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갑수 선생님 빈소에 다녀와서
(글쓴이: 이 대로)
한 평생 한글 지키기에 힘쓴 한갑수 선생님 돌아가시다.
한글 지키는 일을 한 평생 하신 한갑수 선생님께서 우리 나이로 92살을 사시고 11월 21일 돌아가셨다. 한 선생님은 일생동안 한글학자, 한글 지킴이로 활동하셨고 60년 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 때부터 대학생들과 많은 활동을 한 분이다. 어제 나는 서울대 국어운동대학생회 초대회장을 지내고 지금 전국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인 이봉원님과 함께 서울대병원 빈소에 다녀왔다. 내가 모시던 선생님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시고 선배들이 늙으니 내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한 선생님은 우리 국어운동대학생회 초창기 출신들과 남다른 추억이 많은 분이다. 한 선생님께서 하늘나라로 편안히 가시길 빌면서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적어본다.
서울대병원 영안실 3호에 차려진 한갑수 선생님 빈소 사진
1. 한글학회의 얼굴 한갑수 한글학회 이사
지금 40대가 넘는 한국인은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텔레비전도 없고 라디오 방송국도 한국방송만 있던 1945년부터 1982년까지 수십 년 동안 한국방송 라디오에서 '고운말 바른말' 방송을 계속 하셨기 때문이다. 나도 50년대 어릴 때에 방송을 통해서 한갑수 선생님 성함을 알고 있었다. 그 때 한글학회 이사장이신 외솔 선생님보다 한갑수 선생님이 세상에 더 알려졌었다. 그래서 한글학회 하면 한갑수란 이름이 떠오르고 한갑수란 이름만 들어도 한글학회가 떠오를 정도다. 어떤 이는 한 선생님이 한글학회 회장을 지낸 걸로 아는 이도 있을 정도로 한글과 한글학회 얼굴로 알려졌다.
2. 60년 대 국어운동대학생회 학생들을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셨다.
1967년 국어운동대학생회가 창립했을 때 학생들을 지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신 세 분이 있다. 모임 지도교수이신 전 서울대 교수 허웅 선생님과, 한갑수 선생님, 일제 때 경성방송국 아나운서도 지내셨고 50년대에 한국방송 스무고개 척척박사로 활동하신 문제안 선생님이셨다. 지도교수이신 허웅 교수님보다 한글운동가인 한갑수, 문제안 선생님이 학생들 모임과 강연회들에 더 많이 참석하셨다. 두 분은 그 때도 이름난 분이고 바쁘셨는데 몇 십 명 모이는 학생들 행사에도 꼭 착석하셨다. 35년 전 전국 대학에 조직을 확장할 때인데 상명여대 국어운동학생회 창립식에 한갑수 선생님이 축사를 해주시고 내가 선배로서 격려사를 한 일이 있고 숙명여대 창립식엔 문제안 선생님이 축사를 하고 내가 격려사를 한 일이 있다. 70년대에 후배 대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지방을 돌며 국어순화 전국순회강연회를 했는데 선생님이 말씀을 잘하셔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3.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정책과 한갑수 선생님의 증언
15년 전 노태우 정권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다고 해서 한글단체 대표들이 모여 그 대책회의를 할 때였다. 그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이 성명서도 내고 반대 시위를 하자는 등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데 한갑수 선생님은 걱정할 거 없다면서 "박정희 대통령 때 어느 날 밤중에 청와대 비서실에서 다급하게 날 찾았다. 가보니 오늘밤 안으로 한자로 된 化粧室 같은 문패나 표지판을 모두 한글로 바꿔 쓰라는 대통령 특명이 내렸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 미국에서 높은 분이 오는 데 그에게 우리가 세계 으뜸가는 글자를 가진 자주문화국가임을 보여주자는 뜻인데 국어운동대학생회가 보낸 건의문을 보고 갑자기 대통령이 결심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밤새 내가 붓으로 한글로 문패를 써서 바꿔 단 일이 있다. 대학생들이 이렇게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며 대학생들을 앞장세우면 된다고 하셨다. 그 때 내가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으로 학생들을 이끌고 있기에 그 말씀이 현실을 잘 모르시는 말씀임은 알았지만 귀중한 증언이어서 귀가 번쩍 띄었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은 국어운동학생회 활동 신문보도를 보고 대통령 문화특보로 있던 이은상 선생에게 한글전용 필요성을 자문한 뒤 한갑수 선생에게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을 부탁했고 그 토대로 1968년에 한글전용 특별대책을 발표했다는 말을 이은상, 한갑수 두 분에게서 전 서울대국어운동학생회 회장 이봉원님이 직접 들었다는 말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실감이 났다. 박대통령의 한글전용 정책은 국어운동대학생회와 이은상, 한갑수 선생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또 하나의 증언이다.
4. 한갑수 선생님은 말씀도 잘 하셨지만 붓글씨를 잘 쓰셨다.
한 선생님이 말씀을 조리 있게 또박또박 잘하시는 분이었지만 한글 붓글씨를 잘 쓰셨다. 그래서 60년 대 청와대에서 갑자기 한자로 된 표지판을 바꿀 때도 한 선생님에게 한글로 써달라고 했고 60년 대 극장에서 하던 '대한뉴스' 자막 글씨도 한 선생님이 쓰신 것이라고 한다. 말씀을 잘 하시기로 유명해서 근래에도 지방 곳곳에서 선생님을 모셔다가 경연회를 열고 선생님이 오신다고 하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왔다고 한다. 말씀만 깔끔한 게 아니라 멋쟁이였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셨다. 며칠 전 돌아가시기 전에도 건강하셔서 강연 약속까지 하셨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제 선생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한글사랑, 언어예절 강연은 들을 수는 없지만 그 정신만은 오래오래 우리들 가슴속에 남아서 우리가 하는 일을 도와주실 것이다.
이제 내가 지난 10년 동안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에서 모시고 활동하던 안호상, 공병우, 허웅 교수님에 이어서 큰 어른 한 분이 또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분들 모두 80대 할아버지이시지만 젊은이 같은 뜨거운 한글사랑, 겨레사랑정신으로 똘똘 뭉친 선생님들로서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훌륭한 분들을 모시고 한글날 공휴일 제외 반대운동, 국회의원 이름패 한글로 쓰기운동, 한자혼용반대운동, 영어 공용어 반대운동, 한글날 국경일제정운동을 한 게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 하늘나라에 가셔서 먼저 가신 선생님들과 반갑게 만나 편안하게 지내시며 이 땅에 남아있는 후배들이 잘 하는 지 지켜보시기 빌며 줄인다. 그리고 님들의 뜻을 이어 더 열심히 한글을 지키고 빛낼 것을 다짐한다.
(2004. 11.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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