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그림

한글을 목숨처럼 사랑한 외솔 최현배 박사

한글빛 2010. 3. 12. 09:45

'한글이 목숨’, 외솔 최현배의 한글사랑
[우리말글 사랑] 울산에 외솔기념관 개관, 한글붓글씨 작품 전시
 
이대로
외솔 최현배(1894-1970)박사는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1910년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한글을 배운 뒤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어학회를 창립하고 일제 때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들고, 한글 연구와 한글사랑 운동을 했으며, 광복 뒤에는 미국 군정청과 대한민국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었고 한글학회 회장으로 한글을 지키고 빛내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다가 돌아가신 이름난 한글운동가요 한글학자다.
 
▲ 울산 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터에 지어진 외솔기념관     © 이대로

일제 때인 1938년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하는 독립운동을 돕는 국내 기독교인 중심 민족운동단체인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연희전문교수에서 강제 해직되고 옥살이를 한 일이 있고, 1941년 복직되었으나 1942년 한글사전을 만드는 일이 일제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는 일이라는 죄목으로 조선어학회사건을 조작한 일제에 조선어학회 회원 33명과 함께 끌려가 갖은 고문과 옥살이로 돌아가신 분도 있는 데 외솔은 광복이 될 때까지 3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난  독립 운동가이시다. 
  
일제 때에 외솔과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한글을 지키고 갈고 닦지 않았다면 광복이 된 뒤에 우리 말글로 교육을 하고 공문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외솔이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고 한글학회를 잘 이끌고 한글을 잘 지키지 안했다면 오늘날 한글이 이만큼 쓰이고 나라 밖에까지 수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외솔은 온 국민이 고마워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을 우리 겨레의 스승이다.

이번에 울산시 중구청(구청장 조용수)은 이런 숭고한 외솔 업적을 기리고 겨레사랑 한글사랑정신을 본받고 이어가려고 외솔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김철)를 꾸리고 민관이 힘을 모아 외솔 선생이 태어난 집터에 외솔기념관을 짓고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울산시는 기념관에 외솔의 얼이 담긴 유품과 지은 책, 교육과 한글 관련 자료들을 모아 전시할 것인데 이번 기념관 개관 기념으로 한 달 동안 한글붓글씨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나는 이 뜻있는 자리에 일제 때인 1932년에 서울의 한 음식점 주인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방명록 ‘금서집(錦書集)’에 외솔 선생이 ‘한글이 목숨, 최현배’라고 쓴 붓글씨를 기념관 개관식 때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 책을 가지고 있는 김연갑(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님을 찾아 부탁했더니 선뜻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외솔 기념관에 전시하도록 빌려주었다. 참으로 고맙고 기뻤다. 더욱이 뜻있는 일을 하는 나를 믿는다면서 아무런 증서도 없이 가지고 가라고 하니 외솔 선생의 얼이 담긴 붓글씨를 보고 감동한 것에다가 김 이사의 큰마음에 더욱 가슴이 띄고 기뻤다. 그래서 큰절을 하겠다고 하니 “저도 겨레와 우리말을 사랑하고 한글이 빛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화와 아리랑 연구를 하는 사람입니다. 뜻있는 일을 하는 선생님을 믿습니다. 널리 이익이 되는 일을 하시는 데 이렇게라도 돕게 되어 다행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들이 곳곳에 있어서 나라가 이만큼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으로 가슴이 벅찼다.
 
▲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왼쪽)가 공개한 외솔 최현배 선생의 '한글이 목숨'이라는 붓글씨하기로     © 이대로

1932년은 외솔이 연희전문과 이화전문 교수를 할 때이고 조선어학회 회원으로서 한글맞춤법을 만든 때이다. 그리고 민족독립운동 모임인 흥업구락부 활동을 할 때이다. 외솔은 1926년에 겨레를 사랑하고 일으킬 글인‘조선민족갱생의 도’를 신문에 연재했고, 1929년에 우리말본 책을 내었다. 1933년에 조선어학회는 한글맞춤법을 발표했다. 일제가 강제로 이 나라를 먹고 바로 1912년부터 조선어 철자법을 연구하고 1929년에 조선어철자법을 만들 때 심의에 참여한 일이 있었는데 이걸 친일행위라고 보는 이도 있으나 한글을 살리고 제대로 만들기 위해 관여한 것일 뿐이다.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한자만 쓰던 일제 강점기인 1932년에 ‘한글이 목숨’이라고 방명록에 쓴 붓글씨가 얼마나 한글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는 뚜렷한 증거라고 본다. 그 시대에 보통사람이라면 그런 태도와 행동을 할 수 없다.

▲ ‘비단처럼 아름다운 글을 모은 책자’라는 뜻의 ‘금서집’ 표지엔 ‘임신(壬申) 3월’이라고 쓰여 있어 이 방명록이 1932년부터 작성된 것임을     ©이대로
이번에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가 공개하기로 한 ‘금서집’은 1932년부터 1936년까지 5년 동안 한 음식점 주인이 받은 80 여쪽 자리 귀한 문집인데 거의 모두 한문이고, 한글로 쓴 글이 4점, 영문이 2점, 일본글이 2점인데 그 가운데 하나다. ‘한글이 목숨’이라는 내용도 좋지만 글씨도 힘 있고 멋있게 잘 쓴 글씨로서 매우 뜻이 깊은 한글역사 자료다. 김연갑님은 이 문서를 10년 전 인사동 헌책방에서 여기 저기 옮겨 다닐 때 우연히 그 속에서 외솔 붓글씨를 보고 구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외솔 기념관 개관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외솔의 한글사랑정신을 느끼고 본받으라고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이 문서집을 본 한 한글운동가는 “한글세상이 다 된 오늘날까지도 일본처럼 한자를 혼용하는 말글살이를 하게 하려고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외치는 사람들과, 일제 때 자신의 조상은 한글을 위해서 아무 일도 안한 사람이 외솔을 비난하는 데 이 분들이 이 붓글씨를 보고 무슨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아마 그 좋은 한자로 글을 쓰지 않은 바보라고 하던지 또 욕을 할 것이다.”라고 감동스런 글이라고 말한다. 이번에 울산시에 문을 여는 외솔기념관에 많은 학생과 국민이 찾아 외솔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사랑, 한글사랑에 힘쓰길 간절히 비손한다. 아울러 이 기념관은 짓고 문을 열기까지 애쓴 여러분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한다.
  
▲ 외솔이 쓴 한글 붓글씨 옆은 외국인이 1932년 8월 23일에 쓴 것으로 보이는 영문이다.     © 이대로
   
▲ ‘못난이’라는 필명으로 쓴 한글 시와 ‘신생’이란 이가 쓴 한문 붓글씨도 보인다.     © 이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중국 절강성 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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