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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책과 신문이 내 꿈을 만들어 주었다.

한글빛 2015. 6. 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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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의 한글사랑]국어독립운동 길에 들어선 이야기_ 3.


책과 신문이 내 꿈을 만들어 주었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이대로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신문을 많이 읽었으며 일기와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책과 신문 읽기가 내 뜻을 세우게 했고, 일기 쓰기가 꿈을 다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편지가 그 꿈을 이룰 길을 만들어 주었다. 거기다가 소처럼 묵묵히 일하는 바보스러움이 꿈이 이루어지게 해주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도 젊은 날에 뜻을 세우고 가진 꿈을 이루려고 내 한 삶을 바친 것이 가슴 뿌듯하다. 그래서 이쯤해서 젊은이들에게 “책과 신문을 많이 읽고 일기를 쓰고 편지를 많이 해라. 그러면 꿈이 생기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 글을 쓴다.


나는 초, 중학교 다닐 때에도 책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때엔 읽을 책이 교과서뿐이었다. 고등학교에 가니 도서관이 있어 좋았다. 그런데 그 도서관에 우리 말글로 된 전문서적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 말글로 쓴 김소월의 시, 이광수의 소설과 여러 사람이 쓴 수필집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이광수가 쓴 “흙, 무정, 사랑, 유정”들 소설과 심훈이 쓴 ‘상록수’ 같은 소설이 한글로 썼기에 읽기 좋았다. 그런데 그 책들이 모두 농촌사랑과 사회개혁이 주제여서 자연스럽게 농촌운동과 사회개혁에 눈을 뜨게 되었다.


거기다가 내가 어릴 때인 50년대 농촌은 10명에 8명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밥 세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뱅이가 많았다. 그런 농촌과 사회현상을 보면서 농촌과 나라를 살리려면 국민을 우리 말글로 똑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문 한 장 읽을 수 없는 사람은 관청이나 남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으니 사람답게 살 수 없었다.


나는 도서관에 읽을 만한 책이 많지 않아 신문을 보다가 사회 문제에 눈이 떴다. 마침 그 때 신문에 한글과 한자파가 논쟁을 하는 글과 기사가 많이 나왔다. 5.16 혁명 정부는 한글로만 만들던 교과서를 1964년부터 한자혼용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문법 용어도 ‘이름씨’는 ‘명사’로, ‘움직씨’는 ‘동사’로 바꾸겠다고 했다. 토박이말보다 일본식 한자말을 쓰자고 했다. 그러니 신문에서 그 논쟁이 뜨거웠는데 우리 말글을 써야 한다는 분들의 말에 공감이 갔다. 한자혼용을 하자는 사람들은 역사를 거꾸로 가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글학자요 한글 운동가인 김윤경 교수님을 알게 된 것도 신문을 읽었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공부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고 할 때 김윤경 교수님 편지가 나를 다시 일으켰다. 뒤에 안 일이지만 김 교수님은 한글학회 회장 최현배 교수와 함께 연세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분으로서 유명한 학자요 한글운동가이셨다. 그런 분의 편지가 나를 다시 일어나게 했고, 국어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꿈을 갖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내가 신문을 안 보고 편지를 안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다.


대학생 때 국어운동 횃불을 밝힌 서울대 학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신문이고, 그와 함께 한글운동을 하게 만든 것은 편지였다. 신문과 편지가 꿈을 이룰 길을 열어주었다. 서울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든 이봉원군은 충북 청주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나와 나이도 같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도 똑같았다. 그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부가 한자혼용 정책으로 가는 것을 보고 반감을 느꼈고 그 뒤에 외솔 최현배 선생님에게 편지를 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충청일보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작품을 공모했는데 나도 단편 소설을 낸 일이 있었다. 참으로 기막힌 인연이었다.


오늘 태안신문 신문웅 국장을 만나고 그 신문에 글을 쓰게 된 것도 편지였다. 언젠가는 젊은이들이나 고향 후배들, 누구에겐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내 뜻을 말하려고 했는데 신 국장이 편지를 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또한 새 역사와 길을 만드는 일로서 우연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내가 태어나 어릴 때 살던 해미 땅엔 국가 시설이 들어와 내가 다시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 늙으면 태안에 들어가 살려고 안흥 신진도에 터도 마련해 두었다. 태안엔 내 고등학교 동창들이 있고, 옛날엔 같은 서산시이었기에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책과 신문이 내 꿈을 만들어주었지만 일기를 쓰면서 내 꿈이 단단해지고 영글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되돌아보고 반성도 하고 부모와 집안 걱정도 하고 또 다짐도 했다. 그러다가 문학 소년이 되었고, 한글이 얼마나 훌륭하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신문 보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 이야기를 자주 하니 고교 때 한 방에 하숙하던 태안 친구 박형석 군은 내가 정치가가 되려고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오늘 내가 있기까지 부모님과 선생님의 가르침도 있었지만 책과 신문, 편지와 일기 쓰기가 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국어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이 길을 걸어온 것이 50년이 되었고 내 나이 70살이 가까워졌다. 꿈이 많던 고등학교 때 함께 공부하던 태안 친구를 생각하며 꿈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니 모든 것이 운명이고 하늘의 뜻이란 생각까지 든다. 다시 고향 젊은이들에게 “선생님들과 책과 신문의 가르침을 잘 배워 뜻을 세우고, 편지와 일기를 쓰면서 뜻과 꿈을 다짐을 하자.”라고 힘주어 말한다.

출처 : 한말글 사랑, 리대로.
글쓴이 : 나라임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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