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길거리에서 영어로 말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한글빛 2007. 6. 17. 10:40
길거리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젊은 사람들

[시론] 영어 열병 그대로 두면 한국말 사라지고 언어식민지로 전락할 것

이대로

며칠 전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자들이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외국인인가 살펴보니 겉모습은 분명히 한국인이었다. 책가방을 들지 않은 것을 보면 대학생 같지 않고 졸업했을 법한 아가씨들이었다. 한낮에 전철을 탄 것을 보니 일자리를 못 잡은 해외 유학파로 보였다. 한국에서 학교 성적이 좋지 않으니 조기 유학을 가서 영어라도 잘하면 출세할 줄 알았는데 돌아와 보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취직도 못하고 빈둥대는 젊은이가 있는데 그런 여성으로 보였다.

차를 탔을 때 옆에서 한국말로 지껄이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데 영어로 떠들어 대니 짜증이 났다. 그런데 농담은 한국말로 하는 것을 보니 진짜 한국인이었다. 다른 한국인들은 영어를 알지 못하니 자기들끼리만 아는 비밀스런 이야기는 아무리 떠들어도 괜찮다는 것일까? 아니면 영어로 지껄이는 게 큰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요즘 서울에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가끔 이렇게 영어로 말하는 한국인들을 보게 된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영어로 묻고 대답하게 하고 기뻐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영어 마을을 만들고 영어로 말하게 하기도 하고, 영어로만 하는 방송도 있고, 영어로 말해야 잘 나고 잘 사는 것으로 선전하는 신문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제대로 된 꼴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걱정한다. 나라가 망할 징조로 보여 내 가슴이 탄다. 외국인을 만나서나 외국에 가서 외국말을 해야지만 한국에서 한국인들끼리 한국말을 하지 않고 외국말을 하게 되면 한국말이 한국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지금은 많지 않으니 큰 걱정을 하지 않겠지만 자꾸 늘어나면 한국말이 사라지고 한겨레와 한국도 쓰러지게 된다. 어렵게 배운 영어를 써보려거나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쓸 수도 있다며 큰일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가면 길이 된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큰 바위도 뚫고, 한 방울씩 내리는 빗방울이 큰 강물도 되고 물난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15년 전 김영삼 정권이 영어 조기교육을 시행하겠다면서 영어 바람을 일으킬 때 겨레말과 겨레를 죽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교육정책이니 서두르지 말라고 말한 일이 있다. 충분한 연구 검토를 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국제화니 세계화니 떠들면서 제 나라의 말글을 우습게 여기고 있어 겨레와 나라 망칠 정책으로 보았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을 들먹이면서 "겨레말은 겨레 정신인데 영어 열병으로 겨레말이 병들면 겨레 정신이 약해지고 나라와 겨레가 망할 수 있다."라고 영어 열병을 겨레를 죽일 영어암이라고 주장했다. 무조건 어려서부터 영어에 시달리게 하지 말고, 중 고등학교 영어 교육환경과 방법부터 개선해야 함을 외쳤다. 대한제국이 망할 때 외국인이 오늘날보다도 많았고 일본말을 배우고 쓰는 열풍이 일었다는 통계 자료를 보고 더욱 그런 예감에 불안해했다. 그런데 내 예상대로 몇 년도 가지 않아서 국제통화기금의 경제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지금도 서민과 나라를 힘들게 하고 있다.

거기다가 김대중 정권 때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는 말이 나오더니 그쪽으로 자꾸 가고 있어 보여 마음이 초조하다. 여기서 나는 한국인들의 입에서 한국말이 나오지 않고 영어가 나오는 일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이런 꼴이 수십 년이나 수백 년이 지나면 이 겨레말과 이 겨레는 사라질 수 있다는 예감에 불안하다. 더욱이 대통령과 장관과 언론과 학자가 영어 열병은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더욱 부채질하니 걱정된다. 제발 내 예감과 불안이 맞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기에 오늘, 이 글을 쓴다.

우리 겨레는 5천 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하지만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말은 있었으나 우리 글자가 없어 중국 한문으로 말글살이를 했다. 그래서 우리 말글로 된 역사책이나 우리 말글이 쓰인 오래된 역사 유적이나 유물이 드물다. 조선시대까지 책은 거의 모두 한문이고 유적이나 유물에 쓰인 글은 거의 모두 한문이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지난 천 년이 넘는 동안 우리 조상은 우리말을 우리식으로 적으려고 애썼고 우리 글자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삼국시대부터 쓴 이두나 향찰 식 글쓰기가 그 첫 흔적이고 노력이다. 그리고 600년 전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게 그 중대한 일이다. 우리 글자가 없어 중국 한자를 쓰고, 일본 강점기엔 일본말을 나라말로 쓰고, 지금 영어에 목매는 현상을 언어 식민지 현상이고 국어가 독립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우리말을 지키고 한글을 쓰자는 일을 언어식민지가 되지 말고 국어독립을 하자는 운동이라고 본다.

나는 이 일이 신라 때 설총과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한 일을 이어서 국어독립운동을 하는 일이고, 이 국어독립은 우리 겨레의 천 년 소원이며 한이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마음대로 적을 수 있는 세계 으뜸가는 우리 글자인 한글을 만들어 주었기에 천 년 소원인 국어독립을 이루게 되어 겨레의 천 년 한이 풀리게 되었다. 미국말, 중국말, 일본말을 배우고 잘하면 좋고, 필요할 때는 써야 한다. 그러나 그 언어 식민지는 되지 말자. 많은 사람 입에서 영어가 나오는 데 자기만 못하면 부끄러워하게 되고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우리 겨레말은 사라질 것이다.



2007/06/15 [05:58]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