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민주, 과학, 홍익인간 글자다
리대로(대한민국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회장)
1. 머리말
한글은 1443년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이 만들어 1446년에 ‘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조선 글자다. 그때 조선은 2000여 년 전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한 중국 한자로 공문서와 교과서도 쓰는 한문 글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문은 조선말과 다를 뿐만 아니라 한자는 조선 사람이 배우고 쓰기가 힘들었다. 세종은 조선말을 적기 편리하고 배우기 쉬운 글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종은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훈민정음’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발표했다.
이 ‘훈민정음’이란 글자는 오늘날 ‘한글’이라고 부르는 한국 글자로서 한국말을 적기 가장 좋은 글자 일뿐만 아니라 바람소리, 새소리와 다른 나라말도 다 적을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소리글자다. 그래서 오늘날 셈틀(컴퓨터)과 누리통신(인터넷)시대에도 잘 어울려서 세종대왕이 500년 뒤인 오늘날 누리통신 시대를 내다보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세계 글자 발달 과정을 보면 그림글자에서 뜻글자, 그리고 소리글자로 발전해 왔는데 소리글자가 가장 발달된 최신 글자다. 소리글자 가운데 영어를 적는 로마자가 훌륭한 글자라고 하는데 한글은 그 로마자보다 더 훌륭한 글자다. 로마자 ‘에이(a)’가 ‘데이(day)’에서는 ‘에이’라는 소리로 나고, ‘파더(farther)’에서는 ‘아’로 소리 나고, ‘애플(apple)’에서는 ‘애’로 소리 나는 것처럼 낱말에 따라 읽는 소리가 다르게 나지만, 한글 ‘ㅏ’는 ‘아’소리 하나로만 난다. 그래서 요즘 연구 개발 중인 ‘음성인식 셈틀(컴퓨터)에도 한글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리고 한글은 그 창제 이유와 목적이 임금이나 지배 계층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글을 배우기 힘든 백성들을 위해서 만들었다. 그 때 세종대왕이나 지배계층인 양반들은 한문을 잘 알고 잘 쓰고 있었으나 백성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세종대왕은 자신보다 백성들을 생각해서 이 한글을 만들었기에 한글을 민주, 평등, 홍익인간 글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한글을 만든 원리와 쓰는 방법이 과학 체계를 갖추고 있어 과학 글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은 한문으로 문자생활을 주로 하고 이 훌륭한 한글은 즐겨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선이 기울기 시작한 19세기 말 고종 때에 한글을 나라 글자로 인정하여 신문도 만들고 공문서에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뒤엔 일본어가 국어가 되니 한글이 빛을 보지 못했다.
다행히 1945년에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한글로 교육을 하고 공문서도 쓰면서 한글이 널리 쓰여 국민 지식수준을 높였고, 그 바탕에서 경제와 민주주의를 빨리 발전시켰으며, 우리의 한글문화가 요즘 ‘한류’라는 이름으로 여러 나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한글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민주, 홍익인간 정신에 바탕을 둔 글자다. 이제 한글을 더 잘 갈고 닦아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널리 써 인류문화발전에 이바지 해야겠다.
2. 한글 창제 과정과 원리, 그리고 훌륭함
2.1. 한글은 누가 만들었나
한글은 세종대왕이 직접 만들었다. 불행하게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자세하게 적혀 있지 않지만 세종대왕이 손수 만들었다는 기록은 세종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에 뚜렷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한글을 만든 원리와 쓰임새는 자세하게 적혀있는데 만든 과정이 자세하게 적혀 있지 않다고 해서 일부 한국 사람들이 제멋대로 그 과정을 말하고 있다. 특히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소설과 같은 책을 내세우며 예부터 있던 글자나 남의 나라 글자를 모방했다느니, 심지어 세종대왕이 만들지 않았다는 말까지 하고 있는데 그건 매우 잘못된 것이다.
또한 지은이의 신분도 분명하지 않고, 훈민정음 해례본이나 세종실록보다 훨씬 늦게 나온 책을 들먹이며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거짓이요, 진실을 속이는 죄악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세계문화유산인 세종실록이나 훈민정음 해례본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도 자세하게 적혀 있으며 다른 기록도 있지만 여기서는 세종실록에 있는 기록을 두 개만 보여주겠다.
세종실록 102권, 25년(1443 계해 / 명 정통(正統) 8년) 12월 30일(경술)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世宗 102卷, 25年(1443 癸亥 / 명 정통(正統) 8年) 12月 30日(庚戌) 2번째기사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二終
세종실록 113권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에도 훈민정음(한글)을 그 만든 원리와 함께 세종대왕이 친히 만들었다고 뚜렷하게 적혀있다.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세종실록 113권, 28년(1446 병인 / 명 정통(正統) 11년) 9월 29일(갑오)
예조 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서문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자(字)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4095) 에 합하여 삼극(三極)4096) 의 뜻과 이기(二氣)4097) 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마침내 해석을 상세히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과 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臣) 등이 능히 발휘할 수 없는 바이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써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正音)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의 사심(私心)으로 된 것이 아니다.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 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도리를 깨달아 이것을 실지로 시행하여 성공시키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져.” 하였다.
世宗 113卷, 28年(1446 丙寅 / 명 정통(正統) 11年) 9月 29日(甲午)
禮曹判書鄭麟趾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 三極之義、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崇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濁之能卞,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唳雞鳴狗吠, 皆可得而書矣。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崔恒、副校理朴彭年ㆍ申叔舟、修撰成三問、敦寧注簿姜希顔、行集賢殿副修撰李塏ㆍ李善老等謹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恭惟我殿下天縱之聖, 制度施爲, 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蓋有待於今日也歟!
2.2. 한글을 왜 만들었나
세종실록 113권 28년 편에 세종이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서 배우고 쓰기 쉬운 우리 글자를 만들었으니 누구나 쉽게 익혀서 널리 쓰라”고 하는 말에 한글을 만든 까닭과 목적이 뚜렷하게 적혀 있다. 또한 세종실록 113권 28년 편 예조판서 정인지 서문에도 “중국 글자인 한자로 말글살이를 하다가 보니 둥근 장부가 네모난 구멍에 끼워 넣을 때 불편함과 같아서 설총이 우리식 글쓰기인 이두를 만들어 썼으나 마찬가지 불편했기에 우리 글자를 만들었다.”라고 그 이유와 목적을 좀 더 자세하게 적었다.
세계 역사상 어느 글자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와 함께 그 만든 까닭과 목적, 만든 원리까지 뚜렷하게 밝힌 것이 없다. 참으로 한글은 빼어난 글자다.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세종실록 113권, 28년(1446 병인 / 명 정통(正統) 11년) 9월 29일(갑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漢字)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是月, 訓民正音成。 御製曰: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易習, 便於日用耳。
- 이 글은 2014년 절강월수외대에서 제가 발표한 글 앞부분입니다. 모든 글은 첨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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