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국어진흥운동은 ?
- 기존 국어운동 역사와 평가 토론 -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리대로
우리 겨레는 5000년 역사를 가진 겨레라고 합니다. 그러니 적어도 우리말은 5000년 전부터 있었을 것이나 우리 글자가 없어서 2000여 년 전부터 중국 한자를 썼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구려가 가장 먼저 한자와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뒤 백제, 그 다음 신라가 가장 뒤늦게 한자와 중국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중국 당나라와 손잡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트리고 중국 한문과 문화에 철저하게 빠지게 됩니다. 말은 우리말을 하지만 글자생활은 중국 한문으로 하게 됩니다. 땅이름, 관직 이름, 사람이름까지 중국식으로 바뀝니다. 신라 경덕왕(742-765재위) 때가 그 전성기입니다. 그래서 중국 한문을 쓰던 그 때부터 설총이 이두를 만들어 썼다고 하는데 그 때부터 우리 나랏말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국어진흥운동이란 말을 국어독립운동이나 우리말 바로 쓰고 빛내기 운동이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국어독립운동은 1300여 년 전부터 있었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김슬옹 박사가 국어운동을 아래처럼 분류한 것은 잘한 일인데 그 앞에 삼국시대 설총이 한 국어운동과 조선시대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일과 김만중이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운동을 추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가 국어운동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점을 적어봅니다.
(1) 국어 운동 태생기(1443-1454): 절대적 언어 모순을 해결한 문자혁명기
(2) 국어 운동 잠복기(1454- 1894): 일부 국어 정책만 지속
(3) 근대적 국어 운동 전개기(1894-1910)
(4) 항일투쟁으로서의 국어 운동기(1910-1945)
(5) 국권 회복 차원의 국어 운동기(1945-1960)
(6) 다양한 목적으로서의 국어 운동기(1960-현재)
1. 첫 국어독립운동(국어진흥운동)을 통일 신라 때 설총이 이두식 글쓰기를 한 것이 처음 운동이다. 설총은 원효대사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신라 경덕왕 때 사람으로서 한문도 많이 알고 중국도 많이 오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한자를 쓰더라도 우리식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한문이 너무 우리말을 죽게 만드니 이 움직임이 일었고, 이 이두식 글쓰기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2. 진짜 국어독립운동은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한글(훈민정음)을 만든 것입니다. 고려시대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역사상 나타난 것이 없습니다. 아쉬운 일인데 한문에 푹 빠진 시대인가 합니다. 그리고 조선 4대 임금인 세종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한글을 만들었는데 그 뒤 조선시대 450여 년 동안 잘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산군 때엔 짓밟혔습니다.
3. 그리고 조선시대 정철과 윤선도들이 우리 말글로 시를 짓고 허균과 김만중 들이 소설을 쓴 일과, 최세진과 여러 사람이 훈민정음을 연구한 일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김만중은 정철과 윤선도처럼 우리말을 글을 쓰는 일은 참 잘한 일이고 그래야 우리 국어와 문학이 산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김만중은 작가이면서 국어 운동가였습니다.
4. 구한말 주시경 선생을 중심으로 한 개화기 한글 살리기 운동은 세종대왕 다음으로 중대한 국어독립운동이었습니다. 이 국어운동은 한문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운동이었고, 한글을 가르치고 알리는 운동이었습니다. 말과 글이 하나로 된 말글일치를 시작하고 토박이말을 살려 쓴 주시경 선생의 국어독립운동과 국어교육은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말글살이를 할 수 있게 한 밑바탕이고 밑거름이었습니다. 우리 말글로 독립신문이란 신문을 만들고 말모이를 만들고 국어문법을 만든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고 잘한 일입니다.
5. 왜정 때는 일본말로부터 한말글(우리 말글)을 지키고 갈고 닦는 일이었습니다. 주시경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학회를 만들고 한글맞춤법과 표준말 정하기, 로마자 표기법 만들기, 우리 말광 만들기를 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함께 한글보급운동도 했습니다. 그 때 우리말은 ‘한말’, 우리 글자는 ‘한글’이라고 불렀습니다. 한글날을 만들고 ‘한글’이란 학술지를 내면서 ‘한글’이란 이름은 뿌리를 내렸으나 ‘한말’이란 이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1942년 왜놈들은 이 조선어학회 분들을 감옥으로 끌러가서 고문에 목숨까지 잃은 분도 있고 광복될 때까지 옥살이를 시켰습니다. 이분 들 덕으로 광복 뒤에 한문이나 일본글로 공문서와 교과서를 만들지 않고 우리 한말글로 말글살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6. 조선어학회는 광복 뒤에 왜놈들이 못쓰게 한 우리말 도로 찾아 쓰기 운동을 하면서 우리 말글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국어선생도 양성하고 한말글로 교과서도 만듭니다. 그리고 공문서도 한글로만 쓰게 하는 한글전용법도 제정함으로서 한말글 세상이 되는 기초를 닥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정 때 일본 국민으로 태어나 일본어를 국어로, 일본 역사를 국사로 배우고 자란 일제 지식인들이 광복 뒤 이 나라의 학자,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기업인으로서 한말글 세상이 되는 것을 가로 막습니다.
7. 그래서 1960 년대부터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세력과 한말글로만 말글살이를 하자는 한말글독립운동 세력이 일어나 맞서 싸우게 됩니다. 이승만 정권 때까지는 이 세력이 표면에 나서지 않았으나 1961년 5.16 군사혁명 세력(김종필)이 정권을 잡은 뒤에 한일회담을 강행하고 한글만으로 만들던 교과서를 일본처럼 한자혼용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본식 한자말을 되살렸습니다.
8. 그동안 조선어학회(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학자와 문인들이 한말글 연구도 하고 한말글 운동을 했으나 1967년 국어운동대학생회라는 민간 국어독립운가들이 나오고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펴겠다는 발표가 나옵니다. 그러니 1989년에 경성제국대학 조선어과 출신인 이희승, 이숭녕들이 중심이 된 어문회란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단체가 등장합니다. 이때부터 한글학회와 국어운동대학생회 중심으로 뭉친 한글단체와 한자혼용단체가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8. 이른바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뭉친 한글전용 운동은 정부가 주도하는 국어순화운동으로 바뀝니다. 한자혼용으로 만들던 교과서는 다시 한글로만 만듭니다. 그러나 한자혼용 세력은 학자와 친일 기업인과 언론인들의 도움을 받아 더 힘이 세지고 한글로만 만드는 교과서에 일본식 한자 용어를 계속 많이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그 한자말을 이해하기 쉽고 모든 교육이 제대로 된다고 한자조기교육을 주장합니다.
9. 그러나 셈틀로 글을 쓰는 시대가 되면서 한글과 셈틀이 잘 어울리는 훌륭한 글자임이 증명되면서 신문도 한글로만 모두 나오게 되고 한글세상이 됩니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이 갑자기 세계화 바람을 일으키면서 영어 조기교육을 시작하게 되고, 나라살림을 국제 투기자금의 손에 들어가면서 영어 섬기기 새바람이 일어나 우리 한말글이 바람 앞의 등불이 됩니다. 우리 말글살이가 영어 잡탕 말글살이가 되어 또 다른 국어독립운동으로 전개됩니다.
10. 그렇지만 한글이 매우 훌륭하고 국어독립운동 세력이 애씀으로서 우리말을 한글로 표기하는 세상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어서 국민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그 바탕에서 우리 말꽃이 꽃피어 한류라는 이름으로 나라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 밖에서는 우리 한말글을 배우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나라 안에서는 제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우러러보고 영어 교육과 한자 교육에는 엄청난 돈을 들이면서 우리 국어교육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더욱이 1300여 년 전에 통일 신라가 중국 한문으로 땅 이름과 사람이름, 관직을 짓듯이 영문으로 회사와 상품 이름, 간판을 마구 바꾸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일입니다. 이제 세계에서 으뜸인 우리 글자 한글 잘 이용할 연구와 노력과 운동을 해야겠습니다. 한글로 외국말도 적어 공부하고 음성인식 셈틀과 기계로 자동통번역을 하는 연구와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국어가 진흥되고 한말글이 독립합니다. 일본 한자말과 영어 전문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셈틀로 우리 말글을 적는 자판과 코드 표준을 한글의 장점과 특징을 살린 세벌식 자판, 조합형 코드로 바꾸고 남북과 중국 동포들이 함께 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글규범을 통일하고 남북 언론과 말글이 자유롭게 통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전담 국가기구도 만들고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말이 통해야 마음이 통하고 통일이 빨리 됩니다. 이 일은 우리 민족 생존 운동이고 우리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인류 문화문명발전에도 이바지하는 일입니다. 한글은 다양한 글꼴을 만들어 쓸 수 있습니다. 글꼴 연구와 발전에도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과 투자가 없다는 것은 한심하고 부끄럽습니다. 한글을 만들고 지킨 세종대왕과 선열들께 죄송합니다.
끝으로 지난날 개화기부터 오늘날까지 치열하게 한 한글전용운동이나 국어순화운동을 단순한 애국운동과 감정운동으로 볼 것이 아니고 처절한 겨레 생존운동이었고 자주문화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국어진흥운동이란 용어를 쓰기보다 “한말글 빛내기운동, 쉽고 바른 우리말 쓰기 운동”으로 용어도 바꿔 쓰고 그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힙니다. 우리 한말글이 바로 설 때에 이 겨레와 나라도 바로 서고 빛이 납니다. 학자와 정치인, 공무원들이 우리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섬기는 버릇을 고치는 의식개혁운동이 시급합니다.
경력: 1967년 동국대 국어운동대학생회 초대 회장. 1972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초대회장. 2003년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추진위원회 사무총장, 2010년 한글박물관건립자문위원회 운영위원장, 2012년 한글날공휴일제정범국민연합 상임대표. 전 중국 절강월수외대 한국어교 교수, 현재 한말글문화협회 대표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박물관개관준비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