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절강성에 한국어와 태권도, 한국문화 심기 | |||||||||||||||||||||
[이대로의 우리말글사랑] 월수외대에 태권도·서예를 학과목으로 만들다 | |||||||||||||||||||||
중국 절강성 소흥은 중국의 단군이라고 불리는 하나라의 우왕의 릉인 대우릉이 있고, 월나라의 수도였기에 월나라궁터가 있으며, 현대 중국 문학의 상징인 노신과 현대 정치가인 주은래의 집이 있어서 중국 문화와 역사의 발상지요 중심지라고 한다. 그리고 절강성은 우리와 바닷길로 가까운 거리여서 삼국시대부터 우리 조상이 많이 오고간 곳이다. 그래서 이곳엔 우리 인연이 깊고 우리 흔적이 많은 곳이다. 나도 우리 조상의 발길이 잦은 이곳 절강월수대외대에 태권도장을 만들고, 한국어과에서 중국 대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한,중 문화교류 증진과 우호협력의 길을 만들고 있다. 이제 2년 동안 이곳 생활을 마치고 국내에서 활동할 계획이기에 그동안 중국 땅에서 한 일을 살펴보련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온 건 2006년 말이다. 그때 나는 인터넷 신문 참말로에서 "우리 말글의 현실과 과제"란 주제로 특집을 내면서 해외 한국어 교육 실태를 취재하려고 북경을 거쳐서 절강월수외대를 방문한 일이 있다. 마침 이 학교에 연변에서 남북 정보통신 학술회의를 하면서 친한 연변대 유은종 교수가 와 있기 때문이었다. 이 학교에 와 보니 새로 생긴 사립학교지만 한국어과 학생이 500명이나 되어서 중국에서 한국어 교육열이 얼마나 뜨거운지 실감이 갔다. 또 이곳 소흥이 평소 내가 좋아하던 중국의 유명한 문인으로서 "한자가 없어지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고 문자 개혁을 주장한 노신의 고향이어서 호감이 갔다. 그런데 이 학교 총장이 태권도장을 학교 안에 만들고 싶다면서 도와줄 것을 간청하고, 유은종 교수가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며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을 함께 하자."고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2006년 국경일이 된 첫 한글날 행사를 주관한 뒤에 새로운 일을 찾던 참에 해외 한국어 보급에 힘쓰는 일이 앞으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중국에서 그 활동을 할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래서 이 학교에 태권도장을 만들고, 중국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 실천 과정과 지난 2년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그 일들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1. 태권도장을 만들고 태권도를 체육과목으로 만들다 2007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월수외대에 태권도장을 만들고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년 동안 태권도 관장으로서 운영까지 해봤으나 한국어 교육을 하면서 그 일을 함께 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태권도를 체육과목으로 하고 장차 태권도 학과까지 만든다는 약속을 학교 측으로부터 받고 학교에 운영권을 넘겨주었다. 그래서 2008년 첫 학기부터 태권도가 체육과목이 되어 현재 500여명이 수강하고 있다. 그리고 태권도에 더 흥취를 느끼고 선수나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 100여명이 과외 활동으로 태권도장에서 운동하고 있다. 변승진(한국인) 태권도 교수는 "학생들이 아주 재미있어하고 열심히 배웁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태권도 시범단을 초청해서 학교나 소흥시의 행사 때 보여줄 계획입니다. 그래서 중국 남방에 우리 태권도의 뿌리가 깊게 내리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곳에 태권도장을 여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태권도가 중국 대학의 체육과목이 되고 중국학생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가슴 벅찬 보람을 느낀다.
2. 한국어 교육과 한글문화행사 하기 태권도장을 연 뒤 나는 이 대학 한국어과 교수로서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쳤다. 처음엔 이 학교가 초급대학이었는데 2008년부터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어 학생도 800명으로 늘었고, 4년제 본과 학생이 다 차면 한국어과 학생이 1000명이 될 것이다. 현재 교수가 30명인 데 한국인 교수가 9명, 조선 동포 교수가 14명, 중국 한족 선생이 7명으로서 영어와 일본어과 다음으로 큰 학과다. 한국 경제가 살아나고 교류가 더 많아지면 영어와 일본어과 수준으로 될 날이 멀지 않다.
나는 이 학교의 한국문화연구소 소장인 유은종 교수와 인천교대 명예교수인 박병천 교수와 함께 2007년 10월에 "한글문화큰잔치"를 열었다. 전 중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말하기, 붓글씨 쓰기, 글짓기 대회를 열고, 서예가인 박병천 교수가 한국 서예단체와 연결해서 붓글씨 전시회도 열었다. 첫해부터 상해주재 하현봉 한국문화원장, 국립국어원 최용기부장이 2회째 참석했고, 2008년 행사 때엔 이상규 국립국어연구원장까지 행사에 참석해서 중국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심는 데 열심인 우리를 격려해주고 갔다.
3.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글 붓글씨 가르치기 이곳 소흥은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가 작품 활동을 한 난정이 있는 곳이다. 서예가인 박병천 교수가 중국 한문 서예의 본고장인 소흥에 한글서예를 심으려고 학생들에게 과외활동으로 붓글씨를 가르치기 시작해서 지금은 김문희 교수가 한글 붓글씨를 가르치고 있는 데 2009년부터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선택과목이 되었다. 중국 서예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 소흥에서 중국 학생들에게 한글로 붓글씨를 쓰게 한다는 건 매우 뜻있고 한, 중 문화교류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한국과 중국이 힘을 모아 새로운 동양문화를 창조하자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서로 문화를 배우고, 그 바탕에서 두 나라가 더 가까워지고 친밀하게 지내게 될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지난 수천 년 전부터 지리, 역사, 문화, 정치, 경제면에서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나 20세기엔 국제 냉전체제 때문에 교류가 끊긴 일이 있다. 이제 다시 국교가 재개된 지 16년이 되어 활발하게 오고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해외 투자와 무역량이 중국이 1위라고 한다. 한국에서 중국어는 현재 가장 인기가 있는 외국어이고 중국에서도 한국어 인기가 날로 올라가고 있다. 두 나라 정부는 말할 거 없고, 국민과 사회단체도 두 나라가 더 가까워지도록 힘써서 새로운 친선우호 역사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그런 뜻에서 중국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보급하는 일이 시대 사명이고 매우 중대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요즘 세계 경제 위기를 맞이해서 나라살림이 어려운데다가 한국 사회가 보수와 개혁 두 패로 갈려서 다투니 나라가 더 흔들리는 거 같아서 매우 안타깝다. 독일과 프랑스, 이태리 들 유럽 사람들은 서로 국경을 자유롭게 통과하며 오가는 걸 보고 부러웠다. 우리 동양도 그들처럼 서로 도우며 가깝게 지내게 되면 좋겠다. 특히 한국과 중국이 아주 가까운 이웃사촌으로서 서로 돕고 사이좋게 지낼 때 양국이 이익이 크고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지난날 교류가 다시 시작되면서 조금 부작용도 생기고 국민감정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초기 있을 수 있는 조그만 일이라 생각한다. 이 제 더 가슴을 열고 국내 국민끼리 통합하고 나라밖에 눈길을 돌리고 함께 어울려 살 길을 찾아야겠다. 오늘날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서로 도우며 사는 세상이다. 이제 나는 지난 2년 동안 중국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학기부터는 국내에서 한,중 문화교류와 우호증진에 힘쓰면서 이 학교의 대우문화연구소와 한국문화연구소 초빙교수와 연구원으로서 활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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