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한글전용법을 지키지 않는 국무총리를 검찰에 고발하다.

한글빛 2013. 8. 16. 16:39

[이대로의 한글사랑] 국어독립운동 길에 들어선 이야기_ 12.


국무총리와 장관을 한글전용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리대로

한글전용법은 1948년 10월 9일에 법률 제6호로 공포한 법으로서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라는 두 줄도 안 되는 법이다. 중국의 지배를 받는 조선시대나, 일본 식민지인 왜정시대가 아닌 독립한 대한민국이니 공용문서만이라도 우리 국민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우리 글자인 한글로 쓰자는 법이었다. 이 법은 중국 청나라 속박에서 벗어난 1895년에 반포된 고종 칙령 1호“공문서는 국문을 주로 하여 쓴다.”를 계승한 법률인데 처벌 조항이 없다고 공무원들이 잘 지키지 않아서 나는 그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나섰다.


1990년부터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면서 한글사랑정신이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그 해 말쯤 노동부가 일간 신문에 낸 광고문이 온통 한자에다가 시대흐름을 어기고 세로로 쓴 글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글전용법을 지키라고 국무총리와 장관에게 건의문을 보냈더니 앞으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답변을 하고는 또 법을 어긴 광고문을 신문에 냈다. 그렇지 않아도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린 정부가 미웠기에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증거를 수집해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나(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으뜸빛 리대로)는 노재봉 국무총리와 최병렬 노동부장관을 ‘한글전용법 위반과 직무태만’으로 1991년에 서울지검에 고발을 했다. 그랬더니 검찰은 고발인 조사를 하면서 취하시키려고 달래기도 하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며 4시간을 잡아놓고 애먹였다. 마침내 담당 검사가 총리실로부터 앞으로는 법과 규정을 잘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니 “잘못을 바로 잡는 게 목적이라면 고발을 취하해 달라.”라고 해서 취하했다.


그 때 담당 검사는 “이 선생님의 주장과 하는 일이 옳다. 그런데 고발을 취하해주지 않으면 내가 국무총리와 장관을 조사해야 하는 데, 그러면 나는 무능한 검사란 소리를 듣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 뒤 총리실은 각 기관에 한글전용법을 잘 지키라는 지시를 내렸고 정부기관이 한자혼용 광고문을 내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 때 그들을 검찰에 고발하기에 앞서 내가 모시고 함께 한글운동을 하던 공병우박사와 허웅 한글학회 회장께 의논을 했는데 두 분 모두 선뜻 찬성하지 않고 말렸다. 공병우 박사는 그 10여 년 전에 잘못된 타자기 자판 표준을 바로잡으려고 군사정권과 맞섰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통을 겪고 1980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오신 일이 있었기에 나도 그런 일을 겪을까봐서 반대한 것 같다. 노태우 정권도 전두환 정권보다는 부드러웠지만 아직 살벌한 군사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심을 했기에 고발장을 내기로 하고 한자 문화권 시대를 넘어 한글문화권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김동길 교수께 그 때 내 심정을 적은 편지를 했더니 김 교수님은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일인데 겁내지 말라.”라고 격려 답장을 바로 보내주셨다. 김동길 교수님은 평소 아는 분이 아니었으나 내 심정을 알아줄 것으로 생각하고 편지를 했었다. 그 때 나는 196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있을 때 마찬가지 알지 못하는 김윤경 교수님께 한글사랑 편지를 보냈는데 바로 격려 답장을 해주셔서 고마움과 용기를 얻었는데 똑 같은 느낌에 힘이 솟았었다.


그리고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하려고 갈 때 전국국어운동대학생회 후배 대학생 둘을 데리고 함께 갔다. 처음에 덕수궁 옆에 있는 서울지검으로 갔더니 그곳은 지원이 되었고 그런 큰 사건은 새로 생긴 강남 서울지방검찰청 본청으로 가서 접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 접수하려니 창구 직원이 우리를 겁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까다롭게 대했다.

그 때 검찰청 직원이 겁주니 두 후배는 내게 다음에 하자고 말렸으나 “나 혼자 이름으로 고발하는 것이며 너희들은 다음에 증인이 되는 것뿐이니 걱정 말라.”고 달래고 고발장을 접수한 일이 있다. 그 때 검찰청 직원도 한글전용법이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가 법전을 살피고 그런 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접수해 주었다.


그런데 그 뒤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무리들은 교과서에서 한자를 혼용하지 않고,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행복추구권 위반이라며 헌법소원도 내고, 국회에 한자혼용법까지 내면서 한글을 못살게 굴었으나 한글단체는 다 막았다. 그런데 22년이 지난 요즘에 또 한자 숭배자들이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회장 이한동)를 만들고 한글전용정책을 담은 국어기본법 위헌 소송을 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한글이 태어날 때 반대하던 최만리 닮은 자들이 지금도 끈질기게 한글을 못살게 굴어 나는 이 한글운동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한글도 나도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