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글자 싸움과 들온말 규정 - 김정섭
글자 싸움과 들온말 규정
우리말 바로쓰기 모임 회장 김 정 섭
1. 들머리
한글과 중국글자 싸움은 나라를 되찾은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지루한 일흔 해를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그리고 이제 막바지 판가리 싸움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어 기본법’을 없애자는 법안이 국회에 올려 졌고 올해(2015년) 안에 판가름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글만 쓰기나 중국글자 섞어 쓰기나 어느 쪽으로 매듭이 진다해도 끝내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니 이 싸움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두고두고 이어질 것이다.
무릇 모든 일은 늦거나 이르거나 반드시 풀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일만은 지난 일흔 해 동안 풀리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 또 일흔 해가 지난다 해도 풀어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두 쪽에서 내세운 터무니가 이제나 예나 조금도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바뀔 낌새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같은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풀어낼 길이 없다.
그들이 내세우는 말을 간추리면, 한글은 과학적으로 만든,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자다. 우리 겨레 얼이 담겨 있다. 중국글자를 쓰면 가르치는데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한글만 써야 한다 하고, 중국글자는 우리가 천 년 동안 써 왔으니 이미 우리 글자가 되었다. 또, 글자 한 자 한 자 속에 옛 어른들이 갈고 닦은 슬기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 담겨 있다. 우리말 가운데 열에 일여덟이 한자말이니 글의 뜻을 알려면 중국글자를 써야 한다. 다른 말은 다 접어 두더라도 말과 글자를 뒤섞어서 이러쿵저러쿵하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어리둥절하다.
2. 말과 글자
말이란 사람이 제 생각과 어떤 뜻과 받은 느낌을 소리로 지어 만든 것이다. 사람은 말을 만들었기 때문에 짐승의 무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말로써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 사람답게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살면서 애써 알아내거나 지은 문화와 문명을 널리 퍼뜨리고 길이 물려줄 연모로 글자를 만들었다. 몇 천 년을 지나면서 많은 겨레는 제 글자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여러 가지 까닭으로 거의 다 사라지고 대충 일흔 가지쯤 남았다고 한다.
사람이 만든 문화와 문명은 말 속에 담겨 있고 이런 말을 갈무리하는 것이 글자다. 말과 글자는 한 몸의 앞뒤와 같아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둘 가운데 앞선 것은 말이고 뒤따르는 것이 글자다. 이것만 알면 글자 싸움이 왜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고,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길을 찾아내기도 어렵지 않다. 이제까지 매달려온 닫힌 생각, 굳어버린 생각의 틀을 깨뜨리고 거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곧바로 이 문제를 풀 올바른 길이 열린다.
3. 무엇이 왜
어떤 글자를 쓰느냐를 말하기에 앞서 어떤 말을 쓸 것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어떤 말을 써야 할지 알면 그 말을 담기에 가장 알맞은 글자를 찾는 것은 쉽다. 그런데 어떤 말을 쓸 것인가는 제쳐놓고 한글이냐 중국글자냐 하고 글자에만 매달렸으니 풀 수도 없고 풀리지도 않는다. 이제까지 벌여온 싸움은 말과 글자를 갈래지어 생각하지 못한 대서 온 옰이다. 무슨 일이든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이때는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어야 한다. 문제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풀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배달말을 써야 한다는 데는 딴 소리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배달말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글자를 찾는 것으로써 글자 싸움은 마무리된다. 우리가 쓸 글자는 한글을 덮을 것이 없다. 그렇다면 글자 싸움은 끝이 나야 하는데 이일이 쉽지 않은 것은 우리말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말과 글자를, 들온말과 남의 말도 갈래짓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말과 삶’을 이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도 ‘유세차 모년 모월’을 찾는 늙은이들 입김에 기대어 설치는 사람과 ‘한자를 쓰니 미인이 따르더라.’는 대학 교수, 이 밖에도 서양말에 얼이 빠져 영어를 나라말로 삼자고 바람을 일으킨 사람도 있다.
다음, 아직 우리말은 이름이 없다. 그리고 우리말이 어떻게 짜인 것인지도 모른다. ‘국어 기본법’, ‘어문 규정’ 어디에도 우리말 이름을 밝힌 데가 없다. 그러니 한자말도 우리말이라는 말이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더욱 헷갈린다. 올림말 51만 낱말 가운데 35만 낱말이 한자말인데 낱말마다 또박또박 중국글자를 달아놓았다. 이를 빌미로 한자말도 우리말이고 중국글자도 우리 글자라고 한다. 말은 생각지 않고 글자에만 매달리면 그렇게 보인다. 우리말이 무엇인지 뜻매김하고 만듦새를 눈여겨보고 챙겼더라면 진작 끝났을 일이다.
4. 우리말 이름과 만듦새
예부터 보고 듣고 만지고 먹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에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이 없는 것도 있지만 이런 것은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하고 쓰이지도 않았다. 이름이 있어야 비로소 제 이름값을 하고 그 이름에 걸맞은 구실을 한다. 그런데 우리말은 이름이 없다. 그냥 ‘국어’다. 국어는 ‘나라말’인데 나라말은 어느 나라 이름 뒤에 붙여서 그 나라 말이란 뜻으로 쓴다. ‘중국 국어’는 중국 사람이 쓰는 ‘중국어’이고, ‘일본 국어’는 일본 사람이 쓰는 ‘일본어’다.
‘한국 국어’는 ‘한국어’지 ‘국어’가 아니다. 그리고 ‘한국어’는 우리나라 사람이 쓰는 말이라는 뜻이지 우리말의 이름이 아니다. 중국말의 이름은 ‘한어(漢語). 화어(華語)’이고 일본말의 이름은 ‘화어(和語)’다. 우리말 이름을 밝힌 바는 없지만, 흔히 ‘배달말’이라 하고 때로는 ‘한말글’이라 하는데, ‘배달말’이라고 하면 쩍말없을 것이다. 하루바삐 우리말 이름을 명토 박아 우리말답게, 우리말로서 구실을 해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제 배달말이 어떻게 짜여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두루 아는 일 같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배달말은 배달 ‘겨레말’하고 여기에 여러 다른 겨레말 가운데 우리 말밭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들온말’로 이루어진다. 우리말은 곧, 배달 겨레말과 들온말로 두 가지로 짜여 진 것이다. 이웃 겨레끼리 어울리면 저절로 말도 서로 오가는데 그런 말 가운데 우리 삶에 쓸데가 있어서 자주 쓰는 말은 우리 말밭에 자리를 잡고 우리말로서 구실을 한다.
말이란 물 흐르듯이 사람 따라 오가고 물건 따라 오가지만 쓸모가 있을 때로는 일부러 받아들이기도 한다. 배달말은 오천 년 동안 여러 겨레말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말을 살찌워 왔다. 이제까지 예순 가지가 넘는 겨레말이 들어와 들온말로 뿌리를 내렸다. 한자말을 쓰자는 사람들은 한글만 쓰자고 하면 ‘국수주의자’니 ‘언어쇄국주의자’라고 하는데, 중국글자를 섞어 쓰지 말자고 했지 한자말을 버리자고 한 사람은 없다. 우리말은 예나 이제나 활짝 열려 있다.
들온말은 우리말을 이루는 두 줄기 가운데 하나다. 처음 들어올 때는 귀에 설지만 시간이 흐르면 우리 섦에 아주 녹아들어 우리 겨레말과 갈라내기도 어렵다. ‘구두, 가방, 냄비’는 일본말에서, ‘고무, 껌, 담배’는 서양말에서, ‘염소, 토끼, 나귀’는 몽골말에서, ‘메주, 수수, 호미’는 만주말에서 들어왔지만 이제 그 뿌리를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니 들온말은 제바닥 글자로 써서도 안 되지만 쓰려야 쓸 수도 없다.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일본말, 서양말, 아랍 말, 어디서 왔건 모두 똑같다. 한자말도 마찬가지다. 글자 싸움은 이렇게 풀면 된다.
5. 한자말을 들온말로 받아들이기
한자말이 배달 겨레말이 아니라는 데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한자말이 우리 겨레말의 가리라는 분도 있지만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사람’의 뿌리가 ‘인간(人間)’이 아니듯이 ‘바다’의 뿌리도 ‘해양(海洋)’이 아니다. 배달말과 한자말은 본디 뿌리가 아주 다른 말이다. 한자말은 중국에서 만들었거나 일본에서 만들었거나 우리가 만든 것일지라도 우리 겨레말이 아니다. 어디서 만들었던 모두 한자말이니 다른 겨레말과 똑 같이 생각해야 한다.
쓸모가 있는 한자말만 잘 골라서 들온말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그 많은 한자말을 어떻게 들온말로 받아들이며 소리 같은 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본디 올려서는 안 될 말이 많다. 먼저, 사람 이름이다. 우리나라 사람 이름을 사전에 올린다고 해 보자. 35만이 아니라 4천만이 넘는다. 다음, 땅 이름이다. ‘서울’ 하나만 빼고 모두 한자말 이름이다. 도, 시, 구, 군, 동, 읍, 면, 리 들. 길 이름, 강 이름, 산 이름, 섬 이름. 그리고 옛 책 이름. 이런 이름(홀이름씨)은 본디 우리말 사전에 올리는 것이 아니다.
복수표준어도 있다. 뜻 같은 말이다. 우리말에도 뜻 같은 말이 몇몇 있지만 한자말에는 엄청나게 많다. 네댓 가지부터 여남은 가지는 예사고 ‘아버지’를 일컫는 말은 여순 몇 가지, ‘편지’를 나타내는 말은 백아흔 가지가 넘는데 모두 ‘표준말’로 올려놓았다. 겨레말과 뜻 같은 한자말도 수두룩하다. 죽을 때까지 한 번 쓰기는커녕 구경할 일도 없는 한자말과 스님들도 잘 쓰지 않는, 불경에 나오는 한자말도 엄청나다. 이런 말을 추려내면 남는 것은 기껏 일만 낱말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소리 같은 한자말을 중국글자로 뜻 가름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말이란 눈으로 글을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귀로 말소리를 듣고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이 남겨놓은 ‘한문 문헌’을 말하는데, ‘한문’과 ‘한자말’은 아주 다른 것이다. 한문은 중국 ‘옛말’이고 ‘옛글’이다. 중국글자를 알아 봤자 땅띔도 못 한다. 이런 ‘문화유산’은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겠지만 이는 한문학자에게 맡겨야 한다. ‘도올’이란 분이 방송에서 ‘논어’ 풀이를 한 적이 있는데, 중국과 우리 옛 어른들의 ‘논어’ 풀이가 여러 군데 잘못되었다고 했다. 이어서 어느 ‘한학자’는 ‘도올’의 풀이 또한 잘못이라고 했다. 한문은 우리 옛말과 마찬가지로 만만한 게 아니다. 우리는 한문학자들이 ‘뒤친(번역한)’ 책을 읽으면 된다.
한자말을 들온말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중국글자 문제가 깨끗이 풀리겠는데 누구도 이 일에 나설 수가 없다. ‘들온말 규정’이 없어서다. ‘표준어 규정’에 ‘외래어는 따로 사정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다른 나라 말은 반드시 잘 가리고 다듬어서 들온말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들온말 규정’이 없으니 어떻게 손쓸 재주가 없다. ‘국어 기본법’에도 아무 말이 없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 한글 맞춤법’이지 ‘들온말 규정’이 아니다.)
6. 마무리
하루바삐 ‘들온말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일은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와 국어원에서 해야 하는데, 생각이 못 미치는지 다른 까닭이 있는지 모르쇠로 뭉개고만 있다. 이 ‘규정’은 만들겠다는 뜻만 있으면 어렵지도 않고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 규정이 없으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글자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들온말 규정’을 만들지 않은 탓에 일흔 해를 글자 싸움으로 날을 새웠고 우리말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했다. 이제 ‘글자 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수, 교사, 언론인이 한 목소리로 외쳐야 할 때가 되었다.
국어원에서는 열일을 제쳐놓고서라도 이 ‘규정’을 만든 뒤 ‘들온말 사정 위원회’를 두어 맨 먼저 ‘표준국어대사전’부터 ‘들온말 사정’을 해야 한다. 이어서 ‘사정한’ ‘들온말’과 ‘배달겨레말’로 말글살이의 본보기가 될 진짜 ‘배달말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이 ‘우리말 사전’에는 한글이 아닌 글자가 한 자라도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참에, 다른 ‘어문 규정’도 깁고 보태고 고치고 다듬어야 한다.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은 오늘날 우리 말글살이와 틈새가 너무 크게 벌어져 있다. 조금만 눈여겨본다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국어 기본법’도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다. 뜻 있는 이들이 모두 이 일에 눈길을 주고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잘못은 잘못이라 하고 옳은 것은 옳다고 해야 한다.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보는 대로 일을 하라고 닦달해야 한다. 입이 있다면 말을 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