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돌 한글날 한글학회 학술대회 발표문]
외국말 섬기기는 사대주의 원천이고 자주 자립국가 걸림돌
1. 머리말
우리나라 사람들 핏속에는 제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섬기고 우러러보는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제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지나치게 더 좋아한다. 오늘날 똑 같은 국산품이라도 영어(외국어)로 상표를 달면 더 비싸게 팔리는 것이 그 본보기다. 40년 전만 해도 제 이름을 한글로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한자로 이름을 쓰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 무슨 행사장에 가서 방명록을 보면 거의 모두 한자로 이름을 쓴다. 한글로 이름을 쓰려면 눈치를 봐야하고 용기를 내야 했다. 이런 모습, 못된 버릇은 언제부터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까? 신라가 중국 당나라의 말글과 문화를 섬기면서 비롯된 일로서 1500년 된 일이다.
왼쪽은 1970년대 한 모임 방명록, 오른쪽은 60년대 헌정회의 새해맞이 모임 방명록이다.
삼국시대부터 고려를 거쳐서 조선시대까지 1500여 년 동안은 중국 한문을 섬기고, 일본 강점기 때에는 일본 말글을 섬기고, 오늘날엔 미국 말글을 섬기면서 그 힘센 나라와 사람들까지 우러러봤다. 그 큰 나라의 지배를 받다보니 우리말보다 그 나라의 말을 알고 써야 빨리 출세하고 어깨를 펴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 그 나라의 말이 출세 수단이고 일반 백성을 지배하는 도구였으며 우리말보다 남의 나라 말을 더 좋아하고 우러러보게 되었다. 제 나라의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좋아하고 섬기는 이 언어사대주의는 언어뿐만 아니라 제 나라는 우습게 여기고 힘센 나라의 문화와 삶을 더 받드는 사대주의가 되었다.
이 언어 사대주의는 언제부터 어떻게 뿌리 내렸을까? 통일 신라 때부터 뿌리 내리고, 고려와 조선이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 중국을 우러러보는 사대주의가 되고, 일본의 식민지 때에는 일본말에 밀려서 우리말은 사라질 번했다. 그래서 중국 한문에다가 일본 한자말이 학문과 교육, 행정, 전문 용어로 뿌리 내려서 한자가 한글을 더 못살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이 일본을 몰아내고 이 나라를 지배하니 미국말을 섬기는 세상으로 바뀐다. 옛날엔 한자와 한문이 출세 수단이었으나 오늘날엔 미국말이 출세 수단이고 지배자들이 국민을 지배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그 나라 말은 그 나라의 얼이고,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제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좋아하고 섬기니 얼빠진 나라가 되고 자주 자립 국가로 가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제 말글을 배우고 잘하는데 쓰는 힘과 돈과 시간보다 중국 한자와 영어를 배우는데 쓰는 돈과 힘과 시간이 더 많다. 이 돈과 힘과 시간을 과학 교육과 기술 훈련, 제 몸과 정신을 튼튼하게 하는 데 쓰면 나라가 빨리 일어나고 튼튼할 것이다. 그런데 남의 말글을 더 섬기면서 자주 정신 교육과 경제 발전에 쓸 힘과 돈과 시간을 남의 말글과 문화 배우고 섬기는데 써버리니 언제나 후진국으로 남게 된다. 이 못된 버릇을 빨리 버려야 남북통일도 빨리되고 자주 자립국가가 된다.
2. 제 말글보다 외국말을 더 섬기는 언어사대주의
2.1. 중국 한문 섬기기
우리말은 있으나 우리 글자가 없어 삼국시대부터 중국 한자를 빌려서 썼다. 그런데 신라는 고구려, 백제 가운데 가장 늦게 한자를 들여다 쓰기 시작했지만 뒤늦게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중국을 더 섬겼다. 그리고 중국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트리고 지나치게 중국 한문과 문화를 섬기면서 언어사대주의가 뿌리내렸다. 이 중국 한문을 섬기는 언어사대주의는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고 중국의 지배 속에 살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조선이 망하고 일본 식민지까지 되니 언어사대주의를 넘어 제 것보다 힘센 나라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섬기는 사대주의가 되어 지금까지 우리 피 속에 흐르고 있다.
신라 초기엔 한자를 쓰더라도 우리식으로 글을 쓰고 이름을 썼다. 나라의 우두머리인 임금을 ‘마립간’이라고 불렀는데 신라 22대 지증왕이 중국 당나라처럼 ‘왕’이라고 부르고 나라를 ‘신라’라고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중국 당나라와 가까이 지내면서 사람들 성씨와 이름까지도 중국식으로 바꾸었다. 그 전에는 사람 이름도 “밝혁거세, 을지문덕, 연개소문”처럼 네 글자도 있었으나 “김유신, 김춘추”처럼 세 글자로 이름을 지었고 그 풍조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사람 이름뿐만 아니라 35대 경덕왕 때엔 관직과 땅이름까지 중국 당나라 식으로 바꾸고 중국 문화를 섬겼다. 그래서 이 나라가 작은 중국이란 말까지 나온다.
전라도 ‘전주’라는 땅 이름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57년 35대 경덕왕 때에 중국의 땅이름을 본 따서 지은 것이다. 전주뿐만 아니라 경상도나 전라도 지역에 중국 땅이름과 같은 땅이름이 많다. 내가 2007년 중국 절강성 절강월수외대에 근무할 때 절강성에 있는 장개석의 고향에 갔는데 그곳 이름이 경상도 ‘봉화’와 똑같은 이름이었다. 10여 년 전 김수업 교수가 대구카톨릭대 총장일 때에 그 학교에 중국의 한 대학 총장이 방문했는데 그가 “한국에 오니 중국 땅이름과 같은 곳이 많아서 낯설지 않고 좋다.”라는 말을 하더란다. 김 교수는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옛날부터 한국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중국 절강월수외대에 근무할 때에 그곳 회계산 자락에 중국 하나라 우왕능이 있었는데 그 아래서 4000여 년 되었다는 우씨 집성촌이 있었다. 그 우씨 집성촌 종친회 사무실에 들렀더니 “우씨가 4000여 년 내려오는 동안에 200여 성씨로 갈라졌다. 한국의 우씨는 말할 것이 없고 ‘서씨, 이씨’ 들 많은 성씨가 중국 성씨다. 그러니 중국과 한국 사람은 한 민족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가 2000여 년 전부터 중국 한자와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중국 영향을 받았고 실제로 오랫동안 오가는 동안에 중국에서 귀화해 사는 성씨들까지 있어서 나온 말이라고 본다.
중국 소흥시 회계산 우왕릉 아래에 있는 4천 년 되었다는 우씨 집성촌 입구와 마을 모습
그런데 2000여 년 전부터 중국 한문을 배우고 썼지만 우리 선조들이 쓴 한문책보다 중국 한문으로 쓴 사서삼경이나 불경들을 아직도 즐겨 읽고 우러러보고 있다. 그러니 중국 문학 작품이나 학문이 원 줄기이고 우리 한문 글은 곁가지가 되었다. 오늘날도 우리는 소동파가 우리 고려인을 깔보고 괴롭힌 사람인데도 그의 시를 좋아하고 칭송하고 있다. 소동파는 천 여 년 전 중국 항주 지사로 있을 때 고려인을 미워해서 고려 왕자 의천대각국사가 세운 고려사를 없애고 그 절터에 제 공적비와 동상을 세웠다. 그래서 최근에 중국이 그 혜인고려사를 다시 세울 때에 옛 절터에 세우지 못하고 수백 미터 옆에 다시 지었다.
왼쪽은 옛 고려사 터에 있는 소동파동상, 오른쪽은 근래에 그 옆에 복원한 혜인고려사 모습
우리가 삼국시대부터 고려 때까지는 우리 글자가 없고 중국 지배를 받다보니 한자와 한문으로 말글살이를 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조선 초기에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한글을 만들었다. 이 한글은 한자는 말할 것이 없고, 영어를 적는 로마자보다도 더 훌륭한 글자다. 그런데 이 한글이 태어난 때부터 500여 년 동안 우리는 제대로 쓰지도 않고 한문만 섬겼다. 그러니 중국 속국이었다가 일본 식민지였으며 지금은 미국의 손아귀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참으로 부끄럽다. 이제는 한글을 쓰고 우리 자존심과 자긍심도 살리고 자주 자립 국가가 되자.
왼쪽은 오늘날 교육방송에서 하는 김용옥 선생 사서삼경 강의와 오른쪽은 논어 한문.
이 중국 한문 섬기기 흔적은 아직도 나라 곳곳과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다. 몇 해 전에 대한민국 국회는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영빈관을 지으면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한자말 允執厥中(윤집궐중)이란 말에서 允中이란 말만 따다가 ‘允中齎’라고 영빈관 이름을 지었기에 ‘사랑재’라고 한글로 이름을 지어 달게 한 일이 있다. ‘윤집궐중’이란 말은 중국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지어주었다는 글로서 우리가 ‘홍익인간’이란 말을 좋아하듯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글이다. 그래서 북경 자금성이나 대우릉 사당과 중국 중요한 곳에 써놓고 중국 정신을 키우는 글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국회가 그런 한문을 본 따서 이름을 짓겠다고 했다. 세계 으뜸인 제 말글이 있는데도 제 말글로 이름을 짓지 못하니 이게 나라다운 나라인가!
왼쪽은 내가 중국 대우능 사당에서 찍은 것이고, 오른쪽은 국회 ‘사랑재’에서 찍은 것이다.
2.2. 일본 말글 섬기기와 일본식 한자혼용 말글살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국 한문을 알고 잘해야 출세하고 잘 살기에 중국 한문을 좋아하고 섬기다보니 중국 한문이 출세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옛 책이 모두 한문이고, 또 공문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여러 가지 불편해서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한글을 만들었으나 제대로 쓰지 않았다. 1500년이 넘게 한자를 써왔으며 한문 나라 중국 지배를 받았기에 그랬던 거로 보인다. 그러다가 뒤늦게 조선 말기에 한글을 써서 자주 자립 국가를 만들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0년에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말이 공식 언어가 되고 지배 언어가 되었다. 또한 일본어로 교육하고 생활하게 된다. 그렇게 되니 중국 한문에다가 일본식 한자말을 한자로 적는 한자혼용 말글살이가 뿌리내린다.
왼쪽은 1960년대 한국 신문, 오른쪽은 2010년대 일본 신문. 두 모습이 닮았다.
이 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일본제국은 우리말을 학교에서 쓰지 못하게 하고 우리말을 지키고 갈고 닦는 조선어학회 사람들을 감옥소에 가두고 모진 고문을 해서 두 분은 옥사했다. 교육도 조선시대처럼 향교나 서당에서 한문으로 하는 교육이 아니고 일본식 학교에서 일본 말글로 교육을 하고, 행정기관에서도 일본 말글로 일하니 교육과 행정용어가 일본 한자말이었고 그에 길들게 되었다. 학술 전문용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본말을 잘 알고 써야 출세하고 관리나 일본 앞잡이가 되어 큰소리치고 살게 되니 우리말은 거들떠보지 않게 된다. 이때에 길든 못된 말글살이가 한자 혼용이다. 이 한자혼용은 실제로 일본이 지배한 대한제국 때부터 퍼진다.
왼쪽은 110여 년 전 대한제국 때 한자혼용, 오른쪽은 1962년 한국 정부 한자혼용 공고문
일본 말글살이는 한자를 섞어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말글살이인데 광복 뒤 우리 말글살이도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한글을 못살게 굴었다. 바로 일본 강점기 때에 태어나 일본 식민지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이 교육자, 언론인, 정치인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한자혼용은 고종 때 일본인 “이노우에 가꾸고로”가 한성주보 고문으로 있으면서 그 신문에서 처음 선 보였는데 그가 조선을 지배했을 때에 일본식 한자혼용 말글살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생각으로 시도한 일이라고 훗날 털어놨다. 그 뒤 조선 공식 문서에도 한자혼용으로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일본식 말글살이는 지금까지 우리 말글을 괴롭힌다.
왼쪽은 한국 국회 본청 민원실에 붙어있는 글, 오른쪽은 1991년 노동부장관 신문광고 글
이 한자 혼용 말글살이는 광복 뒤에도 계속 이어오다가 많은 사람들이 애써서 이제 한 풀 꺾었으나 아직도 그 잔당이 남아 설치고 있다. 한심한 친일 식민지 찌꺼기들이다. 1991년에 노동부장관이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 한글전용법을 어기고 한자혼용으로 광고를 해서 나는 그를 검찰에 한글전용법 위반으로 고발한 일도 있다. 이제 한자를 버릴 때이다.
2.3. 대한민국 시대 영어 섬기기
우리는 1945년에 우리 힘으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다. 우리도 광복을 위해 애썼지만 미국과 소련과 중국들 연합군이 일본과 전쟁에서 이기면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들어와 일본을 몰아내고 남북이 따로 새 나라를 세웠다. 광복 뒤 한동안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우리 말글을 살리고 우리 말글로 말글살이를 하려고 애썼으나 6.25 전쟁이 일어나고 미군이 이 나라를 지켜주면서 미국말과 미국 지배를 더 받게 된다. 그래도 광복 뒤부터 1980년대 까지는 민족 자주정신이 살아서 미국말이 그렇게 번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2년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를 외치면서 한자 조기교육과 영어 조기교육을 하겠다고 나서니 우리말과 한글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 영어바람이 세차게 일어났다. 김대중 정권 때엔 김종필 총리와 일본식 한자혼용 세력이 공문서를 공문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하고 영어 공용어 바람까지 일으킨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 이어서 박근혜 정권 때엔 영어 마을과 영어 몰입교육 바람이 일어난다. 그러니 거리 간판과 회사와 아파트 이름이 온통 영어로 바뀐다. 일본 강점기 때엔 강제로 창씨개명을 시켰는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 미국식 창씨개명을 하고 미국말 식민지로 가고 있다. 국민은 그게 옳고 좋은 줄 알고 따라서 한다.
오른쪽은 1970년대 명동거리 모습(외국말이라도 한글이다.) 왼쪽은 오늘날 명동거리 모습
그러면 정부라도 제 나라 말글을 지키고 살리려고 정책을 세우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앞장서서 국어기본법과 말글 규정을 무시하고 한자와 영어, 한글을 섞어서 쓴다. 말장난을 하고 영어 바람을 부채질한다. 방송국은 경쟁이나 하듯이 영어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닌 이상한 방송제목을 만들어 우리 말글살이를 어지럽히고 있다. 몇 해 전에는 대전시 대덕구가 새로 생기는 마을 이름을 영어로 짓겠다고 해서 막았는데 이번 문재인 정부는 중앙부처 이름에 ‘벤처’란 미국말을 넣어 ‘중소벤처기업부’라고 지었다.
그렇더라도 학교 교육이나 제대로 하면 앞날에 희망을 갖겠는데 그렇지 않다. 학교 선생이나 교장, 교수들은 말할 것이 없고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까지 법과 말글 규정을 어기고 우리 말글살이를 어지럽히는 것을 바로잡을 생각을 안 한다. 그 잘못을 인식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오히려 교문에 영어와 한자, 한글을 섞은 펼침막을 걸기도 하고 경남교육청은 그런 잡탕 글을 특허까지 내고 퍼트리고 있다. 그리고 창작과 창조를 위한 행위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왼쪽은 부천 부명중학교 교문에 걸린 펼침막, 오른쪽은 경남교육청이 특허낸 알림글
이렇게 말글살이가 잘못되면 방송과 신문이라도 바르게 쓰고 바로잡아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더 앞장서서 우리 말글살이를 어지럽힌다. 그러니 한글단체라도 나서서 바로잡으려고 애쓰지만 너무 지나쳐서 손을 쓰지 못할 지경이다. 나라가 망할 때에도 처음엔 뜻있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그게 세상 흐름이 되면 그들도 포기하게 되고 될 때로 되란다.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길 때도 그렇게 되었다. 요즘 나라 말글살이가 그 꼴이다.
방송국들의 방송 제목들이다. 영어가 안 들어가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얼이고 정신인데 정부도 언론도 제 나라의 말을 지키고 빛낼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앞장서서 짓밟으니 우리말이 바람 앞의 등불 꼴이 되었다. 그동안 국어단체나 국민이 나름대로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고 쓰게 했는데 이제 그런 정도 힘으로 우리 말글을 지키기 힘들게 되었다. 나도 이 영어바람을 잠재우려고 토론회도 열고 1인 시위도 하고 신문에 글을 쓰고 거리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서명운동도 했지만 소용이 없다.
1300년 전 통일 신라 때부터 뿌리내린 중국식 이름 짓기를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이제 머지않아 미국식으로 마을 이름도 사람이름도 짓자고 할 거 같다. 지금 회사나 가게 이름은 거의 영문이다. 올해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앙부처 이름에 ‘벤처’라는 외국어를 넣자고 한 벤처기업협회 임원진 회사들을 보니 모두 영문 이름이었다. 이들이 볼 때엔 우리말과 한글을 쓰는 한국 사람들은 우습게 보이나 보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선진국은 꿈도 못 꾸고 영원히 강대국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뜻대로 외교와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한탄하는 것을 봤다. 그 까닭이 제 얼말글을 살리지 못하고 얼빠진 정치에서 옴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겨레 얼말글로 힘을 키워야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 데 그걸 모르니 답답하다.
왼쪽은 온통 영어로 된 벤처기업협회 임원회사들. 오른쪽은 전주 지명 유례가 적힌 빗돌
3. 마무리 말
모든 일은 먼저 할 일이 있고 늦게 해도 되는 일이 있다. 나라의 얼과 말글을 지키고 빛내는 일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려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이 일은 겨레와 나라의 밑바탕을 다지는 일이고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인들이 그걸 모르고 남의 말이나 섬기고 남의 말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더욱이 요즘 권력자들은 그 권력을 잡는데 표를 줄 사람들을 위한 일에는 수천억 원을 펑펑 쓰지만 가장 빨리 먼저 해야 할 우리 얼과 말글을 지키고 빛내는 일은 힘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말과 한글을 살리고 지키려는 단체와 국민을 무시하고 한자와 영어바람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니 자주 국가 못 되는 것이다.
정부와 공무원들이 그러니 일반 국민들도 따라서 제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섬기고 좋아한다. 그래서 회사나 가게 간판을 미국말로 써달면 더 좋은 회사나 가게로 안다. 제 말글로는 이름도 하나 짓지 못한다. 미국사람처럼 보이려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눈에 파란 렌즈를 낀다. 미국말을 잘하겠다고 어린 애 혀까지 수술하고, 아직 우리말도 못하는 애들에게 영어부터 가르치고 조기유학을 간다. 그래서 기러기 아빠기 생기고 가정이 해체되기도 한다. 참으로 한심하다. 얼빠진 나라다. 그러니 우리를 우습게 여기고, 이게 나라다운 나라냐고 한탄한다.
제 말과 제 글자를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은 자주, 자립정신이 없다는 것이고, 앞서가는 나라가 될 능력과 자질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어 열병은 영어 암이 되어 이제 손도 쓸 수 없는 말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오히려 우리말을 살리고 지키자는 사람들이 바보취급을 받고 있다. 일본 식민지 때 길든 일본 한자말과 일본 말투를 버리고 우리말을 살려서 우리말답게 말하자면 반대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이제 많은 사람이 쓰는데 뭐 따지느냐고 한다. 눈이 하나인 사람이 많이 늘어나면 눈이 둘인 사람이 병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말 지킴이들도 될 대로 되라고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요즘 중국이 힘센 나라가 되어 큰소리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을 이렇게 발전할 기초를 닦은 중국 등소평은 일찍이 수십조 원이 드는 중국 5대 국정과제(인공위성 발사, 원자탄 개발 들)에 ‘문맹자 없애기와 정보통신 발전’을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공위성이나 원자탄들 사업은 성공을 했으나 아직 문맹퇴치와 정보통신 발전은 우리만큼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에서 돈과 힘을 안 썼는데도 한글단체와 국민의 힘만으로 문맹자가 없는 정보통신 강국이 되었다. 한글 덕분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우리말과 한글보다 영어와 한자 섬기기에는 엄청나게 돈을 쓰고 있으니 한심하다. 우리도 우리 얼과 말글을 지키고 빛내는 일이 100대 국정과제에라도 들어가야 한다. 아니 첫째 과제로 삼아야 한다.
왼쪽은 박근혜 정부 때 중앙부처 누리집의 알림글. 오른쪽은 서울시 지하철에 걸린 알림글.
법이 없어도 제 말글살이를 바르게 해야 할 공무원들부터 법을 어기고 말장난을 하니 우리말이 몸살을 앓고 죽을 판이다. 이제 국어기본법에 법을 어기고 말글살이를 어지럽히면 처벌한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 앞서가는 나라가 되고, 노벨상을 타는 사람이 나오려면 남의 말글보다 제 말글을 더 사랑하고 제 말글로 가르치고 빛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글을 우습게 여기니 남들이 우리를 깔본다. 제 말글을 바르게 쓰고 사랑하는 것은 얼이 찬 나라를 만드는 것이고 앞서가는 첫걸음이다. 이 일은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고 정부와 국민이 마음먹기 따라 쉽게 이룰 수 있다.
아무리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중국의 지배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글자가 없어 중국 한문을 배우고 썼더라도, 일본 식민지 때는 일본 말글을 안 배우고 쓸 수 없었더라도, 오늘날 미국의 지배를 받고 영어를 알아야 좋더라도 우리말이 먼저요 한글을 사랑해야 한다. 이제 중국 한문 세력, 일본 식민지 때 길든 한자혼용 세력, 그리고 오늘날 미국말 숭배자들을 몰아내야 우리말과 얼이 살고 사대주의가 사라진다. 우리 뼈 속 깊게 자리 잡은 언어 사대주의를 뽑아버릴 정신 교육을 해야 하고, 자주 자립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강대국들 손아귀에서 벗어나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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