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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의원 누리집 - 한글에 눈 뜨게 된 이야기

한글빛 2005. 5. 1. 09:36
제목   내가 한글에 눈을 뜨게 된 이야기 등록일   2005-04-29 조회   24
내가 국어운동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고 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이 운동을 하게 한 밑거름은 도산의 주인정신이었다. 내가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눈 뜰 때 도산과 관련이 깊은 분들이 쓴 글을 읽었고 이 분들의 글이 내게 많은 감명과 감동을 주었다. 고등학교 때 춘원 이광수 선생이 쓴 소설 '흙, 무정, 유정, 사랑' 등 소설이 그것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할 때 한결 김윤경 선생이 내게 보낸 편지를 읽고 내가 대학에 가서 국어운동을 하기로 다짐한 게 그것이고, 대학 1학년 때 읽은 주요한 선생이 쓴 '도산 안창호 전서'가 내 정신무장의 씨앗이고 밑거름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이광수 소설 속에 나온 주인공이 농촌 계몽하는 이야기는 나에게 사회운동을 할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대학에 갈 가정형편이 못되고 실력도 내가 바라는 대학에 갈 수가 없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민할 때 김윤경 교수님께 그런 내 심정을 쓴 편지를 보냈는데 친절하게 바로 용기를 주는 답장을 해주셨다. 대학에 가서 책읽기를 열심히 하던 중 주요한 선생이 쓴 '도산 전서'는 가슴을 뛰게 했고 국어, 민족운동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정신을 튼튼하게 해주었다.

“묻노니 오늘 대한의 주인 되는 이가 몇이나 됩니까. 대한사람은 모두가 대한의 주인인데 주인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상할 것이외다. 그러나 오늘 대한사회에 주인다운 주인이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이 모두 나에게 달렸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자가 진정한 주인이요 무책임하게 방관하는 자는 손님이외다. 주변을 돌아보아 진정한 주인이 적다 싶으면 빨리 나부터 참 주인이 됩시다.”는 도산의 말씀은 내게 국어독립운동, 자주문화운동을 빨리 하라는 명령으로 들렸다.

나라가 힘없고 가난한 걸 비관할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주인으로서 힘센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그 누구보다 농촌운동을 열심히 하게 했고, 우리말 우리 얼을 지키고 빛내어 힘센 나라를 만드는 국어독립운동을 시작하게 했다. 우리말글로 온 겨레가 똑똑해지고 힘을 키울 때 우리도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힘센 나라에 짓눌리고 끌려 다니는 게 가슴 아팠지만 그 독립운동 일거리를 내게 주어 고맙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가고 미국 군대가 정치할 때인 1947년에 충남 서산군 천수만 바닷가 농촌에서 태어났다. 내 어릴 때의 이 나라, 우리 농촌 현실은 너무 살기 힘들었고 국민은 거의 글자를 모르는 무식꾼이었다. 6.25 전쟁 중인 1953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1962년 예산농고에 들어갔다. 6남매의 장남으로서 대학은 가지 않고 농업교육을 받고 훌륭한 농사꾼이 되어 집안을 이끌며 살기로 아버지와 약속하고 농업고등학교에 갔다.

그래서 학생 때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을 넓히겠다고 도서관에 가니 온통 일본어로 된 책이었다. 농업 전문지식을 얻으려고 養豚全書란 책을 열람해보니 일본말로 된 책이었다. 한두 권 우리말로 된 책이 있어도 한자를 섞어 쓴 일본어투여서 읽기에 불편했다. 독서주간을 만들어 놓고 책을 읽으라면서 지식에 목마른 자가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는 세상이었다.

거기다가 군사혁명과 함께 친일 한자파들이 일어나 일본처럼 한자 혼용해야 한다고 날뛰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은 "논밭에 거름 준다."고 하던 걸 "田畓에 施肥한다."고 칠판에 쓰기 시작하며 한자를 강조하셨다. 그 농업시간이 한문시간으로 바뀌었다. 도서관에도 우리말글로 된 전문서적이 적었지만 시내 책방에도 없었다. 어른들은 한글은 가장 자랑스런 민족문화유산이라면서 쓰지 않고 있었다. 교육과 사회가 모순덩어리로 보였다. 이래선 우리나라는 영원한 후진국이 될 것이라 느꼈다.

그 때 고교 선배 농촌운동가 한인수님이 와서 "농민들을 무지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농민에게 한글을 가르쳐서 스스로 공부해 잘 살게 해야 한다."며 농촌계몽운동을 하자고 외쳤다. 그러나 한글로 된 책이 없는데 한글만 배우면 뭐하나? 우리 말글로 된 책도 없고 말글살이는 일본식 한자혼용으로 가자는 지식인들이 못나고 어리석은 자들로 보였다. 농사를 지을 게 아니라 대학에 가서 사회개혁운동,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농촌운동에 앞장서고 국어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1967년 국어운동 대학생회를 만들고, 각 대학에 후배들 모임을 만들게 하고 이끌었다. 졸업하고 동문회를 만들고 이 운동을 계속했고 지금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란 시민운동모임을 만들고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한글사랑은 말로만 해서 안 되고 실제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름도 한글로 짓고, 한글로 공문서도 쓰고 교과서도 만들고, 신문도 만드는 게 한글사랑 첫걸음이고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문서를 한글로 쓰기로 된 한글전용법 지키기 운동을 하고, 정부기관 현판과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쓰게 하고, 신문도 한글로 만들자고 하고, 영어가 우리말을 짓밟는 걸 막는 운동을 했다. 그리고 지금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 법률문장 한글로 쓰기 운동을 하고 있다.

한글은 온 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로서 우리 겨레의 으뜸가는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세계 문화유산이다. 한글은 우리말을 적기 가장 좋고 우리가 지식과 정보를 얻고 주는데 가장 편리한 말글살이 도구요 자주문화 창조 무기다. 한글을 즐겨 쓸 때 우리는 빨리 똑똑해지고 힘센 나라가 되고 잘 살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정보통신 강국이 된 것도 한글 덕이다.
한글날은 대한민국이 서기 전 1926년 일제 때 민족 지도자들이 한글을 살려 우리 겨레가 독립된 나라를 세울 밑바탕을 만들려고 만든 날이다. 우리 민족 자주독립을 다짐하는 날이고 자주문화강국을 세울 꿈을 꾸는 날이고 힘센 나라, 똑똑한 국민이 되기 위한 약속을 하는 날이다. 일제 식민지 때 민족 지도자들이 한글맞춤법을 만들고 사전도 만들어 일제가 물러간 뒤 우리말글로 교육도 하고 온 국민이 똑똑해져서 민주국가를 빨리 만들고 경제발전을 하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그 한글날을 눈앞의 돈만 아는 얼빠진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1990년에 공휴일에서 일반 3등급 기념일로 만들었다. 우리말글이 몸살을 앓고 민족자주정신이 흐려지며 말글살이가 혼란스럽게 되었고 결국 나라살림이 엉망이 되어 국제투기자본의 식민지가 되게 이르렀다. 그래서 한글단체는 우리말과 얼을 살리고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한글로 힘센 나라를 만들자고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만들자는 운동을 하게 되었고 지금 그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다.

지금부터 10년 전 나는 내 스승 공병우 박사가 돌아가시면서 바로 피시통신을 시작하고 세상사람들에게 우리말 우리 얼 지키기, 한글사랑 운동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필명(아이디)이 영어로 쓰게 되어있었다. 나는 우리말과 한글로 쓰게 해달라는 운동을 했고 내 통신 또이름(아이디)을 '나라임자'라고 했다. 바로 이 나라 주인이라는 뜻이고 주인정신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나라임자'란 말이 있었지만 많이 쓰지 않았는데 독립운동가 박준항 선생이 애국 운동 소식지 이름이 '나라임자'인데 참 마음에 들었기에 그 이름을 바로 통신 또이름으로 정하고 지금도 필명이나 아호처럼 쓰고 있다. 그 결정 밑바탕엔 도산의 주인정신이 깔려있고 그 실천이다. 내가 하는 국어독립운동도 도산의 주인정신, 책임정신, 무실역행 실천이다.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나라의 말과 글을 사랑하고 지키고 빛내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말 속에 우리 얼이 들어있고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는 일은 우리 얼을 지키고 빛내는 일이라고 보아 이 운동을 하고 있다. 이 일이 민족운동이고 통일운동이고 자주독립운동이라고 보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애국운동, 민족운동, 통일운동, 도산 정신 펴기 운동을 하는 분들도 이 일을 우습게보아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한글은 세계 어디에 누구에게 내놓아도 자신 있는 우리 자랑거리다. 독일에서 유학한 분이 함께 방을 쓰는 중국인이 한국과 자기를 깔보니 다른 외국인들도 깔보고 푸대접해서 기죽고 살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한글로만 쓴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을 때 그걸 중국인과 외국인에게 내놓고 한글자랑을 하니 모두 놀래고 자기와 한국을 달리 보더란다. 그 뒤 자기도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하고 그들을 대했으며 외국인들도 자신을 동등한 친구, 사람으로 대하더란다.

똑 같은 국산품에 영문으로 상표를 달면 잘 팔리고 한글로 쓰면 잘 팔리지 않는단다. 이름을 한문으로 짓고 쓰면 품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마누라'나 '아내'란 토박이말보다 '처'란 한자말이 더 유식하게 생각하고 '와이프'란 미국말은 그보다 더 품위 있는 말로 생각하는 국민의식이 가득하다. 그런 정신으로 중국과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 수 없다. 그런 태도론 선진국은 꿈도 못 꾸고 자주독립국가, 문화강국이 될 수 없다. 식민지 근성, 사대주의를 한글사랑정신으로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자주정신, 주인정신을 심자. 제 것,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사대주의 식민지 근성이 자리잡지 않는다.

오늘날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시책을 만들고 고구려도 자기네 속국이었다고 하고 우리 민족을 야만 오랑캐로 생각하고 있으며 일본 또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떠들고 일제 36년 동안 식민지배가 잘 한 거처럼 역사를 꾸미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들이 우리를 깔보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우리를 우습게 여길까? 우리가 힘이 없고 못살기 때문이다. 왜 힘없고 못살까? 우리가 그들보다 똑똑하지 못하고 가진 게 적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말글로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고 빨리 똑똑해지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야 한다. 남의 글자나 말만 배우다 늙어선 우리는 그들을 앞서기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한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잘난 글자를 가지고도 우리 스스로 없이 여기고 우습게 보니 그들은 우리를 깔보고 우습게 여긴다. 우리말은 우리 얼이고 한글을 우리 긍지요 자신감이다. 한글을 입으로만 사랑할 게 아니라 몸으로 사랑하자. 한국말은 한글로 적는 게 가장 편하고 이롭다. 우리에게 한글이 있다는 건 큰복이고 자랑이고 힘이다. 한글을 쓰지 않고 한자나 영문을 쓰고 섬기는 건 복 떠는 짓이고 바보짓이다.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지식, 교양, 문화수준이다. 그 국민 수준은 교육과 말글 활용수준으로 결정된다. 우리는 우리 말글로 교육하고 우리 말글을 잘 활용함으로서 높아진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 한글을 잘 활용하여 세계 으뜸가는 문화강국, 한글나라가 되자.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정해 그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자. 그래서 우리가 동양과 인류문화 수준을 한층 드높이자. 국민이 똑똑하면 힘센 나라가 되고 잘 산다. 한글로 뭉치고 힘을 키우자.

 

국어독립운동꾼 리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