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오늘날 시대 정신은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

한글빛 2005. 12. 7. 21:52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한글만 쓰는 것
[시론] 우리말을 힘센 말로 만들면 우리나라가 힘센 나라가 될 것이다
 
이대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배달겨레말은 적어도 5000해 앞에서부터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억만 해 앞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자는 2000∼3000 해 앞에서부터 한문자를 쓴 게 처음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들어온 불교나 유교 책이 그 흔적이다. 더러 단군 조선 때 가림토 글자란 걸 우리의 한아비들이 썼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글자로 쓴 책이나 글이 없으니 뚜렷하지 않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그림글자로 본다면 그게 처음 이 땅에 살던 우리 한아비들이 글을 쓴 흔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걸 완전한 글자라 할 수 없고 한문을 쓴 흔적만 있기에 한문이 처음 우리 겨레가 쓴 글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서기 1443년 조선시대 세종 임금님이 우리 글자인 한글(훈민정음)을 만들면서 한문과 우리 글(한글)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글을 만들고 쓰기 시작한 게 우리 겨레가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쓴 첫 걸음이다.

그런데 뚜렷한 근거도 없이 한자도 우리가 만든 글자이며 한글은 가림토 글자를 본떠서 만든 것이고, 세종대왕이 처음 만든 게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 겨레를 널리 내세우고 우리 한아비들이 위대했다고 자랑하려는 마음은 좋으나 분명한 근거나 증거도 없이 한글을 만들고 처음 쓴 세종대왕과 그때 한아비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올해 한글을 만들고 처음 쓰기 시작한 날을 기념하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온 국민이 경축해야 할 마당에 이 주장이 괜한 혼란을 일으키고 한글의 권위를 떨어트릴 것으로 보여 우리 글살이 흐름과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했다.

1. 한문만 쓰던 시대

서기 1443해, 훈민정음(한글)을 만들기 전까진 한문자만 썼다. 가림토 글자나 또 다른 글자를 쓴 흔적이 없다. 삼국시대에 불교와 유교 서적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부터 한문을 배우고 쓰기 시작하다가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서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면서 완전한 한문시대가 된다. 신라 제35대 경덕왕(재위 742∼765) 때에 왕권 강화를 한다며 한화정책(漢化政策: 중국의 것을 모방하는 정책)을 시행해 정부 조직 이름과 땅 이름, 사람 이름까지 중국 당나라식으로 바꾼 게 그 발자취다.

그러나 한문은 중국말투 문장이어서 우리에게 매우 불편했다. 그때 설총은 한자를 이용한 우리말 식 문장인 이두를 만들어 썼으나 마찬가지 한문자여서 불편했다. 관리나 학자 같은 아주 특별한 사람, 지배층만 한문을 알고 쓰고 일반 백성은 글을 모르고 못썼다. 그래서 한문만 쓰던 시대엔 글자를 알고 쓰는 사람이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안 되었다. 거기다가 한문은 배우고 쓰기도 힘들고 우리 말투로 쓴 게 아니고 중국 말투여서 입으로 하는 말과 글(공문서와 책)이 다른 말글살이를 함으로써 매우 불편했다. 그때엔 지배층과 백성이 서로 통하고 어울릴 수가 없었고, 학문이나 문학은 중국 것이거나 곁가지였다. 한마디로 중국 한문 식민지시대였다.

2. 한문자와 훈민정음(한글)을 따로 쓰던 시대

서기 1443년 조선 넷째 임금인 세종대왕에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한글)을 만들면서 1444년부터 1910년 일제에 나를 빼앗길 때까지 한문자와 한글이 따로 쓰는 시대가 된다. 세종대왕은 공문서에도 한글을 쓰게 하고, 과거 시험과목에 한글도 넣었으나 한문 숭배세력이 너무 세고 강해서 한글이 제대로 자라고 꽃피지 못했다. 정부 문서와 학문 서적은 여전히 한문으로만 쓰고, 한글은 부녀자나 일반 백성들이 쓰는 편지나 일기에 주로 쓰인다. 그때엔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쓴 게 아니라 한글만 쓰던가 한자만 따로 쓰는 글살이였다. 그러다가 중국 청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1894년 고종 때 공문서에 우리 한글을 국문(國文)이라고 부르고 나라의 공문서에 함께 쓰기로 했으나 온전한 우리 글살이를 한 건 아니다. 그때까지 우리 글자엔 제대로 이름이 없고 언문, 암클, 반절이라고 부르던 것을 고종 때 ‘국문’이라고 했다가 100해 앞에서부터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고 갈고 닦아 오늘처럼 빛나게 되었다.

3. 한글과 한자 섞어 쓰는 시대, 일본글만 쓰는 시대

1886년 조선이 기울어 일본이 이 땅을 먹으려 할 때에 일본인 이노우에가 일본처럼 한자와 한글을 섞어 써서 한성주보란 신문을 만들고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는 말글살이를 퍼트렸다. 그리고 1910년 일제가 이 땅을 먹으면서 공문서를 한자와 일본 글자를 섞어 쓰는 일본글을 쓰는 시대가 된다. 또 우리 글에도 일본글처럼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는 책과 신문이 나오면서 완전한 한자혼용 시대가 된다. 한자 섞어 쓰기는 일제가 이 땅에 퍼트린 것이고 길들인 것으로서 한자혼용은 일제 식민지 시대 찌꺼기이다. 일제 때 태어나 일제 한자혼용 책으로 일본 국민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일제 세대가 일제가 물러간 뒤인 대한민국 시대에도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고 즐겨서 우리 말글살이를 어지럽게 만들고 피해를 보게 된다. 일제가 이 땅을 지배한 건 36년으로서 짧지만 철저하게 정신과 문화를 지배함으로써 그 후유증은 크고 많았고 길었다.

4. 한글만 쓰려고 애쓰는 시대

1945년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간 뒤 한글만으로 된 책으로 교육을 하는 시대가 온다. 미국 군정 때 3년 동안 공문서에 영어를 쓰기도 했지만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울 때 한글전용법(법률 제6호)을 제정하면서 큰 틀과 흐름은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만 적는 말글살이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일본식 한자혼용 말글살이에 길들여진 지배계층, 일제 지식인들이 교수와 공무원, 정치인과 언론인으로서 끈질기게 한글만 쓰기를 방해해서 한글과 한자가 50년 동안 피 터지게 싸우게 된다. 대한제국 때 종두법을 만든 선각자 지석영 선생도 한글전용을 주장하고 주시경 선생이 그 일에 몸바친 정신을 이어받은 한글학회(조선어학회) 학자와 애국지사들이 한글사랑 모임을 만들고 일본식 한자파와 맛서 싸웠다. 나는 배달겨레가 살려면 배달겨레말과 글(한글)을 지키고 살리고 즐겨 써야 한다고 보고 그 싸움에 앞장섰다. 하늘이 돕고 조상이 보살폈으며 많은 국민이 한마음으로 애써서 이제 책방에 가면 우리말을 한글로 쓴 책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었다. 참으로 기쁘고 다행스런 일이다.

이제 한글만 쓰는 시대를 만들자. 배달말이 홀로 서고 우리 말글이 세계어가 되게 하자. 우리 글자인 한글은 온누리에서 가장 잘난 글자란 건 세계가 알아주고 우리도 알고 있다. 우리말은 우리 글자인 한글로만 적을 때 빛나고 잘 된다. 또 우리에겐 우리 말글만으로 말글살이를 할 때 가장 잘 통하고 좋다.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만으로 적는 말글살이가 완전하게 시행될 때 우리말이 독립한다. 그때 우리 말꽃이 피고 우리 문화가 온 세계에 퍼지고 빛날 것이다.

그런데 어렵고 한문으로부터 독립하려 하니 이 땅을 미국말 식민지로 만들려는 자들이 생겨서 날뛰니 가슴 아프다. 어떤 이들은 앞으로 100해가 지나면 세계에 있는 수천 개 언어 가운데 중국어와 영어 같은 다섯 개 언어만 남고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한 학자가 나오니 스스로 우리말을 버리고 영어를 우리 공용어로 하자고 떠든다. 참으로 배달겨레 얼이 빠진 얼간이들이다. 나는 절대로 배달겨레말은 죽지 않고 100년 뒤엔 한글과 배달말이 지금 로마자나 영어 지위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본다. 한 달 전 교육방송에서 한 ‘영어 공용어 문제 토론’ 때에 내가 그런 주장을 하니 반대쪽 교수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나는 정부와 국민이 우리말을 즐겨 쓰고 빛내서 우리 문화가 꽃피면 저절로 세계인이 우리말을 배우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는 법안이 행정자치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글날을 진짜 온 국민이 즐기는 ‘문화 국경일’로 만들고 한글만 쓰는 시대를 열자. 이 일, “한글만 쓰고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는 일”이 오늘날 시대정신이고 바른 역사 만들기이고 시대사명이다. 그럼 온 국민이 한글만 쓰기를 즐길 때 머지않아 노벨 문학상도 받을 문필가도 나오고, 모든 우리 학문이 발달하고 힘센 나라가 되어 100년 뒤엔 우리말이 지금 영어보다 더 힘센 말이 될 것이다. 아니 우리말을 힘센 말로 만들면 우리나라가 힘센 나라가 될 것이다.
 


본지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세계화추진본부 상임이사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