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는 일본인들
한글빛
2006. 12. 14. 22:02
재일동포 김리박 시인 우리 말글 지킴이 뽑혀 | |||||||||||||||||||
일본인에 한국어 교육과 동포사회 ‘얼’ 지키기, 조국통일운동 앞장서 | |||||||||||||||||||
오는 12월 18일 늦은 4시에 한글회관 강당인 얼말글교육관에서 일본 교또에서 일본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재일 한국인문인협회 김리박(64) 회장이 2006년 네 번째 우리말 지킴이로 뽑혀 그 위촉장을 받는다.
김 회장은 "일본에 동포가 많지만 우리 말글로 문학활동을 하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일본말로 문학활동을 하는 우리 동포가 더 많다. 우리말을 모르는 젊은이가 점점 늘어나고, 민족차별 때문에 일본에 귀화하는 동포가 한 해에 1만 명에 가깝게 늘어난다. 오히려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말을 배우려는 일본인은 늘어나는 판인데 동포들은 그 반대다."라면서 우리말과 우리 얼이 일본 동포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걸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우리 동포 젊은이들에게 우리말과 우리 얼을 심어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일본 도쿄에 있는 한청 사무실에 들러 젊은이들이 우리말을 배우고 지키려고 한글 교실을 스스로 열고 있다기에 들렀다가 다음 취재는 교토에 있는 김리박 선생님 활동상황이라고 말하니 일제히 " 와! 김리박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우리들에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십니다. "라면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김리박 선생이 동포 젊은이들을 감동시키는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김리박 선생을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으나 이번에 한글학회에서 우리말 지킴이로 뽑혔다는 것만 알고 그 활동상황을 보려고 찾아가 뵙기로 했는데 동포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저녁에 마침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문화교실에서 김 회장이 일본인들에게 일본말을 가르친다기에 그 상황을 보려고 저녁 6시까지 교토 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도쿄에서 신간선 기차를 탔다. 일본을 처음 간 나는 도꾜에서 교또가 가까운 줄 알았더니 차비가 우리 돈으로 15만 원 가깝게 드는 먼 거리였다.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돈 걱정을 하면서 교또역에 내리니 개찰구에 마중 나온 김리박 선생이 바로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이 선생이시지요."라면서 두 손을 내민다. 나도 처음 본 분 같지 않고 오랜 친구나 형님같이 느껴졌다.
김 선생은 3.1독립 선언문을 학생들에게 따라 읽게 했고 이 태백이 지은 "태산이 높다 하되."를 외우게 했다. 일본인에게 독립선언문을 읽게 하는 모습은 민족주의자임을 보여주고, 시를 외우게 하는 건 시인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인들에게 독립선언문을 읽고 느끼는 점을 묻고 싶었으나 교육 중이고 혹시 민족 감정을 일으킬까 염려되어 묻지는 않고 듣기만 했다. 74살인 구쿠이 아키고 할머니는 "왜 한국말을 배우게 되었는가?"라고 물으니 "동양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가까운 한국에 대해 좀 더 깊게 알고 싶었고, 요즘 한국 연속극과 한류 바람을 즐기려고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요즘 일본도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에 여행을 가고 싶어 하고 한국말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었다며 좋아한다. 그 이튼 날 저녁에는 김회장이 가르치는 또 다른 한국말 교실 학생들과 저녁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국말을 배우는 이들이라 그런지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 여러 번 와본 사람도 있고 오고 싶어 했다. 많은 일본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면 그만큼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김 회장에게 일본에 있는 우리 문학활동을 더 물어봤다. “일본에서 문학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은 나와 김윤 시인뿐이다. 따라서 재일한국문인협회 회원도 많지 않고 문학 창작보다 우리말을 배우고 사랑하자는 모임인 셈이다. 본래 이름은 '날나라에 머물어 사는 한겨레 글지이들의 모임'이고 줄여서는 '한글모임'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우리말로 글을 많이 쓰게 하는 게 목적이다. 한흙(大地)이란 동인지를 41호 째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동인지 40호에 김 회장이 쓴 "우리 한글 글지이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쓴 머리글에 "우리가 우리를 멋지게 내세울 때는 꼭 우리 말과 글로 내세워야 하며 그 말과 글은 올바르고, 쉽고, 아름답고, 씩씩하며, 따뜻해야 하고 상냥해야 하고 또한 날카로워야 하며 맘을 뛰게 하고, 힘이 나게 하고, 꿈이 되게 해야 하고, 값있는 것으로 하여야 한다."고 쓴 것에서 김 회장과 모임의 뜻과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도꾜에서 만난 한 동포는 김 회장을 고집쟁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글에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그 고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우리말과 우리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는 '믿나라'의 머리글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그 이음 배(연락선)로 검은 바다 너울(현애탄)을 건넌 뒤 61해 만에 우리 새(동)쪽 바다를 건너 내 믿고장(고향)이 있고, 한어버이와 김구 큰 어른의 나라, 최현배 스승님을 비롯한 겨레의 거룩한 분들이 고이 주무시는 무덤이 있는 믿나라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에서도 우리말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정신을 느낄 수 있다. 김 회장에게 어쩌다가 우리말과 우리 얼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일본말을 못하는 우리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6살 때까지 일본말을 하지 못하고 우리말만 했다. 그런데 일본 초, 중학교에 들어가니 일본말을 하지 못해 민족차별이 심해서 일본말만 하게 되니 우리말을 잊어버렸다. 민족차별을 받다 보니 민족의식이 깨어나고, 이게 아니다 싶어서 고등학교와 대학은 한국말을 하는 조총련 학교를 다녔다. 사회에 나와 보니 더욱 민족차별과 학대를 느낄 수 있어서 우리말 우리 얼 지키는 일을 더욱 고집스럽게 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한밝 김리박 선생의 조국사랑, 한글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한흙 39호] 머리글을 전재한다.
![]() 이대로 참말로 논설위원은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1967년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 창립 초대 회장 1994년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 조직위윈장 1997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2000년 한글세계화추진본부 상임이사(현) 2004년 한글날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사무총장 2005년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 2006년 한글발전 공로 국무총리 표창 | |||||||||||||||||||
2006/12/14 [01:45] ⓒ참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