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중국 항주 혜인고려사와 의천대각국사.

한글빛 2009. 2. 4. 20:13

중국 혜인고려사에서 한국 문화의 발자취를 보다
[이대로의 우리말글사랑] 한중 문화교류, 최근엔 운영권 문제로 '발길 뚝'
 
이대로
중국은 2007년 5월 1일에 절강성 항주 서호 근처에 있는 고려사를 다시 지었다. 항주 고려사는 고려 의천(1055-1101) 대각국사가 공부한 인연으로 ‘고려사’라고 이름이 붙인 절이다. 의천은 고려 제11대 문종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11살에 스님이 되어 불경 공부를 많이 했고 30살에 중국 송나라로 밀항해서 14달 동안 불경공부를 했다. 항주 상주사 주지 정원(1011-1088)으로부터 화엄경을 전수받고, 헤인원에 화엄교장을 설치하고 책 7500여 권을 비치했는데 그 경비를 의천 대각국사가 지원했다고 한다. 그 공적으로 그 후에 혜인원은 ‘고려사’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근래에 그 절이 없어졌다가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게 되니 이 절을 재건하고 ‘혜인고려사’라고 간판을 달았다. 
 
▲ 최근에 중국 항주 서호 근처에 다시 지은 혜인고려사 정문. 한국 관광객이 많이 가는 항주 영은사와 서호 근처에 있다.     © 이대로

혜인고려사는 한국 관광객이 많이 가는 항주 서호 근처에 지었는데 한국 관광객을 받아들이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그 절엔 의천 대각국사 동상을 모신 대각당과 대각국사의 발자취를 설명해 논 전시관이 있다. 중국 절강성은 수 천 년 전부터 우리 겨레가 많이 오고 간 곳이고, 한중 문화교류 발자취가 많은 곳이다. 중국은 최근에 고려 사람이 많이 와서 묵었다는 고려관도 영파시에 다시 지었고, 심청이 환생하여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집(심원)을 주산도에 다시 복원했다. 모두 항주 근처 절강성에 있는 곳으로서 우리 땅과 뱃길로 왕래가 잦았던 중국 동해안 지역이다. 
 
▲ 중국 관광지 어디를 가나 알림글이 중국 글과 한글로만 썼는데 새로 지은 혜인고려사의 알림글은 한자혼용인데 한국 불교대 교수가 “한국인에게 한자공부 하게 한자로 써야 한다.”고 고집 부려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했다는 안내인의 설명이었다.     © 이대로

의천스님은 왕자로 태어났지만 불교에 입문하여 불교 발전과 중국 문화교류와 고려 문화발전에 공적이 커서 고려 숙종은 의천스님에게, '크게 깨달은 나라의 스승'이라는 뜻에서 '대각국사(大覺國師)'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후세 사람들은 의천스님을 '고려의 석가'라 불렀다고 한다. 그는 중국 송나라에 가서 불교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임금이 허락을 하지 않으니 송나라에 밀항까지 해서 불경 공부와 문화교류에 힘썼다. 그곳에 14개월 동안 머무는 동안 중국 화엄종의 제1도량인 혜인원에서 반년 동안 화엄종 공부하고 화엄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화엄종에 속한 승려이면서도 천태산에 가서 천태종을 공부하고 고려로 돌아와 고려 천태종을 개창조했다고 한다. 
 
▲ 한국의 의천대각국사 동상을 모신 곳은 한글과 한자혼용인데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대웅전의 불전함 글씨는 한글이어서 한국인과 중국인의 의식이 대조가 되었다.     © 이대로

1000년 전 우리 겨레 선배가 걸었던 발자취를 나도 따라서 걸으면서 그 선조의 크고 높은 뜻을 이어서 한국과 중국의 새로운 우호협력 역사를 쓰고 싶은 꿈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려사를 찾았는데 막상 그곳에 가니 실망스러워서 씁쓸한 기분이었다. 절을 지은 초기엔 우리나라 스님도 와 있었고 우리 관광객도 많이 와서 북적대었다는데 운영권 문제로 갈등이 생겨서 한국 스님도 모두 가고 우리 관광객의 발길도 끊겨서 아무도 없이 썰렁했다. 더욱이 중국 관광지 어디를 가나 한글로만 쓴 알림글이 있는 데 그곳의 알림글은 한자혼용이었고, 한국의 불교대학 교수의 고집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중국 안내인의 설명에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본래 고려사가 있던 곳에 의천 스님의 활동을 방해했다는 서동파의 동상이 서 있고 지금 절은 본래 자리에서 떨어진 곳에 지은 것도 기분을 좋지 않게 했다. 
 
▲ 옛 고려사 터에 서 있는 시인 서동파(1037~1101) 동상, 서동파는 송나라 때 두 번이나 항주지사로 있으면서 오늘날 서호 개발에 공로가 큰 사람이었는데 의천 대각국사의 활동을 방해한 인물이라고 한다.     © 이대로

새로 지은 혜인고려사의 규모도 작지만 볼거리도 별로 없고 초라한데다가 기분이 상해서 입장료 20원(,한국돈 4000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관광지 입장료가 현지 다른 물가에 비하면 비싼 편인데다가 요즘 환율이 올라서 더 그랬다. 문화교류보다 돈 때문에 갈등이 빚은 것도 그렇고, 중국의 관광지 어디를 가더라도 그 설명문이 한글로만 되어 있는데 한국의 불교인이 고집을 부려서 옛 한자를 혼용했다는 중국 안내인의 말을 들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재는 100년, 1000년 그 자리에서 서 있고 한자를 모르는 우리 후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누구나 와서 보고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과 쉬운 말투여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런 한국 불교학자의 의식이 한글만 쓰는 기독교에 비해 한국 불교가 발전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자로서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 항주 혜인고려사 대각전에 있는 의천대각국사 동상.     © 이대로
 
▲ 혜인사가 중국 화엄종의 제1 도량이었다는 표시     © 이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
중국 절강성 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







 
2009/02/04 [12:02] ⓒ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