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기인 엮음 :새사라갈말 말광 - 머리글
이제 일본 한자말을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고, 일본 말투를 버려야 한다.
이기인 교수가 1948년에 쓴 이 책 "새 사리갈말 말광" 머리글에 “평화적, 민주적”처럼 일본 한자말에 ‘~적’이라는 말을 붙인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를 찾아볼 수 없다. “자유적 민주문화”란 말을 “자유스러운 민주문화”라고 했다.
이 책은 "생물학술용어사전"이란 책 이름부터 '"새 사리갈말 말광"이라고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었다. 5000여 개 생물학 용어를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었는데 '수분'이란 한자말은 '물끼'로 '위'란 한자말은 '밥통'으로 바꾸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고 매우 잘한 일이었으며, 오늘 우리가 본밭을 일이다.
이기인 교수는 조선어학회 사건 때 수난당한 33명 가운데 한 분인 신현모 선생의 사위인데 6.25 때 북으로 끌려가서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지낸 이극로와 북에서 활동한다. 북쪽이 토박이말을 살려서 쓴 것은 이런 분들 때문으로 보인다.
이기인 교수가 쓴 책 머리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울리는 말이다. 학자나 정치인은 말할 것이 없고 국민 모두 읽어보시고 가슴에 담기 바란다.
"새 사리갈말 말광" 머리말
세상은 바뀌는 것이니 이 나라도 5천년의 긴 동안에 별별 이이 일어나고 사라졌다. 이제 민주주의 세상이 오기는 하였으나 자유스러운 민주문화를 일으켜 보자는 데 훼방을 놓고 있는 딴 나라의 한문글자와 일본말은 아직도 내좇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한문글자나 일본말을 가지고 우리말 우리글을 누르려는 것은 딴 나라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중에 그것을 배워 쓰던 사람들인 것이니 시대를 모르고 저들만 편하기 위하여 저도 모르는 동안에 우리를 누르고 잡아먹으려던 나라의 앞잡이 노릇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임자 있는 딴 나라의 글과 말은 독하고 무서운 것이다.
“딴 나라의 글과 말은 제 나라의 글과 말이 꽤 터가 잡힌 다음이면 어느만큼 이용은 할지언정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배우는데 먼저 딴 나라의 그것을 배워야 되게 하여 제 나라의 민주문화를 일으키는데 큰 거리낌이 되게 하는 것은 안 되는 말이다.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붙들고 살리려는 것은 그 겨레가 살아보자는 첫걸음이며 가장 거룩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말과 글이 없어진 겨레는 사람의 넋까지 흩어져 말하고 마는 까닭이다.“
민주주의란 말을 사랑하고 노래하는 것은 참다운 민주주의 나라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참다운 민주주의 나라가 되려면 모든 사람이 다 배워 제 힘으로 옳고 그른 것을 알고 말하게 되어야 한다. 쉬운 한글과 우리말로 글소경을 빨리 없애 버릴수록 참다운 민주주의의 굳센 나라는 빨리 올 것이다.
이왕에 한문글자는 쓰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 민족문화를 빨리 일으키는데 좋고 옳은 일이라면 한걸음 나아가 ‘조족지혈’보다 ‘새발의 피’, ‘아전인수’보다 ‘제 논에 물대기’, ‘생존경쟁’보다 ‘살기다툼’, ‘돌연변이’보다 ‘갑작다름’, ‘부유’보다 ‘하루살이’, ‘동물’보다 ‘옮사리’ 따위 말이 훨씬 더 민주주의 나라의 말이 아니랴!
그러므로 적어도 모아 된 말(合成語)이 한문글자부터 알아야 그 뜻을 알게 된 말이면 우리말로 그 뜻을 풀어가는 것이 급하고 마땅한 일이매 이것을 깊이 생각도 아니 하고 경솔하게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은 뜻 있는 문화인(文化人)으로서는 못할 일이다.
‘사리갈(生物學)이 과연 우리가 다 배워야 할 모든 배월(科學)의 기초라면 갈말은 우리말로 풀어쓰는 것이 가장 좋고 빠른 길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우리들은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으로 “사리갈 가르치는 모임(生物敎育會)”에서 한결같은 원칙 밑에서 사리갈말(生物學術語)을 골라 추렸다.
이 책은 그것은 엮어 내며 사리갈말 아닌 것도 조금 넣어 쓰는 분들은 편하도록 하였다. 이 책을 낼 지음에 갈말을 골라 추리기에 많은 힘을 쓰신 대학, 중학, 소학의 각 학교 생물 선생님네와 그 밖에 좋은 가르침을 아끼지 아니하신 여러 조선어학자, 수학자, 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약학자, 심리학자, 농학자들과 원고 다듬기에 힘써준 “공 정, 이원구 신광순” 제군 그리고 영양사 권혁찬님과 종업원 여러분께 고마운 말을 드린다.
4281(1948)년 한글날을 앞두고 서울사대 이기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