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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22일 Facebook 이야기
한글빛
2013. 3. 2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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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강제 편입했지만 1924년 발간된 일본 교과서에 '독도가 조선땅'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해 가르친 증거가 발견됐다.한일문화연구소장인 김문길 부산외대 명예교수는 27일 독도를 조선땅이라고 기술한 일본의 근대 중등학교 교과서를 공개했다. 1924년 10월 1일 일본 메이지 서원에서 발간한 이 -
~EMMA DIMA~
ℒ ℴ ν ℯ´¯`•.¸.☀♥~DIMA EMMA~~DIMA EMMA~~DIMA EMMA~~EMMA DIMA~~DIMA EMMA~
GOOD NIGHT SWEET DREAMS !~DIMA EMMA~~DIMA EMMA~~DIMA EMMA~~DIMA EM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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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은폐 의혹을 받는 청주산업단지 내 SK하이닉스의 염소 누출 사고를 당국이 뒤늦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주부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 덕분이었다.22일 소방당국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10분께 SK하이닉스반도체 청주공장에서 염소가스가 누출됐지만 회사 측은 아예 관계 당국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그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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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스통신)'영훈국제중 검찰수사로 비리.위법의혹 깨끗이 씻어지길' 이사장 등 ‘업무상 횡령죄 내지 배임죄’ 혐의 고발 출처 :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468217 (아시아뉴스통신=조기종 기자) 김형태 교육의원./아시아뉴스통신DB22일 김형태 서울시교육의원은 영훈국제중학 -
노회찬과 김지선의 사랑이야기 ㅎ
‘노동자의 큰언니’에게 두 살 아래 엘리트 노동운동가 반해
- 노회찬 대표와 부인 김지선씨 ‘동지의 삶’-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의 부인 김지선씨가 4·24 재·보궐 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노회찬 대표가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공석이 된 서울 노원 병 지역구에 부인이 진보정의당 후보로 나선 것이다. 지역구 세습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진보정의당은 노 대표의 빈자리에 김지선씨를 후보로 내세웠다. 이런 결정에 김씨의 이력과 노 대표와의 동반자 관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씨는 아직까지 노 대표의 부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30년 넘게 여성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어온 치열한 사회운동가다. 북한 황해도 출신의 부모를 둔 김씨는 대청도(인천광역시 옹진군 소재)에서 태어난 섬 소녀였다. 2남 4녀 중 셋째 딸이었던 김씨 집안은 가난했다. 어릴 때부터 노동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인천을 기반으로 노동운동을 해왔다. 대성목재, 삼원섬유, 동일방직 등에서 노조 간부를 지냈다. 1978년에는 ‘부활절 여의도 새벽 예배 사건’으로 구속돼 6개월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기독교방송을 통해 생방송되는 여의도광장 설교 연단에 동료 여성 노동자 4명과 함께 올라가 ‘동일방직 문제 해결’과 ‘노동3권 보장’을 외친 사건이다. 1983년에는 ‘인천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한 차례 더 구속된 바 있고, 이후 인천노동자복지협의회 사무국장, 인천지역노동자연맹 부위원장 겸 사무국장,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등을 거치며 인천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큰언니’로 불렸다.
‘인천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김씨와 노 대표는 함께 노동운동의 길을 걸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자라온 환경이나 노동운동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다르다. 부모를 일찍 여읜 김씨는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목재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현장 노동자 출신 노동운동가다. 나이 탓에 취직이 어려워 스무 살이던 언니의 신분증을 이용했다고 한다.
노 대표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 노동운동가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79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재학 도중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고 서울 영등포와 인천 지역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노 대표와 김씨는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도중 만났다. 당시 김씨는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는 나이가 두 살 연상이고 노동운동가로서의 경력도 오래된 김씨가 노 대표보다 훨씬 유명했다. 김씨를 마음에 둔 노 대표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지만 여지없이 거절당했다. 김씨는 노동운동의 길이 워낙 힘들었기에 연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노동운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배우자는 함께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동지여야 했다. 다음 해 노 대표는 선거에 나선 동료를 도와주러 간 자리에서 김씨를 다시 만났고, 다시 한번 프러포즈를 했다. 이번에는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 권을 보내며 표지 안쪽에 ‘당신의 결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프러포즈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연서를 보내 김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만나 1988년 가족만 모여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노 대표가 33세, 김씨가 35세였다. 이들 부부의 신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결혼 10개월 만에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노 대표가 붙잡히면서 2년 6개월 동안 투옥 생활을 했다. 김씨는 여성의전화에서 일을 하고 책 대여점을 운영하며 홀로 살림을 꾸렸다. 보통 사람들이 맛보는 신혼생활의 즐거움은 꿈도 못 꿨다.
노 대표가 출감한 이후에도 경제적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2004년 17대 국회에 입성하기 전까지 노 대표는 딱 한 번 80만원을 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을 뿐 대부분 많아야 50만원 정도를 살림에 보탰다고 한다. 아파트단지 내 재활용품을 모아놓은 곳에서 주워온 옷으로 의복 문제를 해결했을 정도로 어려운 살림이었다.
노 대표가 국회의원 월급 180만원(지난 17대 국회 당시 민주노동당은 소속 정당 국회의원의 월급을 노동자 평균 임금인 180만원으로 한정했다)을 꼬박꼬박 집으로 가져오면서 김씨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비정규 학교에서 중등 생활을 보내 공식적인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2004년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해 2008년 졸업했다. 2009년에는 복수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여성의전화와 가정폭력상담소에서의 일도 계속했다. 여성의전화 부회장,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등 사회운동을 벌였고 노 대표가 지역구를 선택한 이후에는 노원 지역 협동조합 및 주민회에서 활동했다.
아이 없는 빈자리, 부부 애정으로 채워
정치인으로서 노 대표는 ‘노회찬 어록’이 인기를 끌 정도로 수려한 말솜씨를 자랑한다. 집에서의 노 대표는 말이 없는 남편이다. 노 대표는 함께 있는 시간이 워낙 적어서라고 하지만,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이 체질화한 탓이다. 그래도 김씨는 노 대표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조언자다. 노 대표는 호주제 폐지와 민주노동당 내 여성 할당제 등을 추진하는 과정,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는 언제나 아내의 조언을 받았다.
노 대표와 김씨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녀를 원하지 않는 딩크족은 아니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신혼 초 투옥 생활을 겪은 탓인지 부부는 노력을 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입양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까다로운 입양 조건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되기 이전인지라 입양 조건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아이가 없는 빈자리는 서로 간의 정으로 채운다. 부부는 집에서 나올 때면 입맞춤으로 애정을 확인한다고 한다.
노 대표와 김씨 부부는 가사 분담이라는 면에서 신세대 부부에 가깝다. 집안일은 여건이 되는 사람이 한다. 서로의 일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현장에서 만난 동지로서의 동반자 관계가 부부 생활로도 이어졌다. 노 대표는 요리를 즐기는 편이다. 단순히 집안일을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취미 생활에 가깝다. 요리를 할 때는 직접 장을 보고 설거지까지 한다. 결혼 초기 김씨가 입원했던 시절 노 대표는 병원 밥을 먹지 못하게 하고 매끼 집에서 야채죽·버섯죽·계란죽·쇠고기죽·해물죽 등 각종 죽을 쒀 입원실로 날랐다. 결혼하고 한 달 후쯤에는 노 대표가 방에 신문지를 깔고 알타리 김치를 담글 때 예고 없이 찾아든 처남이 보고 놀라기도 했다. 이 일로 노 대표는 처가 식구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노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인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면 아내와 영화를 보거나 놀러가는 여유를 누리겠다”고 말했다. 의도치 않은 일로 노 대표는 이제 백수가 됐지만, 김씨가 출마를 하면서 당분간 그런 호사를 누리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노 대표가 국회에 진출하면서 김씨 쪽으로 기울었던 집안일의 무게 추가 노 대표 쪽으로 넘어온 것이다. 김씨가 출마 선언을 한 3월11일 노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자신이 다시 가사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 심경을 밝혔다. 김씨가 노 대표에게 이제부터 자신이 해 온 만큼만 집안일을 해줄 것을 요구하자 노 대표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그동안 가사 노동에 좀 더 많은 역할을 해두는 건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고 한다. / 반도헌 객원기자<소신남> 노회찬과, <의리남> 유시민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노회찬-유시민의 ‘저공비행’
제3화가 나왔다. "문어발 8개로 모자라 이제는 지네발"이라며 재벌들의 마구잡이식 사업확장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제3화: 재벌지네발-재벌들의 마구잡이식 사업확장
제2화: 장물누님-정수장학회
제1화: 재벌과 정치-SK 최태원회장 형제 횡령단
*바로가기=> http://itunes.apple.com/us/podcast//id495637949
노회찬: “LG 구인회 회장의 손녀 구지은씨가 청국장과 순대를 팔고 있다. 토요타가 초밥을 파는가. 빌 게이츠가 애들한테 MS핫도그 가게 차려주나. 스티브 잡스가 애플햄버거 같은 것은 안 만들어 판다.“
“골목에 보이지 않게 진출하는 것이 또 있다. 카드사들이다. 동네 세탁소 카드수수료를 3%씩 받는다. 골프장은 1.5%를 받으면서 동네 골프연습장은 3.5%다. 대형마트는 1.5%인데 동네의 금은방은 3.6%, 서점은 2.5%를 가져간다. 음식점은 2.7%다. 그 기준은 자기들 마음대로다"
"재벌은 우리나라만 있는 구조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 민주당도 재벌개혁에 대해 적극적으로 안을 만들고 있는데,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쪽의 이익을 담당하는 관료들의 집요한 문제제기로 후퇴한 적이 꽤 있었다. 그래서 재벌개혁을 민주당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역할이 크다".
심상정: "재벌들이 2, 3세가 되면서 자식들이 늘어나 문어발 8개로는 안 된다. 지네발이 돼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재벌 계열사가 늘어난 게 280여개나 된다 토, 일요일 빼면 하루에 하나씩 늘어난 것이다. 이게 “빈곤비즈니스"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더 먹을 게 없으니까 결국 공공서비스 분야와 골목으로 가게 된다. 이런 정도의 단계가 되면 단순한 악성종양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은 30대 재벌을 가지고 3000개의 단단한 회사를 만들자는 것이 기조다.”
유시민: 그들은 "진짜 뱀파이어"다.
http://itunes.apple.com/us/podcast//id495637949[SBS 시사토론] '나꼼수 비키니 논란' 노회찬 대표 출연
-방송 : 2012. 2. 10 (금) 밤 12:15~
- 출연 패널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
진성호 (새누리당 국회의원)
안민석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섭외 중
토론 1 > 나꼼수‘비키니’논란, 어떻게 보나?
①'비키니 시위’와 나꼼수의 대응, 어떻게 보나?
② '비키니 시위'를 둘러싼 논란, 어떻게 보나?
토론 2 > 나꼼수, 어떻게 볼 것인가?
① 나꼼수의 정체성 논란
② 나꼼수 열풍의 명암은?
③ 나꼼수 열풍, 어디까지?MBC 생방송 100분토론, 2월14일(화) 23:10분
"세상을 바꿀 4월 총선과 정치개혁, 그리고 선거제도"
☐ 출연
노회찬(통합진보당 대변인)
박기춘(민주통합당 정치개혁특위 간사)
주성영(새누리당 정치개혁특위 간사)
류근찬(자유선진당 최고위원)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무엇을 남겼나
- 정개특위 1년, 결과는? : “선거구 획정-석패율제” 합의 실패, 왜?
▶ 민의(民意)를 반영하는 정치와 선거제도
- 지역구도 타파, 국민참여 확대를 위한 길(道):
중-대 선거구제 전환, 모바일 투표, SNS 선거운동 등 대안될까?
- 확산되는 ‘돈 봉투’ 파문과 정치자금법 :
전당대회 위탁관리 방안 등 진정한 정치개혁을 위한 조건
▶ 반복되는 정개특위 무용론
▶ ‘2013년, 새로운 체제’를 위한 정치개혁
*많은 시청 바랍니다~^^
http://www.goupp.org/freebbs/3987926노회찬의 현장브리핑 제2회-홍대앞 점심벙개~
점심 함께 하실래요?!
1인 미디어시대에는 국민이 언론입니다.
국민에게 찾아가는 대변인 현장브리핑!
제2회는 홍대입구역에 있는 신선한 유기농 재료로 만든 한식당
"카페 슬로비"에서 점심번개로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일시: 2012. 2. 15(수) 낮 12시-13:00
-장소: 카페 슬로비(홍대입구역9번출구-> 던킨도너츠 방향) 02-3143-5525
마포구 동교동 163-9(5층)
-참가비: 1만원
-문의: @hcroh 02-935-6983 / 010-6573-8889
*장소예약관계로 15일(수) 오전10시까지 신청 마감합니다[긴급요청] 오늘은 호빵맨 노회찬 지키는 날! 집전화 사수! 외출시 착신전환 필수!.... 어제 ARS 전화받은 분도 오늘 전화면접으로 또 올 수 있어요. 상계동 주민여러분 압도적인 표차로 새누리당 허준영을 꺾을 수 있는 노회찬!을 야권단일후보로 선택해 주십시오!오늘 하루종일 열려있어요~^^
오세요~야권단일후보 노회찬선거사무소 개소식~!!노회찬 당선자에게 듣는 "총선 이후 진보진영의 방향과 과제" 오늘밤8시, 국회방송<국회 생생토크>특집대담을 통해 들어보아요~^^
-방송: 케이블TV 국회방송
-일시: 본방 4/17(화)저녁8시
재방 4/17(화)24:00 4/18(수)07:00제19대 국회가 개원했다. 개원을 했는데도 컴퓨터도 전화도 설치되어있지 않은 의원실의 어수선함과 분주함 속에서 노회찬의원님은 첫일정을 의정활동의 기본지향을 다시한번 다짐하는 자리로, 국회에서 청소하는 어머니들과 함께 점심간담회를 갖었다.
“저를 비롯한 국회의원들과 여기 계신 청소노동자 여러분들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가까운 이웃,,, 노고가 많으신 이웃에게 먼저 인사드리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에 오늘 자리를 마련했다...”
노의원님은 역시~ 뭔가 다르다.
간담회를 정리하고 의원실로 들어와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나도 그냥 오늘 하루를 넘길 수 없어~ 함께걸음의료생협한의원 이상재 원장님이 조제해 주시는 ‘총명탕’ ㅋ~을 먹고 좀더 잘 보좌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쑥스럽다....) 힘겹에 늙어가고 있는 나를 위로하며 다시 또 이렇게 걸어가고 있다.^^19대국회 상임위원회구성을 앞두고 각 위원회 배정 조정을 위해 강창희 국회의장을 방문한 통합진보당 노회찬, 심상정, 김선동의원... 노회찬의원은 국무총리실, 금융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국가보훈처,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소관부처인 정무위원회를 희망하고 있다. 상임위는 7월9일(월) 국회본회의에서 확정될 예정이다.노회찬의원실에 축하난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보내주신 분 뜻 생각하면 잘 키워야 할 텐데 그 뜻만큼 잘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
저희들보다 더 잘 가꿀 수 있는 분들에게 난화분을 분양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원의 신념에 따라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국회를 끌고 계시는 환경미화원 어미니들께 1차로 분양하고... 남은 화분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달은 못해드려요~ 오시면 드리겠습니다~^^난을 좋아하는 어머니께 드리기 위해 의원실로 난을 분양 받으러 온 펫친 연합경제뉴스 조혜선기자님....
국회본회의에 참석 중인 노회찬의원님 대신 아바타와 찰칵 한 컷~
난 보다 훨씬 더 <우아>합니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난은 이제 세개 남았어요~^^
(의원회관 518호 02-784-6070)공지영 작가가 노원에 옵니다. 마들연구소 명사초청월례특강 마흔한번째 <주인>으로 옵니다. 절대로~ <손님>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오시는 모든 분들께 의자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
작가 공지영 초청 '의자놀이' 북콘서트
(작가 공지영, 쌍용자동차 김정우지부장, 국회의원 노회찬)
-일시 및 장소 : 9월26일(수) 19:30 노원구청 6층 강당
-주최 : 마들연구소.함께노원
-주관 : 함께노원
-후원 : 노원문고
-문의 및 신청(마들연구소 02-935-6986)퇴근 하는 길에 동네 먹걸이장터에서 남편과 시동생이 한잔하고 있는 자리에서 조우했다. 홍어사시미에 소주 한잔~추석연휴라서 인지 미나리를 비롯한 조연이 전혀없어도 쪼끔은 용서되는 것은 제대로 삭힌 홍어 때문~^^노회찬, 가수 싸이 말춤 누르고 <우리말 으뜸 사랑꾼>으로 선정!!
노회찬 의원이 우리말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으로 뽑혔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대로 공동대표)이 1998년부터 매년 한글날을 기해선정해 오고 있다.
이 대표는 "노회찬의원은 평소에도 우리 말글을 남달리 사랑하고, 잘 못쓰는 것을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서 "17대 국회 때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데도 앞장을 서고, 일본 말투로 된 법률 문장을 쉬운 우리 말글로 바꾸는 일에도 힘썼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우리말 사랑꾼으로 서울시의회 김형태 교육위원과 소설가 이외수씨, 시민 김동필씨, 얼숲의 한글빛내기모임 이영욱 운영위원, 출판사 '황소와 걸음' 등을 뽑았다.
이 대표는 "요즘 <말춤>으로 세계에 우리나라와 우리말을 널리 알린 가수 싸이를 추천한 분이 많았다"면서도 "앞으로 더욱 아름다운 우리말 노래를 불러주면 다음에 으뜸 사랑꾼으로 뽑자는 의견에 따라 미뤘다"고 알렸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편집노회찬대표가 진보정의당 창당대회가 있었던 지난 일요일부터 '난중일기'를 당게시판에 다시 쓰기 시작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으로 총선을 총괄지휘하면서 쓰기 시작했던 선거대책본부의 의회진출 기록 '난중일기'는 그 해 전태일문학상을 받았고, [힘내라 진달래]라는 간행물로도 세상에 나와있다. 2004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처음으로 국회에 진출시켰던 치밀하고 치열했던 선대본을 지금 이시간 다시 이어받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자세와 다짐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심상정선대본의 기록이자 '진보정치시즌2' 의 태동이 될 유의미한 감동의 기록으로 남겨지길 당원으로서 한 사람의 간절함도 함께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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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난중일기]
2012년 10월 22일 (월) 비온 후 갬
박근혜후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한, 아버지의 아바타인가?
여름 소나기처럼 내리는 굵은 가을비 속에 마석 모란공원묘지와 국립현충원을 참배하였다.
어제 창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지도부와 대선후보의 첫 공식 일정이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현충원 현충탑에 분향할 때마다 마주치는 제단의 검은 돌에 새겨진 헌시이다.
이글을 처음 본 건 부산중 2학년이었던 1970년, 서울로 수학여행 와서 학생대표로 참배했을 때였다. 너무나 감동적인 글귀라 오랫동안 외우고 다녔다. 그러나 이 시가 시인 이은상에 의해 지어지고 박정희대통령의 글씨로 새겨진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모스끄바를 처음 방문했을 때 둘러본 곳 중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크레믈린 광장에 ‘꺼지지 않는 불’이 피어오르는 무명용사의 묘였다. 갓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들이 혼인신고를 마치면 관습처럼 방문하는 곳이기도 했다. 종전 기념일에 프랑스 대통령이 무릎 꿇고 참배하는 빠리의 무명용사묘도 개선문 바로 앞에 있었다. 국립현충원은 원래 6.25전몰장병을 위한 국군묘지로 출발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안장된 영령의 80%는 6.25전사자라고 한다. 그러나 현충원엔 무명용사의 묘로 상징화된 곳이 없다. 그래서인가? 대선후보들이 어느 유명인의 묘를 참배하느냐를 두고 과도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박근혜후보의 역사인식이 연일 시선집중이다. 박근혜후보의 헤어스타일이 어머니 것을 빼어 닮았듯이 박후보의 역사인식은 아버지 박정희를 한치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의 모습을 한, 아버지의 아바타이다. 100년 전의 과거사에 대해 일본 국왕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역사의 왜곡과 퇴행이 가져올 참혹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박근혜후보의 역사인식이 문제시 되고 거듭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요구되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이다.
현충문을 나서는 심상정후보의 발걸음이 바쁘다. 늦게 출발했으니 그만큼 갈 길이 멀다.
25일 대선후보 중앙선대위를 발족할 예정이다.지난 26일 화재로 숨진 장애인 인권활동가 김주영씨(34세 노병변장애 1급)의 노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 그의 오랜 벗들 500여명이 마지막가는 길 광화문광장에 함께했다. 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장애인 활동지원제는 최대 12시간의 서비스를 받기도 힘들다. 혼자 사는 중증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이 없는 밤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노원선관위에서 정치자금 중간지도점검을 의원실로 나왔고, ‘소아당뇨환자 처우개선을 위한 토론회’ 까지 있어서 오늘도 대강 정신없는 날이었다. 행사 뒷마무리하고 들어와 이제사 기사 검색하는 데 .... 맑디맑은 영정 속 그의 얼굴이 눈물나게 한다... 장애없는 세상, 편견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길.... 안철수와 문재인 후보는 불탄 그의 시신 앞에서 어떤 공약을 하고 머리조아렸는지는 낼 확인해 봐야 겠다.
노회찬 의원은 추도사를 통해 "김주영 동지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며 "김 동지는 갔지만 동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회는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 대표는 "김 동지가 남기고 간 과제는 살아있는 우리의 몫"이라며 "장애인의 이동권·학습권·직업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김 동지의 영전 앞에 약속드린다"고 말했다.어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공명선거 협조요청> 공문 한 건을 접수했습다. 지난 주에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이 주최한 여의도 행사에서 노회찬의원이 발언한 내용이 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으니 앞으로 조심하라는 경고성 협조공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노회찬의원의 발언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후보자등의 비방금지’한 공직선거법 251조 위반되나요?
<감방교체> 동영상 바로보기=> http://youtu.be/Khv_RjdJhds
-공문 전문-
1. 귀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귀하는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이 지난 2012. 10. 26(금)여의도 문화의 광장(영등포구 여의도동 소재)에서 개최한 ‘바람이 분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행사에 참석하여 “박영선 의원께서 정권교체 해야한다고 했는데, 정권교체만 할 게 아니라 감방교체를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라고 발언한 사실이 있습니다.
3.이와 같은 행위는 특정 정당 및 예비후보자에게 유.불리한 내용에 해당될 수 있어 귀하에게 ‘공명선거 협조요청’을 하오니, 18대 대통령선거가 법이 지켜지는 가운데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가 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끝.‘문화인’ 노회찬과 ‘자유인’ 유시민의 <저공비행 시즌2>가 다시 날아올랐다, 첫회는 ‘대선 정찰비행-진중권과 함께’
-노회찬 대표 : “지금까지는 대선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대결 구도였다. 지금은 제3후보가 전체 진영 자체를 흔들고 있다. 새누리에 대한 거부, 민주당에 대한 반발을 안철수라는 사람에게 투영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토론 거부는 옛날에 결혼하던 것을 보는 것 같다. 옛날에는 결혼식날까지 신랑신부가 얼굴
도 못봤는데, 지금 국민들이 대선인데 후보 얼굴도 못보고 뽑게 생겼다”
-진중권 교수: “이번 대선의 특징은 산업혁명적인 정치모델이 무너지는 것이다. 조직이 아닌 네트워크의 정치로 변화하고 있다. 안 후보의 정치쇄신안은 포퓰리즘이지만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왜곡된 방식이지만 국민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것..문제는 안 후보는 말을 던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문 후보”
-유시민 위원장: “다음 대통령은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 등을 다뤄야 된다. 대선 국면에서 먼저 이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다루고 안 후보나 문 후보로 하여금 이 문제에 관한한 뒤집을 수 없는 약속들을 최대한으로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권교체 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공약에 대한 과정이 제일 선순위에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당 심상정 후보의 역할이 거기에 있는 것”
오랜 침묵을 마치고 다시 날아오르는 <노회찬-유시민의 저공비행 시즌2>는 팟캐스트 혹은 아이블러그 ‘http://lowflying.iblug.com/index.jsp?cn=FP1330612N0028579’를 통해 들을 수 있다.‘날아라 노동’ 은수미의원 출판기념회에서 노회찬의원은 “함께 국회에서 일하게 되어서 무엇보다 기쁘다. 앞으로 대한민국 헌정사는 <before은수미, after은수미>로 나누어지게 될 것이다....” 고 축사했다.
사실 난 노의원님이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으로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는 언급을 살짝~ 해주셨으면 했다. 평소 개인적으로 내가 갖고 있었던 생각이기도 해서 ㅋ... 사실 그런 표현은 의도와는 달리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긴 하다. 노의원님의 축사를 듣고 생각해보니 ‘함께 일하게 되어서 기쁘다’는 긍정적인 표현이 울림이 더 큰 것 같다. 마땅히 진보정당에서 활동해야할 국회의원이 보수야당에서 열심히 의정활동 하는 걸 보면 가슴아릴 때가 많았다. 그분들에 대한 섭섭함 보다, 노동도 진보도 모두 빼앗긴 힘없는 진보정당이라는 자괴감 보다, 비례대표를 당원들 조차도 이름한번 들어본 적 없는 인사를 1번으로 뽑아놓는 소위 진보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들의 현주소 때문이다. 그 뿐인가. 노동이 이미 떠나고 없는 자리에서 죽은자식 불알 만지 듯 <노동>을 부르며 안간힘 쓰고 있는 우리들의 공허한 모습이 뼈속까지 아파온다.
‘날아라~노동’ 제목이 정말 근사하다. 무거운 노동에 은수미의원은 자신처럼 발랄하고 경쾌한 날개를 달아줬다. 노동권을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은 조국교수의 추천사처럼 통렬하기까지 하다. 꼭 챙겨 읽고 싶다~. 아직 의원으로 활동한 시간이 짧아서인지 성장기간 사진의 비중이 비교적 많은 동영상도 그녀를 더 가까이 느끼게 해줬다.노회찬대표와 김지선 선배는 같은 길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이다. 정치인의 배우자로 비쳐지기 보다, 인간 김지선의 모습으로 살고 싶었던 노동자들의 맏언니, 속깊은 가정폭력 상담선생님.... 그녀의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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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011년 2월호/박성현 기자
만학에 나선 인천 여성 노동자들의 큰언니 “같은 길을 함께 간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노회찬 대표의 부인 김지선 씨는 정치인의 배우자가 아닌 여성노동운동가, 사회운동가의 족적만으로도 주어진 지면을 채우고도 남는다. 부모 고향은 북한 황해도지만 김씨는 대청도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고 2남 4녀 중 넷째이자 셋째딸로 자랐다.
인천송현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비인가 중학교 과정을 마친 16세에 신분을 숨기고 인천의 대성목재에 들어갔다. 어린 나이 때문에 취직을 못 하자 20살이던 언니 신분증을 내밀었다. 대학을 나온 한 노동운동가가 노동운동을 하던 김씨에게 “노동자가 된 계기가 뭐냐”고 묻자 “먹고살기 힘들어서”라고 짧게 답했다고 한다.이처럼 김씨는 생존을 위해 노동자가 됐고, 노동자의 권익을 찾고자 노동운동을 했다.
그는 1978년 CBS생방송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다 구속되기도 하고, 1983년 ‘인천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또 수감됐다. 이후 인천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등을 지낸 뒤로는 ‘인천 노동자들의 누나’라는 애칭이 따라다녔다.
노 대표에게 두 번의 프러포즈를 받은 끝에 1988년 결혼했다. 이때 김씨 나이가 36세, 노 전 대표 나이는 34세였다. 늦은 결혼인 데다 수배 중이던 남편이 결혼 10개월 만에 붙잡혔고 2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때를 놓친 탓인지 슬하에 아직 자녀가 없다.
지금은 가정폭력피해여성 지원을 위한 상담활동을 하고 있으며, 풀뿌리 여성운동을 장려하는 모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김씨는 만학도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2004년 방송대 법학과에 입학, 2008년 졸업했다. 2009년에는 사회복지를 복수전공했으며,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김씨는 노대표와는 같은 길을 함께 간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고 밝혔다. “넉넉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사회 변화를 도모하는 활동을 하면서 내 자신도 함께 성장해가는 데 초점을 뒀고 많은 것을 얻었다.
”정치인 배우자로 비쳐지기보다는 “인간 김지선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정치를 하는 노 전 대표에 대해서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정치적 신념이 강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에 관심과 애정이 많다”고 평가했다. 김씨는 노 전 대표가 국정을 이끌면 다른 정치인보다 ‘균형감각’과 ‘문화적 코드’에서 특별히 더 잘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진정한 보수주의자 표창원 전교수가 삼성X파일사건으로 부당하게 의원직을 빼앗긴 노회찬대표 지지를 한겨레 광고를 통해 선언했네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진실을 파헤친 그의 용기를 지지합니다"
의미있는 장면입니다.김영환의원에 이어 김태년의원도 "민주당이 심상정, 노회찬의원등과의 야권연대 가치 지켜 노원병 재보선 후보공천하지 않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네요. 사실상 민주당은 김지선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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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노원병 재보선, 민주당이 양보해야"
"제1야당 후보내야하지만 야권연대 가치 지켜야"
[채송무기자] 4.24 재보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후보를 양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비주류인 김영환 의원에 이어 친노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태년 의원이 이를 주장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17일 성명을 통해 "제1야당 민주당이 선거에서 후보를 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야권의 대표로서 연대의 정신, 통합의 가치를 지켜내야 하는 소임 역시 막중하다"며 "민주당이 어렵지만 노원병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안철수 후보가 출마 지역 선정에서부터 선거운동에 돌입한 지금까지 야권과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는 모습에 아쉬움이 크다"며 "하지만 분열과 대립을 키우기 보다는 통합의 정치를 위해 먼저 헌신하는 길이 민주당이 해야 할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에 함께했던 심상정 후보나 억울하게 의원직을 잃은 노회찬 의원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연대의 정신을 지켜나가야 한다"며 "민주당은 노원병에 무공천하는 대신 사지라는 부상 영도와 부여 청양에 내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낮은 데서부터 시작하고 진정한 가시밭길을 민주당이 몸소 걸어야 한다"며 "후보를 빨리 확정하고 총력 지원하여 전국정당과 균형발전의 꿈을 한 시도 포기하지 않은 제1야당 민주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노회찬과 김지선의 사랑이야기 ㅎ
‘노동자의 큰언니’에게 두 살 아래 엘리트 노동운동가 반해
- 노회찬 대표와 부인 김지선씨 ‘동지의 삶’-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의 부인 김지선씨가 4·24 재·보궐 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노회찬 대표가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공석이 된 서울 노원 병 지역구에 부인이 진보정의당 후보로 나선 것이다. 지역구 세습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진보정의당은 노 대표의 빈자리에 김지선씨를 후보로 내세웠다. 이런 결정에 김씨의 이력과 노 대표와의 동반자 관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씨는 아직까지 노 대표의 부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30년 넘게 여성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어온 치열한 사회운동가다. 북한 황해도 출신의 부모를 둔 김씨는 대청도(인천광역시 옹진군 소재)에서 태어난 섬 소녀였다. 2남 4녀 중 셋째 딸이었던 김씨 집안은 가난했다. 어릴 때부터 노동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인천을 기반으로 노동운동을 해왔다. 대성목재, 삼원섬유, 동일방직 등에서 노조 간부를 지냈다. 1978년에는 ‘부활절 여의도 새벽 예배 사건’으로 구속돼 6개월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기독교방송을 통해 생방송되는 여의도광장 설교 연단에 동료 여성 노동자 4명과 함께 올라가 ‘동일방직 문제 해결’과 ‘노동3권 보장’을 외친 사건이다. 1983년에는 ‘인천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한 차례 더 구속된 바 있고, 이후 인천노동자복지협의회 사무국장, 인천지역노동자연맹 부위원장 겸 사무국장,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등을 거치며 인천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큰언니’로 불렸다.
‘인천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김씨와 노 대표는 함께 노동운동의 길을 걸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자라온 환경이나 노동운동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다르다. 부모를 일찍 여읜 김씨는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목재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현장 노동자 출신 노동운동가다. 나이 탓에 취직이 어려워 스무 살이던 언니의 신분증을 이용했다고 한다.
노 대표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 노동운동가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79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재학 도중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고 서울 영등포와 인천 지역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노 대표와 김씨는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도중 만났다. 당시 김씨는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는 나이가 두 살 연상이고 노동운동가로서의 경력도 오래된 김씨가 노 대표보다 훨씬 유명했다. 김씨를 마음에 둔 노 대표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지만 여지없이 거절당했다. 김씨는 노동운동의 길이 워낙 힘들었기에 연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노동운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배우자는 함께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동지여야 했다. 다음 해 노 대표는 선거에 나선 동료를 도와주러 간 자리에서 김씨를 다시 만났고, 다시 한번 프러포즈를 했다. 이번에는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 권을 보내며 표지 안쪽에 ‘당신의 결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프러포즈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연서를 보내 김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만나 1988년 가족만 모여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노 대표가 33세, 김씨가 35세였다. 이들 부부의 신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결혼 10개월 만에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노 대표가 붙잡히면서 2년 6개월 동안 투옥 생활을 했다. 김씨는 여성의전화에서 일을 하고 책 대여점을 운영하며 홀로 살림을 꾸렸다. 보통 사람들이 맛보는 신혼생활의 즐거움은 꿈도 못 꿨다.
노 대표가 출감한 이후에도 경제적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2004년 17대 국회에 입성하기 전까지 노 대표는 딱 한 번 80만원을 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을 뿐 대부분 많아야 50만원 정도를 살림에 보탰다고 한다. 아파트단지 내 재활용품을 모아놓은 곳에서 주워온 옷으로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