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대로 '국어문화실천협의회' 회장[한국NGO신문]은동기 기자=지난 31일, 한글과 문화 관련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와 ‘(사)우리문화지킴이’, ‘국어문화실천협의회’ 등 3개 단체들은 20대 국회 1호 청원으로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지정해 달라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단체들은 이에 앞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것은 1934년 조선 총독이 경성 남대문을 조선 보물1호로 지정했기 때문.”이라며 “2005년에 감사원이 국보 1호 해지를 권고했지만, 문화재위원회는 경비가 많이 들고 '혼란을 준다'는 이유로 반대했다.”라고 밝혔다.
▲ 1996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1호로 지정하자는 학술강연회 모습 © 이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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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문화실천협의회’ 이대로 회장은 평생을 외골수로 한글운동에 바친 시민운동가이다. 그는 한글문화 창달 외에도 ‘세종대왕 나신 곳 성역화’와 숭례문을 국보1호로 지정하자는 운동 등 한글과 세종대왕과 관련된 많은 분야에서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시민운동의 보폭을 넓혀오고 있다.
지난 7일,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이 회장을 만나 최근 다시 불붙기 시작한 국보1호 재지정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최근 다시 논쟁에 불이 붙은 국보 1호 재지정 문제와 관련, 왜 훈민정음이어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
“나는 50년 전, 대학생 때부터 한글운동에 뛰어들었다. 우리의 최고 훌륭한 문화유산인 한글이 사실 정부나 학자나 국민들로부터 천대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숭례문이 아직도 남대문으로 불리던 당시인 14대 국회 때, 원광호 의원과 뜻이 맞아 국회의원 이름표를 한글로 바꾸자는 운동을 하면서 광복 50주년이 지난 1996년, 한상범교수와 한글학회 허웅교수, 원광호의원 등과 함께 일제시대에 총독이 정한 숭례문(당시 남대문)을 어떻게 국보로 인정하느냐면서 국보 1호를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하자는 학술토론회도 열었다.”
이 회장에 따르면, 1996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1호로 바꾸자는 학술강연회에서 민족문제연구소장을 지냈던 헌법학자 한상범 교수는 “건국 때 우리나라 법률을 만들면서 일본 법률 문장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다. 그래서 그 일본식 한자혼용 법률 문장으로 공부한 판검사, 변호사 출신들이 가장 앞장서 한자혼용을 찬성한다."면서 “이게 될 말이냐“고 분개해 했다.
또 한 교수는 “이뿐 아니라 우리 국보도 일제 총독이 정한 조선 보물 지정 번호를 그대로 베꼈다. 역사적으로 참 부끄러운 일이다.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국보1호만이라도 우리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1호로 바꿔 겨레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높이자.”라고 말했다. 그 때 많은 공감을 얻었고 하이텔 천리안 들 누리통신을 통해 이 운동을 전개했고 많은 사람들 지지를 얻었다. 조선총독부 건물이라며 중앙청을 헐어버린 김영삼 정권도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재지정해야 한다는데 대해 공감했었다.”
▲ ‘국어문화실천협의회’ 이대로 회장 © 은동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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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문화재에 번호를 부여하는 것은 문화재 가치의 우열이 아니라 단순한 관리번호’라고 한다.
“그게 맞을 수 도 있지만, 적어도 국보1호의 상징성에 관한 한, 문화재청의 태도는 너무 무책임하다. 우리가 국보를 정할 때, 일본이 식민통치 과정에서 일본이 그들 뜻을 담아 정한 조선의 문화재 번호를 그대로 국보 번호로 계승한 것은 일본 식민 통치 의미까지 계승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행정 편의주의식 관료주의 행태이다.
또 다른 이유는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축 과정에서 드러난 부패와 부실시공은 국보1호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훼손했고 국민들 마음속에 큰 상처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국보1호를 재 지정해야한다는 국민 여론은 문화재위원들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라고 하면 기와장이나 돌조각만 문화재로 아는 것 같다.” 며 일제 시대 총독이 지정한 국보 1호 대신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1호로 바꿔서 오늘날 시대 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상범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군이 바로 남대문을 통해 한양도성으로 쳐들어 왔다. 일본은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해 남대문을 조선 보물 1호로 한 것이다. 솔직히 숭례문이 건물 자체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큰 건물로 경복궁 근정전이나 경회루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조선총독이 더 큰 근정전을 놔두고 숭례문을 1호로 정했겠는가. 그 배경을 알아야 우리가 제기하는 국보1호 바꾸자는 이유를 알 것이다. 해방 당시는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급한 대로 일본식 행정을 답습했다 치더라도 광복 71주년을 맞는 오늘날엔 우리다운 모습으로 바꿔야 한다. 모든 국보나 보물의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몰라도 ‘국보 1호’가 갖는 상징성이 매우 크니 국민의 소망을 담아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정해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드높이자는 것이다.”
남대문과 동대문이 국보 1호와 보물 1호가 된 사실은 2002년 한국근현대사 연구자이며, 일본 동북대 특별연구원인 오타 히데하루의 서울대 석사논문 <근대 한.일 양국의 성곽인식과 일본의 조선 식민지 정책>에서 발견된다. 바로 일본 군국주의의 끈적끈적한 흔적이다.
오타 히데하루 연구원은 그 연구서에서 조선 총독부는 을사늑약 체결 후, 한성거주 일본거류민회가 중심이 되어 한성도시계획을 수립할 당시, 조선 내에 항일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산성, 성곽, 사찰 등 조선의 문화적 유산을 폭파해 없앨 계획이었으나 당시 한성신보 사장이며 일본 거류민단장이던 니카이 기따로가 진언하여 파괴되지 않고 보존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연구에 의하면 국보1호인 남대문은 임진왜란의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왜군을 이끌고 남대문을 통해 한양에 진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고 보물 1호인 동대문도 고시니 유키나가가 통과했다하여 승전의 상징물로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남대문과 동대문은 그런 이유로 보존된 반면, 일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돈의문(서대문), 소의문(서소문), 혜화문(동소문) 등은 철거되었다. 이렇듯 남대문과 동대문은 문화적 가치가 아닌 일제 승전의 산물로 정한 것이므로 국보1호와 보물1호에 내포되어 있는 일재 잔재의 흔적은 광복을 맞은 우리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청산해야 할 무거운 역사적 책무가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도 총독부건물인 중앙청을 철거하고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바꾸려했고, 2005년에 감사원도 국보 1호를 식민지 시대 총독이 지정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하여 변경을 권고한바 있으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공감을 표한바 있다. 또한, 2015년 리얼미티 여론조사 결과도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지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64.2%, 반대한다는 20%의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엔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가 찬성 10만명 목표로 서명운동을 했는데 세 달 만에 목표를 섬어 11만 8000명이 서명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1호 지정은 국민 뜻이다.
-훈민정음은 국민들 귀에 익지만 해례본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새종대왕이 한글을 창제 당시, 글자를 만든 원리, 목적, 이유, 쓰임새, 활용법 등을 해설한 책이다. 문자의 구조를 해설한 책이 세계 어디에도 없다. 세계 유일한 문자 제정 설명서인 해례본 자체가 우리 국보이면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 500년 동안 이 훌륭한 한글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한글이 천대받고 있다.”
1962년에 국보 70호 문화재로 지정된 훈민정음은 ‘훈민정음 햬례본(解例本)’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하고, 1책 3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만든 목적을 적은 서문은 세종대왕이 쓰고 그 설명은 정인지·신숙주·성삼문·최항·박팽년·강희안·이개·이선로 들 집현전의 8명의 학자가 집필 한 것으로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40년 이 책이 발견되기 전에는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저마다 여러 말이 있었지만 이 책이 나오면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참으로 귀중한 보물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자기 언어를 위한 새 글자를 제정한 일은 있지만, 『훈민정음 해례본』 같은 제정 해설서를 펴낸 일은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문화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가지는 책으로써 1997년 1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선정되었다.
“과거의 한글을 천대한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에서라도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정해서 잘 활용해야 한다. 문화재로도 해례본은 큰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자주 문화 창조 발전에도 훌륭한 무기이고 밑거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가치와 상징성에 대해 교수, 국회의원들도 의외로 잘 모른다. 그래서 이래서 안 되겠다 싶어 우리들의 노력으로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하기도 했고, 세종대왕 나신 곳 성역화운동, 국보1호 지정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이는 우리민족과 나라가 발전하고 빛나기 위한 기본 요건이다. 그 어느 것보다 가장 먼저 빨리 해야 할 일이다. 지금도 세월이 그렇게 지났는데도 해례본이 무엇인지, 얼마나 귀중하고 좋은지를 모른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1호로 지정하자는 단체들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국보1호의 상징성을 고려, 세계언어문화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국운 융성의 밑바탕이 되었던 훈민정음의 문화적 가치를 민족의 유산으로 보존해야 하며, 둘째, 일제가 남대문(숭례문)을 조선 보물1호로 지정한 배경에는 일제 군국주의의 침략적, 반민족적 의도가 짙게 깔려 있고 셋째, 숭례문의 화재로 인한 재건축 과정에서의 온갖 불법 비리와 부패의 민낯이 드러나 국보1호의 상징성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권력화된 문화재청, 국민여론에 오불관언식 대응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1호로 지정하자는 운동에 동의를 하지 않은 쪽의 반대 논리는 무엇인가.
“반대하는 쪽은 일본식 한자 혼용주의자들, 친일 정치인 등 친일.보수세력들과 엉터리 문화재 전문가들이다. 찬성하는 쪽은 민족 자주 개혁세력이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재 잔재를 청산하자는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지만, 국민 여론과는 상관없이 문화재위원들은 사회가 혼란스럽게 되고 돈이 많이 든다고 반대했다. 문화재청은 현행 국보지정방식이 국보나 보물의 우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관리 번호일 뿐이라는 것이라며 귀를 막고 있다. 그러나 1호와 70호만 바꾸면 혼란도 적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 반면 이익은 수 만 배 더 크다”
-문화재청도 국민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아니다. 문화재위원들은 지금까지도 국민여론 여론을 무시하고 있다. 이들은 반민주 권력 집단이 되어 갑질을 일삼고 있다. 1996년 당시 우리가 한 여론조사로는 1호를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하자는데 찬성 여론이 많았다. 나는 하이텔이나 천리안 통신을 통해 한글사랑 운동을 했는데 그 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지지하고 공론화되었지만, 문화재청은 “전문가들인 문화재위원들은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반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을 말한다면, 나는 차라리 문화재청을 해체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내에 ‘문화재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문화재위원들이 문화발전 걸림돌이다. 훈민정음 해례본보다 더 귀중한 문화재가 어디 있나. 문화재위원들 중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이가 많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되어있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여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가. 한글(훈민정음)은 우리 겨레의 우수성, 자주성, 창조성 상징이다. 이걸 살리는 것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새 문화를 창조하는 길이다.“
-평생 한글 운동에 투신하셨는데 어려움과 보람도 많았을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부터 교과서를 일본처럼 한자혼용 방식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정부의 국어정책이 뒤바뀌는 것을 보고 대학에 들어온 우리는 국어운동 대학생회를 만들고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등 가열차게 운동에 전념했다. 또 당시 이은상 시인,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 등도 평소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존경한다던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조상들의 업적을 선양하기 위해서라도 한글 전용 정책을 펴달라고 조언한 결과, 1968년 한글 전용정책으로 전환하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 후, 광화문, 현충사, 여주 영릉, 삼일문, 탑골공원 등의 현판을 모두 한글로 다시 썼다. 다른 국보는 몰라도 국보 1호만은 나라 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한글의 높은 상징성에 공감하는 국민들의 여망을 담아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1호로 지정하는 것은 새 역사를 쓰는 일이고 나라의 품격과 자존심을 드높이는 의미가 매우 큰일이다. 문화재청은 모든 국보 번호를 없애자느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엉터리 문화재 전문가 말을 듣지 말고 이번에 국민 뜻을 꼭 들어주기 바란다.”
-분단 70년이 흐른 현재,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한글도 분단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혹시 통일에 대비하여 민족의 언어인 우리말과 글의 점차적 통일을 위해 북한과 협의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현재 남북한 간에 언어의 차이가 많은가.
"나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 동안 중국의 심양, 연길 등지에서 북한의 사회과학원과 학술회 등을 개최하고 교류를 하면서 남북의 언어통일 문제를 논의해 왔으나 근래에는 아시다시피 남북 경색으로 인해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한국어정보학회에서 부회장을 맡아 남북 컴퓨터 자판 통일운동도 같이 했다. 남북 언어 통일과 소통은 통일운동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북의 언어에는 차이가 조금 있지만, 그렇다고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해방 전후, 조선어학회의 핵심들은 남과 북으로 갈렸지만, 남한에서 최현배, 김윤경 들이, 북한에서는 이극로, 김두봉 들이 한글운동을 펼쳤으며 일제 용어를 버리자는 분위기는 같았으나 북은 어느 정도 성공했고남은 일본식 한자 혼용파에 밀려 그렇지 못했다.
정치통일보다 먼저 언어 통합이 되어야 마음이 통한다. 20여 년 동안 북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북한도 막혀있는 부문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한글을 북한에서는 ‘조선글’이라 하고 정치용어가 많다. 남쪽은 일제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에다가 영어남용으로 문제가 많다. 그러나 남북 모두 민족언어 통일운동의 당위성에 공감하고 있다. 몇 년 전, 한국어정보학회는북경올림픽에 대비코자 ‘남북체육용어사전’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우리 겨레와 나라를 빛내고 튼튼하게 만들 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 정신 또한 오늘날 우리가 살리면 국운이 더욱 융성할 것이다. 내가 해온 한글만 쓰기 운동,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 한글 박물관 짓기 운동이 모두 세종 업적과 정신을 살려서 잘 사는 나라 만들자는 것이고 이 일도 정부는 반대했지만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도와주어서 되었다. 이번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1호 지정 청원도 국회가 들어주길 바라고 또 들어줄 것으로 믿는다.”
이 회장은 가장 존경한다는 공병우박사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에게 “너에게 아무것도 줄게 없어 어떻게 하느냐? 내가 가진 것 이 것뿐이니 이거라도 팔아서 한글운동에 쓰라”면서 공 박사가 취미생활로 활동했던 당시에 펴낸 ‘공병우 사진 작품집’을 보여주면서 죽는 날까지 공병우 박사의 "한글이 빛나야 한겨레가 빛난다."는 뜻과 정신을 이어갈 것을 밝히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