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었습니다. 똑 같은 한자도 사람마다 그 풀이가 같지 않아서 혼란스럽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과 일본 문화속에 살았기에 소리가 같은 한자말이 많습니다. 말은 소리입니다. 글은 소리를 글자로 적은 것입니다. 말과 글이 같은 말글살이가 좋습니다. 이른바 언문일치라고 합니다. 오늘날은 소리글자인 한글을 쓰는 시대입니다. 한마디로 언문일치 시대지요. 이 시대 가장 바람직한 말글살이는 우리말을 한글로만 적어도 아무 불편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중국과 일본 지배 속에 살던 찌꺼기를 쓸어 낼 때입니다. 빨리 말 다듬기를 해서 그런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많이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글의 위대함 세종의 위대함.
중국 대륙이 사랑한 역사 고전해설가 이중톈(易中天)이 지은 '사람을 말하다'를 요즘 읽고 있습니다.
짬짬이 읽다 보니 예전의 몰입할 때 보다 속도가 나지 않고 더딥니다.
이 책 '사람을 말하다'를 읽으면서 중국역사의 방대함과 출중한 인물에 대한 놀라움보다 한글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왜 그렇게 한글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지 한번 봐주실레요?.
공자가 말합니다. '가여적도(可與適道) 미가여립(未可與立)' . 함께 도로 나갈 수 있어도 함께 설 수 없다는 뜻인데 이 말을 두고 학자 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번 볼까요. 서로 어떻게 해석했는지.
중국철학가 양보쥔(楊伯峻)은 끝에 나오는 입(立)자를 '성취를 얻음'으로 풀이했고
같은 철학가 리쩌허우(李澤厚)는 '원칙을 견지함'으로 해석했고
중국 역사학자 첸무(錢穆)는 '굳게 서서 변하지 않음' 이라고 풀었습니다.
저자 이중톈은 '끝까지 견지함'이라고 결론을 맺었고요.
설 립(立)자 하나를 두고 이렇게 풀이가 다양합니다. 그러니 한자문화에서는 원 저자의 본의미를 파악하기위한 끊임없는 해석 충돌이 일어납니다.
한자에 비해 한글은 끝 맺음이 뚜렷합니다.
원 저자가 처음 해석한 것 처럼 '함께 도(道)로 나갈 수 있어도 함께 설수 없다'라고 쓰여 있다면 이런 다양한 재 해석이 필요없게 됩니다.
더 나아가 '함께 도로 나갈 수 있어도 함께 성취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후세에 재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 나겠습니까?
한글은 끝말이 분명하기때문에 의미에 따른 혼란을 야기하지 않습니다.
'하려한다. 한다. 했다. 했을 것이다'
어때요?.
한글의 우수성이 입증되지 않나요?
다만 한글은 소리글자 이기때문에 세상의 모든 소리를 문자(한글)로 적을 수 있는데 비해 뜻 글자가 아니라서 한글만 써 놓게 되면 의미 전달이 쉽게 되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기수~'라며 말을 하려다 말고 끊게 된다면 어떤 것이 연상되세요.
몇 회 졸업생, 깃발 들고 가는 사람, 말을 모는 사람, 전투기 앞머리 등등이 떠 오르겠죠.
한글 한자 병용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을 해봐야 겠습니다.
어째튼 한자가 세상의 시작이고 끝이었던 조선에서 혁명적으로 한자의 틀을 깨고 나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대왕으로 보이는 까닭입니다.
태풍 전 고요한 아침 파란 하늘. 비행기 한대가 푸르고 푸른 바다를 유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