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크랩] [노명환] 내가 `적` 자를 싫어하는 까닭

한글빛 2015. 6. 15. 10:37
나는 왜 적을 미워하는가

노명환 / 우리말살리는모임 운영위원


끝말부터 하면 '-적'은 우리 말법이 아닌 것이 우리 말인 것처럼
여기 저기 설치고 있고 말과 말 사이를 이어 주는 다리처럼 꾸미지만
사실은 우리 말 맥을 끊는 짓을 하기 때문이다.


나도 전에는 알지 못해 이 '-적'을 글로도 쓰고 말로도 했지만 1992년
신문에서 처음으로 이오덕 선생님 글을 읽고 크게 깨달아 우리 말 살리는
회원이 되었고, ≪우리글 바로쓰기≫와 이오덕 선생님이 보내 주신 ≪우리
문장 쓰기≫로 공부를 하면서 쉽고 좋은 우리 말을 두고도 우리 말법이
아닌 말이나 어려운 한문투 말이 우리 말을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 알고
"우리 말글이 살아야 우리 얼이 살고 우리 얼이 살아야 우리 민족이 산다"는
이오덕 선생님 말씀에 뜻을 같이해 옛날 독립운동 했던 어른들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 말 살리는 운동에 조금이나마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나는 전문 학자도 교수도 아닌
보통 사람으로 내가 보는 신문 잡지 또는 내가 들어 있는 모임 회지에서
먼저 고쳐야 할 것을 찾아보니 너도나도 제일 많이 쓰는 말이 '-적'임
을 알았다.

정말 여기도 '적' 저기도 '적' 적투성이었는데, 심한 곳은 글 한 줄에

서도 연이어 세 번 네 번까지 나오는 곳도 있고 한 쪽 글에 몇십 개가
나오는 것도 있었다. 마치 '-적'을 안 쓰고는 글이 안 되는 것처럼 몰라
서 쓰거나 버릇으로 쓰고 또는 글 멋을 내고 무게를 잡고 싶어 그렇게 쓰
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엇보다 이 '-적'을 물리쳐야 우리 글말이 산다는 것을 알고
93년 맨 처음으로 내가 존경하던 교수님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김○○ 교수님 안녕하세요?
보내 주신 회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교수님이 쓰신 머리글 내용은 참
좋았는데 옥에 티라면 글 가운데 '창조적, 장기적, 체계적, 이성적, 합리적,
형식적, 조직화, 정식화 따위 '-적' '-화'로 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이오덕 선생님이 낸 ≪우리글 바로쓰기≫에 보면 이 '-적'은 일본식
중국글자말로 되어 있어요.…… (줄임)

공자 앞에 문자 쓴다고 감히 교수님 글을 지적했으니 널리(넓은 마음으로)
받아 주세요.


<답장>
안녕하시지요? 편지 참 고맙습니다. 이 일을 한 이래 이와같이 고마운 편지를
받은 적은 처음입니다.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러한 말은 때때로 격려
하고 계속하는 데 힘을 주기는 하지만, 자만에 빠지게 합니다. 불편할 때도
있지만 날카로운 비판과 잘못을 지적하는 글과 말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없어서 몹시 섭섭했는데 노명환 선생님이 매우 고마운 일을 하셨습니
다. 편지를 읽으면서 제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렸는지 모릅니다.

편지 읽자말자 회지를 꺼내 읽었습니다. 빨간색으로 표시하면서 읽으니 샛빨갛
게 되더군요. 참 부끄러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도로 회지를 모두에게 돌려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우선 숙제한다는 마음으로 제 마음대로 고쳤습
니다. 부드럽지 못한 다른 말들도 많이 있지만 우선 '-적'을 다른 말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좀더 매끄러운 말로 바꾸려면 상당히 긴 시간을 정성 들여 일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급한 마음에 먼저 고쳐진 것 한 부 보내 드립니다.
……(줄임)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아서
움직이는 글이 되지 않습니다. 소견이 좁아서 그렇겠지요. 맥맥이 콧구멍 같은
소견빼기 가지고는 참 어렵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진솔해 보려고 애씁니
다. 특히 글을 써서 여러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도구에 실리게 한다면 잘못된
글버릇을 빨리 고쳐서 제대로 된 글을 쓰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편지글을 소개한 건 이 편지글을 받고 힘을 얻어 우리 말 살리는 운동에

힘차게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말 살리는 겨레 모임 회원들도 일하는 곳곳
에서 우리 말 살리는 운동을 하고 회비도 열심히 내고 모임에도 힘을 보태
우리 말글을 기어이 살려 빛내야 되겠다.

-
<우리 말·우리 얼> 제12호에서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글쓴이 : 이대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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