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크랩] 1965년에 김윤경 교수님이 신문에 쓴 글

한글빛 2015. 6. 3. 10:25

1965년 김윤경 교수님 글 - 무궤도한 국어정책


  아래 글은 1965년에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못 들어가고 혼자 공부를 할 때 신문에서 읽은 김윤경 교수님의 글이다. 난 이 글을 읽고 김윤경 교수께 한글사랑에 관해 묻는 편지를 했다. 아니 어른과 학자에게 항의하는 편지였다.  교수님은 내 편지를 받고 곧 바로 답장을 해주셨다. 대학에 가서 한글운동을 하고 이 일에 일생을 바칠 생각인데 이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물었다. 신문에도 주소가 없고, 주소를 몰라 그냥 [서울 한양대학교 김윤경 교수님]이라고 쓰고 편지를 보냈는데 받으시고 바로 답장을 하신 것이다.

  난 그 답장을 받고 한글사랑운동을 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기로 결심했고 대학에 들어가 국어운동학생회를 만들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오늘 공 박사님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다가 누렇게 바랜 신문 쪽지가 있어 자세히 보니 정확한 년도와 어느 신문인지는 모르겠으나 [考槃隨錄] 란에 김윤경 교수께서 쓴 글이었다. 아마 대한일보 일 것이다.

내게 오늘까지 국어운동자로 살게 만든 인연 깊은 신문이었다.  본래 세로로 짠 신문인데 가로 쓰기로 옮겼다. 이상하게 쉼표는 있으나 마침표는 없는 깨알처럼 작은 글씨였고 뛰어 쓰기가 안 된 것인데 고쳐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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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궤도한 국어정책

                                                                김윤경

  말을 적어 놓으면 글이 되고 글을 읽으면 말이 되는 것이다. 이를 언문일치라 한다. 그러므로 글을 읽어도 우리말이 안 되는 것은 우리 글이 아닌 외국 글일 것이다. 과거 특히 이조 500여 년은 외국 글인 한문을 전용하고 우리 한글은 안 썼기 때문에 글을 읽어도 우리말은 아니었다. 한문은 어렵기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설워할 정도다. 글은 생각을 남에게 널리 알리고 후세에 오래 전하기 위하여 쓰는 한 기호다. 그러므로 이 기호는 할 수 있는 대로 쉬워야 전 국민이 다 쉽게 배워서 의사를 전달하는 기호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문이란 기호는 위에서 말한 대로 세계에서 가장 어려워서 그 기호만 배우더라도 일생을 배워도 못다 배우지 마는 우리글은 [정인지] 말대로 슬기 있는 이는 하루아침이면 깨치게 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깨칠 수 있는 쉬운 글이다.

  우리 한글은 한 소리는 한 기호로만 적고 한 기호는 한 소리만 표시하게 되었고 과학적 체계(훈민정음 해례의 제자해 설명대로)를 가지었고 음운이 풍부하다고 세계에서 칭찬받는 글이다. 글이 쉬우냐 어려우냐는 그 글을 쓰는 민족문화 발전에 지대한 관계를 가졌다.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좋은 한글을 전용하고 한문을 쓰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문화는 남보다 앞섰지 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갑오경장 이후 구한국부터 우리는 늦게나마 한글의 참가치를 남들(서양학자 일본학자)의 칭찬으로 깨닫게 되어 해방 뒤에는 미군정시대부터 한글전용의 문교 정책을 써왔다.

  우리정부가 서게 되매 이 정책은 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이 정책을 굳세게 하기 위하여 한글전용법을 국회에서 제정하여 법률 제6호로 발표하였다. (1948년 10월 9일) 그런데 웬 망령인지 문교부는 작년부터 부랴부랴 서둘러서 금년 1학기부터는 초등학교의 4학년 국어 교과서부터 한문을 섞어 쓰기로 하였다. 그 계획은 국민학교에서 4학년부터 600자, 중학교에서 400자, 고등학교에서 300자, 모두 1300자의 한문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국민학교를 졸업하고도 신문 한 장을 못 읽으니 이는 교육방침이 틀림이라]함에 있다고 한다. 이 사고방식이야말로 한문배운 기성인들을 위하여 주체성을 잃고 주객을 전도한 말이다. 왜 내 글을 배운 이면 읽을 수 있는 쉬운 글로 신문을 쓰게 하지 않고 그 어려운 한문을 배우는 무거운 짐을 어린 국민에게 지워서 건강을 상하게까지 하면서 한문의 신문을 읽히려는지?

  일본이 제2차 대전에서 패망한 것은 과학이 뒤진 탓이요. 과학이 뒤진 이유는 어려운 한자교육 때문에 과학교육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라고 함을 들었다. 한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글을 가르쳤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시간과 노력을 무한히 쓸 수 없으니 이 외국 글들은 전문가에게 넘김이 좋다. 한글전용이 아니면 문화촉진의 원동력이 되는 인쇄의 기계화(타자기, 라이노 타이프, 텔릭스 이용 같은)는 불가능한 것이다. 20년 써 내려오던 한글전용의 국어정책을 왜 스스로 깨뜨리는지? 왜 한글전용법을 범하는지? 고요히 반성 있기를 바란다.

(한양대학 교수)      

출처 : 한말글 사랑, 리대로.
글쓴이 : 나라임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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