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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26일 Facebook 이야기

한글빛 2013. 7. 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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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CTV 기자가 KFC, 맥도날드, 전궁푸의 얼음을 채취해 세균검사를 실시한 결과, KFC와 전궁푸의 얼음이 변기물보다 많은 박테리아를 함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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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25일 제6차 남북 당국 실무회담이 끝내 결렬로 돌아가자 북측 대표단이 돌발 행동을 벌였다. 13층 회담장에서 협상에 임하던 북측 수석대표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총국 부총국장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측 기자단 머물던 4층에서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북측 대표단은 이와 함께 3~4차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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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제6차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이 결렬된 25일 북측 수석대표 박철수 부총국장이 돌연 우리 측 기자실에서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배포한 뒤 단상에서 낭독했다. 사진은 박 부총국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 2013.07.25.phot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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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 교수님 말씀은 옳고 바른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수들은 그런 생각을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안 되고, 제 나라 얼말글도 더럽히는 일입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런 잘못을 그대로 보고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자라는 나라 국민들이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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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나라에선 학교와 교육부와 교육청은 있으나마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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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수강료는 200만 원이에요. 합격하면 200만 원 더 내고요. 합격한 뒤 벌 돈 생각하면 이 돈은 크지 않은 거죠."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딩 6층. 사무실은 얼핏 보기에 작은 학원 같았다. 강의실은 고작 2개뿐이었다. 강의실 내부에는 작은 책상 12개와 6mm 카메라, 작은 스피커가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취업 컨설팅업체 대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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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부터 세종대왕을 이렇게 모시면 안 된다고 외치고 건의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는 아무 말이 없다. 우리 문화문명을 가장 잘 빛내고 잘 살게 해준 분을 이렇게 내팽개치고 문화융성 어쩌고 하는 정치인들이 한심하다.
    종로구 통의동 길가에 이런 표지석이 있으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을 모르고 있어 정부에 그러면 안 된다고 건의했으나 듣지 않아서 서울시의회에 건의했다.  
    세종대왕은 가장 자랑스런 우리 겨레의 스승입니다.그런데 그 분이 태어난 곳을 알리는 신문지만한 표지석만 길가에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세종대왕보다 못한 위인도 그 태어난 곳을 꾸미고 자랑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우리는 아닙니다. 부끄럽고 한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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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대문구에서 9일 전에 쓴 알림글에 띄어쓰기가 틀려서 얼숲에 그 찍그림을 올린 일이 있는데 오늘 알림글은 바로 썼군요. 그런데 [폭우로 인한]이란 말은 일본 말투입니다. [큰비 때문에] 또는 [큰비가 와서]로 하면 쉬운 우리말이 되는 데 아쉽습니다.
  • 오늘 이 자리를 보니 쓰레기를 자루에 담아놓았더군요. 깨끗하게 치우고 더 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버리지 말라고 써논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마음보를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서울 모습. 
     
    이 서울에 학교 선생도 살고 
    교육청 직원도 살고, 교육부장관을 비낸 이도 살고 
    국회의원과 신문 기자도 살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팻말이 있어도 
    자꾸 쓰레기를 버린다. 한자도 영어로 써야 
    할 것인가?  
     
    난 이 모습을 보면서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더 세게 가르치고 
    더 많이 배우자는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이 나라는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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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주일 전에 쓰레기가 쌓였던 그 자리를 오늘 보니 쓰레기를 자루에 담아놓았더군요. 이제 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버리지 말라고 써논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마음보를 알 수 없습니다.
  • 놀랍습니다. 참 좋습니다. 과학 기술을 빛내는 일이 우리가 힘써야 할 일입니다.
    손가락 PC, 전정한 의미의 개인용 컴퓨터입니다. 모든 초중고생들이, 아니 나아가 전국민이 하나씩 갖도록 합시다. 좋은 앱도 올리고, 소프트웨어 개밣환경도 올려서 학생들이 이를 이용하여 개발하도록. 전세계에도 우리 소프트웨어를 올려서 공급합시다. 100만대를 1만원 수준에 공급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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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이 1914년 7월 27일 주시경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입니다. 무더운 여름 배탈이 나서 병원에 갔는데 일본인 의사가 배탈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조금 뒤 일본 순사와 의사가 소곤소곤하더니 의사가 주사를 놓았고 조금 뒤 주시경 선생은 입에 거품을 물고 몸부림을 치다가 돌아가셨답니다. 왜놈 의사와 순사가 의심이 되지만 누구에게 말도 못했답니다. 주시경 스승님, 하늘나라에서는 편안하소서. 저는 지금 한글학회 사무실에서 님의 얼굴그림을 보면서 님께 절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꼭 님이 못 이루신 것을 이루고 이 땅을 떠날 것을 다짐합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리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에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주시경 선생 한나라말 중- 
     
    <한글 근대화의 선구자 주시경> 
     
    4남 2녀 가운데 둘째였던 주시경 선생은 중부(仲父)인 주학만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한학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 무렵부터 17살 때까지 서당에 다니며 한문학을 배운 주시경 선생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울 때 선생님이 한문을 한문음대로 읽어 줄 때는 아이들이 알아듣지를 못 해 그대로 앉아 있다가 선생님이 한문의 뜻을 우리말로 풀어준 뒤에야 비로소 고개를 끄떡이는 모습을 보고, ‘어려운 한문만 배우려고 애쓸 게 아니라, 쉬운 우리글을 더 잘 쓰도록 갈고 닦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말 연구에 뜻을 세운 주시경 선생은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고, 본격적으로 국어학을 연구합니다. 이후 독립협회에 참가하여 국문으로 발행한 독립신문의 국문담당 조필로 참가하면서 신문을 통한 국문과 새로운 사상을 알리는데 앞장섭니다. 그러다가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투옥당하는 고초도 겪지만, 주시경 선생의 국어연구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독립협회가 해산된 이후 향리에 은거하면서도 국어 연구에 매진하여 1898년 12월에는 그간의 연구를 모은 <대한국어문법>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한글을 더 보급하고 교육시키는데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선생은 1907년부터 상동 청년학원에 국어강습소를 설립하여 청소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이 밖에도 선생은 공옥, 이화, 숙명, 중앙, 경신 등 20여 개의 각 급 학교에서 국어는 물론 우리 역사와 지리 등을 강의하였습니다. 여러 학교에서 늘 책 보따리를 들고 강의를 위해 동분서주한 선생. 그 때문에 선생은 ‘주보따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지요. 이렇게 선생은 청소년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니며 우리말과 글, 그리고 역사와 지리 등을 교육하여 민족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자주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나라를 잃었는데 언어까지 잃게 되면 민족 정체성을 상실함은 물론, 영원히 독립을 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한 선생은 더욱더 한글의 연구와 교육에 매진함으로써 독립의 기초를 다져 놓았습니다. 경술국치 이후에도 [국어사전] 편찬 작업에 착수하고, 또 1914년에 [말의 소리]를 간행하여 국어음운학의 과학적 기초를 확립한 것 등 수많은 노력을 하였지요. 이런 끊임없는 연구로 국어학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근대 국어학에서 국어 음운 연구와 국어 문법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시경 선생은 안타깝게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국어학 연구에 남긴 발자취는 컸습니다.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라고 하면서 언문이라 천대받던 우리글을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로 갈고 닦아 한글의 대중화, 근대화에 앞장선 주시경 선생은 세종대왕의 정신을 이어간 국어 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도 그런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80년에 건국훈장 대통령 장을 추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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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뜻벗님, 범범기념사업회는 왜 그렇게 한자를 좋아하지요? 내가 볼 때 김신 회장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 분 쉬라고 하던지 그 잘못을 알려주어야 할 거 같아요. 백범이 살았다면 그렇게 했을 까요? 처음 모임 만들 떼도 이오덕 선생님에게 발기인 참여하라면서 온통 사람들 이름을 한자로 써 보내서 당신은 그런 모임에 이름 올리기 싫다고 한 일이 있어요.어제 온 소식지 밮아보니 식순 까지도 한자로 썼더군요. 김리박 선생은 일본에서 서울 올 때마다 그곳에 꽃을 사가지고 가서 절을 하고 갑니다. 그런데...
    koya.egreennews.com  
    [그린경제=이한꽃 기자] 통일로에서 의정부 쪽으로 가는 길목에는 벽제관 옛터가 있다."옛터"하면 될 것을 "고지(古址)"라고 쓰는 버릇은"한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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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요즘 전두환 전 대통령 관련 보도를 보면서 지난 대통령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 의문이 생기더군요. 혹시 전두환씨로부터 받은 것이 있어.. http://durl.me/5fjm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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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만원, 10만원, 1000원. 통장 세 개 은행 채권 도합 29만1000원. 보유 현금은 전무. 여기에 일부 부동산, 예술품, 악기, 골동품 등 추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03년 4월 재산 심리 재판 과정에서 신고한 전 재산이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 낼 돈을 정치자금으로 다 써버려 더는 돈이 없다. 주위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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