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세종대왕이 기자회견을 했다면

한글빛 2006. 2. 13. 08:56
세종대왕이 신년기자회견을 했다면?
[시론] 지치고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경제얘기 말고 희망찬 정책내놔야
 
이대로
 
어제 13일 노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을 봤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 때는 가끔 봤는데 근래엔 보지 않다가 마침 시간도 있고 나랏일이 걱정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그런데 국정 전반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고 과제 해결책을 말할 줄 알았는데 경제 이야기뿐이었다. 서민들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걸 깨달은 건 다행이지만 대통령이 할 일이 그것뿐인가 실망스러웠다. 경제 뿐 아니라 교육, 문화, 사회, 외교, 국방, 보건복지 등 다른 쪽도 희망찬 정책을 내세웠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컸다.
 
경제가 해결되려면 다른 분야 문제가 함께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민경제가 좋아지게 한다고 했지만 과연 좋아질지 믿음이 가지 않고 어딘가 허전했다. 다른 대통령 기자회견 때 가끔 가슴이 뿌듯한 희망이 솟던 기분을 느낄 수 없어 안타까웠기에 한마디 한다.
 
수출이 30%나 늘어나고 경제 성장도 5%나 늘어났다는 데 왜 서민들은 살기가 힘든가 제대로 알고 해결책을 찾은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지난해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경제 걱정한 기억밖에 없고 일자리를 수십만 개 늘렸다는데 왜 서민은 죽겠다고 하고 일자리 없는 젊은이가 많은 지 의문이다. 수출해 번 돈이 어디로 간 것인가?  해결책이 서민들 빚을 탕감해주고 학자금 싼 이자로 빌려준다고 하는 데 그러면 서민들 살기가 좋아질까 의심이 간다.
 
빚만 갚아주면 돈벌이가 없어도 잘 살게 될까? 융자받아 영어 조기교육 시키면 살기가 좋아진단 말인가? 지난날 외국인 투자를 그렇게 많이 늘린다고 떠들고 수출 많이 해야 한다더니 그렇게 해서 누가 좋아진 것인가?  의문만 늘어나니 시원한 느낌이 안 든다. 수출이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해도 우리 서민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 같다.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한 기업주와 그들로부터 받은 세금을 쓰는 정치인과 공무원만 혜택이 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가 늘어난다고 하는 데 그 해결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수출품에 들어가는 중요 부속품과 자재를 일본에서 수입하기 때문이라는 데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 왕이 오면 성대하게 대접하겠다는 말만 기억에 남는다.
 
나는 여기서 살기 어려운 사람들 빚을 탕감해주고 생계비를 지원해주고 학자금을 빌려준다는 말보다 기술교육과 기술훈련, 부속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육성에 대한 자세한 지원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교육문제를 많이 고민하고 그에 대한 자세한 문제 파악과 해결점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 가득 찬 이기주의, 출세주의, 사대주의, 이념과 계층 간 갈등에서 오는 혼란과 분열에 대한 대책이 시원하게 나와야 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도 그렇게 많은 데 왜 국민들은 불만이고 살기 힘든지 알 수 없다. 살기는 힘든데 각종 공과금과 세금을 자꾸 올려 걷어서 알뜰하고 값지게 쓰는지 의심나고 궁금하다. 어려운 나라살림에 무슨 행사니 투자니 많이 하는 데 세금이 새지는 않는지 걱정이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엉망진창이다. 기술개발과 부품생산에 꼭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지 묻고 싶다. 땀흘려 일을 잘하는 튼튼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손재주가 있는 사람, 새로운 발명과 제품 생산을 잘 할 기술자를 키우는 교육을 하는 지 의심이 간다. 가족과 회사와 이웃과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키우는 교육을 열심히 하는지 알고 싶다. 어린아이 때부터 조기교육에 엄청난 돈과 힘을 바치는데 그 교육이 어떤 교육인지 알고 싶다. 어른이 되어 별 쓸모도 없는 진학시험공부, 개인 출세공부인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기술, 과학교육과 훈련은 하지 않고 남의 나라말 공부만 기를 쓰고 하고 있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외우기 공부가 최고일 뿐이다. 초등학교까지는 참된 사람, 참된 한국인 되는 기본 국민교육을 하고 중학교 때부턴 일반 교양과 지식, 외국어 공부와 특기를 찾고 앞으로 할 일을 정하게 하고, 고등학교부터는 직업공부와 훈련, 특기 살리기를 하고 대학에선 전문교육과 학문연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정부는 학교에 좋은 시설과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새해에 그런 계획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젊은이 일자리도 문제지만 한참 일할 수 있는 젊은 노인들이 빈둥빈둥 노는 것도 문제다. 또 힘없고 병든 노인을 자식도 푸대접하거나 돈벌이에 돌보기 힘든데 노인 복지시설이나 요양시설이 턱없이 모자라는 것도 문제다. 돈이 있어도 마땅히 지낼 곳도 없고 시설도 없다. 그런 불안도 씻어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을 보면서 정치인과 공무원이 세종대왕이 한 정치를 공부하고 본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종대왕이 가장 먼저 한 게 외침을 다스린 것이다. 왜구와 북쪽 오랑캐 침략으로부터 우리 땅과 백성을 지킨 것이다. 그 다음 국민이 잘 살게 하려고 과학, 음악, 교육, 사회 개혁을 많이 했다. 측우기, 아악정리, 삼강행실도, 법전정리, 역사책정리, 농기계 개발, 우리글자 만들기 들, 수없이 본받을 게 많다. 제 정치노선을 따르는 사람과 관리들을 위한 정치보다 어려운 백성들, 노약자와 범죄자까지 걱정하고 자주 문화를 꽃피웠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신하들을 격려하고 개혁한 세종정치 행태는 지금 대통령이 본받고 따라 할 일이다. 오늘날의 외침은 국토침투나 군사침투보다 문화와 경제, 정신 주권침투인데 그 방비책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꿈과 자긍심과 용기를 심어주고, 학생들에게 과학교육과 기술훈련 잘 시키고, 우리 노래와 우리 말 교육을 통해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빛낼 의욕과 능력을 키우고, 법률문장 쉽게 써서 스스로 법을 잘 지키게 하고, 부모형제와 이웃과 도우며 사이좋게 살게 하는 세상풍조를 키워야 한다. 더불어 함께 잘 살겠다는 홍익인간 정신을 실천하면 된다. 지금 경제, 문화, 국방이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는 안 되는 현실을 안타까이 여기고 풀어갈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세종대왕이 힘들어 만들어 논 글자라도 지키고 제대로 활용하면 된다. 
 
오늘날 나라 문제 해결을 다른 나라나 멀리서 찾지 말고 세종대왕의 정치에서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종대왕이 오늘날 연두기자회견을 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세종대왕은 백성이 살기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조치를 취했을까 생각해 봤다. 그 때도 주위에 강대국이 있었다. 그 때 세종은 강대국 관계를 어떻게 풀어갔을까 생각해봤다.
 
 끝으로 기자들이나 대통령이나 ‘모두발언’ 이라는 한자말을 많이 쓰는 게 마땅치 않았다.  보통  일반인들이 쓰는 “모두 말 하다”에서 ‘모두’란 말과 헷갈려서 쓰지 않는 게 좋다. ‘앞에서 읽은 인사말이나 신년사’라고 하면 더 좋다. 조금 지위가 높다거나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쓰는 데 오늘날 민주, 한글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마인드’ 같은 외국말은 대통령 신년사 문장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검증되다”가 “금정되다”, “투자행위”가 “투기행위”로 잘못 발음되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이 지쳐보이고 자신감이 없어보여 불안했다. 기자도 대통령도 ‘입장’이란 애매모호한 일본 한자말을 많이 쓰는 것도 귀에 거슬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의 김정일 주석을 만났을 때 무심코 영어를 섞어 써서 김 주석이 되물은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마인드’같은 말을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대통령이 온 국민을 상대로 하는 기자회견문에 쓰는 건 좋지 않다. “경제가 대통령 입에서 나오면 참 얼마나 좋겠나”란 말을 들으며 부시 대통령이 미국말을 엉터리로 한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한자말이 뜻이 분명하지 않지만 경제란 낱말의 앞뒤가 잘려나가서 생각이 짧은 국민이나 외국인이 그 말을 듣고 바로 알아들을까 의문이 갔다.
 
대통령도 한 국민이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리가 대단히 중요한 자리이고 말 한마디가 주는 영향이 크기에 행동도 말도 조심해야 한다. 새해 제발 정치를 잘해서 국민들 잘살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여야도 언론도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기에 한 국민으로서 쓴소리를 했다. 앞으로 비서진과 실무 부처에서 정책을 수행하면서 국민의 소리를 많이 귀담아 들어야 하고 오늘날 처지에서 단소리보다 쓴소리가 더 좋을 거 같아 우정어린 충고를 했다. / 본지 고문
 
* 필자는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입니다.
 
 
2005/01/14 [05:07]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