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별기고 <문학인들에게 띄우는 편지>
이대로(한글사용성평가위원회 회장)
한 겨레의 말은 그 겨레의 얼이고 그 겨레 한아비들의 삶과 슬기가 담긴 그릇이다. 그 겨레말이 살면 그 겨레도 살고, 그 겨레말이 빛나면 그 겨레도 빛난다. 또한 그 겨레말이 사라지면 그 겨레도 사라진다. 그렇다. 한 때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청나라를 세운 만주 여진족이 오늘날 그 말글이 사라지고 민족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들이 중국을 지배할 때 쓰던 북경 자금성과 심양에 있는 궁전 현판에 한자와 같이 쓰인 만주 글자를 보면서 그들을 기억할 뿐이다. 그 사라진 만주 여진족이 그 겨레와 그 겨레 말글은 같은 운명임을 똑똑하게 알 수 있다.
1910년 우리나라를 빼앗았던 일본이 우리 겨레말을 못 쓰게 하고 강제로 일본식 창씨개명을 시켰다. 또한 우리 말글을 지키고 살리려고 우리말 사전(말모이)을 만들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유치장에 가두고 고문해 죽게 한 일이 있다. 이것은 우리 말글을 없애면 우리 겨레도 사라지게 되고 영원한 일본 식민지 백성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 때 만약에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가 일본 식민지라면 지금 우리 말글과 겨레는 만주족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늘이 도왔는지 일본은 패망했고 우리 말글은 살아났다.
그래서 1945년 광복 뒤 미국 군정 때부터 우리말을 배우고 쓰기 쉬운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한 덕분에 반세기만에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국민수준이 높아져서 한강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경제와 민주주의가 빨리 발전했었다. 우리 한글이 셈틀(컴퓨터)과 누리통신에 딱 어울려서 20여 년 전엔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셈틀과 어울리지 않는 한자를 쓰는 중국에도 뒤질 판이다.
김영삼 정권이 한글을 우습게 여기고 세계화를 외치면서 한자와 영어 조기교육을 하겠다고 하니 한글사랑은 나라사랑이라고 외치며 일어났던 우리말과 우리겨레의 기운이 식어갔다. 그리고 얼빠진 나라가 되어 마침내 1997년엔 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잘 나가던 회사도 망하고 직장을 잃은 이들이 노숙자가 되어 서울역 지하도에서 새우잠을 자게 되었다. 은행과 대기업도 외국 투기자본가의 먹이가 되었다. 체신부 전화국이란 국가기관이 한국통신이란 공기업이 되었는데 그 이름까지 KT라고 외국글로 바뀌고 나라 말글살이가 어지럽게 되고 정보통신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모두 우리 겨레의 얼이 담긴 우리 말글을 우습게 여기고 남의 말글을 배우고 쓰는데 온 힘과 시간과 돈을 바치다가 얻은 못난 꼴이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시대 이루었던 국토는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나서 서로 싸우고 있으며 일본은 다시 일어나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데 우리는 세종정신과 업적을 되살려 나라를 다시 일으킬 생각도 안 한다. 수천 년 동안 우리를 지배하던 중국 문화와 중국 한문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도 못했고, 아직도 우리말은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행정용어, 교육용어, 전문용어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서 한글 간판은 사라지고 영어 간판이 나날이 늘고 있다.
또한 우리는 국산품도 그 상표를 외국말로 붙이면 비싸게 팔리고 똑 같은 아파트도 이름을 영문으로 쓰면 비싸도 잘 팔린다. 이게 모두 다 신라 때 중국 당나라를 섬기면서 뿌리 내린 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교육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 2019년 새해를 맞이해 이 못된 근성과 버릇을 뿌리 뽑아 버려야 한다. 5000년 된 우리말이 있고, 세계 으뜸 글자인 우리 글자 한글이 있지만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지을 줄도 모르고 적지도 않는 정신,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적자는 정신으로는 안 된다. 우리 말글이 바로 서고 빛날 때에 우리나라와 겨레도 바로 서고 빛난다.
일제 강점기 때엔 강제로 일본식 창씨개명을 당했는데 오늘날엔 우리 스스로 미국식 창씨개명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깝도다. 언제까지 일본, 중국, 미국 같은 힘센 나라에 끌려 다니고 눌려서 살 것인가! 언제까지 5000년 동안 쓴 우리말이 있고 세계 으뜸가는 우리글자인 한글이 있는데 남의 말글로 이름을 짓고 적으려는가! 우리 겨레는 5000년 역사를 가진 겨레지만 삼국시대부터 수 천 년 동안 이웃 강대국에 수많은 침략을 받고 시달렸다. 이제 21세기를 맞이해 앞으로 새 천년은 우리 겨레가 어깨를 펴고 살면서 온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말을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가 뿌리내릴 때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 겨레의 기운이 다시 일어나고 나라 문제가 술술 풀린다. 수천 년 전 삼국시대만 해도 우리가 일본에 문화를 전파했는데 100년 전엔 일본의 식민지로 살기도 했다. 지금 일본은 노벨상을 탄 이가 27명이라는데 우리는 한 명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일본 한자말보다 우리 토박이말을 되도록 찾아서 쓰고 우리 말글로 가르치고 배워야 우리 말글이 살고 우리 얼이 빛난다. 우리 글자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 창조 도구요 무기다. 입으로만 한글을 사랑한다고 떠들지 말고 실제로 잘 써먹자.
우리 말글이 바로 설 때에 우리나라도 바로 선다. 우리 말글이 바로 서고 빛날 때에 노벨상을 타는 사람도 나온다. 정부가 그럴 정책을 세우고 온 국민이 함께 애써야겠지만 새해엔 우리 문학인들이 앞장서서 우리 말글로 좋은 글을 써서 우리 말글 꽃을 활짝 피우자. 세종대왕이 우리 자주문화 창조으뜸 도구요 무기인 세계 으뜸 글자 한글을 만들어주었으니 지금 우리는 이 글자를 잘만 이용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 말글 꽃이 활짝 피고 자주문화가 온 세계로 뻗어나간다. 이 일은 우리 문학인의 임무요 시대 사명이다. 2019년 새해 새날을 맞이해 우리 모두 다짐하고 꼭 실천하자. 우리 말글로 튼튼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