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968년 농어촌연구부 회지 [학농3.4호]
1968년 내가 참여해 만든 농어촌연구부 회지 [학농] 3호(왼쪽)와 4호(오른쪽)입니다.
나는 대학생 때 농어촌연구부 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국어운동대학회란 모임도 만들어 열심히 했습니다. 3호는 나도 편집을 도왔으나 책임자가 아니라 한글로 만들지 못했고, 4호 학농은 내가 편집장으로 있었기에 그 내용도 표지도 한글로 만들었습니다. 1968년 겨울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보문동에서 초등학생을 모아 가르치며 학비를 벌던 때 학농 4호를 편집했습니다. 그 때 글을 모아 등사기로 긁어서 회지를 만들었습니다. 1968년 겨울 방학 학교 교정에 눈이 하얗게 내린 어느 날 이 학농 편집을 도와준 국문과 여학생 후배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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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찍그림은 내가 서울에 남아서 위 학농을 편집할 때 충남 아산 이기영 동창 집에 가 있던 이순섭 농연 부장에 내게 원고와 함께 보낸 옆서입니다.
이 때 농연 동지들은 내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내 스스로 우리 말글로 지은 [이대로]라는 내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본내 내 아버지가 지어준 내 이름은 한자이름 [李澤魯 이택로]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말과 글자가 있으면서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지도 못하고 안 짓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내 스스로 [이대로]라지 지어 불렀고 한글이름 짓기 운동을 했습니다.
한글을 이름을 지을 때 나는 농연 동지들에게 "나는 내 식대로, 내 뜻대로 살겠다는 신념과 죽는 날까지 농촌운동과 한글사랑 운동을 하겠다는 두 뜻을 담아 내 이름을 [이대로]라고 바꿔 부르겠다. 한글로 쓰지만 큰 두 길을 가겠다는 내 신념을 담고 죽는 날까지 가겠다는 다짐이다. 이름은 부르기 쉬고 기억하기 쉬워야 하고 제 인생 철학이 담겨야 한다. 나는 6남매 맏아들이니 형제들이 쓰는 돌림자 '로'는 붙여 넣었다."라고 말하고 농연 동지들에게 어떤지 물으니 참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이 그 이름을 불러주었다. 친구들은 내가 툭하면 내가 나라사랑 겨레사랑 농총사랑 어쩌고 떠드니 앞으로 정치를 하려느냐고도 했다.
이순섭 부장은 나보고 "대로 각하"라고 불렀다. 이기영 친구는 제 이름은 나를 따라서 [이대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진짜 나는 그 때 내 생각대로 지금까지 그 학생 때 마음으로 70평생 한결같이 살았다. [이대로]라는 이름이 날 그렇게 살게 했다고 본다. 지나고 나니 그 때가 재미있었고 그립다. 고향에 내려가 과수원과 목장을 하면서 아산군 축협조합장도 하던 이기영은 그곳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고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인지 췌장암에 걸려 일찍 이 땅을 떠났다. 가장 착하고 열심히 산 그 친구가 아깝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