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크랩] 파주에서 이오덕 선생님 추모 행사 때 발표한 글

한글빛 2017. 4. 11. 04:42
우리 말 우리 얼 큰 지킴이, 이오덕 선생님


우리 말 우리 얼 큰 지킴이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지난 해 8월 25일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초창기엔 다달이 만나 일을 함께 의논했지만 돌아가시기 바로 전엔 건강 때문에 충주 무너미에 가 계셔서 자주 만나진 못했어도 중요한 일은 의논할 수 있어 마음 든든했다. 선생님의 가르침과 뜻이 우리 모임의 뿌리요 길이였기에 멀리 계셨어도 가까이 계신 것으로 생각했다. 한마디로 선생님이 있어 든든했는데 이 땅을 떠나셨다니 앞으로 어떻게 모임을 꾸려갈 건가 걱정이 앞서고 어깨가 무거웠다.

1998년부터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에서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 우리 말과 우리 얼을 살리는 일을 한 건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이 일이 매우 힘들고 멋없는 일이었지만 선생님과 함께 했기에 힘이 덜 들었고 보람은 더 컸다. 모시고 일하는 동안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자식 같은 나를 믿고 열심히 뛰게 해준 선생님이 너무 고맙고 그립다. 돌아가시고 나니 더 잘 모시지 못한 게 죄스럽고 아쉽다.

이제 선생님이 안 게시지만 선생님이 못 이룬 꿈을 살아있는 우리가 이루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내가 선생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하고 선생님이 하신 일을 적어 보련다.

1.공병우 박사님이 이오덕선생님을 만나게 해주다.

1988년 민주화바람이 불면서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시던 한글기계화연구 선구자 공병우 박사께서 귀국하셔서 종로구 와룡동95번지 옛 공안과 자리에 한글문화원을 열었다. 그리고 ?澎邦? 개발한 정래권, 이찬진님들 젊은이들에게 방을 내주어 한글기계화연구를 하게 하고, 한국글쓰기연구회와 국어운동대학생회에도 방을 주었다. 그 때 글쓰기회는 이오덕 선생님이 지도하고 있었고, 국어운동대학생회는 내가 이끌고 있었다. 마침 노태우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리니 우리말이 더 어렵게 되고 걱정스러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공병우박사께서 나를 불러서 전국 규모로 일반인 국어운동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는 얼빠진 정부를 믿다간 우리말이 어떻게 될지 믿을 수 없으니 지금까지 하던 식보다 더 강력한 시민운동을 하자는 뜻이었다. 공박사님은 " 이오덕 선생님의 이론과 이대로선생의 활동력이 모이면 큰 힘이 날 거 같다."며 당신께서 밀어 줄 터이니 전국 국어운동가들을 모아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기로 했고 이오덕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오덕선생님은 송현선생님과 주중식선생님을 통해 공박사님을 만나게 되고, 나는 공박사님을 통해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모였고 이오덕 선생님을 회장님으로 뽑았는데 모임 이름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모임 이름을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말사랑겨레모임'으로 하자고 하고 다른 분들은 '한말글사랑겨레모임'으로 하자는 쪽으로 갈렸다. .

'한말글'이란 말이 문제였다. 이 말은 우리 글자인 '한글'과 한겨레의 말인 '한말'이란 대한제국 때 주시경님이 쓰던 말을 살려서 만든 '우리 말글'이란 새말이니 살려 써보자는 사람들이 많아 결국 투표를 해서 '한말글사랑모임'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되니 선생님 뜻에 맞지 않아서 회장을 사양하고 모임에 참여치 않으셨다.

그 때 많은 분들이 이오덕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는 데다가 국어운동가란 분들이 모두 개성이 강하고 고집쟁이다 보니 모임을 이끌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오덕 선생님 방식은 회보를 통해 조용히 활동을 하자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정부와 한자파에 강력하게 대응해 싸우자는 식이어서 뭉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그 모임을 맡았고 선생님은 과천에서 따로 모임을 하시게 되었다. 그렇게 5년쯤 활동을 했는데 우리말 사정은 더 어려워지고 외환위기에 나라까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2.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 태어나다

1997년 우리나라는 외국 투기자본에게 두 손을 들었다. 빚잔치를 하게 되어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비싼 이자 돈을 빌려 급한 돈을 갚는 대신 그들에게 나라 살림을 맡기게 된 것이다. 이른바 경제식민지가 되었다. 참으로 가슴아프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나? 국제화니 세계화니 얼빠진 김영삼의 구호에 얼이 빠져서 국제투기자본에 나라가 먹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문을 활짝 여는 세상이다. 물건도 돈도 사람도 마음대로 왔다갔다하는 세상이다. 세계 흐름이 그러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을 활짝 열면 찬바람도 들어올 수 있고 따뜻한 바람도 들어온다. 그러면 그에 견디고 적응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 세상흐름에 대해 대통령은 말할 거 없고 온 국민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그 바람에 쓰러지지 않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어찌했는가? 찬바람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생각지도 않고 따뜻한 바람만 들어온다며 괜히 국민들 들뜨게 했다. 세계화 시대엔 1등국이 되어야 살 수 있고 영어를 잘 해야 1등국이 된다며 준비도 없이 영어조기교육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국민은 어떠했나? 너도나도 외국에 나가 양주병이나 사들고 오기 바빴고 애들 영어 연수나 보내 남들보다 먼저 영어 잘하게 해서 출세시킬 꿈만 꾸고 있었다. 김영삼의 헛 구호에 얼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1998년 초 이오덕 선생님과 김경희 선생님이 다시 만나 우리말 살리는 모임을 만들어 우리말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자고 하셨고 나도 공감하기에 함께 참여한 것이다. 어려운 때 영웅이 나온다고 했던가. 우리말과 나라가 더 어렵게 되었고 선생님께서 떨쳐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이제 선생님 성격을 좀 알았으니 모든 일을 선생님 중심으로 일하기로 했고 선생님도 나를 좀 더 이해하셨는지 회보 내는 일 말고도 운동 쪽 일도 밀어주셨다.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취지문과 목적 들 모든 글을 선생님이 쓰셨고 회보 또한 선생님이 만드셨다. 왜 모임을 만들었고 무슨 일을 하게 되는 지 다 선생님 글에 담겨있고 그 글을 기준 삼아 우리말 살리는 일을 했으며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옳은 말씀이고 교훈이기에 옮긴다.



가. 우리 말 살리기 운동의 목표

우리 온 국민이 날마다 입으로 하는 말, 읽고 쓰는 글을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하도록 하여, 서로 생각을 올바르게 알리고, 서로 깨끗한 마음을 주고받고, 저마다 하는 일을 바로 하게 되고, 잘못된 말로 남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속지 않으며, 어려운 말을 몰라서 세상을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어려운 말을 몰라서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없게 하고, 유식함을 자랑하거나 겉치레하는 풍조와 남의 것 부러워하여 우리 것을 멸시하는 태도를 바로잡아, 온 국민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한 마음으로 정답게 살아가는 참된 민주 통일의 나라를 세우는 바탕을 다지는 데 목표를 둔다


나. 우리 말 살리는 겨레 운동 펴기 취지문'

나라 살림이 거덜나서 먹고 살기가 무척 힘들게 되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무료 급식소 앞에는 하루 한 끼라도 주린 배를 채우려는 사람들로 긴 줄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우리 온 국민은 산처럼 쌓인 나라의 빚더미를 쳐다보고 한숨지으면서 땀과 눈물과 피를 오랫동안 흘려야 이 땅과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째서 이 꼴이 되었을까요? 우리를 이 지경으로 빠뜨린 사람이 누굴까요? 사람들은 나라를 망쳐 놓은 책임자를 잡아내어 그 죄를 물어야 한다고 떠듭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렇게 갑자기 앞길이 꽉 막힌 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가 비뚤어진 길로만 자꾸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서 빗나간 걸음을 내닫게 된 근원을 찾아 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된 길로 굴러가게 한 책임은 일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 위에 올라앉은 사람들 쪽에 있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농사꾼들, 자연 속에서 노래와 이야기를 즐기며,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꾸면서 살던 사람들, 서로 도와 가며 정을 나누던 우리 겨레는 본디 법 없이도 살던 아름다운 삶을 이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들 위에 올라앉은 이들은 착하고 어진 백성들을 무식하고 미개하고 불결하다고 하여, 그 백성들에게 무엇을 자꾸 가르치고 머리 속에 무슨 고상한 '생각' 같은 것을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르칠 거리가 들어 있다고 믿는 외국의 글자를 배우게 하고, 외국의 글자로 된 어려운 말로 스스로 권위를 세우고, 행정이고 법이고 모든 자리에서 외국 글만을 써서 백성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인사말을 비롯해서 나날이 하는 말까지 어려운 외국글자말을 쓰도록 해서, 우리 말밖에 모르는 모든 백성들의 기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백성들을 어리석다고 하여 가르치고 부리려고 했고, 통제하고 다스리고 훈련해야 하는 무리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낸 다음에도 그 글자를 온 백성들이 모두 쉽게 배워서 마음대로 쓰게 되면 자기들의 자리가 흔들리고 특권을 잃어버릴까 겁이 나서 한사코 우리 한글을 못 쓰도록 막았던 것이지요. 산과 들에서 곡식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외국 글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외국 글 모르는 농사꾼들은 죄다 무식한 까막눈으로 몰려, 사람 대접 못 받고 종 노릇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우리 말과 우리 글은 조금씩 조금씩 외국글자, 외국말에 그 자리를 빼앗겨 시들고 죽고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병들고 죽어 간 우리 말과 함께 우리 겨레의 얼도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걸어온 빗나간 길입니다. 비뚤어진 역사입니다.


그 옛날 오랜 왕권정치에서는 중국의 한문을 하늘같이 여겨서 우리 말을 한문투성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시대에는 아주 일본말 일본글로 살면서 많은 우리 말을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일본글자말, 일본말법으로 바꿔 놓았는데, 이 일본말과 일본말법은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고, 또 끊임없이 신문과 방송과 책으로 바로 지금 일본인들이 쓰고 있는 말까지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시 또 '해방'이 되고부터는 미국말, 서양글이 들어와 그것을 신주처럼 떠받들어 왔는데, 요즘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학교고 학원이고 가정이고 난리판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모두 의무교육을 받아서 우리 말 우리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글은 옛날처럼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던 깨끗한 우리 겨레말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랫동안 지식인들이 외국의 글자말과 외국말법으로 써 온 병든 글말입니다. 우리 말, 우리 글은 한자말, 일본한자말, 일본말, 일본말법, 서양말, 서양말법으로 아주 상처투성이가 되고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말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그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말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의 정신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무엇이든지 우리 것은 보잘것없고 시시한 것, 아무 값이 없는 것, 버려야 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옷이고 신발이고 집이고 곡식이고 닭이고 돼지고 그릇이고 나무고 돌까지도 하루빨리 내버리고 덮어가리고 팔아먹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대신 남의 것, 외극 것, 옛날에는 중국 것이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일본 것이나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지 훌륭한 것, 가치가 있는 것으로 떠받들어 모시고 따르고 흉내내어 왔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머리가 좋아서 흉내도 잘 냅니다. 그리고 왜정 때 배운 군대 질서와 훈련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경쟁을 붙여, 온 국민이 괴상한 점수 따기 교육에 들뜨고 미친 꼴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짧은 세월에 공장과 빌딩을 세우고,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하여, 외국 사람들은 우리 한국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놀랐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가 잘못된 교육을 하였고, 허풍스런 산업의 틀을 짜서 언제 그 기반이 무너질지 모르는 꼴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몰랐고, 또한 사람과 자연을 돌이킬 수 없이 병들게 하고 죽여 버린 사실도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일본이나 서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잘 사는 듯한 겉모양만 보듯이 그렇게 우리를 본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살림이 좀 달라졌다 싶으니 이번에는 온통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게 되었다고 보신 관광 같은 것을 즐기면서 우쭐댄 것입니다. 속은 텅 비어도 겉만 근사하게 꾸미고, 집이고 다리고 길이고 교회고 책이고 사람의 모임이고 무엇이고 크게 높게 많게 1등으로 만들어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근원이 잘못된 것이고 뿌리가 잘못된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된 까닭이 이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오늘의 이 막다른 골목에 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잘못된 우리들의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 어지러움, 어느 구석 하나 제대로 되어 있는 자리가 없는 난장판,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이기주의, 민족을 배반하는 모든 사람답지 못한 짓거리들, 도덕이 아주 송두리째 무너진 세상 풍조……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우리 것을 헌신짝처럼 버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깨닫지 않는다면, 가령 우리가 앞으로 온갖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어 다시 좀 숨통을 트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니 얼마 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뿌리 없이 벼락치기로 만들어 보이는 가짜 세상이라, 그 길은 다시 또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길밖에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깨끗한 우리 말과 우리 마음으로 일하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백성들이 가졌던 맑은 우리 겨레의 얼을 도로 찾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말을 버리고 남의 말 남의 글에 빠져서 입으로 유식하게 지껄이고, 알 수도 없는 글을 써서 학식을 뽐내면서,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의 기를 죽이고 우리 말 우리 삶을 더럽히는 짓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여기 우리가 그 어떤 일보다 더 크고 근본이 되는 일, 그래서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고 보는 까닭이 이러합니다. 그 크고 근본이 되는 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우리 말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 우리 얼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는 곳마다 짓밟히고 죽어 가는 우리 말을 일으켜 세우는 일입니다.

겨레를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분이 이 일을 함께 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 이 땅을 지키고 이 겨레를 살리는 거룩한 일을 시작합시다.

나라 살림이 거덜나서 먹고 살기가 무척 힘들게 되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무료 급식소 앞에는 하루 한 끼라도 주린 배를 채우려는 사람들로 긴 줄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우리 온 국민은 산처럼 쌓인 나라의 빚더미를 쳐다보고 한숨지으면서 땀과 눈물과 피를 오랫동안 흘려야 이 땅과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째서 이 꼴이 되었을까요? 우리를 이 지경으로 빠뜨린 사람이 누굴까요? 사람들은 나라를 망쳐 놓은 책임자를 잡아내어 그 죄를 물어야 한다고 떠듭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렇게 갑자기 앞길이 꽉 막힌 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가 비뚤어진 길로만 자꾸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서 빗나간 걸음을 내닫게 된 근원을 찾아 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된 길로 굴러가게 한 책임은 일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 위에 올라앉은 사람들 쪽에 있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농사꾼들, 자연 속에서 노래와 이야기를 즐기며,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꾸면서 살던 사람들, 서로 도와 가며 정을 나누던 우리 겨레는 본디 법 없이도 살던 아름다운 삶을 이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들 위에 올라앉은 이들은 착하고 어진 백성들을 무식하고 미개하고 불결하다고 하여, 그 백성들에게 무엇을 자꾸 가르치고 머리 속에 무슨 고상한 '생각' 같은 것을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르칠 거리가 들어 있다고 믿는 외국의 글자를 배우게 하고, 외국의 글자로 된 어려운 말로 스스로 권위를 세우고, 행정이고 법이고 모든 자리에서 외국 글만을 써서 백성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인사말을 비롯해서 나날이 하는 말까지 어려운 외국글자말을 쓰도록 해서, 우리 말밖에 모르는 모든 백성들의 기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백성들을 어리석다고 하여 가르치고 부리려고 했고, 통제하고 다스리고 훈련해야 하는 무리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낸 다음에도 그 글자를 온 백성들이 모두 쉽게 배워서 마음대로 쓰게 되면 자기들의 자리가 흔들리고 특권을 잃어버릴까 겁이 나서 한사코 우리 한글을 못 쓰도록 막았던 것이지요. 산과 들에서 곡식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외국 글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외국 글 모르는 농사꾼들은 죄다 무식한 까막눈으로 몰려, 사람 대접 못 받고 종 노릇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우리 말과 우리 글은 조금씩 조금씩 외국글자, 외국말에 그 자리를 빼앗겨 시들고 죽고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병들고 죽어 간 우리 말과 함께 우리 겨레의 얼도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걸어온 빗나간 길입니다. 비뚤어진 역사입니다.

그 옛날 오랜 왕권정치에서는 중국의 한문을 하늘같이 여겨서 우리 말을 한문투성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시대에는 아주 일본말 일본글로 살면서 많은 우리 말을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일본글자말, 일본말법으로 바꿔 놓았는데, 이 일본말과 일본말법은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고, 또 끊임없이 신문과 방송과 책으로 바로 지금 일본인들이 쓰고 있는 말까지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시 또 '해방'이 되고부터는 미국말, 서양글이 들어와 그것을 신주처럼 떠받들어 왔는데, 요즘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학교고 학원이고 가정이고 난리판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모두 의무교육을 받아서 우리 말 우리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글은 옛날처럼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던 깨끗한 우리 겨레말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랫동안 지식인들이 외국의 글자말과 외국말법으로 써 온 병든 글말입니다. 우리 말, 우리 글은 한자말, 일본한자말, 일본말, 일본말법, 서양말, 서양말법으로 아주 상처투성이가 되고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말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그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말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의 정신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무엇이든지 우리 것은 보잘것없고 시시한 것, 아무 값이 없는 것, 버려야 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옷이고 신발이고 집이고 곡식이고 닭이고 돼지고 그릇이고 나무고 돌까지도 하루빨리 내버리고 덮어가리고 팔아먹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대신 남의 것, 외극 것, 옛날에는 중국 것이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일본 것이나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지 훌륭한 것, 가치가 있는 것으로 떠받들어 모시고 따르고 흉내내어 왔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머리가 좋아서 흉내도 잘 냅니다. 그리고 왜정 때 배운 군대 질서와 훈련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경쟁을 붙여, 온 국민이 괴상한 점수 따기 교육에 들뜨고 미친 꼴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짧은 세월에 공장과 빌딩을 세우고,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하여, 외국 사람들은 우리 한국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놀랐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가 잘못된 교육을 하였고, 허풍스런 산업의 틀을 짜서 언제 그 기반이 무너질지 모르는 꼴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몰랐고, 또한 사람과 자연을 돌이킬 수 없이 병들게 하고 죽여 버린 사실도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일본이나 서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잘 사는 듯한 겉모양만 보듯이 그렇게 우리를 본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살림이 좀 달라졌다 싶으니 이번에는 온통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게 되었다고 보신 관광 같은 것을 즐기면서 우쭐댄 것입니다. 속은 텅 비어도 겉만 근사하게 꾸미고, 집이고 다리고 길이고 교회고 책이고 사람의 모임이고 무엇이고 크게 높게 많게 1등으로 만들어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근원이 잘못된 것이고 뿌리가 잘못된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된 까닭이 이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오늘의 이 막다른 골목에 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잘못된 우리들의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 어지러움, 어느 구석 하나 제대로 되어 있는 자리가 없는 난장판,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이기주의, 민족을 배반하는 모든 사람답지 못한 짓거리들, 도덕이 아주 송두리째 무너진 세상 풍조……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우리 것을 헌신짝처럼 버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깨닫지 않는다면, 가령 우리가 앞으로 온갖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어 다시 좀 숨통을 트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니 얼마 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뿌리 없이 벼락치기로 만들어 보이는 가짜 세상이라, 그 길은 다시 또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길밖에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깨끗한 우리 말과 우리 마음으로 일하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백성들이 가졌던 맑은 우리 겨레의 얼을 도로 찾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말을 버리고 남의 말 남의 글에 빠져서 입으로 유식하게 지껄이고, 알 수도 없는 글을 써서 학식을 뽐내면서,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의 기를 죽이고 우리 말 우리 삶을 더럽히는 짓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여기 우리가 그 어떤 일보다 더 크고 근본이 되는 일, 그래서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고 보는 까닭이 이러합니다. 그 크고 근본이 되는 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우리 말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 우리 얼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는 곳마다 짓밟히고 죽어 가는 우리 말을 일으켜 세우는 일입니다.

겨레를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분이 이 일을 함께 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 이 땅을 지키고 이 겨레를 살리는 거룩한 일을 시작합시다.

다.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 이루어지기까지

98. 1. 24 '우리 말 살리는 운동 펴기' 준비 모임 계획. 취지문·목표·사업 계획 들을 적은 인쇄물 우송.
98. 2. 9 오후 2시 준비 간담회를 지식산업사에서 가짐 (참석하신 분-김수업 선생 외 7분)
98. 5. 7 취지문을 다시 쓰고, 우리 말 살리는 기본 원칙을 정해서, 발기인 승인 요청서와 함께 56분 앞으로 우송하였는데, 이 가운데서 승낙서를 보내 주신 분이 모두 39분이었고, 전화로 승낙한다는 말을 해 주신 분이 여섯 분이어서 발기인은 45분이 되었습니다.
98. 5. 27 오후 3시 지식산업사에서 발기인 모임 겸 창립 모임을 가짐. 이 날 발기인 모임만 계획했는데, 모두가 창립까지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창립 모임을 잇달아 하게 되었습니다. (참석한 사람- 남기용·고승하·남정성·노명환·노광훈·신정숙·강순옥·이혜영·백원근·서정홍·김경희·이오덕)

이 날 의논해서 결정한 중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모임의 이름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이오덕 김경희 이대로.)
㈁ 사무실 : (110-040)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35-18 지식산업사 2층
㈂ 할 일
1. 신문 글 바로잡기.
2. 방송 말 바로잡기.
3. 책에서 쓴 말 바로잡기.
4. 상품 이름, 상품 설명문 바로잡기.
5. 광고 글 바로잡기.
6. 교육 말 바로잡기.
7. 행정 말 바로잡기.
8. 직장 말 바로잡기.
9. 가정 말 바로잡기.
10. 아이들 말 바로잡기.
11. 교과서 글 바로잡기.
12. 영어 조기 교육 비판.

㈃ 방법
1. 개별 지도.
2. 공개 비판.
3. 모둠 행동.
㈀ 상품 안 사기.
㈁ 글 안 쓰기.
4. 길거리 선전 광고.
5. 전단 뿌리기.

98. 5. 31 공동 대표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운영위원을 우선 다음과 같이 뽑았습니다. 운영위원은, 먼저 각 지역별로 고루 나오도록 뽑았는데, 이분들은 달마다 한 번씩 열게 되는 운영위원회에 그때마다 참석하기 어렵겠기에, 서울과 서울 가까이 계시는 분들 가운데서 자주 나와서 의논할 수 있는 분들을 또 알맞게 뽑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알아 주시고, 운영위원이 되신 분들은 수고가 많으시겠습니다만 부디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정섭(부산)·고승하(마산)·남기용(창원)·남점성(창원)·서정홍(창원)·김수업(진주)·박종석(진주)·정근영(부산)·이재관(울산)·김명수(부안)·이만희(광주)·윤태규(대구)·김조년(대전)·최명환(공주)·황시백(속초)·주중식(거창)·황금성(부여)·김영래(서울)·차광주(서울)·강순옥(서울)·노명환(양주)·하현철(고양)·허홍구(서울)·이혜영(서울)·안건모(서울)·박문희(서울)·노광훈(인천)
98. 7. 10 회보 제 1호 펴내어 우송함



3. 회보 '우리 말 우리 얼' 내기

우리 모임에서는 1. 회보 발간. 2. 월간 잡지, 또는 격월간지 발간. 3. 토론회, 연수회. 4. 우리 말 글쓰기 상 제정. 5. 우리 말 이야기 상 제정. 6. 온 국민이 새로 배우는 우리 말 우리 글 배움책(교과서) 발간. 7. 우리 말 바로 쓰기 사전 발간. 8. 우리 노래 부르기. 들 일을 하기로 했고 7월부터 다달이 회보 '우리 말 우리 얼'을 냈는데 이오덕 선생님께서 손수 편집과 교정을 맡아 하신다. 회보 이름도 선생님이 지으셨다. 아래 선생님이 쓴 글 둘이 회보 만드는 일과 우리 활동의 기준이 되었기에 옮긴다. 무너미로 가신 뒤 20호 까지 손수 챙기셨으나 생전에 정리하실 일이 많다고 공동대표를 내 놓이신 뒤엔 주로 내가 편집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정한 기준을 생각하며 42호 째 나왔다.


[우리말 우리얼 1호 머리글 ‘우리 말’ 좀 합시다

지금 우리가 살리려고 하는 말은 우리 온 겨레가 나날이 살아가면서 입으로 주고받는 말이다. 어떤 특별한 일자리에서만 쓰는 말도 우리 말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말보다 더 서둘러 살려야 하는 것이, 아이고 어른이고 시골 사람이고 도시 사람이고 누구든지 하게 되는 말이다. 이 말이 우리를 길러 주었고,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었고, 우리를 한 겨레로 이어 주어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어머니가 되는 우리 배달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배달말이 지금 아주 형편없이 짓밟히고, 가리가리 찢기고, 볼썽사납게 일그러져서 죽어 가고 있다. 우리들의 삶과 얼과 그밖에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목숨 덩어리(생명체)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반만 년 역사에서 무서운 흉년도 많이 만났고, 끔찍한 전쟁도 수없이 치렀지만, 그때마다 그 어려움을 잘 이겨내었다. 우리 모두의 삶과 얼이 담긴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 외국글 외국 역사를 하늘처럼 떠받들어 섬기면서 그 학식을 권위로 삼아 백성들을 겁주고 백성들의 피땀을 짜내기만 하던 그 오랜 세월에서도, 일하면서 살던 우리 평민들은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슬기롭게 우리 것 우리 마음을 지켜 자자손손 이어 왔다. 우리를 안아 주면서 언제나 샘물 같은 힘이 솟아나게 하는 우리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그 말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다. 이 일을 어찌하겠는가?

더구나 이렇게 말을 죽이고 있는 것이 이제는 바로 백성들 자신이고 우리 자신이다. 제 목숨 덩이를 스스로 내버리고 짓밟는 이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거의 모두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괴상한 겨레가 되어 가고 있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어떤 흉년도 어떤 전쟁도, 그밖에 또 어떤 재난도 이보다 더 클 수 없다. 지금 나라 살림이 다 거덜났다고 모두 야단법석인데, 겨레말이 죽어 가고 있는 일에 대면 이까짓 경제?뮤育?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난국이란 것도 알고 보면 사실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우리 것을 학대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글, 일본글, 서양글에 얼이 빠져서 우리 말 우리 글에는 등을 돌리고 멸시하는 이 더러운 종살이 버릇은, 우리 조상들이 지켜 온 모든 것을 버리고 짓밟는 풍조를 만들었으니, 이렇게 해서 남의 것 쳐다보면서 겉모양만 꾸며 보이고 허풍으로 살아 왔는데 우리 살림이 이 지경으로 결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지금 빠져 있는 경제난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도 우리 말을 살려야 한다고 하면 무슨 억지 소리를 하나 하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살림이 이 지경으로 된 까닭은 너무나 환하다. 우리 국민들의 정신을 바로잡지 않고는 정치고 경제고 학문이고 교육이고 어떤 것이고 제자리에 바로 놓일 수 없다. 정신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그걸 바로잡나? 정신이 곧 말이고, 말이 정신이다. 깨끗한 말, 아이고 어른이고 시골 사람이고 도시 사람이고, 교수고 판사고 박사고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이고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로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우리 사회는 저절로 환하게 밝아지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하는 일이 올바르게 될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깨끗한 말을 하고, 쉬운 우리 말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오늘 신문을 보니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모든 관리들에게,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쉬운 영어로 모든 공문서를 쓰라고 지시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문장은 짧게 쓰고, 입음꼴로 쓰지 말고, 낱말도 쉬운 말로 써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우리 말을 살리기 위해 주장해 온 말 그대로다. 미국의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니 참으로 놀랍고 뜻밖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역시 그 나라는 앞서가는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온 세계 각국의 말에 영향을 주면서 그 말들을 집어 삼키거나 그 말들에 스며들어 그 꼴을 바꿔 버리거나 하는 영어를 쓰면서도, 그 대통령이 자기 국민들의 마음을 깨끗하고 바르게 하고, 하는 일에 허풍이 없이 알맹이가 차도록 하기 위해서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쉬운 영어를 쓰라고 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땅히 우리 자신의 창피한 꼴을 바로 비춰 보고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어려운 말, 남의 나라 글자말과 남의 나라 말법을 자랑삼아 쓰고 싶어하는 이 미친 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람 대접을 받고 살아갈 자격이 없다. 그런데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학자고 문인이고 기자고 관리고 예술인이고, 심지어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제 나라 제 겨레 말을 학대하고 학살하면서 온통 허풍스런 엉터리 글문화를 만들고는 들떠 있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꼴을 대한민국말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또 볼 수 있겠는가?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16강이 아니라 아주 우승을 한다고 해도 이런 정신 가지고는 절대로 앞날이 없다.

서양 사람 것이라면 똥도 서로 다투어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말이 몇십 년 전에 지나가 버린 한때 우리들의 모습에 그쳤던 것이 아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한 말이니까 이번에는 또 쉬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난리가 날 판 아닌가? 우리가 정말 손톱만큼이라도 제정신이 남아 있다면 쉬운 영어 공부가 아니라 쉬운 우리 말 공부를, 살아있는 우리 겨레말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어디서나 우리 말 살리기를, 아침마다 일어나면 우리 말을 죽이지 않기를,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 마음 속에 다짐하고 남에게도 타이르고 해야 할 것이다. 배달겨레 여러분, 제발 우리 말 좀 합시다.





6.우리 말 바로 쓰기의 원칙과 기준

이오덕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온 겨레가 나날이 살아가면서 입으로 말하고 글로도 쓰는 말이, 밖에서 들어온 말에 밀려나고 버림받고 죽어 가고 있어, 지금 우리 말은 아주 엉망진창이 되었다. 우리 말이 이렇게 병들고 죽어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겨레가 병들고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말을 살리지 않고 우리 겨레를 살릴 수 없다.

우리 말을 어떻게 살릴까? 무엇보다도 먼저 잘못된 말 병든 말을 찾아내어야 한다. 쉽고 깨끗한 우리 말과 우리 말이 아닌 말(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우리 말이 되어서는 안 되는 말, 남 따라 쓰는 말, 책에서 배우고 방송을 듣고 그대로 쓰는 말)을 갈라 놓아야 한다. 우리 말이 아닌 말을 낱낱이 가려내어 이런 말이 우리 말을 잡아먹는 황소개구리라는 사실을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는 이 황소개구리 같은 말을 몰아내는 '우리 말 살려 쓰기'를 사람마다 나날이 밥을 먹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겨서 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바르고 깨끗한 우리 말과 병들고 비뚤어진 말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어떤 원칙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이 일을 해야 할까? 그리고 이 일은 누가 해야 하나? 아무나 다 이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먼저 이 일을 누가 할 수 있나 하는 문제부터 생각해 보겠다. 우리 말과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우리 말을 죽이는 말을 바로 보고 느끼고 그것을 잘 판단하는 일은 방안에서 책만 읽고 글만 쓰는 사람이나 책에 파묻혀 연구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는 결코 올바르게 할 수 없다. 오히려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일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서민들)이 잘 할 수 있다. 원칙은 어디까지나 그렇다. 그 까닭은 오늘날 우리 말이 이렇게 병들어 버린 근원은 책과 글에 있고, 그 책과 글을 만들고 지어 놓은 지식인들 쪽에 모든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깨끗한 우리 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또 잘못된 글쓰기 문화에 짓눌려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에 자신을 잃고 있다.(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을 '문맹자' '글봉사'라고 해서 아주 없애야 할 미개인으로 따돌리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 되었으니,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에서도 거꾸로 된 세상의 틀을 그대로 이용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래서 말과 글에 관한 참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백성의 한 사람으로 숨쉬고 살면서 백성의 삶과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대신해 말해 주면서 모두가 살아 있는 우리 말을 지키고 가꾸어 가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무엇이 우리 말인가, 우리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말을 버려야 하나 하는 문제다. 우리 말의 원칙을 여러 가지로 들어서 말하기에 앞서, 그 원칙이 나오게 된 밑뿌리를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가 된다.

첫째, 깨끗한 우리 말일 것.
둘째, 글보다 말이 으뜸이다.
셋째, 살아 있는 말이라야 한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해서 좀더 자세히 우리 말의 원칙을 들어 보겠다.

원칙
① 시골의 농사꾼들, 학교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 글을 읽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거의 모두 깨끗한 우리 말이다.
②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는 방송을 따라 하는 말이나 학교에서 잘못 배운 말, 어른들한테서 잘못 배운 말이 더러 나오지만, 대체로 어른들의 말보다 깨끗하다.
③ 지금부터 60년이나 70년 전부터 누구나 입으로 하던 말은 우리 말이다.
④ 입으로 하지 않는 말, 글에서만 나오는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다. 다만 옛날부터 우리 글에서 쓰던 말이나, 옛날에는 입으로 하던 말이 지금은 글에서만 쓰게 된 말은 그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지금 우리가 입으로 널리 하고 있는 말이 있으면 그 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⑤ 밖에서 들어온 말이라도 그 말이 우리 말과 어느 정도 잘 어울리고, 또한 그 말에 대신할 우리 말이 없으면 우리 말로 삼는다.
⑥ 같은 뜻을 가진 우리 말이 두 가지 있으면 그 어느 쪽 한 가지를 쓸 수도 있고, 두 가지를 다 쓸 수도 있다.
⑦ 모든 글은 그것을 읽었을 때 귀로 들어서 곧 알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귀로 들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다.
⑧ 꼭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도 오래 전부터 글로 써 왔고, 그래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말은 그대로 글로 쓸 수 있다.
⑨ 어떤 전문 분야(철학·종교·정치·경제·금융·상업·농업·공업·의학·건축……들)에서 쓰는 말, 곧 누구든지 나날의 삶에서 흔하게 쓰지 않는 말은 그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말로 다듬어 쓰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도 될 수 있는 대로 그 전문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쉬운 우리 말로 다듬어서 쓰는 것이 옳다.
⑩ 문학은 전문 분야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글쓰기이고, 또한 말로 창조하는 예술이고, 겨레말을 살리는 일을 하는 자리다. 따라서 소설이든지 수필이든지 시든지, 그밖에 어떤 종류의 글도 일반 국민들, 백성들이 잘 알 수 있는 우리 말로 써야 한다.
⑪ 더구나 어린이들에게 읽히거나 들려주기 위해서 쓰는 글은 한층 더 깨끗한 우리 말로 써야 한다. 입으로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⑫ 관청이나 언론에서 또는 책에서 퍼뜨려 놓은 잘못된 말은 비록 오랫동안 널리 썼다고 하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⑬ 우리 말의 뿌리요 둥치가 되어 있는 농민들의 말은 우리 말 사전에도 올려 있지 않는 말이 아직도 많다. 이런 말을 모두 '사투리'로 잘못 알고 있지만, 깨끗한 우리 말로 보아야 한다.
⑭ 우리 말 사전에 올려 있는 말 가운데는 실지로 쓰지 않는 말,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되어서는 안 되는 말이 아주 많다.
⑮ 우리 말 사전에는 말을 풀이해 놓은 글이 우리 말이 아니고 우리 말법이 아닌 것이 아주 많다.

토박이말이 없어 들온말을 인정할 경우에 한자말과 서양말 두 가지가 있을 때는, 어느 것이 더 잘 우리 말에 어울리는가, 더 쉽고, 자연스럽게 쓰이는가, 어느 것이 먼저 들어온 말인가를 살펴서 그 어느 쪽을 우리 말로 받아들인다.

관공리나 지식인들이 새로 쓰는 어려운 말은,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들어온 말이든 우리 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 나라의 어떤 단체나 사람의 이름을 줄여서 나타낼 때는 외국말이나 외국글자로 써서는 안 된다. 또 우리 말로 나타내더라도 그렇게 줄인 말이 이상한 느낌을 주거나 엉뚱한 이름으로 잘못 느끼게 되지 않도록 줄여서 써야 한다.

모든 글은 한글로만 쓴다. 다만 특별한 경우에 어떤 외국의 글자를 묶음표 안에 넣어 쓸 수 있다.
맞춤법은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맞춤법 가운데 누가 보아도 잘못되어 있는 것은 바로잡아 쓸 수 있다.

눈으로 보거나 소리내어 읽었을 때 그 말뜻을 잘못 알게 되도록 쓰고 있는 맞춤법은 바로잡아서 쓴다.

기준

앞에서 든 스물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우리 말을 깨끗한 우리 말과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말로 나누고, 이 두 가지를 다시 몇 가지 갈래로 나누어서 그 보기를 들어 보겠다.

깨끗한 우리 말.
본디부터 있던 토박이말.
들어온 말.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말)
한자말
어려운 한자말.
느낌이 좋지 않거나 엉뚱한 뜻으로 알게 되는 말.
우리 말이 있는데도 공연히 쓰는 말.
일본말
일본말.
일본한자말.
일본말법.
일본글말.
일본글 셋째가리킴대이름씨.
일본 속담.
서양말
서양말, 또는 서양말 흉내낸 말.
서양말법.
서양 정서, 전통 흉내낸 말.
잘못 쓰는 글말.

다음에 보기를 든다. 각 항목마다 얼마쯤씩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사전에 올려 있는 모든 말을 이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깨끗한 우리 말
본디부터 있던 토박이 우리 말.
하늘. 땅. 바다. 구름. 나무. 바람. 눈. 비. 물. 안개. 길. 사람. 아이. 어른. 소. 마음. 새벽. …(이름씨)
나. 너. 그이. 저이. 이것. 저것. 그대. 누구. …(대이름씨)
하나. 둘. 셋. 첫째. 둘째. 셋째. …(셈씨)
본다. 듣는다. 간다. 일한다. 말한다. 먹는다. …(움직씨)
기쁘다. 반갑다. 슬프다. 아름답다. 깨끗하다. … (그림씨)
이다. 아니다. (잡음씨)
이. 그. 저. 새. 헌. 한. 두. 세. 서. 넉. 네. …(매김씨)
아주. 가끔. 빨리. 천천히. 저절로. 더구나. 방긋방긋. 팔랑팔랑. …(어찌씨)
아아. 아차. 어이쿠. 아뿔싸. 후유. 영차. …(느낌씨)
가. 이. 는. 에. 에서. 까지. 부터. 야. 을. 한테. 마다. 으로. …(토씨)
밖에서 들어왔지만 우리 말이 되어버린 말.
산. 강. 책. 신문. 학교. 학생. 교실. 역사. 사회. 문학. 예술. 철학. 자동차. 비행기. 전기. 전차. 민주주의. 자유. 국회. 회의. 내일. 냉장고. 정부. 감옥. 연필. 필통. 만년필. 운동장. 풍금. …
버스. 라디오. 텔레비전. 아파트. 피아노…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말.)
㈎ 한자말
㉠ 어려운 한자말.
조우. 해후. 호우. 기아. 미지수. 두건. 입자. 인후. 빈축. 선박. 유실수. 불연성. 수수방관. 속수무책. 일전불사. 불가사의. …
㉡ 느낌이 좋지 않거나 엉뚱한 뜻으로 느끼게 하는 말. (우리 말에 어울릴 수 없는 말.)
오자. 오지. 오수. 오니. 오독. 비자금. 상판. 교각. 고객. 수수. 발발. 왕왕. 의의. 의외. 의아(해한다.) 하자(흠). 종용. 우수(근심. 수심). 우아(하다.) 만끽(한다.) 끽연. 회화. 외화. 희화화(한다.) 화훼. 박차. 미풍. 미아. 영아. 치아. 의상. 익사. 고의. 토로 …
㉢ 우리 말이 있는데 공연히 쓰는 말.
대지. 초원. 여명. 황혼. 야생초. 야생화. 수로. 농토. 소로. 대로. 영아. 유아. 미소. 서식. 종자. 파종. 수확. 제초. 작물. 작황. 돌연. 돌입. 미래. 붕괴. 상호. 석권. 관건. 도서. 기로. 우회로. 첩경. 해안. 계곡. 산정. 춘계. 추계. 하계. 동계. 완구. 주방. 식탁. 사용. 성인. 실내. 노천. 수목. 온수. 냉수. 음료수. 체구. 이환. 치유. 발한. 동일. 의복. 가구. 위치한다. 웅변한다. 등장한다. 소유한다. 유실한다. 분실한다. 망각한다. 증오한다. 비탄한다. 견고하다. 가능하다. …
㉣ 같은 한자말이면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말을 써야 한다.
대기(공기). 계기(기회). 종용(권유). 우려(염려). 표출(표현). 출범(출발). …
㉤ 많이 쓰는 말도 우리 말을 찾아 쓰면 더 좋은 말이 된다.
사용한다(쓴다). 활용한다(살려 쓴다). 도서(책). 인간(사람). 계속(자꾸. 잇달아). 각자(저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사망(죽음). 작업(일). 실천한다(한다). 노동한다(일한다). 출발한다(나선다). 도착했다(닿았다). 관찰한다(살펴본다). 기록한다(적는다). 장소(곳). 시일(때). 이유(까닭). 등(들. 따위). 도로(길). 가격(값). 노트(공책). 게임(놀이. 운동. 경기.) …

㈏ 일본말
일본말을 그대로 쓰는 경우.
야끼마시. 가다마에. 에리. 입빠이. 고데. 아다리. 가다로꾸. 요오지. 도비라. 시와. 우라. 에에또. 앗싸. 요이샤. 찌찌. …
㉡ 일본한자말
입구. 창구. 입장. 역할. 수순. 수속. 취급. 취입. 인상. 인양. 인하. 대출. 인출. 차입. 일응. 절취. 수취인. 승부수. 승부사. 승부한다. 진검승부. 민초. 체념. 예취. 소채. 야채. 부락. 개시. 주관적. 객관적. 비교적. 사회적. …
㉢ 한자 섞인 일본 글 따라 쓰는 말.
특히. 필히. 공히. 극히. 심히. 쾌히. 일제히. 일일이. 비해. …
㉣ 일본말법.
나의 집. 나의 학교. 나의 어머니. 나의 사는 곳. 나의 존경하는 사람. 만남의 광장. …
되어진다. 주어진다. 던져진다. …
불린다.(그는 천재라 불린다. 따위)
라고. ("……간다"라고 말했다.)
-에 있어. -에 있어서. -에 있어서의.
에의. 로의. 에로. 에로의. 으로부터(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따위). 에서의. 와의. 마다에. …
보다(보다 나은…따위)
뿐만 아니라(우리 말은 '그뿐만 아니라')
그러나 (일본말 따라 글의 중간에 쓰는 경우)
㉤ 셋째가리킴대이름씨
그녀.
흔히 쓰는 일본말. 일본 이음말.
-에 다름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줄여서 '그럼에도' '불구'따위로도 나타남). -에 의하여. -를 통해서. -로 인한. …
일본 속담. 버릇말.
도토리 키 재기. 벌레를 씹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손에 땀을 쥔다. …
㈐ 서양말

㉠ 서양말. 또는 서양말 흉내낸 말.
가이드. 오픈. 이미지. 메시지. 쇼핑. 세일. 조깅. 레크리에이션. 캘린더. 조크. 제스처. 스케줄. 커브. 캠핑. 해프닝. 파티. 파트. 넘버. 게임. 컬러. 메뉴. 커미션. 커버. 에세이. 엠티. 스푼. 슬로건. 클럽. 키. 오더. 캠패인. 그린스카우트. 스케일. …
㉡ 서양말법.
먹었었다. 갔었다. 했어야 했다.
㉢ 서양 정서. 전통 흉내낸 말.
공주. 요정. 거인. 마귀할멈. 대부. 인어




7. 영어 공용어 주장 비판하고 막기


얼빠진 세계화 주장자들과 경제단체는 은 나라를 국제 통화기금의 식민지로 만들어 놓고도 정신차 리지 못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우리말을 살리기 위해 처음 한 일이 영어 공용어 주장을 잠재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회보 2호에서 그 문제를 집중 비판했다.이오덕 선생님은 "영어 공용어 주장은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겨레를 사라지게 할 못된 주장"이라고 호되게 비판한다.


"지난달 어느 일간 신문에서, 영어를 우리 나라 모든 사람이 공식으로 쓰는 말로 정하는 것이 좃겠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과, 이를 비판하는 몇 사람이 토론하는 글을 여러날 연재한 일이 있다. 민주사회에서 토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쩌다가 우리가 여기까지 왔나 싶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토록 오랫동안 끊임없이 제 겨레 말과 글을 푸대접하고 짓밟으면서 남의 글 남의 말은 하늘같이 받들어 섬기더니, 드디어 세계화다 경제 살리기다 하는 정치 풍토를 타서 이제는 아주 드러내어 놓고 영어를 나랏말로 하자는 주장을 큰소리로 자랑스렀게 외치는 막판에 왔구나 싶다. ...줄임.... '세기말 현상'이라는 말이 100년 전에 잇었는데, 이제 우리 사회에 또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아니다. 이것은 세기말 정도가 아니다.

민족이고 문화고 도덕이고 정의고 다 소용 없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우리 당대만이라도 잘 먹고 기분좋게 사는 것, 그래서 돈과 그 돈이 가져오는 힘만이 우리가 맞는 최고 목표가 되고 오직 하나 갈 길이다! 이쯤 되면 인간의 운명이란 다한 것이고, 인류 문명 자체가 끝장을 맞았다고 보아야 한다."고 쓰셨다. 우리는 그 때 '영어 공용어 어떻게 볼 것인가' 특집을 내고 집중 분석하고 비판한 일이 있다.



8. 한자혼용파 비판과 한자혼용법안 막기 10만인 서명운동



두 번째 한 일이 한자혼용파들이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를 만들고 우리말과 한글을 짓밟으려는 일을 막는 일이었다. 한자 쪽은 영어 공용어 바람은 모른체하고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주장하고 한글전용법을 페지하고 한자혼용법안을 만들자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에 이른다. 우리 모임 회보 4호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주장을 집중 비판한다. 그리고 그 뒤 그들이 낸 한글전용법 페지 법안 반대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인다.

그 때 이오덕 선생님은 한자 단체의 주장과 수작을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어리석은 수작'이라는 제목으로 호되게 나무란다. 머리말만 옮긴다.

"이번에 ‘전국 한자교육 추진 총연합회’란 데서 만든 선언문과 여러 가지 선전 자료를 보고 크게 놀라고, 그래서 느끼고 생각한 것이 많다. 한자교육 자료라는 것 세 가지를 따지기에 앞서, 우선 이 단체에서 나온 인쇄물들을 대강 훑어보고 느낀 것부터 말하고 싶다.

일본제국에 빼앗겼던 주권을 도로 찾은 지 53년, 그 동안 우리는 자랑스런 우리 말 우리 글로 교육을 하고, 공문서며 신문이며 잡지며 그밖의 모든 글을 우리 말 우리 글자로 써 와서 오늘의 우리 글문화를 이룩했다. 비록 신문에서 한문글자를 섞은 제목을 볼 수 있지만 그런 신문들도 이제는 지난날과는 많이 달라지고,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되어 가고 있다. 다만 한글만으로 쓴 글에서 가끔 알 수 없는 말이 나와서 언제나 문제가 되었는데, 이것은 한글 때문이 아니고 바로 그 어려운 말, 잘못된 한문글자로 된 말 때문이니, 그런 말을 쓰지 말고 우리 말로 쓰면 되는 것이다. 가령 <한문교육 자료1>에서 북한의 교과서에도 나오는 ‘삼림’이란 말은 우리 말로 ‘숲’이라 쓰면 될 것이지 ‘森林’이란 한문글자를 쓸 필요가 없다. 물론 한자말이라도 아주 우리 말이 된 것은 그대로 한글로 쓰면 그만이다. 같은 자료에 나오는 말 ‘砂糖’을 ‘사탕’이라고 쓰면 되는 것과 같다. 어려운 한문글자로 써야 할 까닭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우리 말 우리 글을 살려 쓰면 모든 것이 저절로 시원스럽게 풀리는 이 훤한 이치를 진작부터 깨달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맡은 전문 분야에서 잘못된 한자말을 우리 말로 바로잡아 쓰는 노력을 하여 왔지만, 아직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어려운 한자말로 된 글을 읽고 외국말법으로 된 글을 쓰면서 그런 말 버릇 글 버릇이 몸에 꽉 배어 있는 글쟁이들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을 하는 것도 한자말로, 일본말법과 서양말법으로 한다. 그래서 어려운 한자말과 외국말법으로 쌓아 놓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회만 있으면 한문글자를 섞어 쓰자고 하더니, 이제 역사가 성큼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자 이러다가는 어려운 말과 글로 지켜온 권위를 아주 영영 잃어버리겠다 싶은지 성명서를 내고 궐기대회란 것을 하려 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으기에 발벗고 나선 듯하다. 갈 것은 결국 가고야 말겠지만, 우리 겨레가 목숨을 지키면서 나가는 길 앞에 어찌 이다지도 지저분한 훼방꾼들이 사라질 날이 없는가 "


9.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 뽑기 시작하다.

나는 1968년 국어운동대학생회 연합회를 만들고부터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고 빛내는 일을 한 사람을 뽑아 세종대왕상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최만리상을 주자는 주장을 처음 했었고 그 뒤 여러번 한글단체 분들에게 그 의견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했습니다. 그래서 또 우리말살리는모임에서 그 의견을 냈더니 이오덕 선생님이 그저 좋겠다고 혼쾌히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기로 했으나 진짜 상풍이나 상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잘못한 사람에게 상이란 이름도 걸맞지 않으니 '지킴이와 훼방꾼 뽑기'로 하자는 이오덕 선생님의 의견을 따라 이름을 그렇게 짓고 올 해로 여섯 번 째 행사를 했습니다. 선생님의 넒은 마음과 운동감각에 고개가 숙여진다.


올해(1999년)의 우리 말 지킴이와 훼방꾼을 알립니다


올해 우리 말을 지키고 살리는 큰 일을 한 분들과 우리 말을 해친 훼방꾼들을 다음과 같이 뽑았습니다. 처음에 계획했던 ‘세종대왕상’과 ‘최만리상’을 이렇게 ‘우리 말 지킴이’와 ‘우리 말 훼방꾼’으로 바꾸어,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훌륭한 일을 한 분들과 나쁜 일을 한 분들을 함께 널리 알리게 되었으니 그리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하는 이 일을 한차례 알리는 자리는, 지난 9월호 회보에 광고한 대로 10월 2일 오후 3시 한글회관 강당에서 베풀게 되오니, 회원 여러분들께서 많이 나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999년 9월 29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10. 정부에 우리말 살리기 건의하기

정부에 영어 공용어 반대, 한자 혼용반대, 우리말 살리기 건의문을 계속 보낸다. 또한 국민들에게 성명서와 호소문을 발표한다. 글이 길어져서 관련 글은 소개하지 않고 줄인다.

11. 바르게 말하기, 우리말 살리기 교육

선생님이 하신 일 가운데 중요하고 큰 일은 우리 회보와 신문과 잡지에 바른 말 바른 글쓰기와 우리말 살리기 정신 교육을 끊임없이 하신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병마와 싸우면서 당신이 못 다하신 말씀을 글로 정리하신 일은 놀라운 정신력이고 우리 모두 본받아야 삶이다.

마무리 말

이오덕 선생님은 남다른 교육자요 겨레와 나라를 사랑한 분이었다. 우리 어린이와 우리말을 걱정하신 건 겨레와 나라를 위해서였다. 참삶, 아름다운 삶을 모두 함께 누리길 바라셨고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쓰셨다. 님이 생전에 못 다한 뜻과 일을 우리 후배들이 이루자.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글쓴이 : 이대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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