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자 혼용 반대 대책 위원회'와 주장
그러므로, 한글 학회는 1964년 11월 15일(일) 오후에 대한 교육 연합회 강당에서 열린 제43회 정기 총회에서, 문교부의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쓰려는 방침을 저지시킬 운동을 벌일 것과 일반 사회에 대하여 한자 사용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들을 풀어 주기 위한 운동을 하기로 결의하고, 그 대책 위원으로 다음과 같이 14인을 뽑았다.
이사측: 최현배, 김윤경, 정인승, 장지영, 이희승, 이 탁, 허 웅
회원측: 장하일, 권승욱, 박창해, 금수현, 한갑수, 김선기, 조석기
이 14인의 대책 위원들을 11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서, 문교부의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쓰려는 방침에 대한 반대 성명서와 '한글 전용'에 대한 한글 학회에서 주장하는 문안을 작성하고, 한편 11월 23일의 이사회에서 대책 위원들이 작성한 반대 성명서와 '전용 주장서'를 64년 12월 28일까지 대통령, 전 국무 위원 및 국회 의원, 각 통신 및 신문사와 방송국, 각 잡지사와 출판사, 각종 사회 단체와 각 도지사 및 각 교육감, 각 교육장, 현역 문인, 전국 국어 국문학 교수, 전국 중 고등 학교장에게 일제히 배부하여 반대 여론을 전국적으로 일으켰다.
1964년 11월 15일 정부와 각계에 보낸 주장과 성명서는 다음과 같다.
가) 총회가 정한 한글 학회의 주장
1. 한국의 나라글자는 한글이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는 한글만 쓰기로 해야 한다.
한자(漢字)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하여 한글을 만든 지 5세기 이상이 지났건만 우리들은 아직 한자의 구속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자의 해독은 우리들이 익히 아는 바이며, 한자를 쓰고 있는 국민(중국, 일본)은 누구나 다 느끼고 있는 일이다.
한자를 쓰지 말아야만 교육의 효과가 빠를 것이고, 일상 글자 생활이 더 원활하게 될 것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말과 글은 생각하는 데 쓰는 연장이다. 한글은 한자에 견주어 천만 배가 낫다. 우리의 주장은, 못한 것을 버리고 나온 것을 써서 국가 민족에게 민주주의적 이익을 주자는 것이다. 그런 데도 아직 한자 쓰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음은 통탄할 일이다.
우리들은 한국 문화의 앞으로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하여 우리의 글자 생활은 오로지 한글로만 해야 할 것임을 주장한다. 한자의 제한 사용을 주장하는 것은 한글 전용의 최대의 적이다.
2. 문화의 촉진은 글자 생활의 기계화에 있으며, 글자 생활의 기계화는 한글만을 씀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근대 국가의 사회 구조는 극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이 그 특색이다. 따라서, 글자 생활도 이에 발맞추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자 생활도 기계화하지 않아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한자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글자 생활의 기계화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근대 다른 나라들의 눈부신 진전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한자를 몰아내고, 한글만으로써 글자 생활의 기계화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3. '한글 전용'은 한자어를 배척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한글만 쓰기로 하자는 것은 한자를 말살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자어일지라도 그것은 한자로써 쓰지 말고 한글로 바꾸어 쓰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글 전용은 '학교'를 '배움집'으로, '비행기'를 '날틀'로와 같이 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한글 전용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의 고의적인 모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학교'를 '學校'로 '비행기'를 '飛行機'로 적지 말고 우리의 발음대로 '학교' '비행기'로 적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어를 얼른 들어서는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많고, 발음은 같아도 뜻이 다른 말이 상당히 많다. 이런 것은 언어 상통의 한 병폐임을 뜻한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친근하고 빨리 알아 챌 수 있는 쉬운 말을 가려 쓰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4. 모든 학교 과목에 쓰이는 용어는 될 수 있는 대로 알기 쉬운 우리말로 해야 한다.
한자어가 원활한 언어 상통을 방해하는 것이 많다는 것은 앞에 말한 바와 같으므로 우리들은 일상 생활의 용어를 될 수 있는 대로 알기 쉬운 우리말로 하기를 힘씀과 동시에 모든 학과목에서 쓰는 용어도 또한 알기 쉬운 말로 해야 할 것임을 주장한다.
5. 한문의 전문적 학습은 지금보다 더 철저히 해야 한다.
한글 전용과 한문의 학습은 양립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한문은 중국 민족의 말에 맞추어 적는 글이다. 우리의 과거의 기록은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 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과거를 알자면, 곧 한문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문 전공 분야를 두어 지금보다 더 철저히 한문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한문은 국어와는 다른 언어의 기록이며, 한문 학습과 한글 전용은 양립될 수 있다.
6. 한자로 적힌 우리의 고전은 빨리 한글로 번역되어야 한다.
아무리 고전 지식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모든 국민을 한문학자로 만들기는 절대 불가능하며, 또 불필요하다. 그러므로, 한자로 적힌 우리 및 동양의 고전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한글로 번역하여서, 모든 국민이 그 필요를 따라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7. 우리 나라의 신문 잡지는 다 한글만 쓰기로 하여야 한다.
말과 글을 국민 대중의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 인류 사회의 절실한 요청이요 사조이다. 신문과 잡지가 한글만으로 되어야만 국민의 지식이 보급되고 생활이 향상되어,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오늘의 신문은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사회악 기사로 들어찬 삼면 기사 이외에는 다른 유익한 소식을 읽을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신문이 국민을 위한 존재이지, 국민이 신문을 위한 존재는 아니다. 교육의 목표를 신문 읽기에 둔다는 것은 본말 전도사고 방식이다. 신문은 쉬운 말과 쉬운 글로써 국민 대중에게 섬김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위와 같은 주장은, 우리 학회 창립이래 일관된 정신인 바, 이번 1964년 11월 15일 제43회 정기 총회의 총의로써 이를 다시 밝히는 바이다.
나)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쓰려는 문교부 방침에 반대한 성명서(1964. 11. 15.)
1. 뜻밖에 돌변한 문교부의 국어 교육 방침
문교부는 뜻밖에도 20년 가까이 실천해 오던 한글 전용 방침을 버리고,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쓰려는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듣건대, 문교부는 1,300자의 한자를 제한 사용하는 방침을 세우고, 국민 학교에서 600자, 중학교에서 400자, 고등 학교에서 300자를 각각 가르치기로 하되, 일제 시대에 쓰던 국한문 교과서식으로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벌써 누차에 걸쳐,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서 발표되었고, 전국 각급 학교에 이미 시달되었으며, 새로 검인정될 교과서도 이 방침에 의해서 접수되었다고 한다. 해방이래 오늘까지 20년 가까운 동안 '한글 전용'은 가장 중요한 문교 정책으로 일관되어 왔으며, 문교부가 여기에 기울인 노고와 정성도 자못 컸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다.
그런데, 문교부는 20년의 전통을 깨뜨리고, 우리 나라 교육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올 이 크고도 중요한 문제를, 극소수의 동질적인 인원으로 구성된 '교과서 편찬 위원회'의 결의로써 손쉽고 거뜬하게 결정하고 말았다. 그래서 스스로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모순된 거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2. 한글 전용의 유래 및 그 성과
이 놀라운 결정이 새롭다기엔 너무도 후퇴가 컸고, 용단이라기엔 너무도 절차가 경솔했다.
문교부가 한글 전용 방침을 채택하여 온 것은, 문교부 자체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조류에 순응한 것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해방 직후, 당시의 문교 당국은 우리 나라의 교육 제도 및 교육 방침을 연구 결정하기 위하여 70여 명의 학계, 교육계 및 문화계의 권위자로 구성된 '조선 교육 심의회'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의 한결 같은 주장은-민주 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또 민주 교육을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는 한글을 전용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교 당국은 기꺼이 이 방침을 채택하였다.
곧 이어, 역시 문교 당국의 주관으로 '학술 용어 제정 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이 위원회에서 스스로 짊어지고 나선 과업은, 모든 학과에 쓰일 학술 용어는 될 수 있는 한 알기 쉬운 우리말로 제정하는 일이었다. 한글 전용 정신에 투철한 이 위원회에서 수만에 달하는 용어를 제정하였고 이것이 그대로 채택되어 오늘 우리가 아는 학술 용어가 된 것이다.
1948년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문교부가 이 방침을 이어받은 것은 물론이요, 그 해 10월 9일 한글날에는 법률 제6호로써 '한글 전용법'이 제정 공포되었는 데, 이 법의 제정에도 문교부는 앞잡이의 구실을 하였다. 그 법의 조문을 보면,
'대한 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이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로 되어 있다.
또, 1962년에도 문교부는 '한글 전용 특별 심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64명의 교육계, 학계 및 문화계의 권위자들에게 각 분야에 걸쳐 한글 전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 위원회를 통하여 심의된 용어는 지금 문교부에서 출판, 보급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20년 가까운 동안, 문교 당국은 한글 전용을 위하여 꾸준하고 성의 있는 노력을 계속하였으며, 그 결과 다른 나라에서 그 예를 볼 수 없을 만큼 빛나는 보람을 얻게 되었다.
첫째, 우리 나라의 문자 생활을 하는 인구의 3분의 2이상이 한글로만 문자 생활을 하며,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다.
둘째, 우리 나라 서책의 대부분은 한글로만 출판되고 있으며, 극히 적은 수의 특별한 서책들이 한자 또 그 밖의 글자로 출판되고 있다.
셋째, 각급 학교의 교과서와 관공청의 공용 문서는 모두 한글만을 쓰고 있다.
넷째, 육군, 해군, 공군 및 해병대에서도 한글 전용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다.
다섯째, 한글 타이프라이터 및 텔렉스의 출현으로 문자 생활의 기계화의 혜택이 날로 커 가고 있다.
여섯째, 간판 및 모든 광고가 모두 거의 한글로 씌어진다.
위에 말한 것들은 모두 다 문교부의 한글 전용 방침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년도 못 되는 동안에 이만한 성과를 보게 된 것은 빛나는 성공이라고 할 것이다. 또,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한글만으로도 우리의 문자 생활이 완전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문자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한글만 쓰기를 원하는데, 극히 적은 수의 특권 계급을 위하여 많은 사람이 불편을 느껴야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주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라 하겠다.
한글 전용은 민주 창달의 길이요, 시대의 조류이다.
3. 한자를 섞어 쓰는 것은 위법이요, 시대 역행이다.
문교부가 한글 전용 방침을 채택하게 된 것은, 문교부 자신의 손으로 엮은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시킬 것이라고 믿는 학계, 교육계 및 문화계의 권위자 수백 명의 의견을 좇아서 취해진 일이요, 그들의 계속된 도움을 받아 20년 가까이 그 결정과 제안을 실천에 옮겨 온 것이다.
이제 국민의 여론도 묻지 않고, 또 역대로 한글 전용 사업에 가담한 사계의 권위자들에 문의함도 없이, 자의로 국가의 중대 방침을 변경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 행위요, 이율 배반의 모순이요, 또 법의 근본 취지를 버리고 부칙만을 실천함으로써 본말 전도의 현상을 자아내는 것이니, 입법 취지를 유린하는 위법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 기만과 모순과 위법은 예사로 보아 넘길 수 없는, 국가 백년 대계에 차질을 가져오는 문제이니만큼, 우리가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한자를 섞어 쓰려는 사람들의 흔히 하는 핑계가, '기껏 가르쳐서 신문도 못 읽는 대서야!' 한다.
신문을 읽는 것이 우리 교육 목표는 아니다. 신문이 국민을 위하여 있어야 할 것이요, 국민이 신문을 위하여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 신문을 읽는 사람의 거의 다가 신문에 있는 한자 때문에 곤란을 받고 있다.
신문의 한자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극 소수인의 시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쓰이는 이용물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을 비롯해서 한자를 써 오던 여러 나라가 한자에서 해방되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5세기에 걸쳐 고심하던 '베트남'이 수 년 전에 드디어 한자를 버리는 데, 성공하였으며, 중국에서는 '노 신', '오 우'같은 학자들이 나와서,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고까지 갈파하였으며, 일본도 한자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희망을 가지고 로마자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20년 전에 이미 떠날 수 있었던 한자를 어찌하여 다시 불러들이자는 것이냐? 그것이 일본 문화를 지상으로 아는 일부 인사들이 "일본이 쓰고 있으니, 우리도 써야 되겠다."는 맹종병, 맹신병에서 저지른 과오란 말이냐?
비과학적이요, 비민주적이요, 비능률적이요, 비현대적인 한자에 다시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어리석은 시대 역행이다.
4. 민주 문화 건설에 이바지하려면, 문교 행정이 이를 적극 뒷받침하여야 한다.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로서는, 모든 정책에 있어 백년 대계를 세우고 굳세게 밀고 나아가야 할 것인데, 그렇게 쉽사리 동요하여서야 되겠는가? 정책이나 방침의 동요는 그 일에 대하여 전문 지식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다.
한글의 좋은 점이 무엇이요, 한자의 불리한 점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더라면, 결코 문교 정책의 변경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의 이로운 점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첫째, 기계화할 수 있다.
현대 문명은 문자의 기계화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문자가 기계화되지 않는 나라는, 현대 문명에서 필연적으로 뒤떨어지고야 말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타이프라이터나 텔렉스 같은 기계화의 혜택은 한글같이 발달된 표음 문자만이 받을 수 있으며, 한자같이 복잡한 표의 문자는 받을 수 없다.
둘째, 쉽게 배울 수 있다.
글자는 모든 국민이 쉽게 배워서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한자는 형세 있는 사람이 생전을 매어서 배우다가 그 몇 분의 1도 배우지 못하고 마는, 그러한 특권 계급을 위한 글이다.
그러나, 한글은 슬기 있는 자이면, 하루 아침이 다 가지 않아서 깨칠 만큼 쉬운 글이니, 이것이 곧 만인을 위한 민주적인 글자라 할 수 있다.
셋째, 과학적이다.
한글같이 한 글자가 한 소리를 완전히 대표하고 서로 상치되지 않는 문자도 드물다. 이것은 그 정자법이 과학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자는 같은 소리 값을 가진 글자가 하도 많아서 어느 글자가 어느 음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가 없다. 이렇게 소리를 나타내는 데에 있어 비과학적인 글자는 문자 생활의 좋은 연장이 될 수는 없다.
넷째, 과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몇 해 전에 미국의 학자가 하와이에서 세계 각국 사람의 지능 검사를 하였는 데, 한국과 영국과 일본의 세 나라는 같은 성적으로 최고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과 일본의 여섯 해 동안의 초등 교육 실적을 보면, 영국이 39,000 단어를 가르치는 데 비해, 일본은 겨우 8,900 단어밖에는 못 가르친다고 하며, 100자의 단어를 가르치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은, 영국이 36분임에 비하여 일본은 268분이나 된다고 한다. 같은 수준의 지능을 가진 두 민족 사이에 생기는 이 현격한 차이는 일본이 한자 교육을 하는 까닭이라고 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한국의 어린이를 같은 여건 아래서 교육한다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또, 과학 하는 지능은 아무쪼록 어려서부터 머리를 열어 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여 말하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과학 하는 국민을 기르는 데 한글은 우수한 연장이 되리라고 믿는다.
다섯째, 경제적이다.
아름다운 글자, 민주적인 글자, 쉽게 배우는 글자, 쉽게 쓸 수 있는 글자, 빨리 펼 수 있는 글자, 과학적인 글자-이렇게 좋은 글자가 있다면, 우리는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배워야 할 글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어받은 한글이 바로 이러한 글자임을 알아야 한다. 한자가 없어지면 여섯 해를 두고 배운 글이 4년이면 충분히 배우고도 남는다는 것이 전문가의 말이다. 모든 장점을 갖고 한글이 경제적인 혜택마저 우리에게 준다면 이 어인 천부의 보물이냐?
한글에 한자를 섞는 것은, 마치 구슬 쟁반에 개똥을 담는 것 같은 어리석음이라 하겠다. 문교 당국이 한글의 참값을 알고, 한글과 한자의 이해 득실을 밝히 알고 있었더라면, 이번같이 경솔한 변경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 문화 건설에 이바지하려면 무엇보다도 문교 행정이 신념과 열의를 가지고 힘차게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5.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것은 한자 교육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것은, 한자 교육을 배척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고, 또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사람은 '비행기'를 '날틀'이라고 하고 '학교'를 '배움집'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 역사와 고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또 동양 문화를 알기 위하여 한문을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글은 한글대로 쓰고 한자는 한자대로 쓸 것이요, 섞어 쓰지 말자는 것이다. 한자를 한글과 섞어 쓰는 습관 때문에 순한문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적지 않다.
오늘 한자 섞어 쓰기를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진정으로 순한문 고전을 이해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우리는 앞으로 우수한 한문학자를 많이 길러서 우리의 고전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하루 바삐 번역하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무 교육 기간에 한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면, 다른 기초 교육을 실시하는 데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므로, 중학교 이상에서 국어와는 별개의 과목으로 하여 교육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주장하는 한글 전용의 정신은 한문 말이라도 누구나 들어서 알 수 있는 말은 그대로 쓰자는 것이요, 억지로 어색한 우리말로 대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비행기'와 '학교' 같은 말을 훌륭한 우리말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이런 말을 한글로 적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가운데는 '날틀', '배움집'식의 말을 주장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한자를 섞어 쓰려는 사람들이 한글만을 쓰자는 우리들을 헐뜯기 위해서 꾸며낸 모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위와 같은 사실과 이유에서, 문교부가 극소수의 퇴보 적인 일부 인사들의 편견을 좇아서 국가의 중대한 교육 방침을 변경하려는 경솔한 작정에 대하여 적극 반대하는 바이다.
우리의 말과 글을 사랑하고, 그 건전한 발전을 충심으로 바라는 현철한 국민들이 국가 운명의 흥망이 좌우되는 이 문제가 비극에 들어가지 않고 해결되기를 충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문교부에 부탁하는 것은, 역사 위에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기지 말고, 이 그릇된 계획을 즉각 철회하여 달라는 것이다.
3) '반대 성명서'와 '전용 주장'을 한 여파
가) '한글 전용 추진회'의 문화 선언과 공약 3장
한글 학회가 위와 같이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쓰려는 문교부 방침에 반대하는 성명서'와 '한글 전용에 대한 한글 학회의 주장'을 요로에 배부하였더니, '한글 전용 추진회'(회장: 주요한)는 즉각 호응하여, 1965년 1월 6일 "우리 얼을 살려 국어를 정화하고 한글을 전용하자."는 '문화 문언'을 채택하여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문교부 방침에 반대하고 나섰다.
추진회의 문화 선언 공약 3장
1. 민족 정기로써 우리 얼을 살리자. 이것이 우리 문화의 생명이다.
2. 국어 정화로써 우리말을 깨끗이 하자. 이것이 우리 문화의 핏줄이다.
3. 한글 전용으로써 우리글을 기르자. 이것이 우리 문화의 뼈와 살이다.
나) '한글 전용법 단서' 없앨 기미
이에 발맞추어서 이은상, 정인섭, 한갑수, 박종화, 주요한, 안호상, 김동리, 박만규, 조연현, 최기철 등 많은 문화인들은 개별적으로 정부 요로에 한글 전용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종용하였다.
그리하여, 정부는 이 같은 '한글 전용 운동'에 자극되어, 동년 10월 9일 한글날에는, 다음과 같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한글 전용에 강경한 신념을 밝힌 대통령 담화문을 발표하여 "한글은 과학적이고, 자주적이고 평민적인 글자."라고, 한글의 우수성을 지적하고,
한글을 통해서만이 민족 문화의 건설과 교육 건설, 애국 생활을 건설할 수 있으니 한글을 전용하라.
고 한 다음, 동년 11월 28일 총무처로 하여금 '한글 전용법'의 '단서'를 없애는 '한글 전용에 관한 개정 법률안'을 마련하게 하여, 제117차 국무 회의에서 의결하여 널리 발표하였던 것이다.
'한글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김영삼, 김대중 정권 때의 국어정책과 관련 사건 (0) | 2015.07.15 |
---|---|
[스크랩] 1956년 한글전용법 단서 조항 앺애기와 한글만 쓰기 운동 (0) | 2015.07.14 |
[스크랩] 1963년 박정희 김종필 정권은 교육과정 개정안을 발표하고 교과서 한자병기 추진 (0) | 2015.07.13 |
[스크랩] 1969년 한글전용국민실천회 창립 (0) | 2015.07.13 |
[스크랩] 1948년 대한민국 세울 때 한글전용법 제정 이야기 (0) | 2015.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