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제 새말 만들기와 말 다듬기에 힘쓸 때다

한글빛 2005. 7. 12. 09:41
작성일 2005-07-10 12:08:25     

“이제 말 다듬기와 새말 만들기에 힘쓸 때”

‘인터넷’ → ‘누리망’ 등 처음엔 낯설지만 정겹고 좋아

이대로 논설위원

 

 

이제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만 글을 쓰는 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한글로 된 책은 읽을 수 있지만 일제 한자말과 외국말이 많이 섞여 무슨 말인지 알아보기 힘들 때가 있다. 우리말이 우리말답고 더 좋은 말이 되려면 어려운 한자말과 외국말을 누구나 알아듣고 쓰기 쉬운 말로 다듬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지난날 우리는 전문용어와 학술용어를 일본 한자말이나 미국말을 그대로 들려다 쓴 게 많은 데 이 한자말과 외국말을 한글로만 쓴다고 말글문제가 다 풀리는 게 아니다. 이 한자말과 외국말을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던가 토박이말이 없으면 새로 만들어야 한다. 지난날 우린 이 일에 힘쓰지도 않고 게을렀다.

지난날 우리도 국어순화운동이라고 해서 우리말 속에 남아있는 일본말을 버리고 우리말을 쓰는 일은 좀 했다. ‘벤또’는 ‘도시락’으로, ‘와리바시’는 ‘젓가락’으로 바꾼 것들이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말을 우리말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 한자말과 말투를 많이 쓰고 있다. 거기다가 요즘엔 서양말과 서양말투가 뒤섞여서 우리말이 지저분하고 말글살이가 더 어지러워지고 있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아무리 한글만 쓴다고 해서 우리말글살이는 좋아지지 않는다. 

더욱이 세계화 바람이 불고 누리통신(인터넷통신)이 유행하면서 전자통신 말이 영어로 많이 쓰이고, 회사 이름이나 상품이름을 영문으로 많이 바꾸니 더욱 문제가 커지고 있다. 우리말이 살고, 우리 겨레가 일어나고 힘센 나라가 되려면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고 즐겨 써야한다. 한 겨레말은 겨레 얼을 담는 그릇이고 그 겨레말이 지저분해지면 그 겨레 얼과 국민정신도 지저분해진다. 그리고 그 겨레와 나라도 시들게 된다. 그래서 일찍이 주시경 선생님은 “한 나라말이 오르면 그 나라가 일어난다”며 우리말과 한글을 살려 쓰는 연구와 일에 한 삶을 바쳤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우리말이 오르고 빛나는 게 아니다. 모두 우리말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쓰고 외국말을 덜 써야 한다. 그리고 어려운 한자말과 외국말을 새 우리말로 바꾸고 말을 다듬어야 한다. 

우리말을 다듬는 일 가운데 영어로 된 통신용어와 전문용어 몇 가지를 살펴보고 새로 만들어 써보자. ‘컴퓨터’는 ‘셈틀’로, ‘인터넷’은 ‘누리그물’이나 ‘누리망’으로, ‘홈페이지’는 ‘누리집’으로, ‘네티즌’은 ‘누리꾼’으로, ‘웹사이트’는 ‘누리터’나 ‘누리통’으로, ‘인터넷주소’는 ‘누리네’로, ‘블로그’는 ‘누리방’으로 바꾸어 쓰자, 위 새말은 많은 이가 써서 자리 잡은 것도 있지만 새로 만든 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쓰이지 않고 있다. 새 우리말이 처음엔 낯설지만 조금만 쓰면 정겹고 더 좋다. 여러 사람이 써서 우리말로 굳히면 좋겠다.

오늘 날씨가 무척 더운데 넥타이에 구두까지 신고 다니려니 짜증이 났다. 그런데 거리의 여자들을 보니 옷은 목과 허리가 드러나는 시원한 옷이고 신발도 시원하게 끌신(슬리퍼)이나 끈신(센들), 그물신(망사신)을 신고 있었다. 영어로 된 신발명칭도 우리 토박이식으로 새로 지어서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리퍼’ 는 ‘끌신’, ‘센들’은 ‘끈신’, 요즘 유행인 구멍이 뚤린 ‘젤리슈즈’나 여름구두는 ‘그물신’으로 하면 어떨까. 본디 우리말에 짚신, 나막신, 고무신이란 말이 있는데 그와 이어지고 통하니 괜찮지 않은가.

우리보다 북쪽이 말다듬기는 더 많이 잘했다고 한다. 지난해 중국 심양에서 연 정보통신 국제학술대회에 가서 북쪽 원로 국어학자 심병호 선생을 만났는데 북쪽은 외국말이나 어려운 일본 한자말을 쓰는 사람보다 고유어(토박이말)를 쓰는 사람을 더 유식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본다고 했다. 오랫동안 말다듬기를 하는 가운데 그런 의식이 자리 잡았단다.  그런데 남쪽은 제 말을 버리고 미국말이나 일제 한자말을 많이 섞어 쓰는 게 유식하고 잘 난 거로 여기니 답답하다.

북쪽처럼 정부나 공무원이 우리말을 바르게 쓰고 말 다듬기에 앞장서야 하는 데 오히려 남의 말을 즐겨 쓰고 퍼트리기에 열심이다. 테스크포스트팀, 아젠다, 마인드, 브리핑 같은 외국말은 청와대 사람들이 더 즐겨 쓰고 공무원들이 퍼뜨리고 있으니 말이다. 머지않아 남북이 하나가 될 터인데 말글이 잘 통하지 않아 많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났을 때 김 대통령이 미국말을 자주 섞어 써서 김정일이 답답해하더란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미국말을 북쪽 사람은 못 알아들어 거리감을 느낀다.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뜻에서도 우리말 다듬는 일은 중요하고 열심히 할 일이다.

방금 방송에서 “빛을 발하다. 그런 사실을 접해 본 일이 없다. 체중이 감량되다.”라고 하는 데 “빛을 내다. 그런 일을 본 일이 없다. 몸무게가 줄었다 ”라고 하면 더 좋겠다. 며칠 전 신문에 “요즘 신입사원들이 영어를 잘 하는 데 국어는 잘 몰라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보도기사를 본 일이 있다. 모두 우리말을 우습게 보고 사랑하지 않은 데서 나온 결과다. 정치가 무엇이고 공무원이 어떤 말씨로 말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외국말과 어려운 한자말을 더 좋아한다. 진짜 참 정치인인 세종대왕과 그 때 관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 국어원에서 외국말 전문용어를 새말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는데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국민이 따르고 돕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주 생판인 외국말을 잘 쓰는 머리와 마음이라면 우리 새말은 조금만 노력하면 바로 익숙해진다. 이제 정부와 국민이 모두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고 바르게 쓰면서 말 다듬기를 하고 새말을 열심히 만들어야 할 때다. 우리가 우리말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다듬어 쓸 때 우리말이 온누리에서 으뜸가는 말이 될 것이고 으뜸 문화강국이 될 것이다. 과학시대인 오늘날 세계 으뜸 과학글자인 한글을 가진 우리가 마음먹기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