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 인생을 바꾼 편지 한장
내일이면 569돌 한글날이다. 자나 깨나 한글을 살리고 지키려고 애쓴 지는 50해째다. 다시 한글날을 맞이하니 지난 일들이 머리를 스친다.
나는 1962년에 예산농고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부가 1964년부터 한글로 만들던 배움 책을 한자를 섞어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니 그 정책이 시행도 되기 전부터 농업시간도 한자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사과나무에 "봄에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 한다"는 말을 "봄에 施肥(시비)하고 剪枝(전지)한다"라고 쓰고, "이제 이같은 한자를 알고 써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면서 한자까지 가르치니 공부가 재미없었다.
더군다나 '시비'란 말은 '싸움한다'는 말을 떠오르게 하고, '전지'는 '건전지'란 말이 떠올려 혼란스러웠다.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 펴겠다고 발표
한글로만 쓴 책으로 공부할 때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는데 정책이 잘못되어 애들이 고통을 받고 교육이 잘못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거기다가 나는 대학에 안 가기로 했기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려고 '양돈전서(養豚全書)'란 책을 열람해보니 일본말로 쓴 책이었다. 대학에 안 가도 책을 많이 읽으면 대학을 다닌 사람보다 더 똑똑해질 수 있다고 보았는데 도서관에도 우리 말글로 쓴 전문 서적은 없고 거의 일본 책이었다. 나는 대학에 가서 이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학생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고민하던 1965년 봄 어느 날 나는 신문에서 한글학자인 한결 김윤경 선생님이 "한글을 사랑하자"고 쓴 글을 읽었다. 내 생각과 꼭 같았다. 그래서 그 분에게 편지를 썼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김 선생님은 "한글은 영문 로마자보다도 훌륭한 소리글자다. 나는 한글을 연구하고 살리려다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옥살이도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죽을 나이인데 너 같은 젊은이를 보니 기쁘다. 꿈은 이루어진다. 대학에 가서 국어학계에 길이 이름을 남을 사람이 되라"는 내용으로 6장이나 써 보내셨다.
나는 면서기나 하면서 농사를 지을까 고민했는데 꼭 대학에 들어가 국어독립운동을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대학에 들어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힘차게 한글운동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목소리를 듣고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했다.
나와 국어운동학생회 1세대는 1970년에 군대에 가게 됐다. 그해 최현배 한글학회 회장도 이 땅을 뜨셨다. 1972년 군대 제대를 하고 보니 김종필 민관식 등 친일 정치인들과 이희승 이숭녕 들 경성제대 출신 교수들이 일본식 한자혼용을 하자는 단체까지 만들고 대기업과 언론 지원을 받아 거세게 한글반대 운동을 하고 있었다.
젊은 허 웅 한글학회장은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허 웅 회장은 우리 국어운동대학생회 지도교수였기에 나는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를 조직하고 허 회장을 도와 한글 한자 싸움에 뛰어들었다. 이름도 우리말글로 바꿨다.
모든 게 한결 김윤경 선생님의 편지로부터 비롯
이후 5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신문이 한글로 만들어졌다. 한글날은 국경일이 됐다. 한자로 쓴 국회 휘장 글자와 국회의원 이름패도 한글로 바뀌었다.
한글박물관이 세워졌고 지금은 서울시에 광화문 일대를 한글문화관광지로 꾸미는 '한글마루지사업'도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한결 김윤경 선생님 편지로부터 비롯된 내 인생의 보람이다.
이번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정책도 최현배, 김윤경, 안호상, 공병우, 허 웅, 전택부 선생님들이 하늘에서 도와주시고 한글이 훌륭해서 막아낼 수 있었다. 다시 한글날을 맞이해 죽는 날까지 한글을 지키고 빛내어 우리 자주문화를 꽃피워 후손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것을 다짐하고 밝힌다.
이대로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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