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1972년 군 제대를 앞두고 쓴 "한글전용과 나"

한글빛 2021. 9. 26. 07:34

 

[1972년  군대 제대를 앞두고 뜻벗 이봉원 군에게 보낸 글]

 

- 한글 전용과 나 -

 

1. 나는 왜 고등학생 때 한글전용을 주장하게 되었나?

 

한글은 우리글이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 이 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한국인은 없으리라.“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한 오늘날까지 한글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라고 배웠고 들어왔다. 그러나 한국인은 한글을 즐겨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애착도 별로 없는 것 같으며, 우리 국어도 여러 가지 개선 발전시켜야 할 점이 많은데도 이렇다 할 활동이 적은데 대해서 나는 고교시절부터 의아심을 품었었고 이에 대한 불만이 내 가슴에 가득해 왔다.

 

문자정책과 문자생활에 있어서 어딘가 모순과 위선이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 전반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있다는 것을 차차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한글전용이 좋은가 나쁜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봤으며 결론은 한글전용은 꼭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글 전용은 여러모로 보나 타당성이 있었고, 실지 나로서 한글은 한문에 견주어 배우기 쉽고 쓰기 쉽고 이해해기 쉬웠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 한글 전용에 대해서 학자와 일반 사회인들이 좋다 안 좋다 말다툼만 일삼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내 학우들에게 한글전용을 하면 나쁘냐고 물었더니 다들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말하는데 어떤 이는 대학에 가고 출세하려면 한문을 알기 위해 한자혼용을 찬성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자혼용하자는 이는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아부하는 것이었고, 저 개인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런 한자혼용 찬성자들 의견엔 동감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학생 때 한자 혼용과 외국어 문제로 느꼈던 이야기를 하련다. 1학년 2학기 독서주간이 실시되는 가을이었다. 책을 보려고 학교 도서관에 가니 책이 수만 권이 되겠는데 볼만할 것 같은 책, 내 지식 욕망을 채워줄듯 한 제목인 책들은 거의 일본책이거나 한자혼용 책들이며 어문 자체도 실지 사회에서 잘 안 쓰는 용어와 외국어가 많아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책 내용은 쉬운 우리말과 한글로 충분히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내 독서열과 진리 탐구 욕망은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문화 문명이 요 모양 요 꼴밖에 안 된 까닭이 무엇인지 알듯했다. 나라가 어지럽고 흔들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보였다.

 

우리말 우리글로 책을 쓰면 안 되는 무엇이 있단 말인가? 우리 같은 어린이나 가난하고 배움 기회가 적어 한글밖에 깨우치지 못한 사람은 책을 볼 권리도 기회도 주어선 안 될 까닭이, 우리가 읽어선 안 될 내용들이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것보다 내가 할 일이 이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일이 나와 민족과 나라가 잘 살 게 하는 밑바탕이고 밑거름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들에게 내 이 뜻을 말했다. 그들은 내 뜻을 이해하면서도 동조하려고 들지 않았다. 오히려 대원군 같은 국수주의 생각이 아니냐고 하는 애도 있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한자는 지금 영어 공부하듯 외국어로 공부하고 이용하자는 것이고, 외국의 좋은 문화 문명과 지식 정보, 좋은 사상과 연구실적 같은 것을 한문이나 외국어를 아는 이, 먼저 그것을 얻는 이가 쉬운 우리 말글로 써서 누구나 빨리 쉽게 익히게 해서 그 바탕에서 새로운 우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글 전용은 한국인 지식수준을 빨리 쉽게 높여 줄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에 빨리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바른 사상을 확립하고, 인생의 많은 시간을 공부가 아닌 새 역사 창조에 힘을 쓸 수 있어 빨리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내 뜻을 굳은 신념이 되었다. 이런 나를 보고 나와 함께 하숙하던 박형석 군과 이성 군은 한자를 공부할 때도 내 눈치를 봤고, 혹시 편지 쓸 때에 한자를 써야 할 때엔 내게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때 도서관에서 책들이 일본어로 쓴 책이거나 한자혼용 책이어서 실망한 나는 신문과 정기 간행물에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신문에서 정치, 경제, 문화면은 한자혼용이어 읽기 불편했다. 그런데 살인 강간 들 지저분한 이야기로 가득 찬 사회면은 한글 전용이었다. 한글만 깨우친 사람은 이런 지저분한 것만 알고 생각하란 말인가!? 정말 어이없었다. 거기다가 외국어가 많았다. 1인 나는 영어를 배워서 조금 이해하지만 영어를 모르는 저 많은 국민은 이해를 못할 거라는 생각이 미치니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너무나 무자비하고 불균등한 처사였다. 중국이 일어나면 한자에, 일본 식민지 때엔 일본말에, 미국 지배를 받으니 영어에 사족을 못 쓰는 우리언어 생활 모습이 너무 처량했다. 물론 우리말에 없는 상품 명칭은 외국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버젓이 쉽고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남모르는 외국어를 함부로 대중을 상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고 처사였다.

 

그런 때 마침 지금 돌아가신 김윤경 교수님이 쓴 한글전용 주장 글을 신문에서 봤다. 나는 그 글을 읽고 그분께 내 뜻과 생각을 말하고 왜 한글전용이 안 되느냐고 묻는 편지를 했더니 답장이 왔다. “한글에 그토록 관심이 있고 아끼는 젊은이를 보니 고맙다. 나는 일생을 바쳐 한글을 위해 일하고 연구했으나 아직도 한글나라를 만들지 못하고 늙어버렸다. 꼭 대학에 가서 내가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고 국어학계에 이름을 남겨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때 무엇인가 모르는 자신과 용기가 솟아 두 주먹과 어금니에 조용히 힘을 주었다. 머리카락이 솟고 소름이 끼치는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대학을 가게 되면 선생님 밑에서 배우겠다고 했으나 그것을 이행하지 못하고 한 번도 뵙지 못한 채 신문에서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보고 아쉬움에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리 숙였다. 또 그 때 다른 신문(대한일보)에서 홍종인 선생님의 논단(한글전용 찬성)이 내 마음을 끌었고 그 분 글을 빼놓지 않고 읽었고 내 생각과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내가 빨리 한글전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는 역사상 외세에 너무 시달리고 현실도 나라가 약해 강대국에 끌려 다니는 것이 부끄럽고 서글프다는 것이다. 지리상 세계 강대국인 중국, 소련, 일본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바다를 끼고 미국과도 만나고 있으니 언제나 불안하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 땅, 이 겨레는 남북으로 갈려서 서로 물고 뜯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자유와 행복과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데 우리가 여기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떳떳하게 살려면 우리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우리가 빨리 힘을 키워 남북통일을 하고 저 강대국들보다 못한 것, 나쁜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좋은 것은 더욱 빛내고 새로운 우리 것을 만들어 그들을 앞지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한글을 갈고 빛내어 (한자문화권 로마자문화권 떠들지 말고) 한글문화권을 형성해야겠고, 이를 바탕으로 새 역사 창조(발전을 위한 개조)에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것이며, 이는 모두 함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믿은 것이다.

 

결론은 한글전용이 실지 생활면과 민족정신면, 두 가지 점에서 좋다고 보아 한글전용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실지 한글전용이 아무 불편이 없었고, 한자혼용은 문화계급을 형성하고 만민평등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한 한글전용은 국력을 하나로 모으는 최선책으로서 우리 민족과 나라를 선진국으로 이끄는 밑바탕을 다지고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후손과 다른 민족에 자랑스럽고 떳떳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내 결론과 주장은 어떤 통계나 연구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실제 체험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진리라고 생각했다.

 

2. 대학생 때 한글전용 운동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갈 처지도 아니고 아버지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짓기로 했는데 뜻이 있어 대학에 갔다. 무지와 가난이란 대명사와 같은 농촌과 농업을 살릴 공부를 더하고 한글운동을 하려는 것이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서도 실행하지 못하면 아예 생각을 안 한 것만 못하며 지성인의 태도가 아니다.

 

나는 농업을 공부하면서 나 자신부터 한글전용을 철저하게 생활화했고, 기회 있을 때마다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내 뜻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19672학년 초 서울대 이봉원군과 여러 대학 뜻이 같은 친구들을 만나 국어운동대학생회를 조직하고 한글전용의 타당성과 이로운 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한글전용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법을 만들고 시행하자고 정부에 건의하고 국민에게 호소했었다.

 

나는 그 때 많은 친구들(특히 농촌운동 친구들)과 교수님으로부터 오해를 받았고 이상하고 어리석은 자라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나는 내 뜻이 옳고 좋다고 굳게 믿었기에 이 운동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나는 이 운동을 하면서 내 이름을 이대로라 스스로 토박이말로 지어 부르고 한글로 썼다. 이것은 내가 국어문제와 농촌문제 두 가지 뜻을 내 인생 과업으로 삼겠다는 뜻이었고 좌절하지 않고 내 뜻대로 이대로 밀고 나가겠다.”라는 몸부림의 표시였다.

 

이택로(李 澤 魯)’가 부모님이 지어주신 어린 이름이라면 이대로는 세상이 지어준 내 젊은 이름이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은 한자 이름이라면 내가 지음 이름은 한글이름이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젊은 이름으로 호적을 바꿀 것이다. 세월이 가서 두 과업이 달성되었다면 이름을 또 바꿀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국어운동대학생회를 조직하려고 먼저 내 주위 사람들부터 설득하고, 그 다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내 뜻을 이야기했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들 거의가 내 뜻이 나쁘다고는 하지 않으나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혼자 잘해보라는 미지근한 태도였다. 무사안일주의인 것이고,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현실주의다. 한국인들이 너무 용기가 없고 소시민답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살기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러나 모두 내 처지보단 좋은 친구들이었다. 나쁘면 나쁘다고 잘라 말하기나 할 일이지 왜 괜찮다면서 꽁무니를 뺀단 말인가? 한글로 쓰면 뜻이 애매한 낱말이나 말소리가 같은 낱말을 내세우며 한글전용을 반대한다는 어설픈 친구도 있었고, 남들이 모두 한자를 쓰는데 저만 안 쓰면 무식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한자혼용이 좋다는 친구도 있었고, 한글전용하면 교수가 학점을 안 주기 때문에 한글전용을 할 수 없다는 친구도 있었고, 한자 공부 안 하면 외국책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또 내 생각이 어리고 단순하다는 교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한자를 모르니까 또 한자 공부하기가 싫으니까 한글전용을 하자고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대로 일리는 있지만 모두 저만 생각하고 제 이익을 위한 독선과 아집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 큰 뜻을 모르고 말하는 단순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보다 한문과 중국에 더 관심이 있고 뜨겁게 공부했었다. 특히 언젠가 중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떠오를 것이고 한문과 중국말이 지금 영어보다 더 중요하게 쓸 때가 올 것을 내다보고 1학년 때 중국어를 선택과목으로 공부하기도 했다.

 

한자를 몰라 한자혼용인 신문과 책을 읽기 불편하다거나 한자 공부가 싫다는 소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야기이고 지금은 한자를 많이 알고 그 정 반대인 것이다. 적을 이기려면 적을 자세히 알아야한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한자공부도 많이 했다.

 

모두들 참에서 깨어나소서!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바로 하소서! 마음을 푸르고 넓은 하늘과 바다같이 깨끗하게 가지소서!

 

이렇게 목이 터지도록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강물이 거꾸로 흐르게 할 수 없었다. 한글나라가 되는 것은 역사 흐름이었다. 드디어 우리가 활동하고 2년 째 되던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소리를 들어 한글전용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분명 후손들은 이 일은 문화혁명이라 부르리라고 나는 예언한다.

 

그러나 한글전용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혁명은 하루아침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다. 먼저 한글전용을 바르게 이해해야겠고, 자기부터 실천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 역사 창조에 앞장서야 그 참뜻과 정신을 살릴 수 있다. 또한 외국과 외국어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져야겠고 필요한 이는 한문에 정통해야 한다. 지나고 나니 힘들었었고 정말 기구한 내 대학생활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3. 못다 한 말

 

. 한글전용 반대하는 분들에게

 

반대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글전용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면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과, 오늘 당장은 불편하지만 먼 앞날을 볼 때에 좋으면 주저하지 말고 실시해야 한다는 것과, 나 개인보다 다른 사람과 나라 앞날을 먼저 생각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글전용을 하면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일본 한자혼용 교육과 습성에 의한 것이고 지금 광복 뒤 한글로 쓴 책으로 배운 우리 젊은이들은 한글로만 쓴 책과 글이 빨리 읽히고 쉽게 알아본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한글로만 쓴 글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개인 문제이지 다른 사람 처지에서 본 문제이거나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한자문화권에서 고립되며 고유문화가 말살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데 나는 그 정반대라 생각합니다. 한자도 영어처럼 외국어로 교육함으로써 한문과 중국을 더 깊게 연구하고 능통할 수 있으며 필요한 이에게 한자와 중국어를 더 많이 연구시켜 중국과 다른 나라 문화문명을 빨리 전념해서 받아들이고 그것을 교육기관과 언론을 통해서 온 국민에게 빨리 알리도록 정부가 도와줌으로써 우리 국민 수준을 빨리 높여주고 우리 나름대로 발전을 더 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문으로 된 옛 책을 읽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한문을 온 국민이 읽고 음미하기가 쉽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국력 낭비고 고통입니다. 머리가 좋고 한문을 많이 아는 이가 그 한문을 우리 말글로 번역하여 우리 국민이 읽도록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한문으로 쓰인 옛 책을 읽지 못한다고 오늘날 대학생들을 절름발이 지식인이라 하는 분도 계시던데 자기가 참된 대한민국 지성인이고 학자라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한문으로 된 고전을 읽지 못한다면 이 학생들이 한글은 읽을 수 있으니까 그 고전을 한글로 빨리 번역해 주어 쉽게 읽게 해줄 책임이 지성인과 학자들에게 있습니다. 오늘날 대학생들도 뜻 있는 자는 사상이 바로 서 있고, 진리탐구에 대한 자세가 모두 서 있으며, 인류와 세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자 혼용하는 얼빠진 정신 상태를 본받은 자, 한문 조금 알고 그것으로 밥벌이하는 어용학자 정신 상태를 본받은 자들만이 세상을 방황하고 사회를 더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한글전용은 우리 민족이 꼭 해야 할 일이고, 역사 흐름이며 사명입니다.

 

한글전용이 늦으면 늦을수록 오늘 우리와 우리 후손은 괴로움과 불행이 많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못된 습관을 개조한다는 것은 천군만마를 쳐부수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아침에 습성을 고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생각해서 꼭 고치셔야 합니다. 어린놈이 무엇을 안다고 지껄이느냐고 하실지 모르나 역사가 심판하리라 믿습니다.

 

당신께서 아는 한문과 외국어 실력으로 더욱 옛 한문책과 외국책을 읽고 외국을 연구하시어 현실 부조리와 후진된 문화문명을 개조키 위해 온 힘을 다 바치는 것이 민족과 국가에 대해 떳떳한 일이고 스스로를 위해서도 보람되리라 믿습니다.

 

나는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과연 당신께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라고, “과연 당신이 한 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얼마나 앞선 것입니까?”라고. 그리고 권하고 싶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당신이 쓰는 일기와 편지를 한글로 써 보시라고. 그러면 당신의 한자 중독 병은 서서히 낫게 될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두시고 자신의 악습을 바로 알아 하루라도 빨리 고치소서!

 

. 정부 당국자에게

 

한글전용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적극 호응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 교육을 하겠다는 말이 들리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나도 우리 국어에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것은 먼저 내 스스로에 책임이 있지만 문교부 당국자가 국어교육을 등한시하고 비중을 적게 두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잘하고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 국어입니다. 대학생 때는 국어를 덜 중요시하더라도 중고등학교 때엔 국어를 철저하게 교육해야 합니다.

 

외국어(한문)는 필요한 자, 학문을 연구하려는 자에겐 완전 능통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고 그밖에 사람들은 상식 수준으로 알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현행 외국어와 같은 수준으로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육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공부할 때에 외국어를 가장 중요시하는데 그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외국어는 필요한 자에게 중요한 것이고 모두에겐 국어, 과학, 수학, 예술 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학생들을 보십시오. 영어 공부에 많은 돈과 시간과 정렬을 바쳐서 상급학교 진학하는 데나 써먹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모두 외국 유학을 가고 외국 원서를 보고 학자가 됩니까? 우리는 국력의 총화를 이루는 길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영어 낱말만 조금 알았지 그들 사고방식과 인간성과 생활태도는 어떻습니까? 국어를 등한시 영어를 중요시하는 것은 절름발이 교육정책입니다.

 

어려운 문구를 얼마나 잘 음미하느냐, 영어회화를 얼마나 잘 하느냐보다 얼마나 바르게 살고, 얼마나 일을 잘하느냐가 더 먼저이고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어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작문을 중요시하십시오. 작문은 사고력과 창조정신을 길러주고 자기 뜻을 간결하고 바르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해줍니다.

 

다음에 번역청(또는 정보수집기관)을 설립하여 각국의 모든 간행물을 수집하고 (아프리카와 공산국가까지) 외국어 능통한자를 양성하여 각 분야별, 각 국가별로 그에 대해 연구 전념토록 하고, 언론과 학교를 통해 가치 있는 것을 빨리 전파하고, 외국 서적과 외국 정보가 필요한 자에게 빨리 읽고 볼 수 있도록 조치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성을 뛴 글(신문이나 잡지)이나 연설(방송)은 우리 글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법을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글학계, 출판계와 그 연구기관을 적극 후원 보호해야겠습니다.

 

또한 국어시험에 한자를 출제하는 것은 엄금해야겠으며 공문과 호적, 법조문 들 모든 공문을 빨리 한글전용 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국민운동을 벌려야겠습니다. 그래야 한자공부에 시간과 돈과 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한글전용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 겨레에게 이롭다는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이 밖에 여러 가지 있겠으나 위에서 내가 말한 것은 꼭 실행해야만 한글전용 참뜻과 목적을 살릴 수 있으며, 한글전용이 성공할 겁니다. 그저 한글만 쓴다고 한글전용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둡니다.

 

. 언론인과 학자 분들께

 

먼저 언론인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중이 볼 글은 대중이 다 아는 글자와 말을 써야 할 것입니다. 일부 특권층이나 특별한 몇 사람만 아는 말이나 글자는 절대로 써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워야겠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어렵고 길게 말 하고 대중으로 하여금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해선 아니 되겠습니다. 창조 가치가 있는 정보, 국내외 문제를 쉬운 말글로 빨리 알려줘야겠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학자들께서는 자기분야는 국내 제일이 아니라 세계 제일이어야겠다는 것이며, 있는 것을 깨우치고 맛이나 보는 것이나 그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좋게 개조 창조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그것을 국민에게 신속히 알려야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말입니다. 절대로 대중이 보는 글은 어려운 말이나 글자를 사용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스스로 빨리 언론과 학자들이 한글전용 용단을 내리가 바랍니다.

. 한글학자들께

 

오늘의 한글이 있기까지 많은 한글학자들께서 보이는 노력보다 보이지 않는 고통이 더욱 컸던 것으로 압니다. 그 덕으로 이제 한글이 제 빛을 보려하고 있으나 제 빛을 보려면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멀지만 여러분 역량에 따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나는 한글에 대해서 아직 개조할 것이 많을 것이라 봅니다. 한자혼용자들이 있는 것은 한글과 우리 국어에 어딘가 부족해서 그러리라 봅니다.

 

그러므로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분들은 더욱 한글발전에 책임이 있고,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분은 반대하는 이유를 잘 알아 조치 개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겠고, 국민과 정부에 한글과 국어의 중요성을 계속 인식시키고 조언을 해야겠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국어사전이 있으나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많은 국민이 한자 옥편이나 영어사전은 잘 사며 보고 있으나 국어사전을 거들떠보지 않고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이 책임은 한글학자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한글이 빛을 보고 제 빛을 내도록 한글학자들의 사생결단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4. 나는 다시 호소한다.

 

이제 나는 몇 달 있으면 국방의무를 다하고 가난과 무지와 질병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농촌에 들어간다. 여러 사람이 멸시하고 싫어하는 농군이 되련다. 농군이 되어 가난과 무지와 질병과 사회 부조리와 싸우련다. 농촌에 들어가려는 이 마당에, 대학생활을 종결하는 의미에서 내가 지금까지 한글전용을 주장한다고 말하면서 아직 내 뜻을 아무에게도 자세히 이야기한 일이 없었기에 이제 정리해보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국어문제와 농촌문제는 내 인생 과업이고 한글전용과 농춘생활은 하나의 신념이고 사명인 것이다. 나는 내 뜻을 서슴없이 털어놓고 아낌없는 비판을 받고 싶은 것이고 내 뜻이 옳다면 지체 없이 실현되길 간절히 바라고 만인에게 호소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조 정신이 제 빛을 낼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우리는 역사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오늘 처지가 불만스럽다고 한탄할 것이 하나도 없다. 앞선 자를 따라만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따라가면 따라가긴 하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보다 앞서지 못한다. 그러나 앞서야겠다고 하면 따라가고 또 앞서게 된다. 우리 모두 마음 크고 바르게 먹고 개조의 대열에 발맞추는 용기와 성의를 가져야겠다. 망설이고 주저하거나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지금 당장 내 일기와 편지와 글부터 한글로 쓰면 된다.

 

나 자신부터 바르게 살고 좋은 일을 해가면 세상은 좋아진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여러 면에서 다른 나라에 뒤떨어져 있다. 남이 잠 잘 때 우리는 일해야 하고, 남이 걸어갈 때 우린 뛰어야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나는 다시 호소하노니 모든 것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우리 앞날에 대해 자신을 가지고 살자고, 좀 더 용기를 내고 개조에 앞장서자!”

 

 

(현명하신 여러 선생님들께선 내 말을 어린애의 어리광처럼 들릴지 모르나 너그러이 보시어 아낌없는 비판과 지도와 협조 있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19723월 군 제대를 앞두고 육군 중위 이대로(이택로)가 씀.

 

[이봉원 뜻벗 답장]

 

받을 사람: 1027부대 02부대 중위 이택로(대로)

보낸이 : 2795부대 간부교육대 중위 이봉원

 

이형 보시오. 이제 정말 말년 같소. 나른한 기후도 그렇고 달력이 뜯기는 것을 보아도 분명히 그런 것 같소이다. 이형 편지는 몇 번 반갑게 받았는데 내 편지는 못 받았다니 ...[숙소로 보낸 것 못받았다구요. 또 인편에도 한번 소식 줬었는데] 어쨋던 이형의 변함없는 정열과 신념 뜨거운바 있소.

 

얼마 전에 서울에서 김정수군을 만났는데 요새 신문에 보니까 다시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것 같더이다. "고운 이름 자랑하기"그 다섯 번째 행사를 갖고 그 시상식이 51511시 서울대 강당에서 있다하니 나도 그날은 꼭 참석을 할 터이니 이형도 가능하면 참석해서 그날 감격적인 만남이 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원고 건도 의논해 봅시다. 참 우리 부대에 최근 전입한 장교들이 있는 데 - 침쟁이 최 창환 중위와 임 경남 중위- 그들을 통해 이형의 활약 많이 들었소. 좌우간 남은 50여일 정말 무사한 근무가 되도록 명심할 것이며 나 역시 빌겠소. 15일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 오늘은 이만 줄이오. 안녕!

 

1972.5.1. 춘천서 이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