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969년 한글전용국민실천회 창립
(나) '한글 전용 국민 실천회'의 창립
1) 박 대통령의 10.7 선언
정부는, 1968년 10월 2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발표한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을 2개 년 간 단축시키기로 하고, 이를 강력히 시행 할 것을 1968년 10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이 선언(10 7 선언)하였고,<주: 이응호 "국어 국자 연구 총서 제1집. '언어 정책의 역사적 연구'(한글 전용 편)", p.47. > 그 후 열흘도 채 못 된 10월 25일에는 '한글 전용 촉진 7개항'이 발표되었다. 여기에 따라서 문교부 안에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가 설치되어, 정부 측의 한글 전용화 작업이 매우 힘차게 전진되어 나갔다.
2) 국민 운동 단체 창립 논의
이러한 정부의 시책으로 모든 한글 동지들이 "다행이라고만 여기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도 이에 협력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높아지자, 1968년 11월 2일(토)의 한글 학회 이사회에서, 연구 담당 이사 김선기의 "정부 시책에 동조하여, 한글 전용의 국민 운동 단체를 창립하자."는 제안이 가결되어(한글 학회 측) 발기인으로 최현배를 지명하고, 다음 단체들과 의논하여, 발기 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였다.
민족 문화 협회 회장: 이 은 상 민족 문화 추진회 회장 : 박 종 화
한글 전용 추진회 회장: 주 요 한 배달 문화 연구원 원장: 안 호 상
십일회 대표: 이 인 한국 자유 교양 추진회 회장: 김 윤 경
그리하여, 한글 전용 국민 실천회 창립 준비 위원회가 구성되고, 그 창립 경비는 각 발기 위원들의 부담으로 하여, 1968년 11월 9일(토요일)에 한글 학회 회관에서 다음과 같은 이들이 모여서 정식으로 창립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대한 기독교 서회 대표 조 선출 전국 대학 국어 운동 학생회
민족 문화 추진회 대표 박 종화 연합회 대표 이 봉원
민족 문화 협회 대표 이 은상 한국 국어 교육 학회 대표 김 성배
배달 문화 연구원 대표 안 호상 한국 자유 교양 추진회 대표 김 윤경
새싹회 대표 윤 석중 한글 기계화 연구소 대표 최 현배
세종 대왕 기념 사업회 대표 최 현배 한글로쓰기회 대표 윤 인구(대리인 참석)
십일회 대표 이 인 한글 전용 추진회 대표 주 요한
재건 국민 운동 중앙회 대표 김 팔봉 한글 학회 대표 최 현배
이상 15개 단체의 대표들과 유지 여럿이 11월 9일부터 12월 4일까지 5번이나 모여서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인을 준비 위원장으로 삼고, 실무 위원도 뽑아, 회의 이름을 '한글 전용 국민 실천회'로 가칭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임의 단체인 한글 전용 추진회는 통합하기로 하였었다. 그 뒤에 다음 단체들의 호응을 받아, 발기 단체는 모두 26개 단체가 되었다.
기독교 계명 협회 방송 윤리 위원회
대한 교육 연합회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대한 기독교 연합회 한국 문인 협회
대한 기독교 교육 연합회 한국 여류 문인 협회
대한 성서 공회 한글 타자 연구회
민족 문화 추진회 (이상 가나다 순)
3) 국민 실천 운동체 발족
창립 준비위원회의 최현배가 기초한 발기 취지문은 다음과 같다.
한글이 반포된 지 이미 500년이 지났다. 한글은 배달 겨레와 그 운명을 같이하여, 겨레가 약해지면 한글이 빛을 잃고, 한글이 빛을 내면 나라도 힘이 세어졌다. 갑오경장의 기운을 타서, 한글이 처음으로 학교 교육에 등장하였고, 8 15 해방을 맞아 '한글 전용법'이 제정되고, '한글만 쓰기'로 한 교과서가 국민 교육에 사용되어 왔다.
이제 우리는 겨레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들 각 방면으로 겨레의 새 생활력을 최대한으로 뻗치고 있다. …중략… 이렇듯 나라 힘이 고도의 발전을 보게 된 오늘날에, 한글이 또한 발전하지 않을 리가 없다.
정부에서는 1970년 초부터 한글 전용을 실시하기로 작정하고, 이를 추진 계획하고 있다. 이는 가까이는 해방 후 제헌 국회에서 정한 '한글 전용법'이 비로소 발효함을 뜻하는 것이 되며, 멀리는 세종 대왕이 겨레와 나라의 영구 발전을 위하여 한글을 지어내신 본의의 실현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한글과 같은 문명 발달이 최량의 기초 수단을 지니고 있으면서, 눈뜨고도 글 못 보는 까막눈이가 되고, 높은 슬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남과 같이 잘 살지 못하여 가난과 병고 속에서 허덕이던 국민이 이제야 비로소 한글의 잠재 능력을 충분히 이용함으로써, 세계의 앞선 나라들과 같이 잘 살고 행복스런 민주 나라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일제 압박 밑에서 한글 소멸 위기를 체험한 사회의 식자들, 한글이 나라 발전의 근본 힘임을 믿고, 그 완전 전용을 염원하여 오던 한글 학자 교육자 사회인 및 학생들이 이 기회를 잡아, 이에 한글 전용을 적극 실천 장려 완성을 위하여 '한글 전용 국민 실천회'를 발기하나니; 본 국민은 모두 협동함으로써, 민족 중흥의 대업 완성의 터전을 마련하기 바란다.
창립 준비 위원회가 이 취지문을 전국 각지 각계 각층에 돌리고, 그 취지의 찬동자와 함께, 1968년 12월 21일, 서울 '경기 여자 고등 학교' 강당에서 창립 총회를 열어, 한글 전용과 국어 정화의 범 국민 운동을 할 사단법인 한글 전용 국민 실천회를 창립 발족시켰다. 그 창립 당시의 임원들은 다음과 같다.
이사장 겸 회장: 주 요한(대한 해운 공사 사장, 대한 일보사 회장)
이사 겸 부회장: 이 숙종(여성 단체 협의회 이사장, 성신 여자 사범 대학 학장)
김 창귀(동리) (한국 문인 협회 부이사장)
최 기철(한국 동물학회장, 서울 대학교 사범 대학 이학부장)
이사겸사무총장: 이 승화
운 영 위 원: 이사 5인 모두와, 김 성배, 문 제안, 박 갑천, 박 종국, 신 태민, 윤 석중,
이 응호, 이 재인, 정 태시, 최 운걸, 한 갑수 및 전국 대학 국어 운동 연합회 회장
감 사: 이 호성, 권 승욱
이밖에 중앙 위원으로 150여 명
이날의 창립 총회에서는 '한글 전용 실천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채택하여 대통령 국회의장 교육계 언론계 문화인 학생 및 일반 사회에 보내고, 이어서 '한글 전용의 과감한 실천과 조사 연구'를 다짐하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도 채택하였다.
1. 한글은 인류 글자 발달 사상 가장 진보한 과학적 글자로서, 배달 겨레의 독창력의 자랑스런 문화 탑인 동시에 또 생명 발전의 가장 근본스런 힘이다.
2. 한글 전용을 온 국민이 과감하게 실천한다. 겨레 중흥의 사명을 띠고, 조국 근대화의 작업에 정진하고 있는 우리는 이 이상 더 한글 무시의 어리석음을 연장시킬 수 없다.
3. 한글 전용으로, 한글의 기계화를 완성한다. 한글 타자기 한글 텔리타이프 한글 라이노타이프 한글 컴퓨우터를 활용하여, 국민 생활의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다.
4. 모든 학술어와 각 전문 용어를 한글로 적는다. 그리하여, 배달말의 순탄한 발달을 꾀한다.
5. 신문은 한글로만 써야 한다. 우리 회원 각자가 한글만 쓰기를 실천하는 동시에 한글만 쓰기 운동의 광범위한 진흥을 위하여, 모든 신문은 한글로만 쓰기를 적극 촉구한다.
4) '한글 전용 국민 실천회'의 활동
이 '실천회'는 1969년 7월 4일자로 문화공보부 장관의 사단 법인의 허가를 받고, 8월 1일자로 법원 등기를 마치고는 한편, 각종 활동을 전개한 바 1971년 7월 15일까지의 활동 상황은 아래와 같다.
① 관공서 및 각 단체에서 직장 무료 강습 17회
② 정부와 정당에 한글 전용 및 바른 국어사용에 대한 입안 건의
③ 쓰기의 건의 35번
④ 바른 국어 생활과 바른 맞춤법 출장 무료 질의 응답 157번
⑤ 편집 및 교정 무료 봉사 61건
⑥ 건설 용어, 농업, 상업 용어의 왜말 조사 6번
⑦ 간판 업소 심방 무료 지도 138번
⑧ 음식점 차림표 바로잡아 주기 69번
⑨ 우리말로 이름 지어 주기(무료), 업소 15곳, 사람 153명
⑩ 라디오 교양 방송 및 주선 35번
⑪ 잡지에 투고 게재 교섭 247번
⑫ 국어 관계 편지로 궁금 풀이 93번
⑬ 대학 국어 운동 학생회의 활동 지원
⑭ 쉬운 말과 바른 말 자료 채집 43,000 낱말
⑮ 각 부처에 한글 전용을 위한 쉬운 말 용어 제정 촉구 6번
16 한글 타자 전국 선수권 대회 개최 (1969. 10. 9.)
17 정부와 정당에 한글 전용 관계 자료 조사 제공 8건
18 공화당 국회 의원 총회 강연회 및 그 밖의 계몽 강연회 21번
19 한글 명함 무료로 선사하기 13,600장(136명에 100장씩)
20 한글 문패 달아 주기 63,375장
21 한글 전용 정책 자료 조사 발간 (국어 국자 조사 연구 총서 제1집 1,000부 관계 기관에 무료 제공)
22 쉬운 말 쓰기와 각 부처의 용어 제정물 등에서의 채집('국어 국자 조사 연구 총서 제2집' 원고 자료 1,530여 건)
23 각종 정기 간행물에서 한글만 쓰기 관계 자료 채집 카드 작성(2,000여 카드)
이와 함께 각 지부에서도 업적이 많거니와, 본부와 긴밀한 유대를 맺고서, 빼어난 실적을 올린 지부별 실질적 주도 인물은 다음과 같다.
부산: 박 지홍, 충남: 유 동삼, 전북: 박 병순,
경북: 정 휘창, 전남: 박 동철, 경남: 김 계원.
위의 실적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과 인데, 은 박 대통령의 '10 7 선언'을 환영하며 한글날을 기념하는 한글 기계화 촉구 행사이고, 은 광복 이후의 한글 전용 정책 변천 자료 조사 결과를 정리하여 발간한 보고서다. 이 책의 이름은 '국어 국자 연구 총서 제1집, 언어 정책의 역사적 연구(한글 전용 대책편)'이다. 규격은 46배판, 쪽수는 80면인 데, 이 책의 부제에서 보인 바와 같이, '한글 전용 정책'만을 다룬 것으로서 정부가 광복 후 25년간을 꾸준히 한글 전용 정책을 쓴 까닭에, 요즘에 와서는; 한글 전용 반대자는 점진론자로 되었고, 점진론자는 즉시 단행론자로 되었음을, 다음의 이 '실천회'의 회장 주요한의 '조사 연구 총서 제1집을 펴면서'의 '발간사'에 밝히 나타나 있다.
…(앞줄임)… 한글 전용을 반대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렇게도 한글 전용을 반대하여 오던 이들도 요새는 점진론자로 바뀌었다. 또, 과거의 점진론자들은 많이 들 즉시 단행론자로 바뀌었다.
이러한 판국에 우리 회로서는 이때까지의 찬반론과 정부 시책의 경과를 대강이라도 간동그리려고, 지난 2월초에 운영 위원 이응호 교수에게 이 과업을 맡겼던 바 수집한 자료를 간추려서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 …(중간 줄임)…
우리 회로서는; '한글 전용 편' 외에 맞춤법편, 한글 기계화편, 말본편, 말수(어휘)편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를 계속해서 내고자 하니, 자료 수집이나 집필에 대하여, 여러 한글 동지들이 협조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뒤 줄임)
'한글 전용 국민 실천회'는 1971년 3월 15일에 한글 전용 찬반의 여론 조사도 하였으며, 그것에다가 8개 기관이 조사한 여론 조사도 수집 집계하여, 유권자 비율로 환산한 집계를 1971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에, 각계로 다음과 같이 보내서, 각성을 촉구하였다.
<한 글 전 용 단 행>
(조 사 발 표) (조사 연월일) (찬 성) (반 대) (기 타) (합 계)
조 선 일 보 1968. 12. 10. 52.0% 48.0% - 100%
중 앙 일 보 1970. 9. 22. 54.8% 42.0% 3.2% 100%
서 울 신 문 1968. 10. 21. 49.0% 20.0% 28.0% 97.0%
1969. 8. 5. 70.29% 22.77% 6.94% 100%
중 대 신 문 1969. 11. 13. 51.0% - 49.0% 100%
한 대 신 문 1968. 3. 20-23. 71.3% 13.8% 14.9% 100.0%
1969. 5. 15-19. 53.2% 30.1% 16.7% 100.0%
전 북 대학 신문 1970. 11. 10. 59.0% - 41.0% 100.0%
원 대 신 문 1969. 6. 26. 45.0% 40.0% 15.0% 100.0%
국 어 운 동 1968. 8. 1. (84.1)56.1% 15.9% 28.0% 100%
학 생 연 합 회 1968. 4. 1. 72.2% 10.5% 17.3% 100%
한글전용국민실천회 1970. 2. 10. 72.5% 27.4% - 99.9%
합 계 (모두 12) 706.39 243.07 247.44 1196.6
평 균 ÷12 58.866% 약20.256% 20.62% 99.742%
유 권 자 수 환 산 8,935,395 3,292,147 2,912,693 15,178,181
(추 산) 내무부의
71. 2. 1집계
(다) 그 밖의 한글 전용 운동 단체들
한글 학회가 1949년 6월 12일에 창립시킨 '한글 전용 촉진회'가 생기기 전에도, 한글 학회가 유대가 있는 한글 전용 운동 단체로, '한자 폐지회'와 '한글 문화 보급회'가 있었고, 부산 지역의 한글 동지들이 중심이 된 '한글만 쓰기회'가 있다.
그리고, 창립과 조직으로 보아서 한글 학회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주요한, 한갑수, 문제안 등 언론인들이 중심이 된 '한글 전용 추진회'가 있는데, 문화 선언과 '한글 전용' 간행 등 그 활동이 빛난 바가 있다.
'한글 전용 촉진회' 탄생에 앞서, 1945년 11월 30일에 '한자 폐지회'(위원장: 이극로)가 성립되었으나, 얼마 못 가서 '한글 문화 보급회'<주: '한글 문화 보급회'는 조선어 학회의 지원으로 창립되었다가 회장 이극로가 월북하게 되자 19 48. 3. 29.의 임시 중앙위원회에서 회장에 정열모, 위원장에는 신영철 등이 선임되고, 박병록이 상근으로 실무를 맡아 일했었다.>의 창립으로 빛을 내지 못하였고, '한자 폐지회'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길 사이도 없이, 위원장인 이극로가 월북한 뒤로 임원도, 직원도, 사무실도 뜬 몸이었다가, '한글 문화 보급회'와 운명을 같이하였다.
'한글 문화 보급회'는 1948년 후반부터 내부 운영난 등으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하였으므로, 기대를 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글 학회는 따로 새로운 한글 운동 단체인 '한글 전용 촉진회'를 조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한글 문화 보급회'는 더욱 유명무실격이 되었다. 더구나, 한글 학회가 회관을 이종회의 '고려 화재보험 회사'에 비어 주고, 1949년 6월에 을지로 2가 18번지로 옮기게 되자, 한글 학회에 기대어 있던 '보급회'는 한글 학회와 함께 갈 수도 없게 되자 사실상 해산이 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