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국경일 만들기, 비뚤어진 역사 바로잡기 15년
오오! 가갸날! 오오! 한글날! 한글 만세! 만만세!
2005년 12월 8일 제256회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국경일에 관한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1990년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에서 빠진 뒤부터 지난 15년 동안 한글단체와 많은 국민은 한글날을 되살리려고 피땀 흘리며 싸웠고 발버둥쳤다. 그 일에 앞장선 사람으로서 매우 기쁘고 고맙다. 나는 지난 11월 30일 이 법안이 국회 행정자치위 법안 소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한글과 한겨레는 살았다! 한국은 빛날 것이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 일에 애쓴 여러분과 국회의원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이제 한글날을 온 국민이 경축하고 즐기는 진짜 문화 국경일이 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늘 저녁 다른 행사장에 참석했다가 국회로부터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한글 만세!"를 불렀다.
나는 1990년 정부가 공휴일이 많아서 나라살림이 어렵다면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려 할 때 전국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으로서 한글단체에서 가장 먼저 노태우 대통령에게 그 잘못을 알려주는 건의문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정부에 공개토론을 제의했으나 정부 쪽에서 오지 않아 한글회관에서 한글단체 대표들과 그 못된 짓을 하지 말라는 성토대회를 열었다. 그래도 정부가 못들은 체 강행하려 해서 전국 36개 대학 국어운동학생회 대표들과 함께 이어령 문화부장관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그때 문화부는 절대로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빠지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1990년 5월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주최 한글날 지키기 공개 토론회 사진]
그런데 그해 여름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는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다고 해서 나는 이연택 총무처 장관실과 강영훈 총리실에 항의 전화를 했고 노총에선 항의 방문을 했다. 그러니 정부는 공휴일 축소 결정을 미루었는데 그 해 연말에 소문도 없이 국무회의를 열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렸다. 그 때 국무위원들은 경제단체에 놀아나 한글을 짓밟은 한글 반역자들이었다. 그래서 다음해 2월 눈이 오는 날 나는 전국 국어운동대학생회 후배들과 함께 탑골공원에서 모여 한글날을 되찾으려는 항의 집회를 하고 명동까지 시위도 한 일이 있다. 그 때부터 15년 동안 나는 한글날 되찾기 싸움에 앞장서게 된다.
그 뒤에 바로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은 대통령과 국회에 '공휴일'이 아니라 '국경일'로 만들어 달라는 건의를 하고 국경일 지정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때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것은 단순히 공휴일이 하루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말과 한글이 죽고 겨레 얼을 빠지게 해서 나라가 망하고 겨레가 시들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글날은 1926년 일제 때 민족 지도자들이 겨레말과 글자를 살려 나라를 되찾고 독립을 이루겠다는 마음에서 만든 날(처음 이름은 가갸날)이다. 일제 때 한글 학자와 민족 지도자들은 한글날을 만들고, 한글 맞춤법을 만들고, 국어사전을 만들어 독립을 준비했다. 1943년에 일제는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해 이분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해 두 분이 돌아가시기도 했다.
일제 때 조선어학회 회원과 민족지도자들이 한글날을 만들고 한글을 갈고 닦아 논 덕에 일제가 물러간 뒤 미군정 때에도 우리 말글로 공문서를 쓰고 교육할 수 있었다. 1947년 미군정 때에부터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경축하고 독립과 민주주의 밑바탕을 다지고 나라를 일어나는 밑거름이 되게 했다. 한글날은 나라를 되찾고 일으킬 준비를 다짐한 날이고,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온 국민이 똑똑하게 해주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하게 해준 진짜 경사스런 국가 기념일이었다. 그런데 어리석은 노태우 정부의 장관들과 경제 단체가 한글날을 짓밟아 일어나는 민족기운을 빼버린 것이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빼면서 기념식을 더 성대하게 하고 한글을 지키고 빛내는 정책을 더 강력하게 펴겠다던 정부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단체가 영어와 한자를 더 숭배해야 한다고 하니 무식한 김영삼 정부는 영어 조기교육과 한자 조기교육을 하겠다면서 한글을 헌신짝 보듯 했다. 그러니 우리말과 한글은 병들고 시들고 나라까지 흔들렸다. 그렇게 만든 한글날, 그렇게 갈고 닦고 지킨 한글을 한국 정부와 학자가 짓밟으니 이 나라가 잘될 리가 없었다
나는 그 꼴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90살이 되신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 박사님, 80살이 넘은 공병우, 한갑수, 허웅, 전택부 선생님들을 모시고 국회와 정부에 한글날과 한글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고 건의도 하고 방문해서 호소했으나 박준규 국회의장도 김영삼 대통령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얼빠진 김영삼 정부는 대비책도 없이 세계화를 외치며 영어 조기교육을 시행한다고 하니 나라 말글살이가 혼란스럽게 되고 국민은 자신감을 잃고 흔들렸다.
[2000년 한글날 기념식장에서 영어 공용어 반대, 한글날 국경일 촉구 1인 시위한 이대로]
결국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진 7년 뒤 김영삼 정권 말기 때에 한국은 국제 투기자본의 밥이 되어 국제금융기구(INF)의 경제 식민지가 되고 만다. 한글단체는 죽어 가는 우리 말글, 쓰러져 가는 나라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스스로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공청회'를 열고 국경일 제정을 촉구하니 16대 국회에서 그 소리에 반응을 보인다. 여러 의원이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한 의원모임(대표 신기남)을 만들고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국경일 제정법 개정안'을 내고 국회에서 공청회도 열었다. 그리고 한글단체는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위원회(위원장 전택부)를 만들고, 국경일 제정 법안 통과운동을 한다.
[2003년 여의도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글날 국경일 촉구 대회 때 신기남의원]
그런데 경제단체와 행정부가 반대하니 국회의원들이 그 법안을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한글단체 여러분을 모시고 국회도 방문하고 행정자치부도 찾아가고 건의문도 수없이 냈다. 그래도 안 되어 90살을 바라보는 전택부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호소하려고 청와대에 갔다가 거기서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신다. 다행히 깨어났으나 반신불수가 되어서"나는 죽어도 좋으니 한글날은 살려 달라."라고 호소하는 책을 내시며 소원하고 빌었다. 나는 16대 국회 마지막 해인 2002년 여의도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대회도 열고, 시민단체에 호소해 전교조 이수호 회장, 참여연대 손혁재 사무처장, 참교육학부회 윤지희 회장, 전국국어교사모임 고안덕 회장들과 함께 국회 앞에 돌아가며 1인 시위까지 했으나 16대 국회는 듣지 않고 문을 닫았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참교육학부모회 윤지희 회장]
그러나 비뚤어지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었다. 17대 국회가 열자마자 다시 국회의원들이 모임을 만들고 한글단체는 그 지원 활동을 더 세차게 한다. 17대 국회가 문을 연 지 2년이 다 되어도 국회 행정자치부와 행정자치위원회는 법안도 제대로 심의하지 않았다.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은 그들을 '2005년 우리말 훼방꾼'으로 뽑고 그 잘못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국회에 살다시피 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국회의원을 찾아가 호소하고 부탁했다. 드디어 2005년 12월 1일 행정자치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고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글날이 국경일로 확정된다.
한번 잘못된 정책,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데 15년이 걸렸고 그동안 국민 고통과 국력 낭비가 엄청나게 컸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법안이 행자위를 통과된 날 여러분이 나보고 애썼다고 하기에 "높은 산에 땀 흘리며 올라간 기분이다. 기쁘기도 하고 허탈하고 고맙다."고 말한 일이 있다. 며칠 전 첫눈이 온 일요일, 나는 대학 동문들과 함께 집 근처 용마산에 올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만해 한용운님의 묘소를 찾아 "님께서 1926년 가갸날(한글날)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시며 '가갸날'이란 시를 지으셨는데 그 한글날이 80년 만에 국경일이 되었습니다. 그 때 한글날을 만든 분들과 국경일로 만들려 애쓰다 돌아가신 분들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축시를 지어 함께 기뻐해 주소서"라고 말씀드리며 눈 위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려고 애쓰시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 안호상, 공병우, 허웅, 한갑수 선생님과 여러분께도, 선생님들 덕분에 이제 해냈다고 말씀드린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해 달라고 청와대에 갔다가 쓰러져 지금도 병마와 싸우시며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걱정하시는 아흔 살 할아버지 전택부 선생님과 한글단체와 시민단체 여러분, 국경일 제정 법안 통과에 애쓰시고 도와주신 국회의원님들께 고마운 인사 올린다. 한글날과 한글을 짓밟으면서 우리 민족문화발전이 수십 년이 뒤 처지고, 외국말 숭배풍조에 엄청난 국력 낭비와 고통을 받게 되는 게 가슴이 아파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반대한 경제단체나 행정자치부 여러분과 또 다른 많은 분들께 심한 말로 비난했는데 미안한 생각도 든다. 이제 모두 한마음이 되어 한글날을 진짜 경사스런 문화 국경일로 만들고 싶다.
한글과 한글날 만세! 우리나라 만세! 배달말과 배달겨레 만만세!
[2005년 12월 첫 일요일 눈 덮인 만해의 묘소와 그가 1926년에 지은 시 '가갸날']
가갸날
한 용 운
아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와요.
'축일(祝日)', '제일(祭日)'
'데이', '시즌' 이 위에
가갸날이 났어요, 가갸날.
끝없이 바다에 쑥 솟아오르는 해처럼
힘있고 빛나고 뚜렷한 가갸날.
'데이'보다 읽기 좋고 '시즌'보다 알기 쉬워요.
입으로 젖꼭지를 물고 손으로 다른 젖꼭지를 만지는
어여쁜 아기도 일러 줄 수 있어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계집 사내도 가르쳐 줄 수 있어요.
가갸로 말을 하고 글을 쓰셔요.
혀끝에서 물결이 솟고 붓 아래에 꽃이 피어요.
그 속엔 우리의 향기로운 목숨이 살아 움직입니다.
그 속엔 낯익은 사랑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감겨 있어요.
굳세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노래하여요.
검이여, 우리는 서슴지 않고 소리쳐 가갸날을 자랑하겠습니다.
검이여, 가갸날로 검의 가장 좋은 날을 삼아 주세요.
온 누리의 모든 사람으로 가갸날을 노래하게 하여 주세요.
가갸날, 오오 가갸날이여.
-동아 일보 제2247호(1926.12.7)에서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글쓴이 : 이대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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