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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때 축문도 한글로 쓰자

한글빛 2013. 12. 28. 16:59

[이대로의 한글사랑] 제사 때 축문도 우리 한말글로 짓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이대로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우리 글자가 없어서 중국 한자를 빌어서 한문으로 말글살이를 했다. 공문서와 교과서는 말할 것이 없고, 일상생활에서도 한문이었다. 그 가운데 제사 때 축문이 있다. 사람 이름도 한문이 아니면 못 짓는 줄 알았으나 이제 우리 한말글로도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조상들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 축문은 중국처럼 한문으로만 써야 하는 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제 우리 한말글로 짓자.


우리는 입으로는 한글은 훌륭한 글자라고 하는데 아직 제대로 써 먹지 않고 있다. 아무리 좋은 보석도 잘 이용할 때 그 빛이 난다. 금강석도 땅속에 있으면 그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캐내어 갈고 닦아 다이아몬드 반지나 목걸이들을 만들어 쓸 때 그 빛이 난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글로 공문서도 쓰고 교과서도 만들었기에 오늘날 그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수천 년 동안 한문만 쓰던 버릇이 곳곳에 그대로 있어 한글이 제 빛을 다 내지 못하고 있다.


제사 때 쓰는 지방과 축문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축문은 한문으로만 써야 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글자가 없어서 중국에서 하는 대로 한문으로 오랫동안 축문을 쓰다 보니 그게 뿌리를 깊게 내렸을 뿐이다. 오늘날 한문이 불편함을 깨달은 분들은 우리 한말글로 축문을 짓고 있다. 나도 우리 집에서 지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사는 우리 한말글로 축문을 지어 읽고 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과 함께 지내는 시제나 다른 제사 때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제사 때 한문으로 쓰는 축문을 보자. “維 歲次 癸巳 十二月 壬申朔 初三日 甲戌 孝子 000 敢昭告于 顯考學生府君 歲序遷易 顯考 諱日復臨 追遠 感時 昊天罔極 謹以 淸酌庶羞 恭伸奠獻 尙饗”이라고 쓰고 “유 세차 계사 십이월 임신삭 초삼일 갑술 효자 000 감소고우 현고학생부군 세서천역 현고 휘일부임 추원감시 호천망극 근이 청작서수 공신전헌 상향”이라고 읽는다. 그런데 오늘날 이 축문을 잘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뜻을 쉽게 우리 말글로 풀어보면 “음력 계사년 12월 초삼일 아들 000은 아버지께 아룁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 해가 바뀌어서 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이해 지난날을 생각하니 아버지 은혜가 하늘같이 크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에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을 정성껏 차려놓고 공손히 제사를 받들어 드리오니 그 마음을 살펴 주시옵소서.”이다.


왜 한문으로 축문을 짓고 그 글자 소리대로 읽으면 무슨 뜻인지 모를까? 우리 말글이 아니고 중국 말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우리 글자가 없어 중국 한문 말글살이를 하는 조선시대가 아니고 우리 한글이 있어 우리 한말글로 말글살이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제사 때 축문도 우리 한말글로 쓰고 읽어야 한다. 그래야 부모나 조상을 생각하고 기리는 마음과 느낌이 제대로 든다.


“유 세차 계사 십이월 임신삭 초삼일 갑술”이란 말은 음력을 한문 간지로 쓴 것인데 오늘날 잘 쓰지 않는 말이라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오늘날 말로 바꾸면 “2013년 12월 3일”이다. ‘유세차’란 말은 한문으로 짓는 축문 첫머리에 형식으로 쓰는 말로, “간지를 따라서 정한 해로 말하면”이란 말이다. 오늘날은 음력을 쓰지 않으니 젊은이들은 더욱 무슨 말인지 모른다. 할머니나 그 위 조상들 축문 양식은 또 다르기에 거의 모든 이들이 견본을 보고 베껴서 축문을 쓰고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나 많이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중국이나 일본 말글에 길든 이들이 우리 말글로 축문을 쓰면 안 되는 줄 알고 있다. 어리석고 답답한 일이다. 이제 나도 70이 가까우니 집안에 나보다 나이 든 어른이 많지 않다. 내년부터는 내 가까운 조상 시제 때부터 우리 한말글로 축문을 짓고 읽을 생각이다. 아직 내가 할 일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