 하루빨리 내버리고 덮어가리고 팔아먹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대신 남의 것, 외극 것, 옛날에는 중국 것이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일본 것이나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지 훌륭한 것, 가치가 있는 것으로 떠받들어 모시고 따르고 흉내내어 왔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머리가 좋아서 흉내도 잘 냅니다. 그리고 왜정 때 배운 군대 질서와 훈련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경쟁을 붙여, 온 국민이 괴상한 점수 따기 교육에 들뜨고 미친 꼴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짧은 세월에 공장과 빌딩을 세우고,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하여, 외국 사람들은 우리 한국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놀랐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가 잘못된 교육을 하였고, 허풍스런 산업의 틀을 짜서 언제 그 기반이 무너질지 모르는 꼴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몰랐고, 또한 사람과 자연을 돌이킬 수 없이 병들게 하고 죽여 버린 사실도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일본이나 서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잘 사는 듯한 겉모양만 보듯이 그렇게 우리를 본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살림이 좀 달라졌다 싶으니 이번에는 온통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게 되었다고 보신 관광 같은 것을 즐기면서 우쭐댄 것입니다. 속은 텅 비어도 겉만 근사하게 꾸미고, 집이고 다리고 길이고 교회고 책이고 사람의 모임이고 무엇이고 크게 높게 많게 1등으로 만들어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근원이 잘못된 것이고 뿌리가 잘못된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된 까닭이 이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오늘의 이 막다른 골목에 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잘못된 우리들의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 어지러움, 어느 구석 하나 제대로 되어 있는 자리가 없는 난장판,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이기주의, 민족을 배반하는 모든 사람답지 못한 짓거리들, 도덕이 아주 송두리째 무너진 세상 풍조……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우리 것을 헌신짝처럼 버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깨닫지 않는다면, 가령 우리가 앞으로 온갖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어 다시 좀 숨통을 트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니 얼마 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뿌리 없이 벼락치기로 만들어 보이는 가짜 세상이라, 그 길은 다시 또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길밖에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깨끗한 우리 말과 우리 마음으로 일하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백성들이 가졌던 맑은 우리 겨레의 얼을 도로 찾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말을 버리고 남의 말 남의 글에 빠져서 입으로 유식하게 지껄이고, 알 수도 없는 글을 써서 학식을 뽐내면서,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의 기를 죽이고 우리 말 우리 삶을 더럽히는 짓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여기 우리가 그 어떤 일보다 더 크고 근본이 되는 일, 그래서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고 보는 까닭이 이러합니다. 그 크고 근본이 되는 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우리 말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 우리 얼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는 곳마다 짓밟히고 죽어 가는 우리 말을 일으켜 세우는 일입니다.
겨레를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분이 이 일을 함께 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 이 땅을 지키고 이 겨레를 살리는 거룩한 일을 시작합시다.
우리 말 바로 쓰기 길잡이 ������ 우리 말을 살리는 길
김정섭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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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이 죽어 간다고 걱정하는 사람은 많다. 몇몇 사람은 팔을 걷고 나서서 열심히 뛰기도 한다. 하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말을 살리자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번 크게 일을 일으켜 보자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뜻과 같지 않다.
우리 말을 살리자는 뜻은 같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명토박아놓아야 한다. 우리 말을 살리는 데 꼭 생각할 일을 아래에 대충 간추려 놓았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보탤 것은 보태고 뺄 것은 빼고 해서 큰 테두리를 만들어 놓고 이 뜻에 따르겠다는 사람만 모여서 일을 벌인다면 이제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말을 살리자는 뜻은 남의 말에 밀려나는 우리 말을 지키고 남의 말투에 물들어 날로 비뚤어지는 우리 말을 바로잡자는 말이다. 옛날엔 중국말인 한자말이 우리 말을 내몰았고 요즘은 서양말이 우리 말 자리를 야금야금 게먹어들고 있다. 또 서양말과 일본말투를 흉내낸 억지말이 우리 말투를 좀먹고 있다. 이래서 우리 말은 날이 갈수록 힘을 잃고 뒤틀려 간다.
이렇게 죽어가는 우리 말을 살리려면 맨 먼저 ‘우리 말을 우리 말법에 맞게 쓴다’는 목표를 내걸고 이 목표에 따라 우리 말 뜻매김을 해야 하고 우리 말법이 어떤 것인지 틀을 자리매김해야 한다. 곧이어 이 잣대에 견주어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을 들온말과 남의 말 그리고 버릴 말로 갈라내야 한다. 잘못 쓰는 말투는 바로잡아야 한다. 쓸모가 있다면 새 말도 만들어야 한다.
첫째, 우리 말 뜻매김
우리 말이란 겨레말과 들온말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겨레말이란 우리가 옛날부터 나날살이에서 써 온, 우리 삶 속에서 저절로 익어 만들어진 말을 가리킨다. 하늘, 땅, 물, 불, 아버지, 어머니 따위다. 들온말이란 본디 남의 말이지만 우리 삶 속에 들어와 깊이 뿌리내린 말을 가리킨다. 회사, 외삼촌, 과녁, 김장, 버스, 택시 따위다. 겨레말과 들온말을 뭉뚱그려 우리 말이라 한다.
둘째, 우리 말법 자리매김
우리가 예부터 써 온 말투가 있다. 언제나 사람이 주인이 되고 내가 책임을 지는 말을 하는 것이 우리 말투다. 물건이나 일이 사람을 앞서 주인 노릇을 하는 법은 드물다. 다만 아직 바른 우리 말투가 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쓴 말을 더듬어 올바른 우리 말법을 자리매김하고 거기에 따라 올바른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따라 우리 말투를 자리매김해야 한다.
셋째, 들온말과 남의 말
딴나라 말이 처음 우리 말 속에 들어오면 다 남의 말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 말에 녹아들어 아주 우리 말이 된 것이 있다. 이것을 가리켜 들온말이라 한다. 들온말은 우리 말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들온말과 남의 말을 갈래짓지 못하는 데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긴다. 한자말은 우리 말이라고 하는 생각이 그렇다.
한자말 가운데는 들온말이 된 것이 많다. 그렇다고 모든 한자말이 다 들온말은 아니다. 서양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말과 서양말을 모조리 들온말과 남의 말로 갈라내야 한다. 이것만 제대로 하면 그밖에 얼키고 설킨 여러 가지 일들은 쉽게 풀린다.
‘우리 말 사전’에 실린 낱말은 대충 30만에서 50만 사이다. 이 가운데 반 넘게 한자말이 차지하고 있다. 이 한자말을 보면 오늘날 우리 말글살이에서 쓰지 않는 것도 수두룩하고 겨레말과 뜻이 같은 말도 많다. 우리 말이 없거나 고칠 수 없는 말만 들온말로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모조리 남의 말이나 버릴 말로 갈라내야 한다.
넷째, 남의 말과 들온말을 갈라내는 잣대
하나) 겨레말이 있는 남의 말은 모조리 버린다.
냉수→찬물. 난황→노른자. 계란→달걀. 전염병→돌림병. 육지→뭍. 연돌→굴뚝. 태양→해. 해양→바다. 원양→난바다. 근해→갓바다. 백미→쌀. 홍합→담치. 청천→파란 하늘. 경지→논밭. 암석→바위. 와이프→아내. 따위.
둘) 우리 말로 굳어진 남의 말은 들온말로 받아들인다.
가게(가가). 도둑(도적). 과녁(관혁). 명질(명절). 천둥(천동). 추렴(출렴). 김장(침장). 짐승(중생). 재미(자미). 서랍(설합). 두부. 심술. 고집. 운동. 회사. 석유. 공기.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책. 공책. 연필. 칠판. 야단. 법석. 이상하다. 구두. 냄비. 가마니. 버스. 택시. 가스. 따위.
셋) 우리 말로 굳어진 남의 말이라도 겨레말이 있거나 쉽게 겨레말로 바꿀 수 있는 말은 하나만 대중말(표준말)로 삼든지 둘 다 대중말(복수 표준말)로 삼는다.
부부→안팎, 가시버시. 세상→누리. 사회→모둠살이. 언어생활→말글살이. 세간→살림살이. 온돌→구들. 목단→모란. 따위.
넷) 일본식 한자말은 겨레말을 찾아 쓰거나 우리가 써 온 한자말(들온말)로 바꾼다.
백조→고니. 이창→뒤창. 일응→먼저. 견송→배웅. 당분간→얼맛동안. 시합→경기, 내기. 축제→축전, 잔치, 굿. 가급적→되도록. 장합→처지, 자리. 행선지→목적지, 갈곳. 따위.
다섯) 서양말 소리나 꼴을 따서 만든 일본한자말이나 중국한자말 그리고 우리가 만든 한자말은 버리고 제바닥말을 들온말로 받아들인다.
아세아→아시아. 구라파→유럽. 향항→홍콩. 불란서→프랑스. 나성→로스엔젤레스. 동남아→동남아시아. 북구→북유럽. 임파선→림프샘. 초자→유리. 구락부→동아리. 와사→가스. 불(弗)→달러. 낭만→로망. 와(瓦)→그람. 미(米)→미터. 따위.
여섯) 버릇으로 굳어진 이은말도 일본말, 중국말, 서양말에서 온 것은 버린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애교가 넘친다. 원한을 사다. 도토리 키 재기. 마각을 드러내다. 빵만으론 살 수 없다. 면담을 가지다. 뜨거운 감자. 저 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따위.
다섯째, 다른 나라 말투는 우리 말투로 고친다.
하나) 일본말투
나의 살던 고향. 남편의 탄 배. 이상의 실현. 책의 선택. 한 잔의 술. 하나의 사물. 가족과의 대화. 미래에의 다짐. 비극으로서의 현실. 현재에 있어서의 문화 창조. 제 나름대로의 판단. 어감에 있어서 다른 점. 돌임에 틀림없다. 따위.
둘) 서양말투.
뜻이 이루어졌다. 정부에서 주어진 훈장. 모임을 가지다.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라.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말하라. 더 강하게 요구된다. 끈질긴 노력이 요구된다. 노력이 필요로 한다. 고도의 과학 기술이 필요로 한다. 언어는 개인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백성으로부터. 아들로부터 받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가방. 쥐가 고양이에게 잡혀먹혔었다. 따위.
여섯째, 새 말 만들기.
새로운 일이나 물건이 생기면 반드시 새 말도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는 대충 일본이나 중국에서 만든 한자말을 가져와 써 왔다. 하지만 이제는 반드시 겨레말로 새 말을 만들어야 한다. 말을 새로 만들면 어떤 것은 바로 죽는 것도 있겠지만 알맞은 것은 살아남아서 우리 말을 살찌울 것이다.
또한 흔히 새 말은 한자말을 버무려 만드는 수가 많은데 이는 서양말을 일본이나 중국에서 한자말로 뒤친 것을 받아들이며 버릇이 든 것이다. 이를 가리켜 한자말은 ‘조어력(말 만드는 힘)’이 좋다는 말로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한자말로 만든 새 말을 다시 겨레말로 고치는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글말을 버리고 입말을 써야 한다.
말과 글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글말을 버리고 입말을 써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글말이란 대충 한자말이나 서양말을 섞어 쓴 말, 말소리를 듣고서는 뜻을 알기 어려운 말이나 반드시 눈으로 글자를 보아야 뜻을 알 수 있는 말을 가리킨다. 한자말이나 서양말이 그렇다.
또 보통 한자말은 거의 다 이름씨로 되어 있고 이름씨에 뒷가지를 붙여서 움직씨나 그림씨로 만들어 쓰는데 여기서 우리 말투가 비뚤어지는 수가 많다.
수면이 부족하다.→잠이 모자라다. 안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다.→탈이 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자. 기만하여 호도하다.→속여서 얼버무린다. 현하까지도 지속되고 있다.→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승용차를 대기시켜라.→차를 대어놓도록 하여라. 따위.
여덟째, 부름말도 새로 손질해야 한다.
집안 사람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던 옛날에는 부름말을 저절로 익혀서 어려움 없이 썼지만 요새는 한 집안 식구가 뿔뿔이 헤어져 살면서 부름말도 다 잊어버렸다. 또한 집안 예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터무니없는 부름말을 쓰는 일도 많다.
작은아버지를 삼촌이라 부르기도 하고 남편을 아빠나 아저씨로 부르기도 한다. 이제 옛날에 쓰던 부름말을 되찾아 쓰기도 어렵게 되었다. 알맞은 말을 찾든지 새로 만들든지 해야 한다.
아홉째, 갈말(학문말, 기술말, 직업말)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쓰는 갈말은 거의 다 일본한자말이다. 그래서 한자말이 없으면 ‘학문’을 할 수 없다고들 한다. 이 한자말은 서양 문화와 학문을 일본이나 중국을 거쳐 받아들이면서 함께 들어온 것이다. 언제까지나 일본한자말이나 중국한자말에 기대면 우리 학문은 살아날 길이 없다. 학문도 말로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무리말
우리 말을 살려내야 한다. 이 일은 우리 겨레와 우리 나라의 앞날이 달린 문제다. 어영부영하다가는 끝내 우리 말을 잃어버리고 나라와 겨레 목숨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매우 어려운 일 같지만 알고 보면 못할 일도 아니다. 목표와 방향 그리고 방법만 똑똑히 밝힌다면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앞에서 밝힌 목표와 방향은 우리 말을 살리는 데 가장 먼저 정해야 할 일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만 간추려 놓았지만 더러 빠진 것도 있고 잘못 생각한 것도 있을 수 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꼼꼼히 따져 보고 손질을 해서 빈틈없이 한 뒤에야 비로소 우리 말 살리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할 문제 다음 글을 바르고 깨끗한 우리 말로 다듬어 봅시다. (어느 신문에 나온 사진 설명문)
獨 고속열차 慘事 추도식 헤어초크 대통령과 콜 총리 등 독일 정치 지도자들이 21일 셀리 시(市)의 한 교회에서 열린 고속열차 사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예배에 참석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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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바로 쓰기 길잡이 ������ 바로 쓰기의 원칙과 기준
이오덕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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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어떻게 살릴까? 무엇보다도 먼저 잘못된 말 병든 말을 찾아내어야 한다. 쉽고 깨끗한 우리 말과 우리 말이 아닌 말(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우리 말이 되어서는 안 되는 말, 남 따라 쓰는 말, 책에서 배우고 방송을 듣고 그대로 쓰는 말)을 갈라 놓아야 한다. 우리 말이 아닌 말을 낱낱이 가려내어 이런 말이 우리 말을 잡아먹는 황소개구리라는 사실을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는 이 황소개구리 같은 말을 몰아내는 ‘우리 말 살려 쓰기’를 사람마다 나날이 밥을 먹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겨서 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바르고 깨끗한 우리 말과 병들고 비뚤어진 말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어떤 원칙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이 일을 해야 할까? 그리고 이 일은 누가 해야 하나? 아무나 다 이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먼저 이 일을 누가 할 수 있나 하는 문제부터 생각해 보겠다. 우리 말과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우리 말을 죽이는 말을 바로 보고 느끼고 그것을 잘 판단하는 일은 방안에서 책만 읽고 글만 쓰는 사람이나 책에 파묻혀 연구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는 결코 올바르게 할 수 없다. 오히려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일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서민들)이 잘 할 수 있다. 원칙은 어디까지나 그렇다. 그 까닭은 오늘날 우리 말이 이렇게 병들어 버린 근원은 책과 글에 있고, 그 책과 글을 만들고 지어 놓은 지식인들 쪽에 모든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깨끗한 우리 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또 잘못된 글쓰기 문화에 짓눌려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에 자신을 잃고 있다.(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을 ‘문맹자’ ‘글봉사’라고 해서 아주 없애야 할 미개인으로 따돌리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 되었으니,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에서도 거꾸로 된 세상의 틀을 그대로 이용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래서 말과 글에 관한 참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백성의 한 사람으로 숨쉬고 살면서 백성의 삶과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대신해 말해 주면서 모두가 살아 있는 우리 말을 지키고 가꾸어 가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무엇이 우리 말인가, 우리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말을 버려야 하나 하는 문제다. 우리 말의 원칙을 여러 가지로 들어서 말하기에 앞서, 그 원칙이 나오게 된 밑뿌리를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가 된다.
첫째, 깨끗한 우리 말일 것.
둘째, 글보다 말이 으뜸이다.
셋째, 살아 있는 말이라야 한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해서 좀더 자세히 우리 말의 원칙을 들어 보겠다.
원칙
① 시골의 농사꾼들, 학교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 글을 읽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거의 모두 깨끗한 우리 말이다.
②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는 방송을 따라 하는 말이나 학교에서 잘못 배운 말, 어른들한테서 잘못 배운 말이 더러 나오지만, 대체로 어른들의 말보다 깨끗하다.
③ 지금부터 60년이나 70년 전부터 누구나 입으로 하던 말은 우리 말이다.
④ 입으로 하지 않는 말, 글에서만 나오는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다. 다만 옛날부터 우리 글에서 쓰던 말이나, 옛날에는 입으로 하던 말이 지금은 글에서만 쓰게 된 말은 그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지금 우리가 입으로 널리 하고 있는 말이 있으면 그 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⑤ 밖에서 들어온 말이라도 그 말이 우리 말과 어느 정도 잘 어울리고, 또한 그 말에 대신할 우리 말이 없으면 우리 말로 삼는다.
⑥ 같은 뜻을 가진 우리 말이 두 가지 있으면 그 어느 쪽 한 가지를 쓸 수도 있고, 두 가지를 다 쓸 수도 있다.
⑦ 모든 글은 그것을 읽었을 때 귀로 들어서 곧 알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귀로 들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다.
⑧ 꼭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도 오래 전부터 글로 써 왔고, 그래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말은 그대로 글로 쓸 수 있다.
⑨ 어떤 전문 분야(철학․종교․정치․경제․금융․상업․농업․공업․의학․건축……들)에서 쓰는 말, 곧 누구든지 나날의 삶에서 흔하게 쓰지 않는 말은 그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말로 다듬어 쓰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도 될 수 있는 대로 그 전문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쉬운 우리 말로 다듬어서 쓰는 것이 옳다.
⑩ 문학은 전문 분야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글쓰기이고, 또한 말로 창조하는 예술이고, 겨레말을 살리는 일을 하는 자리다. 따라서 소설이든지 수필이든지 시든지, 그밖에 어떤 종류의 글도 일반 국민들, 백성들이 잘 알 수 있는 우리 말로 써야 한다.
⑪ 더구나 어린이들에게 읽히거나 들려주기 위해서 쓰는 글은 한층 더 깨끗한 우리 말로 써야 한다. 입으로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⑫ 관청이나 언론에서 또는 책에서 퍼뜨려 놓은 잘못된 말은 비록 오랫동안 널리 썼다고 하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⑬ 우리 말의 뿌리요 둥치가 되어 있는 농민들의 말은 우리 말 사전에도 올려 있지 않는 말이 아직도 많다. 이런 말을 모두 ‘사투리’로 잘못 알고 있지만, 깨끗한 우리 말로 보아야 한다.
⑭ 우리 말 사전에 올려 있는 말 가운데는 실지로 쓰지 않는 말,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되어서는 안 되는 말이 아주 많다.
⑮ 우리 말 사전에는 말을 풀이해 놓은 글이 우리 말이 아니고 우리 말법이 아닌 것이 아주 많다.
(16) 토박이말이 없어 들온말을 인정할 경우에 한자말과 서양말 두 가지가 있을 때는, 어느 것이 더 잘 우리 말에 어울리는가, 더 쉽고, 자연스럽게 쓰이는가, 어느 것이 먼저 들어온 말인가를 살펴서 그 어느 쪽을 우리 말로 받아들인다.
(17) 관공리나 지식인들이 새로 쓰는 어려운 말은,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들어온 말이든 우리 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8) 우리 나라의 어떤 단체나 사람의 이름을 줄여서 나타낼 때는 외국말이나 외국글자로 써서는 안 된다. 또 우리 말로 나타내더라도 그렇게 줄인 말이 이상한 느낌을 주거나 엉뚱한 이름으로 잘못 느끼게 되지 않도록 줄여서 써야 한다.
(19) 모든 글은 한글로만 쓴다. 다만 특별한 경우에 어떤 외국의 글자를 묶음표 안에 넣어 쓸 수 있다.
(20) 맞춤법은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맞춤법 가운데 누가 보아도 잘못되어 있는 것은 바로잡아 쓸 수 있다.
(21) 눈으로 보거나 소리내어 읽었을 때 그 말뜻을 잘못 알게 되도록 쓰고 있는 맞춤법은 바로잡아서 쓴다.
기준
앞에서 든 스물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우리 말을 ������ 깨끗한 우리 말과 ������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말로 나누고, 이 두 가지를 다시 몇 가지 갈래로 나누어서 그 보기를 들어 보겠다.
������ 깨끗한 우리 말.
㉠ 본디부터 있던 토박이말.
㉡ 들어온 말.
������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말)
㉮ 한자말
㉠ 어려운 한자말.
㉡ 느낌이 좋지 않거나 엉뚱한 뜻으로 알게 되는 말.
㉢ 우리 말이 있는데도 공연히 쓰는 말.
㉯ 일본말
㉠ 일본말.
㉡ 일본한자말.
㉢ 일본말법.
㉣ 일본글말.
㉤ 일본글 셋째가리킴대이름씨.
㉥ 일본 속담.
㉰ 서양말
㉠ 서양말, 또는 서양말 흉내낸 말.
㉡ 서양말법.
㉢ 서양 정서, 전통 흉내낸 말.
㉱ 잘못 쓰는 글말.
다음에 보기를 든다. 각 항목마다 얼마쯤씩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사전에 올려 있는 모든 말을 이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 깨끗한 우리 말
㉠ 본디부터 있던 토박이 우리 말.
■하늘. 땅. 바다. 구름. 나무. 바람. 눈. 비. 물. 안개. 길. 사람. 아이. 어른. 소. 마음. 새벽. …(이름씨)
■나. 너. 그이. 저이. 이것. 저것. 그대. 누구. …(대이름씨)
■하나. 둘. 셋. 첫째. 둘째. 셋째. …(셈씨)
■본다. 듣는다. 간다. 일한다. 말한다. 먹는다. …(움직씨)
■기쁘다. 반갑다. 슬프다. 아름답다. 깨끗하다. … (그림씨)
■이다. 아니다. (잡음씨)
■이. 그. 저. 새. 헌. 한. 두. 세. 서. 넉. 네. …(매김씨)
■아주. 가끔. 빨리. 천천히. 저절로. 더구나. 방긋방긋. 팔랑팔랑. …(어찌씨)
■아아. 아차. 어이쿠. 아뿔싸. 후유. 영차. …(느낌씨)
■가. 이. 는. 에. 에서. 까지. 부터. 야. 을. 한테. 마다. 으로. …(토씨)
㉡ 밖에서 들어왔지만 우리 말이 되어버린 말.
■산. 강. 책. 신문. 학교. 학생. 교실. 역사. 사회. 문학. 예술. 철학. 자동차. 비행기. 전기. 전차. 민주주의. 자유. 국회. 회의. 내일. 냉장고. 정부. 감옥. 연필. 필통. 만년필. 운동장. 풍금. …
■버스. 라디오. 텔레비전. 아파트. 피아노…
������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말.)
㈎ 한자말
㉠ 어려운 한자말.
조우. 해후. 호우. 기아. 미지수. 두건. 입자. 인후. 빈축. 선박. 유실수. 불연성. 수수방관. 속수무책. 일전불사. 불가사의. …
㉡ 느낌이 좋지 않거나 엉뚱한 뜻으로 느끼게 하는 말. (우리 말에 어울릴 수 없는 말.)
오자. 오지. 오수. 오니. 오독. 비자금. 상판. 교각. 고객. 수수. 발발. 왕왕. 의의. 의외. 의아(해한다.) 하자(흠). 종용. 우수(근심. 수심). 우아(하다.) 만끽(한다.) 끽연. 회화. 외화. 희화화(한다.) 화훼. 박차. 미풍. 미아. 영아. 치아. 의상. 익사. 고의. 토로 …
㉢ 우리 말이 있는데 공연히 쓰는 말.
대지. 초원. 여명. 황혼. 야생초. 야생화. 수로. 농토. 소로. 대로. 영아. 유아. 미소. 서식. 종자. 파종. 수확. 제초. 작물. 작황. 돌연. 돌입. 미래. 붕괴. 상호. 석권. 관건. 도서. 기로. 우회로. 첩경. 해안. 계곡. 산정. 춘계. 추계. 하계. 동계. 완구. 주방. 식탁. 사용. 성인. 실내. 노천. 수목. 온수. 냉수. 음료수. 체구. 이환. 치유. 발한. 동일. 의복. 가구. 위치한다. 웅변한다. 등장한다. 소유한다. 유실한다. 분실한다. 망각한다. 증오한다. 비탄한다. 견고하다. 가능하다. …
㉣ 같은 한자말이면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말을 써야 한다.
대기(공기). 계기(기회). 종용(권유). 우려(염려). 표출(표현). 출범(출발). …
㉤ 많이 쓰는 말도 우리 말을 찾아 쓰면 더 좋은 말이 된다.
사용한다(쓴다). 활용한다(살려 쓴다). 도서(책). 인간(사람). 계속(자꾸. 잇달아). 각자(저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사망(죽음). 작업(일). 실천한다(한다). 노동한다(일한다). 출발한다(나선다). 도착했다(닿았다). 관찰한다(살펴본다). 기록한다(적는다). 장소(곳). 시일(때). 이유(까닭). 등(들. 따위). 도로(길). 가격(값). 노트(공책). 게임(놀이. 운동. 경기.) …
㈏ 일본말
㉠ 일본말을 그대로 쓰는 경우.
야끼마시. 가다마에. 에리. 입빠이. 고데. 아다리. 가다로꾸. 요오지. 도비라. 시와. 우라. 에에또. 앗싸. 요이샤. 찌찌. …
㉡ 일본한자말
입구. 창구. 입장. 역할. 수순. 수속. 취급. 취입. 인상. 인양. 인하. 대출. 인출. 차입. 일응. 절취. 수취인. 승부수. 승부사. 승부한다. 진검승부. 민초. 체념. 예취. 소채. 야채. 부락. 개시. 주관적. 객관적. 비교적. 사회적. …
㉢ 한자 섞인 일본 글 따라 쓰는 말.
특히. 필히. 공히. 극히. 심히. 쾌히. 일제히. 일일이. 비해. …
㉣ 일본말법.
■나의 집. 나의 학교. 나의 어머니. 나의 사는 곳. 나의 존경하는 사람. 만남의 광장. …
■되어진다. 주어진다. 던져진다. …
■불린다.(그는 천재라 불린다. 따위)
■라고. (“……간다”라고 말했다.)
■-에 있어. -에 있어서. -에 있어서의.
■에의. 로의. 에로. 에로의. 으로부터(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따위). 에서의. 와의. 마다에. …
■보다(보다 나은…따위)
■뿐만 아니라(우리 말은 ‘그뿐만 아니라’)
■그러나 (일본말 따라 글의 중간에 쓰는 경우)
㉤ 셋째가리킴대이름씨
■그녀.
㉥ 흔히 쓰는 일본말. 일본 이음말.
■-에 다름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줄여서 ‘그럼에도’ ‘불구’따위로도 나타남). -에 의하여. -를 통해서. -로 인한. …
㉦ 일본 속담. 버릇말.
■도토리 키 재기. 벌레를 씹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손에 땀을 쥔다. …
㈐ 서양말
㉠ 서양말. 또는 서양말 흉내낸 말.
가이드. 오픈. 이미지. 메시지. 쇼핑. 세일. 조깅. 레크리에이션. 캘린더. 조크. 제스처. 스케줄. 커브. 캠핑. 해프닝. 파티. 파트. 넘버. 게임. 컬러. 메뉴. 커미션. 커버. 에세이. 엠티. 스푼. 슬로건. 클럽. 키. 오더. 캠패인. 그린스카우트. 스케일. …
㉡ 서양말법.
먹었었다. 갔었다. 했어야 했다.
㉢ 서양 정서. 전통 흉내낸 말.
공주. 요정. 거인. 마귀할멈. 대부. 인어 아가씨. 뜨거운 감자. …
㈑ 잘못 쓰는 글말이나 지어낸 말.
■먹다. 가다. 오다. 일하다. 쉬다. …
■더불어 함께.
■가끔씩. 인구수. …
■하거라. 쓰거라.…
■세 장(석 장). 네 단(넉 단).
■먹거리. 모람. 글모음집. …
우리 말 살리기 운동의 목표
우리 온 국민이 날마다 입으로 하는 말, 읽고 쓰는 글을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하도록 하여 서로 생각을 올바르게 알리고, 서로 깨끗한 마음을 주고받고, 저마다 하는 일을 바로 하게 되고, 잘못된 말로 남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속지 않으며, 어려운 말을 몰라서 세상을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어려운 말을 몰라서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없게 하고, 유식함을 자랑하거나 겉치레하는 풍조와 남의 것 부러워하여 우리 것을 멸시하는 태도를 바로잡아, 온 국민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한 마음으로 정답게 살아가는 참된 민주 통일의 나라를 세우는 바탕을 다지는 데 목표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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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논단 모국어를 버리면 조국과 민족도 잃는다
김경희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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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말 미국 세계미래학회는 1997년부터 2026까지 앞으로 30년의 인류 앞날을 내다본 보고서를 냈다. 그 보고서는 열 가지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첫째가 언어 문제였다. 말하자면 이 30년을 포함한 21세기에는 오늘날 남아 있는 세계의 언어 가운데 90%가 사라지고 10%만 남을 것이며, 그 10%에는 영어를 비롯한 다른 몇몇 언어만 포함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두 번이나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여진)족은 말을 잃어 지금 거의 사라졌다. 그렇다면 우리 모국어인 한국어는 그 10% 안에 들 것인가, 아니면 불행히도 사라질 것인가.
우연찮게도 올해는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반포한 551주년이자, 탄생 600주년이다. 만일 한글이 없었다면, 19세기 말부터 여러 외세의 침략을 받은 끝에 마침내 일제 식민지가 되어 버린 우리 겨레가 지금처럼 민족의 정체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언어와 문자 생활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번 되짚어 보자.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교육현장에서는 올해 초부터 초등학교 3학년에서 영어 조기 교육을 시작하고 있다.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시작한 영어 조기 교육 정책으로 부작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철없는 어머니들 일부가 자녀들 이름을 두 가지로 지어 영․미식 이름의 쟁탈전이 일고 있으며, 심지어는 아이에게 젖은 먹이되 우리 말을 가르치지 않고 영어만 쓰는 유아원에 맡기는 웃지 못할 일이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기막힌 현상은 교육 현장과 그 둘레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언론, 그 가운데서도 방송과 신문을 보자.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의 프로그램 이름은 거의 영어 그대로다. 이렇게 되니 활자매체인 신문들이 뒤질세라 법석인데, 이름 있다고 하는 신문들은 한술 더 뜨고 있다. 방송매체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마구 쓰나 소리로만 쓰지만, 신문들은 아예 한글이 아니라 로마문자 그대로를 쓰고 있다.
‘오늘의 특집’이 무엇이 부족해서 ‘투데이 스페셜’이며, ‘꿈’과 ‘무지개’라는 우리 말이 아름답지 않아 ‘드림’이나 ‘레인보’로 써야 하며, ‘새로운 촛점’은 낡은 것이어서 ‘Neo Focus’로 써야만 하는가. 그리
고 ‘여성 광장’으로 쓰면 촌스러워서 굳이 ‘Women Plaza’나 ‘Women Square’로 쓰는 것인가. 게다가 어떤 신문들은 명사만이 아니라 전치사나 접속사까지 로마자로 쓰고, 아예 영어 문장 그대로를 쓰고 있다. 이런 유행풍은 이웃 일본 언론에서 배우고 있기도 하다. 그 나라에서도 뜻있는 이들은 이를 아주 걱정하고 있다. 일본에서 배울 것은 안 배우고 이런 잘못만 배우려고 하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언론의 잘못된 풍조는 바로 잡지로 번지고 마침내 출판으로까지 퍼질 기세다. 교육과 언론․출판이 모두 우리 말을 죽이고, 우리 글을 없애는 데 분별없이 나선다면 조선어를 말살하려 했던 일제의 야만스런 정책을 우리가 어찌 규탄할 것이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지키려고 했던 이윤재 선생을 비롯한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온갖 어려움을 겪은 일은 어찌 되는 것인가. 이제 우리는 언어 문자 정책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 첫째, 영어 조기 교육의 부작용은 일파 |
만파로 번지고 있어 바로잡아야 할 것이며, 영어 교육에서 이치에 맞고, 효과도 있는 대안은 결코 없는가를 국가 차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둘째, 방송과 신문에서 외국어(영어)를 지나치게 쓰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며, 셋째 학계를 포함한 교육․언론․출판 같은 언어․문자 관련 문화계는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우리 말, 우리 글을 지키는 데 결의를 새롭게 다져 곧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들 한다. 문화는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바탕으로 하고 자란다. 그리고 민족 공동체는 바로 언어 공동체가 아닌가. 우리 민족은 우리 말이 있었기에 우리 글, 자랑스런 한글을 만들었다. 겨레의 보배인 우리 말과 한글을 도구로 하여 한국형 세계 문화를 이룩하는 것이 곧 21세기 문화 전쟁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1997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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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말 바로잡기 용의 눈물
남기용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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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게 나온다. 이 장수가 쓴 투구의 귀덮개는 나비처럼 간들간들 가볍게 날리는데 이것을 볼 때마다 저렇게 투구가 가벼워서 창칼을 어찌 막아 내겠는가 하고 헛걱정을 하면서 혼자 웃는다.
만든이들이 좀 살폈으면 훨씬 실감이 나는 장면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데, 극을 계속해서 보면 아쉬운 것이 그것만이 아니다. 역사극의 대사와 해설은 시대에 맞는 말을 가려서 써야 하고 이것이 간들거리는 투구 장면을 미리 잡아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데, 어설프고 정성이 모자라는 흔적이 자꾸 귀에 걸리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말도 생명이 있는 것이어서 이태조가 살던 그 옛날에는 썼는데 지금은 죽어 안 쓰는 것이 있고, 아직 쓰고 있는 것도 있지만, 최근에 태어나서 지금이 한창인 것도 있다.
만드는 이들은 적어도 이 최근에 태어난 말이 극 중에서 배우의 입이나 해설에 섞여 나오지 않도록, 쌀 속에 모래를 하나하나 찾아서 버리듯이 골라서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만드는 데 쏟아 넣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극의 생명인 실감은 날 수가 없다. 아니, 쏟는 돈이 많을수록 살리려는 실감은 더 멀어지고, 보는 사람이 육백 년이라는 두꺼운 시간의 벽 이 쪽과 저 쪽을 바쁘게 넘나드느라고 숨만 가빠질 것이다. 반 년 동안 이 <용의 눈물>을 보면서 귀에 걸리는 말들을 모아서 종류대로 간추렸다.
⑴ 먼저, 겨레말을 틀리게 쓴 것을 모았는데, 이렇게 틀리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
태조 : 옛날에 무학대사가 그렇게 말했었지.
‘했었지’는 틀린 말이다. ‘했지’로 고쳐야 한다. ‘했었지’로 틀리게 쓰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태종 : 말씀을 삼가하시요, 중전.
우리 겨레말에는 ‘삼가’라는 이름씨가 없고 ‘삼가다’라는 움직씨가 있다. “말씀을 삼가시오, 중전.”이 맞다.
태종 : 왜냐고 묻고 있지를 않으냐.
그렇지가 않아요.
‘묻고 있지’와 ‘그렇지’는 이름씨가 아니어서 ‘를’이나 ‘가’ 따위의 토씨를 달 수 없다. ‘묻고 있지 않으냐’와 ‘그렇지 않아요’로 고쳐야 된다.
하륜 : 전하, 그들은 전하의 처남분이십니다.
내시 : 전하, 정승분들 입시이옵니다.
‘분’ 앞에 ‘처남’이나 ‘정승’ 같은 이름씨를 붙이면 틀린다. ‘처남 되시는 분’이나 ‘세 분 정승’이면 틀린 것은 아니다.
왕비 : 전하는 어디로 납시셨는고.
‘납시다’ 그대로가 임금에 대한 높임말이어서 ‘셨’을 붙이면 안 된다. ‘납시었는고’나 ‘납셨는고’가 옳다.
이숙번 : 전하의 사냥이 시작되셨습니다.
전하를 높여야 할 것을 사냥을 높여서 틀렸다. “전하가 사냥을 시작하셨습니다.”가 가장 좋겠고, “전하의 사냥이 시작되었습니다.”라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겨레말 같은 맛이 안 난다.
? : 두 분이 무슨 좋은 일이 계셨던가 봅니다.
같은 까닭으로 “좋은 일이 있었던가 봅니다.”로 고쳐야 한다.
중전 : 이것이 꿈인고 생시인고?
‘고’는 무엇인지 모를 때 쓰고, 둘 중의 하나일 때는 ‘가’가 옳다. 보기를 들면 “네 이름이 무엇인고?”이고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라야 한다.
⑵ 일본이 이 땅에서 밀려간 지 반 세기가 지났는데 일본말이 우리 말 속에 섞여서 발을 거는 일들은 물러가기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말을 시대에 맞게 가려서 쓰면 <용의 눈물>은 실감나는 역사극으로 바뀔 것이고 덤으로 우리 말을 살리는 일도 하게 된다.
이숙번 : 이 일은 주상 전하의 계획된 수순이요.
‘수순’이라는 낱말 문제만 아니고 말의 짜임도 우리 말법과 다르다. “이 일은 주상 전하께서 미리 짠 절차대로요.”였으면 좋겠다.
태종 : 자복을 하지 않을 시에는 주리를 틀라.
‘시’도 일본 글 따라 하는 말이다. “틀라”란 말도 입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자복을 하지 않을 때는 주리를 틀어라” 하든지 “자복을 하지 않으면 주리를 틀어라”가 좋겠다.
황희 : 납득이 잘 안 가는 일입니다.
‘납득’도 일본말이다.
⑶ 최근의 말들 (잘못된 요즘의 관청 말, 시사 말, 얄팍한 유행 말 따위)
이숙번 : 전하가 지금 중전 마마와 냉전 중이야.
왕비 : 세자의 가례에도 신경을 쓰셔야지.
양녕 : 술 마시자고 먼저 꼬신 놈이 네 놈이 아니더냐.
태종 : 이정표를 만들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군왕의 수업을 시작하자꾸나.
극형을 내릴 작정이요.
달리 대안이 없질 않습니까.
내 세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불렀느니라.
해설 :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왕권 수호 차원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밖에도 임금이 대신들에게 ‘애로사항’이 뭔가고 묻는데 ‘애로사항’은 요즘 쓰는 우리 관청 말이다. 모두가 우리 옛말에는 없었던 것이 분명한데다가 시대와 관계없이 딴 말로 고쳐 써야 될 나쁜 말들이다.
그리고 임금이나 왕비가 듣기 민망한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은 하나같이 “어인 말씀을”, 안 좋은 일이 갑자기 생기면 벽이나 기둥을 치면서 “이거야 ”나 “이럴 수가”로 정해져 있어서 이야기 흘러 가는 것을 보면 다음에 나올 말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좀더 말을 살핀 뒤에 다듬고 살찌워서 보는 사람이 물리지 않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
연기 좋은 배우가 잘 생긴 배우보다 소중하듯이, 실감나는 극이 화려한 극보다 재미가 있다.
경과 보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 이뤄지기까지 |
취지문․목표․사업 계획 들을 적은 인쇄물 우송.
98. 2. 9 오후 2시 준비 간담회를 지식산업사에서 가짐
(참석하신 분-김수업 선생 외 7분)
98. 5. 7 취지문을 다시 쓰고, 우리 말 살리는 기본 원칙을 정해서, 발기인 승인 요청서와 함께 56분 앞으로 우송하였는데, 이 가운데서 승낙서를 보내 주신 분이 모두 39분이었고, 전화로 승낙한다는 말을 해 주신 분이 여섯 분이어서 발기인은 45분이 되었습니다.
98. 5. 27 오후 3시 지식산업사에서 발기인 모임 겸 창립 모임을 가짐.
이 날 발기인 모임만 계획했는데, 모두가 창립까지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창립 모임을 잇달아 하게 되었습니다. (참석한 사람- 남기용․고승하․남정성․노명환․노광훈․신정숙․강순옥․이혜영․백원근․서정홍․김경희․이오덕)
이 날 의논해서 결정한 중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모임의 이름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우리말살리는모임. 우리말살리는 ××모임.)
㈁ 사무실 : (110-040)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35-18 지식산업사 2층
㈂ 할 일
1. 신문 글 바로잡기.
2. 방송 말 바로잡기.
3. 책에서 쓴 말 바로잡기.
4. 상품 이름, 상품 설명문 바로잡기.
5. 광고 글 바로잡기.
6. 교육 말 바로잡기.
7. 행정 말 바로잡기.
8. 직장 말 바로잡기.
9. 가정 말 바로잡기.
10. 아이들 말 바로잡기.
11. 교과서 글 바로잡기.
12. 영어 조기 교육 비판.
㈃ 방법
1. 개별 지도.
2. 공개 비판.
3. 모둠 행동.
㈀ 상품 안 사기.
㈁ 글 안 쓰기.
4. 길거리 선전 광고.
5. 전단 뿌리기.
㈄ 사업
1. 회보 발간.
2. 월간 잡지, 또는 격월간지 발간.
3. 토론회, 연수회.
4. 우리 말 글쓰기 상 제정.
5. 우리 말 이야기 상 제정.
6. 온 국민이 새로 배우는 우리 말 우리 글 배움책(교과서) 발간.
7. 우리 말 바로 쓰기 사전 발간.
8. 우리 노래 부르기.
㈅ 기구
대 표 |
운영위원회 |
사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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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연 교 출 홍 자 회
획 구 육 판 보 료 원
부 부 부 부 부 부 관
리
부
98. 5. 31 공동 대표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운영위원을 우선 다음과 같이 뽑았습니다. 운영위원은, 먼저 각 지역별로 고루 나오도록 뽑았는데, 이분들은 달마다 한 번씩 열게 되는 운영위원회에 그때마다 참석하기 어렵겠기에, 서울과 서울 가까이 계시는 분들 가운데서 자주 나와서 의논할 수 있는 분들을 또 알맞게 뽑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알아 주시고, 운영위원이 되신 분들은 수고가 많으시겠습니다만 부디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정섭(부산)․고승하(마산)․남기용(창원)․남점성(창원)․서정홍(창원)․김수업(진주)․박종석(진주)․정근영(부산)․이재관(울산)․김명수(부안)․이만희(광주)․윤태규(대구)․김조년(대전)․최명환(공주)․황시백(속초)․주중식(거창)․황금성(부여)․김영래(서울)․차광주(서울)․강순옥(서울)․노명환(양주)․하현철(고양)․허홍구(서울)․이혜영(서울)․안건모(서울)․박문희(서울)․노광훈(인천)
98. 7. 10 회보 제 1호 펴내어 우송함
알 |
립 |
니 |
다 |
회원이 되시려는 분들에게
<우리 말 살리는 모임> 회원이 되려고 하시는 분은 그 뜻을 다음에 적어 놓은 곳으로 알려 주십시오. 전화 또는 우편으로 이름과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 주신 다음, 1년치 회비 1만 원을 다음 은행 구좌로 보내 주시면 입회 절차가 끝납니다.
우리 말을 살리는 일을 하시고 싶은 분, 우리 말을 살리는 공부를 하시고 싶은 분, 바르고 깨끗한 우리 말로 글을 쓰고 싶어하시는 분, 쉽고 아름다운 우리 말로 된 살아 있는 글을 읽고 싶어하시는 분은 누구든지 회원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이 회보는 달마다 한 번씩 펴내어 모든 회원들 앞으로 보내게 됩니다.
회원들의 힘으로 우리 말을 살려서 새 사회, 새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그러기 위해서 가까이 있는 분들에게도 회원이 되도록 권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락하실 곳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35-18 지식산업사 2층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110-040) ☏ : 733-0704 전송 : 720-7900
▸은행 계좌 번호
국민은행 : 343-24-0067-147 김경희
우체국 : 010777-0037399 김경희
회원 글 모집
회원들의 글을 기다립니다
이 회보는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쉽고 바르고 깨끗한 우리 말로 된 읽을 거리를 만들어 보이려고 합니다. 신문이나 잡지나 광고문이나 낱권책이나 어디서든지 회원 여러분이 보시고 깨끗한 우리 말로 된 글이 있으면, 옛날에 쓴 글이든지 요즘 쓴 글이든지 알려 주십시오. 그런 좋은 글을 우리 회보에 다시 실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회원 여러분들이 쓴 글도 누구든지 주저하지 마시고 보내 주십시오. 좋은 글은 회보에 싣겠고, 잘못 쓴 말이 있으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글의 종류나 길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글의 종류
㉮ 신문․방송․책 광고글 들에서 쓴 말 바로잡기.
㉯ 이 회보에 나온 글에 대한 의견.
㉰ 이야기글․생활수필․생활시․편지글.
������ 글의 길이
㉮ 는 200자 원고지로 7장, 또는 15장.
㉯ ㉰ 는 7장.
������ 마감 : 언제든지 보내 주십시오.
������ 보낼 곳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35-18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110-040
������ 그밖
이 회보에 싣는 모든 글을 쓴 분들에게 원고료를 드리지 못하는 사정을 살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라와 겨레를 살리는 크나큰 일에 저마다 가진 정성을 다 바치는 깨끗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면 더욱 값지고 빛난 글이 될 것입니다.
엮고 나서 ▴ 회보 첫 호가 이렇게 늦게 나온데다가 읽을 거리가 또 엄숙하거나 딱딱한 것이 되었네요. 첫 기초공사라 그러니 양해해 주세요. 다음부터는 재미있는 글도 싣겠습니다. ▴ 회보 원고 받아서 편집하는 일, 그리고 회원들과 연락하는 일 들을 신정숙 씨가 맡게 됩니다. ▴ 여러 가지 회의나 연수 모임의 자리는 글쓰기회나 지식산업사 두 곳 중 어느 한 곳을 그때그때 형편대로 정하면 되겠습니다. ▴ 그 동안 우리가 하는 일이 잘 되도록 하려고 애쓰시면서 열심히 뛰어다니신 김영래 선생님은 주일마다 한 번씩 모이자고 하십니다. 그렇게는 못 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쯤은 모여야 되겠지요. 달마다 중순쯤에 회보가 나올 무렵, 회보를 우편으로 보내는 일도 함께 거들고, 의논하는 자리도 만들고, 공부하는 시간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운영위원회도 그 무렵 열면 편리하겠지요. 좋은 의견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 호부터는 달마다 회보 만들고 회 운영하는 데 든 비용과 회비며 찬조금 따위-들온 돈과 나간 돈을 그 달마다 잘 알 수 있도록 밝히려고 합니다. 이 회보를 중심으로 해서 모이는 모든 분들이 한 형제자매로 손잡고 어울려, 아름다운 우리 말을 꽃피우는 겨레 사랑의 거룩한 자리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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