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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대로 발표 1. = 왜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써야 하나?

한글빛 2015. 1. 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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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가

- ‘門化光’은 죽은 현판이고 ‘광화문’은 살아있는 현판이기 때문이다. -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차례>

 

[1] 머리말   2

   1. 광화문과 그 현판의 역사  ------------------------------------------     2

   2. 2005년 한글현판을 뗀다는 이유부터 잘못되었다.  5

        3.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결정 과정과 절차도 잘못되었다.  6

        4.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다. 마침내 국민에게 무릎을 꿇다.  6

        5. 1968년부터 걸렸던 한글현판을 뗀 일은 역사 파괴다. 7

 

[2] 군색한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장의 말을 따진다  8

        1. 시멘트로 지은 민속박물관과 영문 간판을 단 찻집은 경복궁 성격에 어울리나?  9

        2. 한글현판이 군사독재정치 유물이 아니라, 민본정치 상징이고 표본이다.   10

        3. 시멘트로 지은 광화문도 한 시대의 역사요 문화재다. 10

        4. 문화재 복원은 처음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잘못이다.  11

        5. 120년 전 ‘門恩迎’을 부수고 ‘독립문’을 세운 것은 새 문화 창조였다. 12

        6. 한국문화체험관인 ‘海隣館(해린관)’을 ‘한국의 집’으로 바꾸다. 13

        7. 국회는 외국인 맞이할 한옥 문패를 ‘允中齋’로 지었다가 ‘사랑재’로 바꿨다.  14

        8. 기와집에 한자문패만 달면 문화재복원인가? 15

 

[3] 왜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가 17

        1. 오늘날 지은 광화문은 새로운 문화재 창조물이다.  17

        2. 한글 현판이 한자현판보다 천 배 가치가 더 있다.  18

        3. ‘門化光’은 죽은 현판이고 ‘광화문’은 살아 있는 현판이다.  18

        4. 문화재를 민족 자존심과 국가 이익에 활용하는 중국을 보자  19

        5. 서울시가 광화문 일대를 한글문화 관광지로 만들고 있다.  20

        6. 광화문은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이고 이 나라 얼굴이다.  21

        7. 한자현판이 갈라진 것은 한글로 바꾸라는 하늘의 가르침이다.   22

        8. 사대주의를 씻어내고 자주문화를 꽃피울 때이다.  23

       

[4] 마무리  24

 

 

[1] 머리말

정부는 2010년 8월15일 광복절에 광화문 현판을 원형으로 복원한다면서 1968년부터 40여 년 동안 걸려있던 한글현판을 떼고, 고종 때 훈련대장 임태영이 ‘門化光’이라 쓴 흐릿한 한자현판 사진을 일본에서 구해 와 디지털 복제한 뒤 ‘쌍구모본’ 방식으로 먹칠해서 달았다. ‘쌍구모본’ 방식이란, 큰 글씨의 획과 윤곽을 가는 선으로 본을 뜬 뒤 그 공간을 색칠하는 방식이다. 불타다 남은 원형 현판 조각이나 설계도, 뚜렷한 사진이라도 보고 이 방식으로 만들었다면 몰라도 윤곽도 잘 보이지 않는 조그만 사진을 보고 만든 이 현판은 제대로 원형을 복원한 것이 아닌 일종의 모조품에 불과하다. 더욱이 고종 때엔 ‘門化光’이란 그 현판을 달고 얼마 안 되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재수 없는 현판이다.

 이렇듯 슬프고 불행한 역사가 있는 현판을 본떠서 만든 모조품을 걸었으나  달도 안 되어 그 현판이 금이 갔다. 우리 겨레의 자존심과 자긍심은 말할 것이 없고, 모처럼 피어오르는 자주문화 꽃이 찢긴 꼴이다. 민중의 꿈과 목소리를 외면하고 잘못된 생각에서 무리하게 한글현판을 떼려고 서두르니 하늘에 계신 조상들이 노한 걸로 보인다.

이제 새 문화재청장이 민주주의 시대에 나라임자들의 의견을 듣고 다시 만들겠다니 고맙다. 발표자는 광화문 역사와 지금 한자현판을 걸기까지 발자취를 살펴보고 어째서 한자현판을 단 것이 잘못된 것인지, 왜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걸어야 좋은지 밝히고자 한다.

 

1. 광화문과 그 현판의 역사.

 

‘광화문’은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되어 정도전(鄭道傳)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이름을 붙였고 오문(午門)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425년(세종 7년)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광화문 앞으로는 궐외각사인 이조(吏曹)·호조(戶曹)·예조(禮)·병조(兵曹)·형조(刑曹)·공조(工曹) 육조의 관아들이 늘어서 있었고 이를 육조거리라고 불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270여 년 동안 중건되지 못하다가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할 때 광화문도 다시 지었다. 이러한 광화문을 한일병합 후 1927년 조선총독부가 해체하여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에 이전시켰고, 6·25전쟁 때 폭격으로 불타 없어졌다. 1968년에 복원되었으나 시멘트로 지었다고 2007년에 문화재청이 때려 부수고 2010년에 다시 지었다.1)

 

세종대왕은 남쪽 정문인 오문에 튼튼하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과 꿈을 담아 ‘광화문’이란 새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는 국방, 경제, 문화, 과학을 발전시키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었다. 그 많은 업적 가운데 세계에서 으뜸가는 우리 글자, 한글을 만든 것은 가장 잘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광화문은 세종대왕이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뜻과 꿈이 담긴 이름이다. 그 뜻과 꿈이 식으면 나라도 흔들리고 광화문이 무너지거나 불탔다. 그 세종의 뜻이 뜨거울 때마다 다시 짓고 새 현판을 단 것임을 알 수 있다. 세종 때도, 고종 때도, 박정희 정권 때도 그렇다. 또 광화문은 우리 겨레에게 지난 600해 동안에 있었던 희망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고 그 현판은 세종대왕 정신과 업적이 서린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세종 뒤에도 한글을 잘 이용하고 세종의 정신과 업적을 잘 되살렸다면 튼튼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고, 외적이 침략해도 막아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해서 두 번이나 왜놈들에게 광화문이 부서지고 불탔으며, 6.25 전쟁과 최근 정치 다툼이란 내란에 두 번이나 현판이 수난을 당했다. 남북이 갈려서 이념과 사상 전쟁을 한 것도, 최근에 정치 다툼에 한글현판이 수난을 당한 것도 세종 정신과 업적을 이어가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들 강대국을 섬기는 사대주의 사상과 그 찌꺼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참으로 부끄럽고 가슴이 아픈 일이다.  

 

일제는 이 땅을 빼앗고 광화문을 위 사진처럼 더럽혔다. 경복궁 안에 식민통치 총독부 건물을 짓고 광화문까지 없애려고 했으나 반대가 많아 건춘문 쪽으로 옮겼다. 6.25 전쟁 때 광화문과 그 현판도 불타서 없어졌다. 1968년 대통령 박정희는 세종의 정신과 업적을 되살리고 한글을 빛내어 다시 튼튼한 나라,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기 싫은 일제 총독부 건물 앞에 광화문을 다시 짓고 한글현판을 달았다. 그리고 홍릉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 과학기술원, 국방연구소, 임업시험장들을 세우고 한글 살리기 정책을 폈으며 민둥산에 나무도 심고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다. 모두 세종의 정신과 업적을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 광화문 수난: 2011년 덕수궁 서울시청 별관 앞길에 전시된 서울 역사 사진 .

그런데 갑자기 2005년 1월 23일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광화문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로 바꿔단다고 했다. 그것도 화성으로 천도하려고 했던 정조대왕의 한자 글씨체로 말이다. 그때부터 한글단체와 많은 시민이 반대했다.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동기와 이유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행위 불만과 한글을 우습게 여기고 한자를 더 우러러보는 의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글현판이 걸리게 된 역사는 말할 것이 없고, 그 의미와 가치를 모르거나 무시하고 문화재 복원 원칙이라는 명분만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이비 문화재 전문가다운 결정이었다.  

그 결정은 겨레와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 일이이기 때문에 한글단체는 끈질기고 강력하게 반대 투쟁을 했다. 1968년 광화문을 다시 짓고 한글현판을 단 것이 세종의 정신과 업적을 되살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 뒤 한글 세상이 되어 온 나라임자들이 글을 읽고 쓰게 되어 똑똑해졌다.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가 불꽃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그걸 모르고 한글현판을 뗀다니 기가 막혔다. 100% 원형 복원은 아니고, 다시 짓는 것이니 중건이라고 해야 옳은데 ‘쌍구모본식 원형 복원’이란 어려운 말로 국민을 속였다.


6.25 때 폭격으로 불타 석축만 남은 광화문: 한국어정보학회 학술지24호 자료.


▲ 1968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새로 지은 광화문과 거기 걸린 한글현판.

 

저 광화문을 다시 지을 때도 한글현판을 달 때도 어느 누구하나 반대하거나 잘못이라고 말한 것을 들은 일이 없다. 무엇 때문에 복원을 했으며 왜 시멘트로 지었으며 어째서 한글현판을 달았느냐고 따진 것도 본 일이 없다. 모두 좋아했다. 저 광화문을 세우고 한글현판을 단 뒤에 우리 자주문화가 싹트고 나라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저 아름답고 튼튼한 광화문을 때려 부수고 한자현판을 달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저 광화문과 한글현판이 위대한 새 문화재임을 모르는 정치꾼들과 사이비 문화재 전문가들이다.

광화문 한글현판은 그 상징과 의미가 남다른데 문화재위원 몇 사람 생각으로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달아 모처럼 피어오르는 자주문화 꽃을 짓밟았다. 어떤 이는 한글 단체가 한글현판을 떼기로 하기 전에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반대하느냐고 말한다. 한글 단체는 2005년 초부터 지난 7년 동안 정부에 건의하고 언론을 통해서 그 잘못을 알렸다. 기자회견과 시위를 수백 번이나 했다. 왜 한자현판을 반대하는지 그동안 일을 하나하나 밝힌다.


▲ 2007년 문화재청이 부순 1968년에 세운 광화문 잔해. 서울역사박물관 뜰에 있음.

2. 2005년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이유부터 잘못되었다.

 

2005년 1월 23일 문화재청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현판을 떼고 정조글씨체로 바꿀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유 청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개혁군주 정조를 닮았다고 말한 일이 있으며, 한글현판을 볼 때마다 박 대통령의 군사독재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떠오른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충사 한글현판도 떼겠다고 말했다. 한글현판을 뗀다는 이유가 개인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정조는 화성으로 천도하려 한 임금이다. 그래서 한글 단체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잘못임을 밝히고 반대했다.


▲ 문화재청이 2005년 1월 23일에 내놓은 정조 글씨체 <연합뉴스>가 보도.

 

   

그 보도가 나온 다음 날인 1월 25일 한 신문은 많은 시민들과 전문가의 반대 목소리를 보도했다. 그 때(데일리안 2005-01-25 보도) 이태진 서울대 교수(조선시대근대사)는 “박 전 대통령의 글씨도 그것으로 역사”라며 반대했다. 이 교수는 “일제가 광화문을 헐려다 반대에 부딪히니까 1926년 광화문을 경복궁 동북쪽(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옮겼다”면서 “그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은 것이 박 전 대통령이고 1968년 비록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했지만 그것도 역사”라고 말했다. 역사학자로서 바른 견해를 제시했다.

1월 26일 유 청장의 친구인 김형오 의원이 유 청장에게 오히려 역사 훼손이고 파손이라며 잘못임을 알리는 우정 어린 공개편지를 보냈으며, 온양 현충사가 있는 지역구 출신 복기왕 의원도 유 청장에게 항의 편지를 썼다.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충고하고 반대했다.

그리고 한글 단체는 1월 26일에 전국에서 모인 학자들이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성명서를 낸 뒤 ‘한글현판 지키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1월 29일에는 국민과 문화재청에 “광화문 한글현판은 군사독재 유산이 아니다. 한글단체가 끈질기게 한글을 살리고 빛내자는 주장에서 나온 한글 역사의 유적이다. 또한 광화문은 대한민국 얼굴이고 그곳에 한자현판을 다는 것은 안 되며 박 대통령 글씨가 싫다면 세종 때 한글체로 달자”는 공개편지도 발표했다.2)

         

3.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결정 과정과 절차도 잘못되었다.

 

문화재청은 이 발표를 하기 전에 공청회도 하고 논의를 했다고 하나 한글 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시민 그 누구에게도 의견을 물은 일이 없다. 또한 그런 논의를 한 적이 없었다. 누가 언제 무슨 논의를 했는지 내용도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한글 단체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에게 겨레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일이니 2005년 1월 2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개토론을 하자는 초청장을 보냈으나 응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문화재청장 없이 그 토론회를 열고 문화재청에 토론 결과와 반대 의견을 알려주었다.


▲ 여론 조사 출처 파란뉴스.
   http://cafe.daum.net/malel/OYb2/291

▶박 전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 교체 방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찬성

24.9% (1918명)

반대

73.1% (5634명)

판단유보

2.0% (151명)

[기간 : 2005-01-26 17:29:02 ~ 3월 9일 현재 / 총 7703명 참여]

그 해 2월 23일 <국민일보>가 여론조사를 한 걸 보면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다는 걸 반대하는 국민의 수가 훨씬 많다. 광화문 현판 교체 ‘정치적 의도 60%’로 문화재청의 광화문 현판 교체 방침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조사 결과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므로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59.9%였고, ‘광복 60주년을 맞는 의미에서 복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는 33.7%였다. 반대가 많았다. 다른 여론조사도 한글현판을 그대로 두자는 의견이 많았다. 나라의 자존과 존엄이 걸린 중대한 일을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문화재청장과 위원 몇 사람이 그런 결정을 한 것은 국민을 무시한 폭력이고 또 다른 반민주 독재정치나 다름이 없다.

4.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다. 마침내 국민에게 굴복했다.

 

2005년 2월 6일 <한국일보>에 미국 뉴욕에 사는 삼봉 정도전 선생 19대 손인 정권수 님은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친필 한글현판을 걸었다. 역사를 따져 봐도 굳이 정조의 글씨가 돼야 할 이유는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은 그대로 보존돼야 한다. 이는 ‘옛것은 옛것으로 둔다’는 원칙에서 볼 때도 그렇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잘못을 범했다고 해서 그의 글씨마저 떼어 훼손해버리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소아병적 행동으로 비판 받아야 한다. 역사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미덕이야말로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라고 썼다.  

2005년 2월 23일 <연합뉴스> 보도에서 심재철 의원은 “현판 글씨체가 정조글자집자방식에서 고종 당시 현판 사진의 디지털 복원방식으로 바뀌었다는데 디지털 복원을 해도 역시 모조품인데 왜 서두르냐?”면서 그 교체 시기가 광복 6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져 있는데 광화문  현판을 바꿔야 광복절 기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 2005년 1월 26일 한글단체 대표들은 한글현판 지키기 궐기대회 열다 <연합뉴스>

마침내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광화문 현판 교체시기에 대해 “올 광복절이 아니라 복원 공사가 끝나는 2009년에 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이 벌떼처럼 일어난 반대 여론에 무릎을 꿇었다. 박정희 지우기’ ‘중국 홍위병식 역사 지우기’ 등의 비판이 일어나니 ‘한글현판 떼기’가 아니고 경복궁 복원 차원에서 시멘트로 지은 광화문도 때려 부수고 다시 목재로 짓겠다면서 현판 문제는 다음에 논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2010년에도 문화재위원 몇 사람이 소위원회를 꾸리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 철저하고 국민은 무시당했다.

5. 1968년부터 걸렸던 한글현판을 뗀 일은 역사 파괴요 자주문화 짓밟기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경복궁 원형 복원 원칙이라면서 40여 년 아무 탈 없이 서 있던 광화문을 때려 부수고 한글현판을 떼고 만다. 이 꼴을 보면서 한 시민은 문화재청 누리집에 “민족사의 여러 가지 수난으로 흔적도 없는 광화문을 박 대통령은 다시 짓고 한글현판을 달았다. 잘한 일이기에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공과를 따지기 전에 역사적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실존 인물이 썼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의 광화문 현판은 나름대로의 역사성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현판을 떼어내고 모조품으로 바꿔 달아야겠다는 문화재청장은 역사의식의 부재로 인한 무지의 소치인가, 아니면 박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원한과 열등의식의 표출인가? 그것이 전자의 경우라면 문화재청장의 직을 내놔야 마땅하고 후자의 경우라면 박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과 박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급급한 현 정권에 대한 아첨으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문화재청장의 이런 몰지각한 행태에서 21 세기 최대의 문화재 파괴 사건(Vandalism)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의 바미안 석불 폭파 만행을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오버일까? 문화재청장은 대오각성하고 광화문 현판 교체에 대한 옹고집을 버려라. 그렇게 원형을 좋아하면 태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당시 현판을 구해서 똑같이 해라”라고 썼다.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고 충고였다.


▲ 2005년 2월 한글 단체가 주최한 토론회. 왼쪽부터 김영환, 이참, 이대로, 이봉원, 조영환. 문화재청장과 위원장을 초청했으나 참석치 않았다.

1968년부터 한글현판이 달렸던 광화문. 이 광화문과 현판을 탓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뒤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복원한다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500년 만에 살아나려는 한글문화 꽃을 짓밟았다. 더욱이 한글현판은 군사독재 유물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한 민주정치 결과물로서 한글현판 자체가 매우 뜻 깊은 문화재인데 멀쩡하게 걸린 한글현판을 떼어내고 광화문을 때려 부숨으로써 중국 홍위병들이 역사문화유적을 파괴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 광화문 위치가 비뚤어졌고 시멘트이기에 원형 복원차원에서 다시 짓겠다는 것은 한글현판을 떼어내고 한자현판을 달려는 핑계였다. 아니면 나라 관리를 할 줄 모르고 앞날을 내다볼 줄 모르는 짧은 지식과 안목에서 나온 일이었다. 2005년에 많은 이들이 “원형이 없는데 단순히 모조품에 지나지 않은 가짜를 가지고 현판을 바꿔치기 하여 원형을 복원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세세손손 사기극으로 이어질 뿐이다”라고 예언했다. 이후 진짜로 모조품을 만들어 걸었으나 바로 갈라진 것이다. 새로운 반민주 독재로서 한심하고 불쌍한 짓이었다.

 

 


1) 이상의 광화문 역사는 네이버 백과사전 글을 간추리고 고침.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글쓴이 : 이대로 원글보기
메모 : 광화문 현판 글씨 토론회 발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