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나라 곳곳에 단 펼침막에 영문 구호를 써 달았습니다. 옛날엔 한문이나 한자말을
써야 권위가 있는 거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영문이나 영어 낱말을 써야 잘하는 짓으로 생각하는 공무원이 많습니다. 우리 공무원이 우리 나라말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한 무리의 공무원들이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선관위가 단 펼침막을 보고 눈살을
치푸렸습니다. 저도 사진을 찍었는 데 어쩌다가 올리지 못했습니다. 마침 우리 회원인 송선생님 글마당에 갔다가 좋은
사진과 글이 있기에 여기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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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아 미안하다
거리에 붙은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의 현수막에
“Pride 5.31"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제가 모는 자동차가 기아에서 만든 프라이드 인데, 아마 새로 나온 프라이드 기종인 모양입니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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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년 한글이 만들어졌으나, 한글이 우리나라의 공용어로 사용된 것은 1948년 한글전용에관한법률이 제정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국어기본법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공용어(公用語)는 한자였죠. 그러다가 왜인들에 의해서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후의 공용어는 일본어(물론 한글도 일부 사용되었겠지만)였다가 광복 이후에 겨우 한글이 우리나라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은 여전히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 한자를 섞어 써야 유식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노랑턱멧새는
풀밭에 집을 짓는다”고 하면 될 것을
“노랑턱멧새는 초지에 영소한다”라고 적습니다. 법원판결문은 한글로 적어놨으되 뜻을 알지 못할 말이
많습니다.
"원고가 1987.5 말경, 최문철에게 돈 1,200만원을 빌려주면서, 돈 갚을 날을 1988.9.10로 정하였고, 그
때 피고들은 위 채무의 연대보증인들이 되었다."고 하면 될 것을
“피고들은 1987.5 말경 원고와 사이에, 그 시경 소외 최문철이 원고로부터 금 12,000,000원을, 변제기를
1988.9.10로 정하여 차용함에 있어서 피고들이 소외 최문철과 연대하여 원고에게 위 차용금을 변제하기로 하는 내용의 보증계약을 체결하였다”
고 적습니다.
그런데 한글로 풀어쓰지 않고 한자로 적은 것은 단순히 유식해보이려는 ‘소박한’ 바람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은
한자라는 언어로 정보를 교류함으로써 그들의 기득권을 지켜내고자 했습니다. 당시 한가로이 한자를 배울 시간이 없는 보통 백성들은 당시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지요.
서양에서 라틴어 성경이 성직자들의 권위를 유지시키는 방편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종교개혁을 통해서 자국어 성경이 만들어지면서 종교에 대한 대중의 접근이 가능해졌지요.
판결문이 어려워야 변호사나 판사가 하는
일에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고, 학술서적의 내용을 어려운 전문용어로 적어놔야 전문가로서의 권위가 사는 것이지요. 최근 영어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영어에 접근하기 쉬운 기득권층의 기득권 방어수단이라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게다가 복거일의 영어공용화 주장이 조선일보의
광고(공정보도가 아닌 일방적 선전)를 통해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용어는 한글입니다. 국가 안에서 개인간,
국가와 개인간, 국가와 국가간의 의사소통을 한글로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어가 공용어로 된다면 학교에 영어공문이 내려오고, 생활기록부는
영어로 써야하고,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 역시 영어로 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대다수의 국민은 또 다시 정보와 지식에서 소외되고,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강남공화국 국민들만이 지배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음모입니다. 매우 무서운 기득권의 음모라고
생각됩니다.
한글을 바르게 가르치고,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 이오덕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그것이 지식과 정보의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화운동이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족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지켜내는 민족운동입니다.
유네스코에서는 ‘킹 세종 프라이스’ 세종대왕상을
만들어서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데 도움을 준 단체나 개인에게 상을 준다는데, 제 나라에서는 변변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한글에게 무척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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