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글날 이야기 -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고 다시 공휴일을 되찾기가 허술했다.
1926년의 ‘가갸날’에서 2016년의 ‘한글날’까지
말과 글이 달라 전하고자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을 가엾게 여긴 세종대왕. 어진 임금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친히 28글자를 만들었고, 1446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했다. 이러한 세종의 깊은 뜻과 더불어 ‘한글’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되새겨보는 국경일, ‘한글날’. 570돌을 맞이하기까지 역대 ‘한글날’에 일어났던 혹은 ‘한글날’에 대한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을 모아보았다.
1926년 11월 4일
최초의 ‘한글날’인 ‘가갸날’이 탄생하다
한글날 기념식이 처음 거행된 해는 1926년으로, 이때는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80돌이 되는 해였다. 음력 9월에 새문자 ‘훈민정음’을 해설한 책 《훈민정음》이 완성됐다는 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음력 9월 29일을 반포한 날로 삼아 11월 4일에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때 ‘한글날’의 이름은 ‘가갸날’이었는데, 당시 한글을 배울 때 '가갸거겨' 하면서 배운 것에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 국립한글박물관 내 전시되어 있는 가갸날 기념행사 모형
▲ 동아일보에 게재된 가갸날 기념행사 사진
1934년 10월 28일
그레고리력을 따른 ‘한글날’의 양력
1930년대에 들어 음력이 아닌 양력을 달력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는데, 당시 ‘한글날’은 음력 9월 29일을 기준으로 기념식이 거행되었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양력 계산법을 두고도 ‘율리우스력’이냐 ‘그레고리력’이냐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고, 결국 그레고리력에 따라 1926년부터는 11월 4일에 한글날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1942년 10월 28일
조선어학회의 부재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극로의 기록에 따르면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부터는 ‘한글날’ 기념식 거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1942년에는 일제가 ‘조선어학회 사건’을 빌미로 조선어학회 회원과 관련 인물들을 강제로 연행해갔다. 이 때문에 ‘한글날’ 기념식을 주관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 조선어학회 회원들
▲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연행해 재판을 진행하는 일제
1945년 10월 9일
9월 10의 양력, 10월 9일
‘한글날’을 10월 9일로 확정한 것은 광복 직후였던 1945년이었다.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 원본에 적힌 정인지 후서에는 《훈민정음》이 ‘정통 11년 9월 상한(上澣)’에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9월 상한, 즉 상순(上旬)에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으로 보고,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하여 ‘한글날’로 삼게 된다. 이에 따라 1945년부터는 10월 9일에 기념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 훈민정음 해례본
1990년 10월 9일
산업발전을 위한 한글날의 수난
1946년에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었던 ‘한글날’은 1990년 8월, 휴일이 너무 많으면 산업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이유로 ‘국군의 날’(10월 1일)과 함께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한글 관련단체와 국민은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므로, 다시 국경일로 삼아야 한다는 제정운동을 꾸준히 펼쳤고 2012년에 다시 법정공휴일로 제정되었다.
▲ 국립한글박물관 전시관에 설치된 훈민정음 조형물
<한글날 기원 및 공휴일 지정 관련>
- o (1446년) 9월 ‘훈민정음’ 반포(세종 28년)
- o (1926년) 조선어연구회, 음력 9월 29일(11월 4일) ‘가갸날’ 선포
- o (1928년) 명칭을 ‘한글날’로 변경
- o (1945년) 훈민정음 원본에 따라 10월 9일로 한글날 날짜 확정
- o (1946년) 10월 9일 한글날 공휴일로 지정(한글 반포 500돌 기념)
- o (1990년) 한글날 공휴일에서 제외 (경제 단체 건의 수용, 기념일로만 유지)
- o (2005년) 국경일로 격상(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되었으나, 공휴일에서 제외(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제2조)
- o (2012년) 공휴일로 재지정 결정, 2013년 한글날부터 공휴일 적용
- 글 _ 정선우
- 사진제공 _ 동아일보 1926.11.06자, 한국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