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창간 당시 두 아이들, 아내와 함께 한겨레신문의 창간주주로 참여했다. 그 때 어린 아이들까지 주주로 참여하게
한 것은 6.10항쟁 등 민주화 과정과 맞물려있다. 그 험난한 시대를 지나면서 생각한 것은 먼 후일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그 때 부모님은
민주화투쟁에서 뭘 하셨나요?”라고 질문했을 때 딱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국민신문인 한겨레신문의 주주가
되게 해주면 그래도 염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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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결정은 잘 된 것이 분명하다. 사실 그 때야 대학생들도 1만원의 창간기금을 흔쾌히 냈던
것인데 만일 그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이 시대에 최소한의 도리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지금 한겨레신문은 창간 17돌을 맞아 제2 창간을 서두르고 있다. 거기엔 현재 한국 최고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황우석교수를 중심으로 '밥퍼' 최일도 목사, 노무현 대통령까지 각계의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참여하고 있는 모습니다. 이를 지하에서 바라보실
송건호 선생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과정에서 제 2의 창간이 기쁘게만 바라봐지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한겨레신문은 창간 때 온 국민의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군사독재시절에 고군분투 국민의 소리를 전하느라
몸이 망가져가는 줄도 모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점차 창간정신이 잊혀져간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가장 힘들고, 또 상당한 역할을 했던 학생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보내지 않았다. 또
농민, 빈민들의 목소리도 한겨레엔 자취가 감춰지고 있었다. 변질되고 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독재시절 가장 큰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던 이들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애기였다. 이후 많은 독자와 주주는 한겨레를 떠나기도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버텼지만 아직도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은 아닌지? 독자들의 지적에 겸허하지도 않는다.
나는 “한겨레신문엔 민족문화가 없다.”라는 제목으로 두어 번 지적해봤지만 여론매체부에서 글만 실어줬지 그에 대해 한겨레신문은 조금도
고민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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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창간 17돌을 맞아 제 2의 창간을 한단다. 경영진은 그러겠지. “각계의 내로라하는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참여하고 있는데 무슨
소린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참여자들은 현재 한국에 진보를 대변하는 언론이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한겨레가 그대로 쓰러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꼭 예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고육지책이라는 뜻이다.
또 일부는 “명망가인 진보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데 내가 빠지면 좀 그렇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쩌자 것인가?
나는 물론 제 2의 창간에 손사래 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순서가 잘못됐다는 뜻이다. 만일 그동안의 잘못을 그대로
방치하고 넘어간다면 제 2의 창간에 쏟아 부을 온갖 노력이 다시 물거품이 되어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믿음도 주지 못했으면서 주주들이 만들어주었던 자본금도 많이 까먹은 전철을 다시 밟을 수도 있음인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 독자들, 주주들에게 실망을 줬던 부분들을 경영진들이나 구성원들이 모두 나서서 반성하고, 이에 대한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빈 다음 제 2의 창간이 되면 창간정신을 되살리는 일에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러면 그동안 한겨레를
떠났던 많은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는 그리고 어떤 적이 공격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진정한 제2의 창간, 잔치 분위기의 창간이 될 것이다.
제발 한겨레신문은 이제라도 제2의 창간을 잠시 멈추고, 반성하고 각오를 다지는 시간을 가져주길 간절히 바란다.
종이신문 중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가장 확실한 언론으로 다시 태어나 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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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 논설위원은 민족문화운동가로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이며,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고집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12년째 해오고 있다. 또 겨레문화를 온 국민과 세계에 쉽고 재미있게 알려내는 전령사를
자임하며, 글쓰기, 강연, 방송출연 들을 하고, 동시에 평화, 언론, 교육운동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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