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크랩]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방침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주십시오.>

한글빛 2017. 4. 13. 11:49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방침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주십시오.>

 

건의 요약

 

교육부에서 20161230일에 발표한 ‘2019년 초등 5~6학년 교과서 한자 표기방침은 충분한 기초 연구 없이 당초의 급조된 정책을 밀어붙인 것입니다. ‘한자 표기가 어휘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 없는 전제 아래 추진된 이 방침은 어휘 학습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데다가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키우고, 유치원부터 조기 한자 사교육을 부추길 위험이 큽니다. 또한, 멀리 보자면, ‘한글은 불완전한 문자라 한글만으로는 낱말의 뜻을 밝힐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어린 학생들에게 심어주어 우리의 문자생활에 한자와 외국 문자를 마구 섞어 쓰는 혼란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한자어 가운데 구성 한자의 훈으로 의미를 풀이할 수 있는 것은 고작 32%에 불과하며, 한자 뜻풀이가 가능한 경우에도 한자의 훈을 이용하는 것이지 굳이 한자를 표기하여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교과서에 한자가 다수 표기되면 한자를 알아야만 용어의 뜻을 알 수 있으리라는 허황된 걱정을 부추겨 조기 한자 사교육의 부담 등 온갖 부작용을 낳을 것입니다.

 

한자교육은 학생들의 국어 체계가 자리 잡은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는 것이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면서 한자 수요가 낮아지자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자를 모르면 낱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협박하는 논리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교육 기업과 한자혼용을 원하는 세력의 논리였는데, 이 짝짜꿍에 교육부가 놀아나 교과서 한자병기를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서가 이제는 한글전용으로 바뀌었지만, 이 때문에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한자로 표기하지 않더라도 한자어의 뜻은 문장의 맥락에서 알아차릴 수 있고, 새로운 낱말의 뜻은 그 낱말의 사용과 독서를 통해 뚜렷해지게 마련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한자혼용을 주장하던 세력의 위헌심판 청구를 20161124일에 전원일치로 기각함으로써 한글전용의 정당성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교육부의 논리는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 한자혼용론자의 논리와 같습니다. 교육부에서는 당초에 기초 연구 없이 한자병기 방침을 계획하더니 그 뒤에도 기초 연구는 무시한 채 어떻게든 한자병기를 강행하려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 방침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여 주십시오.

                                   2017412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이대로(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공동대표: 이건범(한글문화연대 대표), 조창익(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윤지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 이오영(남북경제협력포럼 이사장), 이주영(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회장), 조장희(전국국어교사모임 이사장), 윤태규(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이사장).




1.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사태의 경과

 

1) 의도는 오로지 초등 한자교육 강화

 

2014924일에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을 발표하면서 교육부는 초중고 학교급별로 적정한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의 확대를 검토한다.”.라고 한자교육 강화 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방침은 초중고 한자교육 일반을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오로지 초등학교 한자교육 강화에 쏠려 있었습니다.

 

중등교육에서는 이미 1972년부터 1,800자의 한문교육용 기초한자가 정해져 내려왔고, 교과서 한자 병기도 1975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요구가 변하여 중등 한문 과목은 1990년대 중반부터 선택 과목으로 바뀌었고, 중등교과서에 병기된 한자도 줄기 시작하여, 현재 중등 한자교육은 매우 약화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2014년 교육부 방침에서 중고교의 한자/한문 교육 강화에 관한 언급은 단 한 마디도 없었고, 그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책의 과녁은 바로 초등에서 교육용 기초한자를 정하는 문제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였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사교육 시장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 이론적 근거 없고 사교육 조장 위험 커

 

국어단체들은 초등용 기초한자 제시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방침이 여러모로 잘못된 정책임을 비판하였습니다. 첫째, 초등 기초한자를 제시하는 순간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은 필수 과목으로 바뀌어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의무로 강요된다는 점입니다. 둘째, 교과서 한자병기는 한자 뜻풀이와 어울리지 않는 한자어가 많음에도 한자를 알아야만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선입관을 퍼뜨린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점은 초등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키우고 유치원부터 조기 한자 사교육을 부채질하며, 균형 잡힌 국어능력 향상을 가로막는다는 폐해로 이어집니다.

 

국어단체들은 201412월 말에 당시 교육부 박재윤 교육정책국장을 만나 이런 걱정을 전하였습니다. 2015223일에는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 정의당 정진후 의원 등과 함께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교육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한국초등국어교육학회가 초등교사 1천 명을 상대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대한 초등교사 설문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르자면 초등교사 66%는 교과서 한자병기에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사교육이 늘어날 거라는 응답은 92%, 한자급수시험 응시가 늘 거라는 응답은 96%, 학습부담이 증가한다는 응답은 94%, 교과서 읽기에 방해가 된다는 응답은 84%였습니다.

 

2015319일에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모든 교육감이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한자병기를 반대하는 쪽과 찬성하는 쪽의 대립이 심해지자 201558일에 황우여 당시 교육부총리께서 양쪽을 만나 의견을 들었고, “초등학교의 지나친 한자교육을 막기 위해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한다는 교육부의 당초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며 실무진에게 균형 잡힌 검토를 주문하였습니다. 201571일에는 한글학회와 한글문화연대 등 국어단체,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국어교사모임 등 교사단체, 참교육학부모회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학부모단체와 교육희망네트워크 등 시민단체까지 54개 단체가 모여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를 세우고 두 달 넘게 매일 광화문과 온라인에서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2015824일 교육부 주최 공청회에서는 국가교육과정개정 연구위원회 위원장인 김경자 이대 명예교수가 아무런 구체적인 연구도 없이 양쪽 견해를 나열한 뒤 교육부 방침대로 한자병기를 추진할 방안을 논의하자고 주제발표를 하는 바람에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반대 여론의 핵심인 한자병기의 필요성을 토론하지 않고 한자병기의 방안을 들이댐으로써 한자병기를 강행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었던 것입니다.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전국의 교육대학 교수들은 공청회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 동료 교수들을 상대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서명에 들어갔고, 201599일에 전체 교수의 절반이 넘는 410명이 교과서 한자병기에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공청회에서 초등용 기초한자 제시와 교과서 한자병기의 근거가 박약함을 확인한 김경자 위원장은 201594일 공청회에서 한자병기 문제는 첨예한 논의가 있어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교육부에 건의하고 있다.”면서 1년 동안 추가 연구를 하겠노라고 이 방침의 강행을 유보하였습니다.

 

3) 어휘 교육에 한자 표기 이용한다는 논리 앞세워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교육 분야를 맡아 청와대 교육비서관을 지내면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등 한자교육 강화 정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였다고 추정되는 김재춘 당시 교육부 차관(, 한국교육개발원 원장)2015922일 기자회견에서 교과서 본문이 아니라 옆단이나 밑단에 용어를 풀이할 때 2~3백자 가량의 한자를 병기하여 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대 의견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교육과정에 초등용 기초한자를 제시하는 방침을 포기하고, 당초 3학년부터 하려던 교과서 본문 한자병기를 5~6학년 교과서 본문 밑단이나 옆단의 용어 풀이에 한자를 병기하여 표기하는 쪽으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병기가 아니라 표기라고 말을 바꾸었지만, ‘표기라는 말이 병기와 대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표기란 문자 또는 음성 기호로 언어를 표시함이라는 뜻이고,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에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같은 한글전용,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다와 같은 한자병기, ‘大韓民國民主共和國이다와 같은 한자혼용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표기라는 말은 한자병기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김 차관은 위 예문에서 민주공화국을 설명할 때 본문 옆이나 밑에 따로 떼어내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라고 한자를 병기하여 풀이하는 방식을 표기라고 달리 부른 것뿐입니다.

 

따라서 교육부의 이런 수정된 방침 또한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강화하려는 당초의 논리에서 벗어난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당시의 비판적인 국민 여론을 피해가려는 시간 끌기 우회 전략일 뿐이었습니다. 어휘 교육에 한자 표기가 반드시 필요한지 기본 전제부터 검토하자는 의견은 묵살한 채 한자 표기를 전제로 실무적인 방법을 연구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20164월에 교육부에서는 연구용역을 공고하고, 서울대 김동일 교수를 책임자로 하는 연구진을 선정하여 교과서에 표기할 한자를 고르고 한자 표기 방법을 연구하게 했습니다.

 

이미 연구용역의 기본 방향을 김재춘 차관이 설정해놓았던 터라 김동일 연구진의 연구 결과는 근본적인 기초 연구 없이 실무적인 방안 연구에 모아졌습니다. 초등 5~6학년 교과서에서 한자 표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용어 368개를 뽑은 뒤 표기할 한자 370자를 골라 20161130일에 연구보고를 겸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토론회에서 어휘 선정의 문제점, 한자 선정의 문제점 등이 낱낱이 지적되었고,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한자어 용어를 설명해주는 데에 한자 표기가 필요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문제점이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한자의 훈을 이용하여 용어의 뜻을 풀이해주는 일은 지금도 교사들이 수업에서 하고 있고 교과서 용어 풀이에도 잘 나오는데, 여기에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한자 표기를 강행한다면 반드시 사교육 조장의 부작용이 돌아온다는 비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는 이러한 비판을 무시하고 20161230일에 초등 5~6학년 교과서 용어 풀이에 표기할 한자 300자를 선정하여 2019년부터 표기하겠노라고 강행 방침을 밝힌 것입니다.

 

 

2. 교육부는 한자혼용론자들의 손에 놀아난 것입니다.

 

1) 한자병기를 주장한 세력의 정체

 

초등교과서 한자병기를 집요하게 요구한 곳은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회장 이한동),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회장 진태하), 전통문화연구회(회장 이계황) 등 세 곳입니다. 사실 이들은 한자병기가 아니라 철저한 한자혼용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의 누리집(홈페이지)에는 한자혼용 문서가 그득합니다. 이 한자혼용론자들은 공문서 및 교과서 한글전용과 한문교육 선택과목화가 위헌이라며 20121022일에 헌법재판소에 국어기본법 등을 상대로 위헌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우리 낱말의 70%가 한자어이고, 한자어는 한자로 적어야 뜻을 이해할 수 있는데, 국가에서 한글전용을 강요함으로써 국민의 문해력을 떨어뜨리고 한자로 읽고 쓸 행복추구권, 표현의 자유, 자녀교육권, 인격형성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한글전용을 상대로 위헌심판을 청구한 사람들의 주장과 교육부 방침 사이의 차이는 한자혼용이냐 한자병기냐, 초등 저학년부터냐 고학년부터냐 따위 양적인 부분일 뿐이고, ‘한글전용의 폐해, 문해력 저하, 동음이의어 처리의 문제점, 한자문화권 교류 필요성등의 근거 논리는 모두 같습니다. 논리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이들은 교육부에 집요하게 민원을 넣어 교과서 한자병기 또는 한자혼용을 요구한 주인공들이고, 2015824일 교육부 공청회와 20161130일 서울대 김동일 연구진의 토론회에서도 교육부 주장을 대변하는 토론자로 나서서 한자병기를 주장하였습니다. 당시에 이들이 낸 토론문 역시 한자혼용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에는 한자혼용을 요구하고 교육부에는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한자병기를 요구하는 전술적 노련함까지 보였던 것입니다. 교과서에서 한자병기를 확대한 다음에 한자혼용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한자혼용론자들의 2단계 전략에 교육부가 놀아난 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위헌심판 청구는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기각되었는데, 교육 책임 당국인 교육부의 관료들은 교육적인 판단에 눈을 감은채 한자혼용론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으니, 놀아난 것이 아니라면 공모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2) 헌법재판소 판결의 핵심 내용

 

국어기본법의 한글전용과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한자/한문 교육의 선택 과목화 고시 등에 위헌 심판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61124일에 두 가지 모두 기각하고 나머지 자잘한 요구는 모두 각하하였습니다. 특히 한자혼용 요구에 관해서는 전원일치 기각이었으며, 한자교육 관련 고시에 대해서는 위헌 의견을 낸 4명이 있었지만 5:4로 기각하였습니다. 이 위헌심판 청구인들의 논리는 2014년부터 교육부에서 초등 한자교육 강화를 주장하던 논리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므로 헌재의 판결은 교육부의 방침을 검토하는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이들의 요구가 근거 없음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한자어는 굳이 한자로 쓰지 않더라도 앞뒤 문맥으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낱말에 담긴 뜻은 결국 그 단어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실제 생활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과정을 통해 정확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 낱말이 한자로 어떻게 표기되는지를 아는 것이 어휘능력 향상에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 독해력이나 사고력의 향상도 근본적으로는 꾸준한 독서와 다양한 경험 등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한자지식이라는 하나의 요소가 학생들의 독해력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즘에는 인터넷이 상용화되어 한글만을 사용하더라도 지식과 정보 습득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한자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검색 등을 통해 충분히 그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으므로, 한자교육이 필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것은 헌법 재판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상식적인 견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문제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있지 않음을, 즉 중고교 한자교육부터 먼저 내실화하여야 함을 수차례 밝혔던 국어단체들의 생각과 비슷한 견해를 한자 관련 고시에 대한 반대의견(박한철, 안창호,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자교육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점에는 의문이 없으나, 아이들의 연령과 발달수준을 고려하여 적절한 한자교육의 시기를 정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모국어의 기초 낱말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우리글의 기본과 언어 예절, 대화 방법 등 기초적인 언어학습을 해야 하는 시기이므로 한자교육을 한글교육과 동시에 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중고등학생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이해와 사용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로, 한자교육이 한글학습이나 기초적인 언어습관 형성에 혼란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적절한 수준의 한자교육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전통에 대한 이해와 사고를 기르고, 우리말의 어휘력을 향상시키며, 각 교과과목의 필수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학생들의 교육적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줄임)...

따라서 국가는 적어도 중학교 이상의 학생들에 대하여는 한문을 필수교과로 편제하여 모든 학교에서 반드시 일정 시간 이상 가르치도록 함으로써, 공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한자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한자교육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할 것이다..”

 

한자에 우호적인 네 재판관의 견해를 보아도, 한자교육의 출구를 중등 한자교육 내실화에서 찾기보다 초등교육에서 찾는 교육부의 발상은 우리 사회의 상식적인 눈높이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교육 세력의 개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자 관련 사교육 및 급수시험 등은 대개 초등학생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유치원생으로 넓혀지고 있습니다. 정작 어려운 한자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중고교에서는 한자교육이 약화되었고 한자 사교육도 찾아볼 수 없으니, 교육부의 초등 한자교육 강화 방침이 한자 사교육 시장의 입맛에 딱 맞는 것입니다. 이런 마당에 초등교과서 한자병기가 실제로 시행되면 그 파장은 어떨까요? 2014년 교육부 방침 발표 이후 시중에는 초등교과서 한자 용어를 가르친다는 한자 사교육이 광고를 시작했고, 한자 급수가 아니라 한자어 급수 자격시험까지 등장했습니다.

 

 

3. 교과서 한자 표기의 문제점은 이렇습니다.

 

교육부에서는 20161230일 발표에서 학습 용어 이해를 위한 교과서 한자 표기 원칙을 마련한다.”고 초등교과서 한자 표기의 목적을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학습 용어 이해에 한자 표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데다가 집필진의 무분별한 병기를 부채질하고, 유치원부터 한자 사교육을 필수로 만들 부작용의 위험이 큽니다.

1) 학습 용어 이해에 한자 표기는 도움 안 돼

교육부에서는 한자 표기가 한자어 이해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아무런 근거도 대지 못했습니다. 한자란 대개 우리 고유어를 압축 번역한 음을 지니고 있고, 그런 한자가 2음절이 넘어가면 그 뒤에 압축 번역된 뜻을 알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한자의 훈을 적절하게 풀어 설명해주면 한자어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풀이해줄 수 있는 한자어, 부모’, ‘애국처럼 구성 한자의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는 전체의 32%에 불과합니다. ‘단체’(둥글 단/몸 체), ‘헌법’(법 헌/법 법), ‘비난’(아닐 비/어려울 난)처럼 뜻이 잘 닿지 않거나 동어반복에 불과한 경우가 68%나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자의 훈을 이용하여 뜻을 풀어줄 수 있을 때조차 한자 풀이란 한자의 훈을 이용하는 것이지 한자의 글자 모양을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자 모양의 습득 없이, 단지 한자어의 형태소 노릇을 하는 구성 한자의 뜻을 풀이해주는 것만으로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인지과학계의 실험 결과로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교육부에서는 이를 반박할 어떠한 연구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과학적 근거 없이 밀어붙인 정책이므로, 절대로 강행해선 안 됩니다.

2) ‘무분별한 병기 예방은 적반하장격의 억지 논리

교육부에서는 학습자 수준에 맞지 않거나 학습 내용과 관련이 없는 무분별한 병기를 예방해야 한다는 교육적 관점에서한자 300자를 선정했다고 밝혔으나 이는 앞뒤가 뒤바뀐 억지일 뿐입니다. 현행 교과서 집필 상의 유의점에 따라 집필한 초등교과서 전체에서 병기 사례는 고작 26건이었고, 이 가운데 교육부가 무분별한 병기라고 목소리 높여 지적한 내용은 16건이었으며, 그 한자 수는 22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교육부에서는 300자를 정해 병기를 대폭 확대하려 하면서 무분별한 병기를 막는 예방 차원이라고 말합니다. 16건의 무분별한 한자병기 역시 교과서 집필진과 심의회 판단에 따른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다른 조건의 변화가 없는 한 300자 표기 허용은 당연히 무분별한 병기를 늘리지 않겠습니까?

 

교육부에서는 교과용 도서 편찬 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에 병기 규정이 있으니 정책의 근거가 있다고 말합니다. 거기서는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하여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한자나 외국문자의 병기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꼭 필요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때 그 취지에 맞게 제한적으로규정을 적용하면 될 일이지, 어처구니없게도 현재의 규정의 핵심 성격인 예외성을 파괴할 정책을 꺼내면서 현재의 규정을 근거로 내세운단 말인가요? 이는 긴급 또는 보수 차량만 갓길로 갈 수 있다는 제한적 규정을 핑계로 갓길 주행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둘러대는 궤변과 다름없습니다.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이런 태도야말로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짓입니다.

 

3) 300자 선정, 객관성 없어

교육부 연구용역을 수행한 서울대 김동일 연구진에서 20161130일 밝힌 370자의 한자와 한자어는 학습 용어 이해를 위해 한자를 표기한다는 교육부의 명분과 너무나도 거리가 멉니다. 370개의 한자를 골라 한자어를 표기하려다 보니 매우 중요한 학습 어휘임에도 해당 한자만으로는 표기할 수 없는 용어들이 대상 목록에서 빠지고, 굳이 깊이 알 필요가 없는 한자어가 370자 한자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들어가는 등 짜 맞추기 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한자어 이해를 돕고자 한자를 표기하려는 게 아니라 한자를 가르치기 위해 우리 국어 낱말을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5학년 사회과만 해도 가장 중요한 주권, 자연환경, 재화, 갈등, 참여, 투표, 정당, 삼권분립, 정보, 전통, 전성기, 계승, 포용, 제국, 근대, 실학, 선거등의 낱말이 빠져 있습니다. 반면에 영접도, 조동처럼 매우 지엽적인 낱말이 들어 있습니다. 한자 선정 과정도 석연치 않습니다. 질적 선정 방법을 통해 뽑은 한자는 270개였는데, 양적 선정 결과로 나온 370개 한자에서는 질적 선정에서 중복을 제거한 226개 한자 외에 144개 한자가 명확한 근거 없이 추가되었습니다. 부속도서의 섬 서, 서식지의 살 서, 맥락의 이을 락, 조동의 거칠 조 등은 모두 자주 사용하지 않는 저빈도 한자라 선정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숫자 1, 3, 4, 6, 8은 포함되었지만 2, 5, 7, 9, 10은 들어 있지 않은 사실로 알 수 있듯이 이 연구는 그 전제부터 결과까지 엉망입니다.

 

더구나 이런 혼란 때문에 연구진은 지난해 1230일에 한자 선정을 마치지 못했는데도 교육부는 마치 300자를 뽑은 것처럼 보도자료를 내는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정될 한자에 관한 검증 계획도 전혀 없습니다.

4) 1천 자의 조기 한자 사교육을 필수로 강요

교육부에서는 기본 한자 300자와 친숙해지는 창의적 체험활동 자료를 개발 보급하여 초등 수준에 적합한 한자교육이 전국적으로 균형 있게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덕에 한자 선행 교육이 필요 없게 되리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유치원부터 한자 선행 사교육을 필수로 강제하는 부작용을 낳을 뿐입니다. 교과서에 한자가 표기되고 그 교육자료가 나오는 순간, 학부모들은 자녀가 한자를 알아야만 학습 용어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걱정을 떠안게 됩니다. 이는 초등 저학년뿐만 아니라 유치원부터 한자교육을 부채질하여, 초등 취학 전부터 사교육 차원에서 한자교육을 필수로 만들 것입니다.

더구나 초등 고학년 교과서에 표기하겠다는 한자 300자는 대개 한자의 획수나 모양 면에서 단순한 기초한자들이 아닙니다. 한자 급수시험 업체들이 선정한 급수별 해당 한자에 따르면 거의 4급 수준에서 요구하는 한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4급에서는 1천 자를 아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정책은 중학교용 900자를 초등교육으로 끌어내리는 셈입니다. , 표기용 한자 300자를 선정한 효과는 1천 자를 익히도록 강제하는 부작용을 낳는 것입니다.


5) 학생 1인당 250만 원의 사교육비 유발

교육부가 선정할 초등 5~6학년용 표기 한자 300자를 알기 위해서는 한자급수시험 주관기관인 한국어문회가 규정한 4급 정도의 실력이 필요합니다. 초등학생이 한자 급수 4급을 따려면 학원에 다니면서 대개 16개월 이상은 공부해야 한다고 업계에서는 말합니다. 한문 한자 학원은 한 달 수강료가 대략 12만 원이니, 4급 시험을 볼 만큼의 실력을 갖추려면 학원비만 216만 원이 들어갑니다. 한 번에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응시료 24만 원, 여기에 석 달치 학원 수강료 36만 원이 추가로 든다고 치면, 이래저래 250만 원의 사교육비가 드는 셈입니다.

 

 

이렇듯이 정책 실행의 이론적, 실증적 근거 없이 한자를 가르치기 위해 어휘 교육을 왜곡하고 학습 부담을 늘리며 조기 한자 사교육 조장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초등교과서 한자 표기 정책을 원점으로 돌려 다시 검토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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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참여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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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글쓴이 : 나라임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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