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회보 [우리말 우리얼] 4호 - 1998년 10월 1일
전국한자교육연합회에 묻는다
하현철 운영위원
<보기 1>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보인다.
-성철
이 글은 한자는 물론 한자말이 하나도 없는 깨끗한 우리 말로 된 글이다. 아는 것이 많은 분은 이처럼 진리를 쉬운 말로 말한다.
첫째 질문 : 당신들은 이 글도 지식 수준이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나요?
둘째 질문 : 이 글을 당신들이 말하는 시각성 어휘와 청각성 어휘를 모두 구사해서 국한 혼용문으로 고쳐 쓸 수 있나요?
셋째 질문 : 당신들은 입으로는 한글의 우수성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한글을 속된 글(언문)이라고 얕잡아보는, 한자에 중독된 사람들이 아닌가요? 그래서, 한자나 한자말을 쓰지 않으면 짧은 글도 깨끗한 우리 말로는 제대로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요?
셋째 질문을 모욕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면 당신들이 쓴 글 <보기 2>를 한 번 더 읽어 보세요.
<보기 2>
各 位
ㅇㅇㅇ님 (국민 여러분께)
바쁘시더라도 國家와 民族을 위하여 꼭 親覽하여 주십시오.
나라 겨레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要約 內容>
내용 요약
⑴ 經濟危機보다도 더 큰 文化危機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경제위기 문화위기
⑵ 이번만은 危機를 未然防備하기 위하여 有志者들이
위기 미리 막기 뜻 있는 분
總團結하여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모두 힘을 모아
⑶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에 묻는다
初等學校課程에서부터 한글과 漢字敎育을 철저히 하
초등학교 교육 과정부터 한자교육
여 國語敎育을 正常化 할 것을 政府에 促求하고자 합니다.
국어 교육 올바르게 할 정부 촉구하려고
⑷ 우리 世代가 이번 政府에서 반드시 文字政策을 올바
세대 정부 어문정책
로 樹立하도록 하지 않으면 永遠히 回復할 수 없는 文化
세우도록 영원 돌이킬 문화
危機를 當할 것입니다.
위기 맞게 될
참고 1 : 各位→ 000님, 국민 여러분께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보내는 글이라면 ‘000님’이라고 해야 되고, 많은 국민들에게 보내는 글이라면 ‘국민 여러분께’라고 해야 예의를 갖춘 말이 된다. 各位니 諸位 따위는 우리 말이 아니며, 예의에도 어긋나는 말이다.
참고 2 : 親覽하여 주십시오.→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야 쉽고도 예의를 갖춘 말이 된다. 왜 국민에게 명령하는 투의 ‘주십시오.’라는 말을 하는가?
참고 3 : 要約 內容→ 내용 요약
하려는 말의 내용을 요약한 글이니까 ‘요약 내용’이 아니고, ‘내용 요약’이다.
참고 4 : 有志者→ 뜻 있는 분
‘유지자’는 우리 말이 아니다. 나는 이런 말을 처음 듣는다.
참고 5 : 政府→정부
한글로 쓴다고 해서 동음이어인 ‘情夫’와 혼동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참고 6 : 文字政策→ 어문 정책
세계 어느 나라에도 ‘文字政策’이란 것은 없다. 어문 정책이라고 해야 바른 말이 된다.
넷째 질문 : 당신들이 쓴 글 <보기 2>를 밑줄을 긋고 고친 것처럼 한글로 고쳐 쓰면 지식 수준이 낮은 사람이 쓴 글이 되나요?
다섯째 질문 : ‘書籍’을 ‘책’, ‘頭腦가 나쁜 사람’을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지식 수준이 낮은 사람이 쓴 글이 되나요?
여섯째 질문 : ‘視覺性語彙’, ‘聽覺性語彙’ 따위는 도대체 어느 유식한 분이 만들어 낸 말인가요? 한자가 造語力이 뛰어난 글자라고 하지만, 이런 엉터리 말을 함부로 만들어 내어도 되나요?
일곱째 질문 : 다음 한자들을 일본의 대
학생들에게 받아 쓰게 하면 평균 몇 점쯤되리라고 당신들은 생각하나요? (약자가 아닌 정자로 쓰라고 하면 아마도 80%에서 90%는 낙제점일 것이다.)
觀覽 關聯 聽覺 語彙 蹶起
이밖에도 당신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우선 이 일곱 가지 질문에 대답해 주시오.
쉬운 말로도 내 뜻을 남에게 분명하게 전할 수만 있다면, 어려운 말을 하는 것보다는 쉬운 말로 하는 것이 더 좋다. 이것은 진리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런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그 어려운 한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문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국민들과 정부를 협박하는 행위는 나라와 겨레에게 저지르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 행위이다.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현 정권이 나라와 겨레의 이익에 배반되는 국한문 혼용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니, 당신들은 헛된 꿈을 버리고 하던 일을 곧바로 멈추어 우리 말 우리 글을 바로잡는 일에 함께 참여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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