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7년 전 일이다. 김영삼 정권은 권력을 잡자마자 한자 조기교육과 영어 조기교육을 하겠다고 떠들고 조선일보와 한자파들이 한글을 짓밟으려고 미친사람들처럼 날뛰고 있었다. 나는 한글단체 맨 앞에서 그들의 잘못을 알려주고 막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한자 조기교육은 막았으나 영어 조기교육을 막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조선일보 노조 회보에 전태수기자가 그 문제를 따지는 글을 썼다. 나는 하이텔, 천리안 들 통신에서 그 반대운동을 열심히 했다.
조선일보가 날마다 올린 17번째 글이다. 이 글을 끝으로 연재를 끝냈다.
한자를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고 한자를 혼용해야 도덕성이 높아진다고 떠들었다.
나는 이 글을 하이텔에 올렸는데 조회 수가 1000이 넘어섰다. 그 때 공병우 박사님이 한글기계화운동을 하다가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간 이야기가 조회 수 1000이 가까웠는데 내 글이 더 많아서 공병우 박사님이 칭찬을 해주신 일이 있다. 그 뒤 그 글을 상명대 학교 신문에 올렸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자와 영어 조기교육을 한다고 떠들면서 얼빠진 나라를 만들었다. 그 해엔 바다, 하늘, 땅속 지하철에서까지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리는 겨레말을 더럽히면 국민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나라가 흔들려 망할 것이니 우리 말글을 먼저 사랑하고 잘 가르치자고 건의하고 외쳤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은 듣지 않았다. 그 2년 뒤 진짜 나라가 망했다.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식민지가 되어 기업이 외국인 손에 거의 넘어가고 집을 나와 길에서 잠자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자들이 제 나라 말글을 헌신짝 보듯하며 정치를 한다고 설치니 답답하다.
조선일보가 한자복권운동을 할 때 한글단체는 둥숭동 학술재단 대 강당에서 안호상, 김동길, 백기완, 이진호 님들을 연사로 그 반대 강연회를 열었다. 나는 후배들과 함게 조선노보를 복사해 거리에서 뿌리다가 강연회에 참석했다. 앞 이진오(꽃 단 분) 뒤에 어깨띠를 걸고 있는 이가 나다. 이날 뒤 조선일보는 연재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