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이제 한글문화권 시대다 - 김동길

한글빛 2006. 4. 3. 10:04
김동길 "한자문화권 아닌 한글문화권 시대"
[사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일꾼들에게 활동비를 주며 힘내라고 격려
 
이대로
 
우리말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인 김경희, 김수업, 김정섭, 이대로 네 사람이 가뭄에 단비가 솔솔 내리는 사월 일일 봄날에 신촌 연세대 앞에 사시는 김동길 박사 댁에 다녀왔다. 김 박사는 평소 한글과 우리말을 남달리 사랑하시고 그 실천을 하는 글도 많이 쓰고 강연을 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는 일에 앞장서는 우리 모임 일꾼들에게 그동안 애쓰는 모습에 고마운 말씀과 함께 맛난 점심을 차려주시며 활동비까지 주셨다. 우리 회보는 초라한 소식지인데 그 큰 어른이 참 좋은 책이라고 칭찬하셨다. 
 
김 교수는 올해 일흔 아홉이 되신 할아버지이시다. 당신께서는 할아버지라고 하시면 섭섭해하시고 청년이라고 해야 좋아하실 터이지만 우리 사회 보통 현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 나이면 보통 할아버지들은 노인정이나 가서 놀거나 편안하게 사실 터인데 이 분은 그렇지 않다. 태평양시대위원회(http://www.kimdonggill.com)란 모임을 만들고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목요강좌를 열고 한국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나라의 모든 문제를 풀려는 이야기마당을 연다. 그리고 틈만 나면 나라와 겨레를 걱정하는 글을 쓰시고, 여기저기 강연을 하시기 바쁜 분이다.
 
그런 바쁜 분이 그동안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 내는 소식지 '우리 말 우리 얼’을 받을 때마다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우리가 하는 일을 좋게 보신 나머지 이번에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걸 축하할 겸 격려 차 초대 하셨다. 평소 우리와 연락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우리 모임 공동대표들에게 한번 만나자고 연락을 하셨을 때 뜻밖이어서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모든 일을 제쳐두고 만나 뵈었다. 부산에 사시는 김정섭 대표는 얼마 전 큰 수술을 하고 요양 중이라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고 있지만 서울까지 오셨다. 우리 모두 김 박사를 만난 뒤 "이 사회에 원로가 없다고 하는 데 참으로 고마운 어른이다. 한 때 정치판에 뛰어 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지만 멋있고 훌륭한 분이다."며 임의 뜻과 사랑을  받들어 우리말 살리는 일을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
 
김 박사는 우리 공동대표들을 만나서 “날마다 우편물이 많이 온다. 책도 많다. 그런데 다 읽지 못하고 읽을 가치가 없는 책도 많다. 그러나 ‘우리 말 우리 얼’은 기다려진다. 참 좋은 이야기가 많다. 우리말과 한글을 이렇게 사랑하고 그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궁금했다. 돈이 생기지도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하는 여러분이 고맙다."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이대로 가지 말고 그대로 계속 가라."라고 내 이름을 떠올리는 격려를 하며 모두 웃게도 하셨다. 그리고 활동비 일백만 원을 주시고 김정섭 대표께는 부산에서 오느라 애썼다고 차비까지 주시는 자상함도 보였다. 
 
▲왼쪽부터 이대로, 김수업, 김동길, 김정섭, 김경희     © 이대로


마침 미국 뉴욕주립대 세종학연구소 소장이었고 요즘 글자가 없는 미국의 인디언과 중국 소수민족들에게 누리글(한글) 보급운동을 하는 김석연(79) 교수님도 함께 자리에 있었는데 김 소장이 그 활동 설명을 하면서 " 월간 조선에 내 활동기사가 났는데 보았습니까."라고 김동길 박사께 말하니 김 박사님은 못 보았다고 했다. 김석연 교수와는 50년 전에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아는 사이다. 월간 조선은 김 박사께서 글도 쓰고 구독하는 책이다. 마침 댁에 있는 월간조선을 확인하니 김석연 교수 사진까지 크게 기사가 나왔었다. 그걸 보고 김동길 박사는 "사진이 너무 미인이라 배우로 보여 그냥 넘어가 못 보았다."며 미안한 마음을 웃음으로 넘겼다.
 
나는 속으로 김 박사께서 월간조선보다 우리 모임 회보를 더 좋아 하시는구나 좋아했다. 그리고 기쁘고 고마워했다. 지난날 돌아가신 한글학회 회장 허웅 교수님과 오리 전택부 선생께서 우리 모임 소식지를 볼 때마다 좋다고 칭찬한 일이 있다. 부산대 박태권 명예교수께서도 우리 소식지를 받으면 " 참 알차고 좋은 글이 많다. 이 선생이 쓰러지면 안 된다. 건강 조심하라."라고 할아버지인 당신 건강보다 젊은 내 건강을 걱정하셨다. 부안에 사는 김명수 선생님도 우리 소식지를 받으면 "아우야, 애썼다. 고맙다. 난 촌구석에서 아무 일도 못하니 미안하다."며 내 건강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모두 우리에게 힘을 솟아나게 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살맛이 나고 이 나라가 좋다고 느꼈다.
 
그런데 허웅, 전택부, 박태권, 김명수 님들은 우리와 함께 한글운동을 하는 분들이고 연락을 주고받던 분들이다. 그러나 김동길 박사님은 우리가 하는 일을 알지도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우리를 감동시키고 용기를 주시니 더 힘이 나고 더 잘할 것을 다짐하게 만들었다. 오늘 우리들의 감동을 가볍게 볼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잘났다는 사람들과 돈 많고 이름난 사람일수록, 정부와 언론과 시민단체 대표들도 우리말과 한글보다 한자나 영어만 섬기며 우리가 하는 일을 비웃는다. 그리고 한글관련 단체 사람들도 힘을 주기보다 견제하고 더 힘 빠지게 한다.
 
한국인이라면 한국말과 한글을 그렇게 우습게 봐선 안 된다. 제 나라의 말글을 사랑하고 빛내는 데, 여야 정치인, 보수와 개혁 인사이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말을 살리고 지키는 일이나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일에 대한민국에서 잘나고 힘 있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모른 체 한다. 참된 배달겨레요 진짜 한국인이라면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걸 모두 기뻐할 것이고 겨레말이 영어에 죽어 가는 걸 못 본체 하지 않아야 한다. 김동길 박사님은 참된 배달겨레요 진짜 한국인이기에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김동길 박사님과 서로 잘 알고 가깝게 지내진 못했지만 남다른 인연이 있다. 18년 전  공병우 박사님이 미국에서 돌아 와 한글기계화운동을 다시 시작할 때 내가 모신 일이 있다. 그때 공 박사님은 김동길 박사께서 한국일보에 쓴 "한자문화권은 가고 한글문화권시대가 온다”는 논단을 여러 사람에게 복사해 뿌렸다. 그 글을 읽고 김 박사께서 한글과 겨레를 남달리 사랑하는 분이고 앞을 내다보는 선각자라 생각했다. 그 때 노태우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다고 해서 마땅치 않은 데 정부가 한글전용법을 위배한 광고문까지 내기에 나는 노재봉 국무총리를 한글전용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한 일이 있다. 그 일을 할 때 공병우 박사님과도 의논하고 김동길 박사께 편지로 의논했다. 그런데 나는 김동길 박사을 한번도 만나 뵈지도 안 했지만 내 편지에 "용기 있는 일이다. 힘내고 승리하라."라는 답장을 바로 주셨다.
 
그래서 검찰에 고발장을 내고, 국무총리실로터 다시는 정부가 그런 광고를 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바로잡은 일이 있기에 김동길 교수님을 고마워하고 우리와 뜻이 같은 분으로 생각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모임 회보를 내가 보내드리게 했는데 잘 읽으시는 줄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어떤 화려한 간행물보다 초라한 우리 회보 '우리 말 우리 얼'을 기다려진다니 놀랍고 기뻤다. 보람을 느낀다. 사실 이 일을 함께 시작한 이오덕 선생님도 돌아가시고 재정 형편도 어려워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며 더 좋은 책으로 내고 우리말을 지키고 한글을 빛내는 일과 한글문화권 만드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책임감까지 느낀다.
 
어제 만났을 때 김동길 박사는 "내가 80년대에 한자문화권 시대는 가고 한글문화권시대가 온다는 한국일보에 쓴 일이 있는 데 미국에 가있던 공병우 박사가 매우 반긴 일이 있다. 한글이 훌륭하고 한국인의 머리가 좋기 때문에 확신한다. 그리고 한자를 좋아하고 일왕을 섬기는 일본은 세계를 이끄는 민주국가가 되지 못하지만 우리는 될 수 있다.  외국 학자도 그렇게 말했는데, 요즘 야구에서 미국과 일본을 이기는 걸 보면서, 김석연 교수님도 한글 세계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우리말살리는모임도 열심히 우리말 지키기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갖게 된다. "라며 우리가 마음먹고 노력하기 따라서 선진국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나는 공병우 박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남은 유산이라며 내게 준 사진 책과 국무총리 고발장, 한글날 국경일 추진 자료집을 가지고 가 드렸다. 그런데 김동길 박사께서 돌아가신 공병우 박사님 말씀을 하셔서 무언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5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을 하고 싶어 대학에 가야 하는 데 살기가 힘들어 농사 일을 할 때, 알지도 못하는 국어학자 한결 김윤경선생님께 의논 편지를 하니 바로 대학에 가서 꿈을 펴라고 답장을 주셔서 용기를 내어 대학에 가서 국어운동을 시작한 일이 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도 한결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 아쉬워하고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다.
 
그러고 어제 김 박사님이 먼저 만나자고 하셔서 뵙게 되니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헤어질 때 김동길 박사님은 내게 "밝은 이대로 관상처럼 그대로 밀고 나가면 된다."며 잘 하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그 말씀에 외롭지 않음을 느꼈고 사는 보람을 느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일에 몸 사리던 한글 주무단체 간부라는 이들도 내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한다는 대통령이나 장관, 언론인과 시민단체 간부들도 우리들 하는 일에 눈길을 주지 않는 판에 눈물나게 고마웠다. 내게 용기와 힘을 주신 어른, 누가 뭐라 해도 우리에게 가뭄에 봄비와 같은, 고마운 우리시대 어른을 만난 걸 기뻐한 날이다. 
 



배달말을 가꾸는 겨레사랑 터 /우리 말    우리 얼 제47호 2006.2
 
우리 주장
한글날을 국경일로 되돌려라                               공동대표
깨끗한 겨레말로 쓴 노래
1   멧새 소리                                            백  석
건의와 논쟁
4   한글날과 국경일                                      김수업
12  17대 국회와 한글날 국경일                            이대로
27  한글은 세계문화유산                                  신승일
틀린 말 바로잡기
31   틀린 말 바로잡기 (2)                                 김정섭
쉬운 말 좋은 세상
39  사랑하는 예솔에게 (2)                                 노명환
42  신문글 다듬기 (2)                                     남기용
더불어 사는 세상
48  과거사를 청산한다는 것은                              김조년
62  파라곤보다 버드내 아파트                              유동삼
책을 읽고
66  《우리 말 살려쓰기》를 읽으며                         문영이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회보
 
 


본지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세계화추진본부 상임이사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






2006/04/02 [11:13]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