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남북 말글통일 운동

한글빛 2007. 1. 30. 21:54
남북 말글 동질성 찾는 데 힘써야
<기획>우리 말글살이 현황과 한글의 세계화14-남북 말글살이 통일운동
 
이대로 이철우 기자
 
▲한국어정보학회(남)와 사회과학원조선과학기술총연맹(북), 중국문화정보학회(중)는 지난 2004년 12일 중국 심양에서 ‘2004년 다국어정보처리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 이대로 논설위원
 
<참말로>는 한국언론재단 지원으로 <기획취재> ‘우리 말글살이의 현황과 한글의 세계화’를 15회에 걸쳐 연속 보도합니다.

이번 보도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12월16일까지 국내와 몽골, 중국, 일본 등의 동포들의 말글살이 현황 취재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참말로>가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에서 선정한 언론사 유일의 ‘우리 말글 지킴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인 우리 말글을 살리고 세계화를 이뤄, 우리 민족이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코자 합니다.(편집자 주)

 
일제식민지로 있던 36년은 이미 지났지만 그 피해와 부작용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일제는 우리 말글을 짓밟고, 우리 겨레 얼을 없애려 했다. 우리 땅과 겨레를 영원히 지배하려 한 것이다.

그들이 물러간 뒤에도 우리 말글이 병들고, 우리 민족정신과 정기가 더렵혀지고, 나라가 두 동강이 나서 같은 형제끼리 죽이는 한국전쟁을 치렀다. 그렇게 갈라져 산지 60년이 지났다.

6.15공동선언 이후 통일은 이제 해야만 하는 ‘당위’에서 진행 중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통일을 준비하는데 가장 먼저 가장 힘써야 할 것은 바로 말글 통일이다.

말이 통해야 마음이 통하고, 행동도 하나가 되어 참된 나라 통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말글 통일 준비 현황과 문제점, 전망을 살펴본다.

남북의 말글살이가 갈라진 결과와 현상

지난 60해 동안 남북이 다른 정치 체제 속에 살다 보니 국어정책이 다르고 사람과 말이 오고 가지 못해서 말글이 통하지 않는 게 많이 생겼다. 남쪽은 서울 중심 말을 표준말로 정하고, 북쪽은 평양 중심 말을 표준말로 정하여 문화어라 부른다.

북쪽은 어려운 일제 한자말을 쉬운 토박이말로 많이 다듬고, 남쪽은 일제 한자말을 그대로 쓰면서 요즘에는 영어를 마구 들여다 씀으로써 남북 말글살이가 더 많이 뒤틀리고 갈라지고 있다.

그 결과를 일부 살펴보면 맞춤법·문법·한자어·외래어·전문용어 등 여러 가지 달라진 게 보인다. 전등알(백열전구)·세평방정리(피타고라스의 정리)·불타기반응(연소반응)·녀성고음(소프라노)·산줄기(산맥) 등처럼 남측과 표현이 다르다. 외국 땅이름도 주무랑마봉(에베레스트산)·뽈스까(폴란드)·깔리만딴섬(보르네오섬)·마쟈르(헝가리) 등으로 표기법도 딴판이다.

한자어 표기에서 남측은 두음법칙을 지켜 한자어 소리를 자리에 따라 다르게 적지만 북측에선 항상 한가지로 적는다. 남측은 ‘노인(老人)·양심(良心)·여자(女子)·규율(規律)·선열(先烈)’로 적는데, 북측은 ‘로인·량심·녀자·규률·선렬’로 적는다.

띄어쓰기에서 북측이 붙여 쓰기를 많이 인정한다.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하나의 대상으로 묶이는 덩이는 모두 붙여 쓰며, 의존명사와 보조용언도 대개 붙인다. ‘무엇때문에’, ‘대문밖에’, ‘학교앞에’, ‘우리들전체’, ‘울듯말듯하다’ 등이 그렇다.

남북 말글, 통일 움직임

일상생활 용어에서도 남측이 외국말, 영어를 마구 들여다 씀으로써 남북 말글살이가 더욱 달라지고 있으며 전문용어나 학술용어에서는 더하다.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는 “같은 말은 공통된 민족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민족 통일을 이루는 데 무엇보다도 말글 통일이 먼저 할 일이다”고 말한 바 있듯이 말글통일은 중요하다.

1. 한국어정보학회의 말글 통일 활동

남북 학자가 만나서 학술회의를 하고 남북 전문용어를 통일하려고 만난 것은 1995년 한국어정보학회가 처음으로 시작했다. 학술회의는 남북 정보통신 용어를 하나로 만들고 우리말을 살리자는 취지로 1995년 중국 옌볜(延邊)에서 처음 연 뒤 1995∼96년 대회에서 정보처리용어 통일안, 자판배치 공동안, 우리 글자 배열순서와 부호계 공동안을 만들었으며, 1999년과 2001년에 이어 2002년에는 정보통일기술용어 통일 문제를 토론하고 사전을 냈다.

한국어정보학회(회장 최기호)와 사회과학원조선과학기술총연맹(서기장 박영신), 중국문화정보학회는 지난 2004년 12월 중국 심양에서 ‘2004년 다국어정보처리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베이징올림픽 때 체육용어를 하나로 통일하고, 외국말보다 토박이말을 살려 쓰는 쪽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지난 2006년 8월에도 한국어정보학회와 조선국어사정위원회(서기장 심병호)는 중국 연길에서 중국 측 학자들과 따로 만나 베이징 올림픽 체육용어 통일사전을 만들기 위한 준비 토의를 했고, 2007년 초에 만나 마무리 토론을 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최기호 한국어정보학회 회장은 “베이징 올림픽이 내년이고,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겠다고 하는데 남북체육용어 통일에 대해 정부와 체육회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민간 학술단체가 힘들여 이룬 성과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기호 회장은 “2월에 중국 심양에서 남북관련 학자와 당국자가 모여 그 문제를 마무리하기로 했는데 경비 때문에 제대로 될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연변대 편집실 대표 유은종)과 남쪽(국어단체연합 회장 최기호) 협의서.     © 이대로 논설위원

▲베이징 올림픽 체육용어 통일사전을 위해 지난해 8월 연길에서 만난 남북 학자들.     © 이대로 논설위원
 
2. 겨레말 큰 사전 편찬 활동

‘겨레말 큰 사전’ 공동편찬위원회(상임위원장 고은 시인)가 2005년 2월 20일 금강산에서 결성식을 열어 민족어 수집과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겨레말 큰 사전’ 처음 시작은 1989년 고 문익환 목사가 평양에 갈 때 박용수 선생(한글문화연구회)이 만든 ‘겨레말 갈래사전’을 가져가 고 김일성 주석에게 주면서 통일국어대사전 편찬을 제안하고, 김 주석이 동의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남쪽 정치 사정으로 진행되지 못하다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2003년 문성근 통일맞이 이사가 북측을 방문해 다시 편찬 사업을 제안하여 2004년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남북은 이와 관련 서울·평양·금강산·중국에서 7차례에 걸쳐 회의를 했다.
 
지난해 11월 29일 중국 베이징 서원호텔에서 열린 ‘겨레말 큰 사전 편찬을 위한 전문가 초청회의’(전문가 초청회의, 8차)에서 중국 연변대 원로학자인 최윤갑 교수는 “남북 말글을 통일하되, 억지로 통일하지 말고, 품사 명칭부터 반드시 먼저 통일하고 다음에 접사를 통일하자”고 강조했다.
 
오상순 중국 중앙민족대학 교수는 “남측과 대화하려면 외래어를 많이 써야했고, 그래서 중국 동포사회에서 우리 겨레말을 잊어가고 있다”며 “중국 조선족에 모국어를 가르치고 사용할 때 남북 어문규범이 달라 혼란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오상순 교수는 “남북 동포뿐만 아니라 나라밖 동포들도 불편하지 않게 쓸 수 있게 말글 통일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병호 북경대학 한국어과 교수도 “남북 사전에 올림말에 차이가 있어 중국동포들은 따로 만든 규범을 쓰고 있다”며 “앞으로 서로 믿고 양보해 통일규범을 만들고 통일사전을 만들어 해외동포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송영인 이화여대 교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불필요하거나 쓰지 않는 한자말 전문용어가 많이 들어갔다”며 “가능한 전문용어는 쉬운 말로 바꾸어 올리는 등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는 말들을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겨레말 큰 사전’ 편찬 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베이징 전문가 회의에 토론자로 참여한 남영신 국어상담소 소장은 “겨레말 큰 사전 편찬은 통일뿐 아니라 우리말글 발전에 매우 중요한데, 말글관련 주무부처인 문광부나 국어학자·국어단체가 주도하지 못하고 통일부와 통일단체가 주도해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남영신 소장은 “말글 통일사전을 만들자는 것이지 정치통일 사업을 하자는 게 아니다”며 “정치 상황에 너무 민감하게 끌려 다녀서 낭비가 심하고, 운용방법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겨레말 큰 사전’ 편찬에 국어사전과 국어전문가가 아니라,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남측)와 민족화해협의회(북측)가 각각 주도하는 것에서 문제가 비롯됐다는 것이다.
 
고 문인환 목사가 고 김 주석에 전달한 ‘겨레말 분류사전’을 편찬한 박용수 한글문화연구회 회장은 “통일 사전을 만들려면 맞춤법 통일과 사전에 올리는 자음과 모음 순서 통일, 띄어쓰기 문제 해결, 두음법칙과 사이시옷 문제 해결을 먼저 중점 사업으로 해야 하는데 방언 수집에 더 힘쓰고 있어 그 사전이 잘 나올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겨레말 큰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음법칙 문제를 비롯한 실제 크게 다른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방언 수집 등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남측은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1933)에 따라 두음법칙을 적용해 왔지만, 북측은 1946년 ‘조선어신철자법’과 1954년 ‘조선어철자법’으로 두음법칙을 쓰지 않고 한자 원음을 그대로 표기하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포용하는 자세가 중요..남측 일본 한자말·서양말 오염부터 바로잡아야 
 
이와 관련, 최기호 상명대 교수는 “남북 말글 정책에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지만, 통일을 위해서는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질성을 강조하지 말고, 동질성을 찾아내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기호 교수는 “북쪽 말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다 받아들여야 하며, 하나가 아닌 두 개를 올리고, 통일보다는 넓게 포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자주 만나 그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셈틀 자판 통일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남쪽이 일본 한자말과 서양말을 마구 들여다 써서 우리말이 오염되는 있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최용기 국립국어원 국어진흥팀장은 “남북이 달라진 말도 있지만 그 뿌리는 같다”며 “남북 언어규범에서 양쪽이 모두 형태음소적 규범을 따르고 있어서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형태음소적 표기법에서 벗어나는 두음법칙과 사이시옷 규정은 서로 양보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을 통일할 범민족 기구가 있어야하며, 남북 국어순화교육을 같이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남측에서는 우리말 교육을 강화하고, 통합사전은 남북 표제어, 특히 지역어는 대폭 수용이 중요하다”고 남북말글 통일방안 방향을 제시했다.

그가 말한 형태음소적 표기법은 예를 들어 ‘잎’이라는 형태소가 ‘잎도’는 ‘입또’로, ‘잎만’은 ‘임만’으로 소리 나는 것과 달라 ‘잎’으로 적는 한글 맞춤법의 표기법을 말한다.

한편 임경희 중앙대학교 교수(화학공학)는 ‘남북 학술어’ 문제를 제기했다. 임경희 교수는 “공학계열은 발표자는 한국인이지만 7-80%는 영어로 발표한다”며 “국립국어원의 주요 사업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며, 학술용어는 남북 것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흡수통일’ 형식으로 통일을 이룬 독일만 해도 서로 방송과 신문을 자유롭게 볼 수 있었고, 끝내 정치통일까지 이어졌다. 방송은 물론 인터넷 사이트도 통제하고 자유로운 편지나 이메일 왕래도 ‘국가보안법’으로 통제하는 현실은 ‘말글통일운동’이 말글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2007/01/29 [05:36] ⓒ참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